손목 위에 가볍게 얹으면 그 무게감을 잊을 정도다. 웬만해선 지름 5㎝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밀리미터(㎜) 이하 부품은 수백 개에서 수천 개다. 가격은 몇천 원에서 수십억 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 주인공은 손목시계다. 이 작은 물건이 산업계에서 점유하고 있는 규모는 거의 수백조 원대에 달한다.
피아제는 그중에서도 상당히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다. 150년 가까이 시계를 개발해 생산해왔고, 보석도 50년 넘게 만들었다. 두 가지를 모두 100% 자체 개발ㆍ생산하는 브랜드는 피아제가 유일하다시피하다. 이런 피아제의 수장인 필립 레오폴드 메츠거 최고경영자(CEO)를 지난 9월 말 홍콩에서 아시아 최초로 열린 리치몬트그룹의 고급시계박람회인 `워치스앤드원더스(Watches&Wonders)`에서 매일경제가 단독으로 만났다.
그는 "럭셔리 비즈니스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는 브랜드라면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 측면에선 모두 뛰어난 역량을 보인다"면서 "하지만 피아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만드는 것만 판다`는 원칙을 성실하게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메츠거 CEO는 "시계의 핵심인 무브먼트와 케이스를 비롯해 주얼리 세공, 팔찌까지 모두 직접 만드는 브랜드는 피아제 외에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15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피아제의 브랜드 철학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메츠거 CEO의 이야기다.
150년간 시계를 만들고 50여 년간 주얼리를 만든 피아제의 CEO가 된 지 벌써 15년이 되어간다. 피아제와 인연을 맺은 지는 20년도 넘었다.
▶그 어떤 시계 브랜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록을 가진 피아제의 장수(長壽) CEO인 것이 개인적으로 무척 자랑스럽다. 브랜드가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고, 이를 구성원들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면 장기근속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 기간 한 브랜드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좋은 기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오래 기업에 머물게 하는 것이 브랜드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피아제도 그렇지만, 론진이나 오메가 같은 브랜드만 봐도 알 수 있다.
유수의 역사를 지닌 시계 브랜드는 사실 많다. 같은 리치몬트그룹의 바쉐론콘스탄틴은 역사가 250년이나 된다.
▶피아제의 특ㆍ장점은 단순히 시계를 만든 역사의 길고 짧음에서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시계 브랜드와 달리 시계와 보석 두 분야에서 모두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두 분야에서 모두 100% 자체 제작 및 생산을 한다. 시계에서 우리보다 더 긴 역사를 지닌 브랜드도 몇몇 있고, 보석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두 분야에서 모두 긴 역사를 지니고 있고, 처음부터 모든 제품을 100% 자체 제작해 판매하는 역사를 지닌 브랜드는 피아제가 거의 유일하다.
경쟁사들이 남성 고객 위주인데 반해 피아제는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다. 장점인가, 아니면 약점인가.
▶32년 전 내가 시계 산업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주 고객층은 50~60대 남성이었다. 하지만 지금 고급 시계 시장을 점령하는 계층은 30~40대로 연령층이 내려갔고, 여성 비중이 남성 비중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일찌감치 앞으로 다가올 시장을 잘 공략했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우리가 독보적인 위치를 지키고 있는 주얼리 시계는 수익성이 아주 뛰어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점들이 약점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여성시계`나 `주얼리시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최고 시계`다. 그렇기 때문에 주얼리 시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만큼, 메커니컬시계의 비중을 강화하기 위해 마케팅을 강화할 계획이다.
주얼리시계와 메커니컬시계, 그리고 보석 자체 세일즈까지 하면서 세 분야를 모두 잡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을 봤다.
▶피아제 CEO로서 세 가지 분야에서 모두 선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세 분야에서 비슷한 수익을 내고자 한다. 황금비율은 1대1대1이다.
그 아래로 더 세분해 비즈니스를 할 생각은 없나. 예를 들어 피아제는 스틸 소재 시계는 만들지 않는데, 이런 분야에 진출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우리가 잘 만들 수 있는 것만 직접 만들어 판다. 그게 럭셔리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틸시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주얼리시계, 메커니컬시계, 보석, 이 세 가지 이상의 세분화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 분야에서만 잘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계도 그렇지만 보석업계도 쟁쟁한 경쟁자가 피라미드의 상위권에 포지셔닝해 있는 치열한 곳 아닌가.
