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용산 철거민 참사의 희생자 고 이상림씨는 성도 같고 나이도 칠십대 전후로 비슷하다. 대통령은 소망교회 장로, 이씨는 신용산교회 집사를 지낸 같은 기독교인이기도 하다.
해방과 분단, 경제개발과 민주화 시대를 함께 겪어온 두 사람의 운명이 어디서부터 갈렸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30년 전 마흔 살 즈음에 한 사람은 재벌건설사 사장이 됐고 한 사람은 용산에서 남의 가게를 세내어 식당을 차렸다.
한 사람이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되기 위해 새벽기도를 했을 2년 전 즈음에, 다른 한 사람은 전 재산을 털고 빚까지 내서 식당 자리에 차린 호프집 장사가 잘 되길 새벽기도 때마다 빌었을 것이다. 그 때만 해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추진한 뉴타운 재개발과 용산 국제빌딩 주변 도시환경정비 계획이 철거민 이상림씨의 운명을 가혹하게 바꿔놓을 줄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이상림씨의 일상을 며느리 정영신씨는 이렇게 전한다.
“매일 새벽 4시30분이면 어김없이 기침했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고, 자전거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가볍게 운동을 한 후에는 바로 가게(레아호프)를 향했다. 호프집은 저녁 장사니 남편과 나는 보통 새벽 3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시아버지는 잠긴 문을 열고 환기를 하고 청소를 했다. 노량진 수산시장과 경동시장을 둘러 시장도 봐주었다. 시아버지에게 레아호프는 분신이었다.”
- 참세상 2009.2.2 [인터뷰] 고 이상림씨 며느리 정영신씨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사글세 신세였지만, 한 자리에서 30년 가까이 식당을 운영해 삼남매를 키우며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온 이씨는 나이 일흔에 식당 일이 힘에 부치자, 막내아들과 함께 빚을 내고 전세금을 빼서 식당을 호프집으로 바꿨다고 한다. 늙은 아내는 주방 음식을 하고, 며느리는 홀을 맡고, 막내는 카운터를 보고 온 가족이 그렇게 새벽 3시까지 몸이 녹초가 돼 잠이 들면, 이씨가 가게 문을 열고 쓰레기통을 비우거나 테이블을 닦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 것이다.
30년이 넘은 낡은 남의 가게였지만 전 재산을 들여 깨끗이 공사를 하고 온 가족이 달라붙어 열심히 한 덕에 장사가 제법 됐다. 며느리는 그 때 ‘몇 년 더 고생하면 빚도 갚고 시아버지 시어머니 더 가게 나오셔서 고생 안하시고 쉬시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러나 재개발의 날벼락이 떨어지고 속전속결로 강제철거가 시작되고 가게에는 용역깡패들이 진을 치고…. 세입자들의 전 재산을 털고 투기와 고분양가를 통해 개발이익의 잔치를 벌이려는 건설재벌과 부동산 소유자, 철거용역깡패들의 탐욕은 인간 존재에 대한 회의를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용역은 시아버지의 급소를 잡아 댕겼다. 70 노인의 어른을 그럴 수 있나…. 말이 안 나온다. 주먹에 맞아 바닥에 쓰러져 옷이 찢기고, 그 광경을 본 시민들은 어처구니없어 했다. 백주대낮에 30살 먹은 건장한 남자가 70 노인을 때리고 끌고 갔다. 사진을 찍으려 하니 카메라를 부셔버린다며 대들었다. 경찰도 안 왔다. 다 피신했다. 용역 한 명이 식식대며 대걸레자루에 갈고리를 달고 나타났다. 현수막을 찢었다.”
- 참세상 2009.2.2 [인터뷰] 고 이상림씨 며느리 정연신씨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위기를 돌파한다며 청와대 지하 벙커에 들어가 있을 때인 보름 전, 철거민 이상림은 5층 건물 옥상 망루로 올랐다.
대통령은 부동산 재산만 369억 원으로 고위 공직자 중 최고의 부동산 부자다. 오래 전 약속대로 '집 한 칸'만 남기고 전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더라도 남은 그 '집 한 칸'이 30억 원이 넘는다.
