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행
박운현
매월 25일은 연금 수령 일이다. 직장 다닐 때 기여금으로 불입한 것인데, 퇴직 후에 생활비로 알토란같이 이용한다. 내가 퇴직하고 나서도 생활이 가능한 것이 다 이 돈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기 때문이다.
지금 만약에 연금이 없다면 무엇으로 생활을 영위할까, 생각만하여도 막막할 것 같다. 사회보장제도가 생긴 게 나에게는 천만다행이니.
연금을 수령하러 간다. 연금이 농협은행으로 지급된다. 다른 사람들은 연금으로 받는 이 돈이 얼마 되지 않는 액수라고 할는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생활비로 꾸려나가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물론 돈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지만….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무슨 큰돈이 필요하랴, 먹고 생활하는데 별 지장이 없으면 되는 것이지.
과거에는 농협 창구로 가서 청구서를 작성하여 돈을 수령하였으나 지금은 자동지급기로 한다. 간편하기 이를 데 없다. 돈을 청구하는 고객이나 농협은행이나 쌍방 모두가 편리하다. 날이 갈수록 편리해지니 아무튼 반가운 일이다. 자동지급기에 통장을 꽂아 넣고 기계의 지시에 따라 버턴을 누르면 돈이 요술방망이처럼 자동적으로 나오고 통장도 정리가 된다.
돈을 받아 각종 공과금을 납부하고 나머지 돈은 집으로 가져온다. 가져온 돈은 생활비로 이곳저곳에 쓰여 진다. 지금의 받는 이 돈은 나에게는 그리 부족한 게 아니며, 그런대로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는 액수라 여겨진다.
농협은행이 우리 집 부근에 위치하고 있어 이용하는데 그만이다. 차를 타고 가거나 한참동안을 걸어간다면 이 또한 불편할 것이니.
농협은행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도 100여 년이나 된다. 1910년대 금융조합으로 출발하였다. 일본제국주의가 농민수탈을 목적으로 하였다. 저금리, 고리채로 농민들의 고혈을 짜내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농민들의 자조, 자립, 자활의 역할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이 외에도 농민들에 대한 대출사업으로 영농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물론 고객들은 농민들뿐만이 아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지금은 많은 금융기관 중에서도 가장 많은 고객수와 점포수, 자산규모를 가진 기관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하니 농협은행의 이용률이 자연 늘어날 수밖에. 자산이 많아야 고객들에게 믿음을 준다. 자본이 없다면 그 금융기관의 이용은 한낱 허구일 뿐이다. 만일에 수년 전 저축은행처럼 고객들이 맡긴 돈을 횡령한다면 누가 그런 기관에 이용하겠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믿고 이용하는 농협은행은 자산보유고나 여신 면에서도 믿을 만한 게 아닌지 여겨진다. 바로 이런 점이 내가 농협은행을 이용하게 된 동기다.
농협은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문득 나의 옛 일화 한 토막이 떠오른다. 오래 전 내가 현직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날도 봉급날이었다. 회계담당자가 문서체송원에게 시켜 농협에 가서 직원들에게 지급할 돈을 찾아오라고 했다. 기사와 함께 차를 타고 가서.
돈을 수령하여 왔는데 확인 과정에서 백만 원 돈다발에서 만 원 권 한 장 이 더 나왔다. 그 돈을 그만 농협에 돌려주지 않고 과자를 사먹은 것이다. 그 일이 오랜 세월이 흘러가도 잊혀지지 않는다.
농협 직원의 실수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로 인해 가슴이 아파했으리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물론 나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일이긴 하지만.
또 한가지 이야기다. 우리 집 큰 아이가 대구 모 대학교 공대 토목공학과를 나와서 서울에 있는 어느 회사에 취직을 하여 근무하게 되었다. 월급은 그리 많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취직을 한 게 다행이라며 앞날에 희망을 걸고 다녔다.
그 돈으로 입고 먹고 용돈 쓰고 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게 모두가 돈이니. 하지만 취직을 하여 다닐 직장을 가진 것만으로 만족한 셈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얼마가지 않아 회사의 부실로 금융관리에 들어가고 끝내 회사에 사표를 내고만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갈 만한데 라고는 없었고, 생각한 끝에 농협은행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분야가 생소한 시험과목들이었으니 공부를 열심히 하여 시험을 보았으나 실패하고 만 것이다. 다시 두 번째 도전하고서도 실패를 하였다. 끝내 가고 싶어 하던 농협은행에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다.
지금은 청도의 어느 복지기관에 들어가서 근무 중이다. 농협은행을 이용하면서 한 켠에 그 일이 잊혀지지 않고 내 머리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어쩌랴. 이미 지난 일인데.
그 일을 갖고 자꾸만 미련이나 아쉬움으로만 간직한다면 뭘 어찌 하겠는가 잊어야지. 농협은행에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옥사를 뒤돌아보니 그 일이 생각나 어쩔 수 없는가보다. 그래도 잊어야지. 긴 생을 살아가면서 못다 이룬 일들이 어디 한둘인가.
이 일이 아이의 앞날에 화가 될지, 득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 위로하면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여정에 좌절하지 말고 귀중한 산 경험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굳게 일어서기를 기대한다.
첫댓글 그래요, 긴 생을 살아가면서 못다 이룬 일들이 어디 한둘이게습니까. 그래도 다른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니 다행이지 않습니까. 잘 읽었습니다.
말도 많은 공무원연금이니 의당 크게 부족하지는 않겠지요.^^
젊은 날 박봉에 쪼들리면서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보상이니 편히 받아 쓰십시오.
연금이 국가재정에는 독이 될 수 있긴하지만, 수령자들에게는 영약이 틀림없습니다.
저도 몇 년째 국민연금을 받아 쓰며 그런 생각과 감사함을 늘 느낍니다.
잘 읽었습니다.
만족 반 불만족 반이라면 중간이 될 겁니다~~^^
뛰어나도 불안, 뒤 떨어져도 불안, 제 자리만 잘 지킨다면 그게 행복일 겁니다^^감사히 읽었습니다^^
연금을 받아 쓰면서 우선은 감사한 줄 느낍니다. 그런제도 없이 봉급을 받아 쓰고 남은 돈 얼마를 저축이나 해서 모아두었다가 쓴다고 생각하면 지금 보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적을 걸로 보거든요. 그래서 감사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지금은 금융기관의 금리도 낮아 다른 퇴직금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두가 골고루 다 잘사는 방법을 찾기란 바늘구멍에 낙타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육십여 년을 살다보니 세상이 조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문우 여러 분들께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잖은 글을 그래도 글이라고 읽어주시니 저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능력이 닿는데까지 글을 써서 보답하겠습니다. 작가가 독자들이 많다는 것 이상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퇴직 후의 큰 보람으로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