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들녘 만행 만보
순환하는 절기는 어느새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을 맞은 시월 하순이다. 한 달 전 설악산 대청봉부터 불붙기 시작한 단풍은 밤에도 쉬지 않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고 있을 테다. 지리산도 정상부는 낙엽이 지고 뱀사골이나 백무동 단풍도 절정을 지났지 싶다. 해안사를 품은 가야산과 그 앞의 남산제일봉 매화산 단풍도 곱게 물들어 가고 있음은 마음속으로만 그려보고 넘어가련다.
창원 불모산 단풍은 상강 뒤이어 따라오는 절기 입동 때가 절정이다. 노거수로 둥치는 고사하고 주변부에서 움이 터 자라는 우곡사 은행나무도 입동 무렵에 샛노랗게 물들기에 보름이 지나 거길 찾아가 볼까 한다. 산중 활엽수림과 달리 도심 공원이나 거리 가로수는 서리와 무관하게 단풍이 들었다. 아스팔트로 숲보다 수분이 적고 대기 오염이 조락을 재촉하는 원인이 되지 싶다.
화요일 아침 식후 어제와 같은 동선으로 들녘 산책을 나섰다. 동정동으로 나가 낙동강 강변 들녘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기다리다 가로수 은행나무가 물드는 광경을 같은 자리서 연이틀 지켜봤다. 하루 새 노란색이 더 짙어감은 눈으로 식별되었다. 길 건너기 전 봐둔 느티나무 단풍 갈색도 마찬가지였다. 지기들에게 도심 거리 가로수가 단풍이 물드는 광경을 사진에 담아 보냈다.
가로수가 단풍이 물드는 모습을 지기들에게 전해주는 사이 1번 마을버스보다 먼저 대산 들녘으로 가는 42번이 다가와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가 동읍 사무소 앞을 거쳐 주남저수지를 지났다. 주남 들녘에서 신등까지는 1번 마을버스와 겹치는 노선이었다. 벼가 황금빛으로 익은 드넓은 들판에는 콤바인이 굴러가면서 탈곡이 한창이었다. 축산 사료 볏짚 묶음은 공룡알과 같아 보였다.
주남저수지와 산남저수지를 비켜 용산과 합산을 거쳐 죽동을 지나도록 차창 밖 광활한 들판에 물든 황금빛을 지우는 작업이었다. 근래 농지 활용이 특용작물이나 과수원으로 바뀌기는 해도 주남 들녘에는 아직 벼농사가 대세라 기계화된 추수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마산 월영동에서 출발한 버스는 대산 들녘 한복판 송정마을이 종점이라 거기서 나는 미아처럼 내려야 했다.
송정마을에서 죽동천 천변을 따라 평리를 거쳐 상리에서는 마을 안길을 걸어 지났다. 예전에 두엄간으로 쓰였을 낡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타고 오른 호박넝쿨에는 누렁 호박 두 덩이가 하늘로 배꼽을 드러내 불거져 있었다. 상리에서 1번 종점 신전으로 가니 중년 부부가 연근 수확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어제부터 포클레인이 뒤져 놓은 논바닥 연근을 찾아내 상자에 담는 일이었다.
산전에서 하옥정과 상옥정을 지나는 들판도 추수가 진행 중인 벼논이었다. 한림으로 뚫리는 신설도로 옥정교차로에서 본포 수변공원으로 드니 물억새가 피어 은빛 물결을 이루었다. 강심을 가로질러 학포로 건너는 본포교 아래 벼랑을 돌아가는 생태보도교를 걸으니 녹조 저감장치 분수를 가동 중이었다. 북면 들녘을 거쳐온 샛강 신천 건너 수변 생태공원도 물억새가 장관이었다.
생태공원에서 둑 너머 북면 들판도 황금빛이었는데 추수가 한창이었다. 둑에서 내려선 배수장 부근 고구마를 캔 밭둑에 농사 부산물로 방치된 넝쿨에서 잎줄기를 따 모았다. 예전엔 가축 사료로 먹였을 고구마 줄기는 마르면 불사르거나 거름으로 쓰지 싶었다. 어지러이 엉킨 고구마 잎줄기를 딴 봉지를 손에 들고 북면 들녘 농로를 따라 걸어 마금산 온천장에 닿아 국숫집을 찾았다.
땅콩으로 콩국 국물을 낸 국수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 식후 족욕 체험장 근처 쉼터에서 아까 채집한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겨 까 모았다. 잎줄기가 시들고 쇠긴 했지만 삶아 데치면 나물이나 찌개 재료로 삼을 수 있을 듯했다. 고구마 줄기를 깐 자리를 수습해 놓고 족욕 체험장에서 한동안 발을 담근 뒤 배낭을 짊어지니 짧아진 가을 해는 옥녀봉으로 설핏 기우는 즈음이었다. 23.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