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다비스
“주가변동이란 결코 우연히 발생하지 않아요. 주가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 아니죠.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미리 정해진 방향으로 상승 또는 하락합니다.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한동안 그쪽으로 계속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죠. 이렇게 정해진 방향으로 가면서 주가도 일정한 틀 안에서 움직임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런 틀을 저는 ‘박스(Box)라고 불렀죠.”
주식투자자라면 ‘박스’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박스에 갇혔다는 둥 뚫었다는 둥 하며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현재 한국증시도 지수 1,500을 앞두고 몇 달째 박스(1,300~1,400)권에서 헤매는 양상이다. 박스의 상향돌파란 그래서 즐거운 뉴스다. 박스란 말은 전설적인 개인투자자였던 ‘니콜라스 다비스(Nicolas Darvas)’가 처음 쓴 것으로 알려졌다. 50년대 중반 그가 직접 고안해낸 이른바 ‘박스이론’이 그 시초다. 박스이론은 엄청난 수익률을 내줬다. 저서제목이 『나는 주식투자로 250만불을 벌었다』라니 오죽할까.
그는 헝가리 태생의 무용수다. 캐나다 은행가와의 인연으로 광산주에 흥미를 붙여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이후 미국은 물론 세계각지에 공연․여행을 다니면서 8년간 주식투자와 관련된 연구․분석을 계속했다. 첫 출발은 ‘맨땅에 헤딩하기’식의 ‘묻지 마 투자’였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우왕좌왕하며 투자세계에 데뷔했다. 처음부터 쓴맛을 봤다면 포기했을 텐데, 으레 그렇듯(?) 초보자에겐 행운이 뒤따랐다. 작은 수익은 샐러리맨의 월급처럼 유혹적인 마약이 됐다. 물론 유혹의 끝은 잔인했다. 승승장구는 마감했고, 실패와 좌절은 그를 추락시켜 버렸다. 결국 자신만의 투자기법이 필요했다. ‘박스이론’은 그 산물이다. 그의 주식투자 성공스토리엔 배울 게 많다. 비슷한 입장이었던 까닭에 아마추어 투자자라면 적잖은 공감대와 함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 투자종목은 캐나다시장에서 3,000달러를 주고 산 광산주 브리런드(Brilund)였다. 6,000주를 샀는데 2개월도 안 돼 1만1,000달러로 불어났다. 그의 말처럼 마법에 홀린 채 다음 사냥거리를 물색했다. 도박하듯 이름도 모르는 회사까지 매매했다. 남들이 ‘좋다’면 무조건 샀다. 손해도 봤지만 주식에 대한 애정은 결코 식지 않았다. 한때 25~30개 종목과 짝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작은 이익에 들떠 열광했다. 횡재․루머란 말에 ‘감(感)’만 믿고 투자했다. 결산결과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딜레마였다. 결국 자신만의 투자방법 개발에 나섰다. 경제지를 구독하며 정보도 챙겼다. 하지만 신문에서 사라는 주식은 늘 떨어졌다. 손실은 오로지 나쁜 운 때문으로 여겼다. 그나마 가끔 괜찮은 수익을 낸 종목이 있어 다행이었다. 월가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월가에선 1만 달러를 갖고 시작했다. 믿음직한 전문가가 훨씬 많았고, 투자자 책임을 강조하는 시장분위기도 맘에 들었다. 사상초유의 강세장 덕에 이익도 봤다. 경외감과 행복감에 빠졌다. 계속되는 수익행진에 확신은 절정에 달했다. 반면 철저히 손실은 무시했다. 하루라도 거래를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셨다. 하지만 결산결과 수익은 고작 2달러에도 못 미쳤다. 가만히 보니 중개인만 돈을 벌었다. 와중에 주식서적 독파에 나섰다. 새로운 용어를 익히고 지식을 쌓았다. 그러면서 전문가를 믿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의 얘기다. “적은 이익이라도 있으면 파산하지 않는 법이죠. 가만히 생각하니 이거다 싶더라고요. 곧 실천에 옮겼는데, 이게 평생의 투자법이 됐어요. 시행착오도 겪었죠. 수익을 지키자면 잦은 매매란 절대 금물이었습니다.” 저가주 공략을 위해 장외시장도 찾았다. 하지만 장외주는 사기는 쉬워도 팔기가 어렵다는 점을 나중에 깨달았다. 다시 장내시장으로 컴백했다. 월가정보는 꽤 매력적으로 보였지만 정작 효과는 별로였다. 시간이 갈수록 기본적 접근만이 올바른 것임을 확신했다. 보고서를 읽고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 년 그는 어느새 냉정하고 객관적인 분석가로 변신해 있었다.