▶시장 전체 파이를 키우려면 강한 경쟁자가 많아야 한다. 시계와 보석 모두 그런 면에선 최상의 산업이라고 본다. 피아제가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강한 경쟁자들의 존재다. 그래서 이런 치열한 경쟁을 오히려 득이라고 생각하고 즐기려고 한다. 아주 먼 미래에는 시계 산업에서 20개 정도 브랜드가 선두를 유지하며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본다.
이런 치열한 경쟁 아래에서 살아남기 위해 CEO로서 직원들에게 어떤 것을 주문하나.
▶항상 위만 보라고 이야기한다. 아래는 절대 보지 않는다. 더 나아갈 방향, 더 잘할 수 있는 미래만 보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잠도 자지 말고 경쟁하라`고 말한다. 이는 나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로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진짜로 잠을 아예 안 자라는 말은 아니지만(웃음) 그럴 정도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치열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이번 `워치스앤드원더스`가 아시아 최초로 홍콩에서 열렸다. 시계 업계의 아시아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 같은데.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몇십 년 전부터 모든 사람들은 `중국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자신 있게 `앞으로 중국은 계속해서 더 커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피아제는 유독 다른 브랜드에 비해 `중국 로컬라이제이션`에 인색하다는 느낌이 든다.
▶굳이 `중국식` 제품을 만드는 것은 우리 브랜드 철학과도 안 맞고, 고객들이 원하는 방향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주 한정적으로, 중국의 상징과 같은 용이나 불사조(피닉스) 컬렉션 같은 것을 내놓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로컬라이제이션이라기보다는 그저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기 위한 재료일 뿐이다. 중국의 고객들도 `아름답고 훌륭한 제품`을 원하는 것이지 `중국 특화 제품`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모델이나 홍보대사 발탁을 잘하지 않는 피아제가 중국 여배우인 공리를 홍보대사로 쓴 것은 중국 파워를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공리를 홍보대사로 발탁한 이유는 피아제 브랜드 이미지와 잘 맞았기 때문이 더 크다. 물론 할리우드에도 수많은 아름다운 배우들이 있지만, 대부분이 너무 많은 기업과 함께 활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만을 위해 `특별하게(Exclusively)` 활동해줄 홍보대사가 필요했고, 적임자가 공리였다.
기타 아시아 시장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중국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동안 위축됐었지만 다시 살아나고 있는 일본이나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한국이 아시아파워의 핵심이다. 피아제는 중국시장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신경 쓰겠지만, 브랜드 입장에선 성장거점을 `밸런싱(균형잡기)`할 필요도 있다. 내가 한국에 1년에 수차례 방문해 시장 확대를 연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홍콩을 제외하면 앞으로의 성장이 한국만큼 기대되는 나라도 거의 없다. 한국 여성들은 아름다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이런 점은 우리 브랜드와도 잘 맞는다. 한국에서 현재 시계 비즈니스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 더해 앞으로는 보석 분야를 더 강화하고 싶다.
피아제 시계와 보석이 지향하는 점을 간단히 정의한다면.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아름다움이다. 클래식(Classic)과 컨템퍼러리(Contemporary)를 크리에이티브(Creative)로 연결한 것이 바로 피아제 제품의 정수라고 본다. `조부모에게 물려받아 20대 손녀가 당장 사용해도 여전히 아름다운 피아제`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자 추구하는 가치다.
■ He is…
필립 레오폴드 메츠거(PhilippeLeopold-Metzger)는 1954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미국과 프랑스 국적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켈로그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를 취득했으며, 1981년 파리로 건너와 까르띠에의 제품 매니저로 일하면서 명품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1992년 피아제에 처음 조인한 그는 세일즈, 개발, 마케팅 등을 담당했다. 1996년부터 3년간 까르띠에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를 잠시 지냈으나, 1999년 다시 CEO로 피아제에 돌아와 현재까지 CEO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2년 11월부터는 리치몬트그룹 경영진의 일원이 되며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