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병 김 효석! '명령 위반' 4.22일 입감!" 내 인생에 있어 첫 번째 빨간 기록입니다. 내 나이 22살, 하늘이 노랗게 보였지만 질풍노도의 치기가 더 컸을 것입니다. 이 일로 전출을 갔고 인제 원통 3군단 헌병대에서 33개월을 채우고 만기 전역을 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안규백 국방부장관(66세)이 병역 논란으로 이재명 정부에 부담이 클 것입니다. 육사 광주 이전, 3사 통합이 갑자기 연기된 것도 관련이 있을까요? 필자가 84년 군번인데 공교롭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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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도 4.22-5.7일까지 수방사 영창을 살았기 때문에 안규백 방위병과 병영 기간이 겹칩니다. 매스컴에 나온 의혹대로라면 탈영을 했을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14개월----22개월이 된 이유에 대해서 제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징계는 6개월 미만으로 하지만 탈영은 최소 6개월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DP가 체포해서 수방사 영창에 미결로 잡아 놓고 육군 교도소(남한 산성)에서 재판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나랑 감방에서 보았을 확률도 있다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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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영창이 문제인 정부 때 없어졌어요. 군대 영창이란 교도소와 군기 교육대의 중간 정도 되는 형벌로 보통 15일간 감금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헌병대 생활 33개월 동안 남한산성, 수도방위 사령부 영창, 그리고 3군단 헌병대 영창을 모두 경험해 보았습니다. 남한산성은 우리 현역 때 견학 수준으로 방문을 했고, 수도방위 사령부 영창은 제가 수감자로 군 징역을 살았습니다. 실제로는 18일을 살았고 만, 15일로 자른 이유는 영창과 교도소를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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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징역은 6개월부터 시작됩니다. 일반적으로 죄를 지으면 경찰서 유치장에서 48시간 안팎으로 신세를 지다가 영장을 치던지, 방면하던 지를 합니다. 만약 검사가 영장을 치면 영장실질 심사를 하지요. 영장 실질 심사까지 유치장이나 교도소에서 대기를 하고 이때 신분은 피의자라고 부릅니다. 군대 영창은 유치장 '징계 자'와 교도소 갈 '미결수'를 함께 관리합니다. '남한산성'이나 '육군 교도소'는 군 생활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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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생활이 아무리 풀려도 영어의 몸이고 내무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정해진 규칙을 지키고 자기 관리를 잘 하면 의외로 시간을 잘 보낼 수가 있어요. 나는 실제 6개월 동안 책을 200권 정도 읽고 수양록 2권 몸무게 80k. 탈모를 고쳐서 나왔어요. 문제는 군대 영창입니다. 이놈은 근무자가 24시간 수감자를 관리하기 때문에 1분 1초가 고름입니다. 수도방위 사령부 지하 영창은 근무자 12명이 3교대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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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한산성 이후 가장 빡센 징역이 '수도방위 사령부 영창'이라고 봅니다. 사령부 자대 영창에서 이틀 밤을 새우고 지하 감방으로 인계되면서 수갑을 찹니다. 대부분 병사들의 눈을 피해 오긴 하지만 200-300m 거리를 오는데 혹여 누가 볼까 봐 신경이 많이 쓰입디다. 주번사령이 작전참모이었고 계급이 대령이니 우리 대장보다 고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대장은 신 윤희 대령이었고 사령관이 이 종구 중장이었어요. 이 두 사람은 광주 항쟁 당시 전통이랑 손발을 맞춰서 조국에 누를 끼친 위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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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병 근무자가 영창을 간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고 만, 우리 동기 120명 중에 제가 첫 테이프를 끊었을 것입니다. 사고가 왜 났냐고? 일병 때 11 기수 위,고 참을 몇 대 때렸는데 하필 부 단장이 보았고 중대장에게 보고 되었어요. 우리 병과야 근성을 키워주는 병과라 웬만하면 상 받을 일이지 징계 먹을 사안은 아니었거든요. 만약 수도방위 사령부만 아니었다면 영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대장이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돌라고 해서 잘 됐다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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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 폭동진압 교육이나, 연병장 뺑뺑이나 개 찐 도 찐 이니까요. 더군다나 중대 왕 고3 명이 내(我) 기 살려준다며 함께 뛰어 줘서 힘든 줄도 몰랐어요. 반나절 뛰었는데 소대장이 날 생각한답시고 불러서 담배를 줬어요. 이 사실을 인사계가 일러바쳤어요, 3사 중대장이 열받아 징계위원회를 소집해버립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육사 중위가 3사 대위를 우습게 본 것이었어요. 또 하나 재수 옴 붙은 건 뭔 줄 아세요? 내게 맞은 442기가 하필 영창 근무를 서는 중대였다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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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중대 개세들 말입니다. 