‘박스이론’은 이 와중에 개발됐다. 그간의 실패경험에서 주식시장은 슬롯머신에서 돈이 쏟아지듯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요술기계가 아님을 깨달았다. 규칙을 알아야했다. 상대의 수를 읽어야 체스게임에서 이기는 법이다. 그래서 과거 투자방식을 검토해봤다. 기본적 분석에선 졌지만, 기술적 분석에선 성공했음을 알았다. 지속적인 오름세와 높은 거래량에 착안해 매입한 주식이 높은 수익을 거뒀다. 회사정보는 몰랐지만 주가흐름만 보고 성공한 셈이다. 주가와 거래량에 초점을 맞췄다. 기본적 분석결과도 곧 주가와 거래량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연구를 거듭함에 따라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됐다. 주가변동이란 결코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 방향이 정해지면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면서도 일정한 틀 안에서 움직임을 반복했다. 주가는 저점과 고점 사이에서 일관성 있게 진동하며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한 자취를 하나의 틀로 그렸다. ‘박스이론’의 탄생이다. 박스는 피라미드 형태다. 여러 박스가 가격대별로 존재한다. 주가는 박스의 저점과 고점 안에서 움직인다. 역동적일수록 좋다. 가령 45~50달러 박스에 있던 주가가 44.5달러로 빠질 땐 사지 않는다. 더 낮은 범위의 박스로 떨어졌음을 의미해서다. 반면 주가가 박스를 벗어나 훨씬 더 높은 범위로 이동하면 적극 매수한다. 상승추세의 본격적인 시작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스이론만 갖고 천문학적인 수익률은 불가능했다. 박스이론의 설명력을 뒷받침해주는 또 다른 투자원칙이 필요했다. 손절매였다. ‘손실에 빨리 대처하기(Quick-loss)’에 관심을 집중했다. 손해를 보되 조금만 보면 괜찮아서다. 지정가 매수(일정가격에 달했을 때 자동매수)와 손절매(일정가격 때 자동매도)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손실을 안고 하룻밤을 넘기는 건 위험해요. 수수료를 빼면 실제이익은 더 줄거든요. 결국 이익이 손해보다 커야하죠. 오를 때 조급히 팔아버리려는 욕구를 억제해야합니다. 오르는 주식은 그대로 두고 떨어질 때만 손절매하면 돼요. 상승추세를 따라 움직이되 언제든 손절매를 준비하고, 상승추세가 지속되면 더 사되 꺾이면 재빨리 도망치는 방법이 최선이죠.”
그의 투자원칙은 △우량주 매매 △최상의 타이밍 △손실 최소화 △이익 극대화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가격과 수량 △박스이론 △자동매수 주문 △손절매 등을 활용했다. 박스이론 때문에 기술적 분석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차트는 하나의 스킬에 불과하다. 그 안에는 ‘가치투자’에 가까운 기본적 분석결과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무용가였던 까닭에 해외공연이 많았는데 이럴 땐 불가피하게 종목숫자를 줄였다. 월가현장에서 떨어져있다는 게 불안했지만, 나중에 이게 더 효과적임을 깨달았다. 그는 “냉정한 시각으로 주식을 보는 데 도움이 됐다”며 “주식은 혼자였을 때 주효했다”고 전한다. 매매일지도 작성했다. 실수재발을 막는 데 도움이 돼서다. 그의 조언이다.
“주식투자는 차를 운전하는 것과 비슷해요. 운전자는 엑셀, 핸들, 그리고 브레이크 사용법을 책에서 배울 수는 있지만 그것과 운전감각은 별개죠. 아무도 앞차와의 거리를 얼마로 유지해야하는지, 언제 감속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아요. 오직 경험만을 통해 배울 수 있죠. 또 시장과는 적절히 거리를 두는 게 좋아요. 시장은 심리의 집합체죠. 대세에 휘둘릴 수밖에요. 저는 정작 월가에서 떨어져있을 때 큰 수익을 거뒀어요. 외로운 늑대가 돈을 버는 법입니다. 최소한의 기본원칙과 손절매만 세운 뒤 가끔씩 들여다보는 걸로 충분해요.”
니콜라스 다비스에게 배우는 10가지 교훈
1. 추천종목을 따라하지 않는다. 확실한 정보란 절대로 없다.
2. 믿을 만한 전문가(중개인)의 조언도 틀릴 수 있다.
3. 증권가에서 떠도는 격언들을 무시한다.
4. 유동성이 떨어지는 장외주식은 거래하지 않는다.
5. 그럴듯해 보여도 루머는 절대 믿지 않는다.
6. 주식투자는 기본적 분석으로 접근할 때 효과가 있다.
7. 여러 종목 단기거래보단 오르는 한 종목을 길게 보유하는 게 낫다.
8. 주식시장에 확실한 건 없다. 자존심과 고집을 억제해야한다.
3. 공명정대하고 냉정하자. 특정이론이나 주식에 집착해선 안 된다.
4. 모험은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건 위험부담을 최대로 줄이는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