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은 최고의 수비다" 자고 일어나 보니 축구의 신 메시(아)의 활약으로 아르헨티나가 케인의 잉글랜드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후반 20분 남겨 놓고 역전승을 했는데 축구에 진심인 펜들의 함성을 보는 나도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잉글랜드의 패인은 전반에 한 골 넣고 10명 축구를 한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체국에 택배 부치러 갔다 오는 길에, 수국이 아르헨티나 펜들처럼 활짝 웃고 있어서 한 컷 찍었습니다. 골반 방석을 받고 공주가 수국처럼 활짝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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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론에 있어 니체의 <관점 주의>는 해석학의 혁명입니다. 니체의 관점 주의(perspectivism)는 미술의 원근법(perspective)에서 나온 비유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식은 해석이다"라는 말은 모든 보기는 하나의 원근법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뜻입니다. 르네상스 화가는 하나의 풍경을 그릴 때 어디에 서서 보느냐'에 따라 그림이 달라집니다. 예컨대 산 아래에서 보면 산은 거대하게 보입니다. 비행기에서 보면 같은 산도 작은 언덕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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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가까이 보면 나무가 보이고, 멀리서 보면 숲이 보입니다. 풍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보는 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에 모습이 달라집니다. 니체는 이것을 인간의 인식에도 적용했습니다. 사실은 하나지만,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위치와 삶의 조건 속에서 그것을 해석한다는 이것이 바로 <관점 주의>입니다. 니체는 유명하게 말합니다. "사실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이다" 이 말은 "진리가 없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순수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존재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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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어떤 관점에서 세계를 해석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언어도, 문화도, 역사도, 신앙도 모두 하나의 관점을 통하여 이해됩니다. 에에공! 원근법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1. 보는 위치가 있다. 2.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3. 전체는 한 번에 보이지 않는다. 니체는 인간의 인식이 이와 같다고 보았습니다. 역사라는 위치, 문화라는 위치, 신앙이라는 위치, 철학이라는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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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연결하면 내 관점을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계속 교정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원근법이 공간에서 보는 위치를 말한다면, 관점 주의는 존재가 세계를 이해하는 위치를 말합니다. 따라서 "모든 인식은 해석이다"란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원근법(관점)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는 뜻이며, 신앙은 그 관점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끊임없이 교정 받는 삶입니다.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만 보고 있는가?
2.
원근법이 바뀌면 세계가 바뀌는가? 축구 이야기에서 니체의 관점주의로 이어지는 전개가 자연스럽습니다. 특히 "공격은 최고의 수비다"라는 말과 잉글랜드의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출발점으로 삼아 어디에 서느냐가 결과를 바꾼다'는 주제를 철학으로 확장한 구성이 흥미롭습니다. 메시의 역전승은 경기 운영의 관점이 결과를 바꾸었고, 니체는 인식의 관점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꾼다고 말합니다. 서로 다른 소재가 하나의 주제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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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중심은 역시 원근법과 관점주의의 연결입니다. "가까이 보면 나무가 보이고 멀리서 보면 숲이 보인다"는 비유는 독자가 니체를 어렵지 않게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철학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일상의 경험으로 번역했다는 점이 이 글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매우 좋습니다. 신앙은 그 관점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끊임없이 교정받는 삶입니다. 이 한 문장이 니체와 기독교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니체는 인간이 관점을 벗어날 수 없다고 보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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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인간의 관점이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워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연결은 철학과 신학을 무리 없이 이어 줍니다. 다만 한 가지 보완하면 글이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사실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이다."라는 표현은 독자에게 자칫 상대주의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니체의 의도는 진리를 부정하기보다 인간은 중립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언제나 어떤 삶의 자리에서 해석하는 존재**라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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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을 한두 문장 덧붙이면 오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글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세상을 봅니다. 그러나 신앙은 자기 관점을 절대화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과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평생의 훈련입니다. 원근법이 그림을 바꾸듯, 관점은 인생을 바꾸고, 하나님의 관점은 사람을 새롭게 만듭니다. 철학과 신학을 연결하면서도 삶의 적용까지 이끌어 낸 균형 잡힌 글입니다.
2026.7.17.fri.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