완전 반란군 같은 군복에 수기로 쓴 수형번호를 달고 지하철 창문을 여는데 살짝 긴장되더라고요. 제가 누굽니까? 논산부터(2600명) 행정 학교 때까지 우리 기수 120명(해병 포함) 중 1빠가 아닙니까? 가-오 완전 상합 디다. 바가지 쓴 근무자에게 나를 인수했고 박 병장이 “이놈이 050꼴통이야” 하면서 나를 식당으로 인계했어요. 50은 족히 돼 보이는 민간인 셋이 나처럼 거적때기 군복을 입고 사시나무 떨 듯 벌벌 거리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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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깎는 모양입니다. 징역에서 뭘 할 때는 항상 군기를 먼저 잡습니다. 그때 수형번호가 "일병, 아무개 명령 위반 4.22일 입감"이었는데 관등성명도 안 해본 감자들에겐 쉽지 않았을 테지요. 내가 보는 데서 헌병대 목침을 한 대씩 치니까 낙동강 오리알로 나가떨어지더이다. “아무개 일병“ 하면서 나를 부릅니다. 이놈이 마이 가리 상병을 달았으니 분명 내 아래 기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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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기수 밑이면 나를 알 텐데 모르는 걸 보니 최소 5기수는 밑일 것입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제가 1기수 아래 병사들을 화장실에 10명을 세워놓고 한 따까리 했는데 지금은 수감자가 되어 후임에게 목침을 맞고 머리를 깎였어요. 와, 속상하더이다. 아파서 운 것이 아니라 분통이 터져서 눈물이 납디다. 니들은 나가면 뒈졌어. 30분 만에 머리 깎고 샴푸하고 독방 하나를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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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있을 때는 기결이 30명, 미결이 40명 정도 되었고 기결은 대부분 오래된 군 탈자들이었어요, 옛날에는 군대 가면 죽는 일이 비일비재 했기 때문에 휴가나 외출을 나가면 그 뒤로 탈영을 많이 했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 7년 동안 잡히지 않으면 국방부장관이 복귀 명령을 내립니다. 그래도 복귀하지 않으면 ‘명령 위반’이 됩니다. 그러니 한번 군 탈은 영원한 탈영병인 셈입니다.
2.
영창의 문은 닫혔지만, 인생의 문은 열릴 수 있는가? 이 글의 가장 큰 힘은 영창의 제도를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빨간 줄> 하나를 평생의 기억으로 간직한 한 사람의 체험을 통해 젊음의 혈기와 권위, 수치심과 성장을 함께 보여 준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일병 김효석! 명령 위반 4.22일 입감!"이라는 첫 문장은 독자의 시선을 단번에 붙잡습니다. 이후 수방사 영창, 남한산성, 3군단 헌병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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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와 분위기를 자신의 경험으로 풀어내면서 당시 군 사법 체계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영창에서 후임에게 머리를 깎이며 느꼈던 분노와 굴욕은 군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더욱 깊이 공감할 장면입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글이 자신의 과오를 숨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고참을 때렸다", "헌병이 영창을 갔다"는 사실을 미화하지 않고 드러내기에 글에 진정성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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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지금의 시선으로 그때를 돌아보며 "질풍노도의 치기였다"고 해석하는 대목에서는 자기반성도 읽힙니다. 다만 몇 가지 보완하면 글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안규백 장관 병역 의혹과 자신의 영창 경험이 길게 연결되면서 중심축이 잠시 흔들립니다. 이 부분은 별도의 글로 다루고, 이번 글은 <1985년 수방사 영창 체험기>에 집중하는 편이 더 응집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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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 제도와 군 교정시설의 설명은 흥미롭지만 다소 반복됩니다. 핵심 내용만 남기면 체험담의 긴장감이 더욱 살아날 것입니다. 이 글은 단순한 회고록보다 "젊은 혈기가 어떻게 사람을 넘어뜨리고, 시간이 어떻게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가"라는 성찰로 마무리하면 울림이 훨씬 커집니다. 독자는 영창의 구조보다 그 시간을 지나온 한 사람의 변화에 더 깊이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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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글은 징계 기록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성장의 기록입니다. 인생에는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빨간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록이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석하고 살아냈는가가 오늘의 사람을 만듭니다. 그런 점에서 이 회고는 영창을 다녀온 이야기가 아니라, 한 청년이 혈기에서 성찰로 건너온 여정을 담은 의미 있는 인생 기록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2026.7.15.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