그러나 철거민 이씨는 대통령처럼 헌납할 집도 없을 뿐 아니라 재개발 과정에서 전 재산을 사실상 털리게 된 것이다. 서른여섯 살 먹은 이씨의 막내아들은 철거민대책위원장을 맡아 정당한 보상과 장사할 공터를 마련해달라 호소했지만 돌아온 건 폭력뿐이었다. 막내아들과 서로 망루에 오르겠다 옥신각신하다 막내만 보낼 수 없어 칠순 노인도 따라 올랐다.
하지만 망루에 오른 지 25시간인 20일 새벽, 테러진압 담당 경찰 특공대의 과잉 진압 과정에서 이씨는 목숨을 잃었다. 진압을 피하다 옥상에서 떨어진 막내아들은 무릎 뼈가 다 으스러지는 부상을 당한 채 감옥에 갇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상림씨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참사가 터진 날 대통령은 ‘진상규명이 우선’이라 했다. 물론 ‘대통령의 사람들’이 나서서 ‘과격시위’ ‘떼를 쓰는 철거민’ ‘도심테러분자’ ‘배후에 전철연이 있다’ 등 막말을 쏟아냈지만, 그 뒤로도 대통령은 말을 삼갔다. 그러다 지난 달 30일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원탁대화 자리에서 대통령은 용산 철거민 진압이 과도한 강경책이었다는 지적에 대해 “완전히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며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 철회 의사가 없다는 강경한 소신을 털어놨다.
이명박 대통령과 고 이상림씨의 인생역정은 우리사회에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계층의 삶을 보여준다고도 하겠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생역정이 개발주의의 성공 신화라면, 철거민 이상림씨의 죽음은 개발주의의 탐욕이 부른 억울한 죽음이라 하겠다. 부동산 부자가 부동산 서민의 주머니를 터는 투기와 개발로 돈을 벌고 계급을 이루며 사는 부동산 계급사회의 극명한 단면인 것이다.
용산 철거민 참사가 일어난 지 보름이 지나고 있다. 어쩌다 억울한 사람 여섯이 목숨을 잃게 됐는지 검찰이 곧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모든 책임은 철거민에 있고 경찰 잘못은 없다는 쪽으로 몰고 온 검찰 여당 청와대 극우언론의 언행을 볼 때 발표 내용은 뻔해 보인다.
지난 보름 동안 우리사회의 힘 있는 집단은 ‘가재는 게 편’ ‘초록은 동색’을 넘어 ‘대통령 이명박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고 모든 책임은 철거민 이상림에게 있다’ 나아가 ‘이명박 대통령처럼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철거민 이상림처럼 살아온 사람들을 탓하라’는 식으로 사태를 몰고 왔다. 심지어 국민 전체를 대변해야 할 대통령조차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사과한 마디 하지 않고 살인진압을 두둔하는 벌거벗은 부동산 계급사회의 야만성 앞에 제3자인 국민들도 원통하고 화가 나는 데 유가족들 심정은 오죽하랴.
“이번 참사는 재개발이 주범입니다. 재개발을 부추기는 정부와 재개발로 돈 버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재벌 기업들이 주범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충실히 해온 경찰과 용역들이 주범입니다. 여러분들께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주범들은 가만히 두고 검찰은 우리 철거민들만 구속시켰습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돌아가신 분들에게 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우리 아버지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 2009.1.31 촛불집회에서 고 이상림씨의 딸 이현순씨가 낭독한 호소문
나이가 들수록 부모의 삶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게 자식이지만, 칠순 아버지를 잃고 무릎이 으깨진 채 감옥에 갇힌 막내 동생을 둔 이현순씨의 사부곡(思父曲)은 가슴을 치게 한다.
“저는 두 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씩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부모님한테는 한 번을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말을 한 번도 못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품에 안겨서 한 마디 ‘사랑해요’라고 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 번만 아버지 손을 잡고 한마디만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2009.1.31 촛불집회에서 고 이상림씨의 딸 이현순씨가 낭독한 호소문
무엇이라도 하자. 정 용기가 나지 않거든 가까운 사람들과 호프집에 갔을 때 잠시 마음속으로 고 이상림 할아버지의 넋을 달랜 뒤 잔을 기울이자. 혹시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탐욕에 젖은 인간들이 부디 회개하기를 기도하자. 이상림 할아버지처럼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살아오신 우리의 부모님들과 결국 그렇게 살아갈 우리와 자식 세대를 생각해서.
첫댓글 정말할말이없다.그냥화만나고침통할뿐이다. 언제까지 이런꼴을 봐야될지 ...
그래 정말 지도자의 리더쉽과 덕목이 참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