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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 오늘은 어디계세요? 원문보기 글쓴이: 안 엘리지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종탑에서 본 광장
[금강일보] 프랑스 황제들의 화려했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베르사유궁, 루브르궁, 에펠탑과 함께 파리를 대표하는 노트르담 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Paris). 노틀(Notre)은 ‘우리의’, 담(Dame)은 ‘숙녀’ 즉,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1345년 준공된 폭 50m, 길이 130m, 높이 35m의 고딕 양식인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 왕궁의 왕궁사원으로서 이곳에서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고, 왕족들이 세례를 받았으며, 또 많은 황제와 귀족들이 안치되어 있다.
노트르담 성당은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2019년 4월 15일 성당 보수공사 중 대화재로 성당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 올림픽이 개최되는 2024년까지 복원하겠다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개인 주택을 철거하는 데에도 3년 이상 걸리는 나라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적을 불과 몇 년 안에 복원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또, 그동안 수차례나 개축되었던 노트르담 성당의 복원 시점을 언제로 기준으로 할 것인가부터 논란이 되고 있다.
로테르담 성당
파리는 서울의 한강 여의도처럼 센강(La Seine) 사이에 작은 시테(Cite)섬이 있는데, 2000여 년 갈리아인들이 시테섬에 처음 정착했다.
그런데, 494년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Clovis)가 시테섬에서 원주민 갈리아인들을 쫓아내고 수도로 삼았다. 그 후 6세기경 로마인들이 지금의 프랑스 지방을 점령한 뒤 갈리아인들을 쫓아내고 시테섬에 주피터 신전을 지었다.
센 강의 축대벽에는 당시 배들이 정박할 때 묶었던 굵은 철제 고리들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런데, 1163년 모리스 드 쉴리 주교가 시테섬에 있던 로마시대의 주피터 신전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노트르담 성당을 세웠다.
노트르담 성당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 큰 피해를 입고 포도주 창고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나폴레옹 1세(Napoleon I)가 성당으로 회복시키고 자신의 대관식도 이곳에서 거행했다(2020.11.18. 베르사유궁(2) 참조).
성당 지하무덤 입구
서울의 한강 위에 모두 31개의 다리가 놓였듯이 파리의 센강에도 1578년 최초로 퐁네프(Pont Neuf) 다리가 설치된 이래 모두 34개가 있다.
다리는 기차나 지하철만 다니는 철교가 2개, 자동차 전용 다리 2개, 보행자 전용 다리 3개, 차량과 보행자가 다닐 수 있는 다리가 27개라고 하는데, 시테섬의 중심에는 법원, 경찰청 등 관공서는 물론 성당과 수많은 상가가 밀집하여 9개의 다리가 집중되어 있다.
노트르담 성당
또, 파리는 서울의 한강처럼 센 강을 기준으로 삼등분하는데, 시테섬의 중심인 노트르담 대성당 광장에는 파리시의 지적 원표인 8각형 청동 원표가 박혀있다.
파리 매트로 4호선 시테 역이나 매트로 7호선 퐁네프 역에서 내린 뒤, 퐁 마리(Pont Marie)까지 가면 노트르담 성당이다.
퐁네프 다리를 건너자마자 프랑스 대혁명 때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로 처형할 때까지 가뒀던 감옥을 비롯하여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생트 사펠 성당(Eglise Sainte Chapelleie), 고딕 양식의 걸작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노트르담 성당 뒤편에는 요한 23세 광장(Square Jean ⅩⅩⅢ)이 있다.
성당 중앙 출입문
노트르담 성당의 입장은 무료이다. 하지만, 1831년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 1802 ~1885)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가 발표되고, 이어서 영화화된 후 더욱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종지기 콰지모도가 매시간 종을 울리던 종탑까지 올라가서 성당과 파리 시내를 조망하려면 10유로를 내야 한다.
뮤지엄 패스가 있다면 종탑 입장은 무료다. 유럽에서는 이런 종교시설 입장은 대부분 무료이지만, 화장실은 유료인 점이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다.
노트르담 3층 정미의 창
노트르담 성당은 건물 자체가 8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지만, 성당에서 보유하거나 건물 자체에 부착된 문화재도 많다.
성당의 출입문 3개는 모두 아치형 나뭇잎 모양인데, 왼쪽은 성모 마리아(1165~1170), 오른쪽은 성녀 안나(1210~1220), 가운데 문 위에는 미켈란젤로가 그렸던 ‘최후의 심판(1220~1230)’을 대리석 위에 새겼다.
또, 3개의 출입문 위에는 28명의 입상(立像)이 한 줄로 세워져 있는데,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는 이 조각상들이 역대 프랑스 임금인 줄 알고 모두 파괴했다가 구약성서에서 나오는 이스라엘과 유대의 임금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복원했다고 한다.
이곳을 ‘그랜드 갤러리’라고 한다. 성당의 3층에 해당하는 그랜드 갤러리 위에 있는 지름 13m의 커다란 유리창을 ‘장미의 창(Rosace)’이라고 하는데, 장미의 창에는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을 배치했다.
노트르담 2층 그랜드갤러리
성당은 동시에 90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성당 내부는 지름 5m나 되는 둥근 기둥이 5개의 복도로 나뉘는데, 특히 남쪽과 북쪽의 유리창에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이 유명하다.
성당 지하에는 유명한 주교와 명사들의 무덤이 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망명정부를 세웠던 제5공화국의 드골 대통령과 1996년 미테랑 대통령의 장례식도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성당 내부
‘노트르담의 꼽추’로 잘 알려진 종지기 콰지모도가 있던 노트르담 성당의 종은 사실 모두 5개가 있다. 그중 가장 큰 종은 남쪽 탑에 있는 에마뉘엘 종(Emmanuel)으로서 무게가 13t이 넘는데, 에마뉘엘 종은 매일 시각을 알리고 또 여러 행사나 전례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한편, 북쪽 탑에서 바퀴 위에 있는 4개의 종은 흔들리면서 울리는데, 수동으로 작동하다가 지금은 모두 전기모터로 작동한다.
이 종들에는 작은 건반악기의 연주와 타종하는 해머가 있다. 노트르담 성당의 모습을 언제쯤 다시 볼 수 있게 될는지 모르겠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