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혀 (외 1편)
나석중
저 달덩이 같은 몽돌을 보면 물의 혀가 대단하다 물의 혀는 그 촉감 얼마나 보드라운지 돌끼리 부딪쳐 깨지고 솟아난 날카로운 모서리들을 통증조차 느낄 수 없도록 가만가만 핥아 주었을 것이다 오히려 돌의 상처를 씻어내던 혀가 갈기갈기 해지고 닳고 닳았을 것이다.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물의 혀는 돌을 갉는 서생鼠生의 치열처럼 정연하고 닳으면서 또 길어났을 것이다 나도 거듭나기 위하여 바닷가에 와서 나 하나의 몽돌로 누워 단연 물의 혀를 받아들인다
화사도華沙島
구슬프다 방목한 염소가 길게 울었다
벌써 여러 해째 저희끼리 끼니 챙기고 후손도 보고 식구도 불어나 그럭저럭 잘사는 듯해서 육지의 아픈 소식은 전하지 않았다
밤새 씻어놓은 돌밭과 물빛은 맑은데 벼랑 끝 바위 꼭대기에서 염소 한 마리 또 운다 수평선을 멍하니 바라보고 운다
오늘따라 울음소리가 한 자 가웃은 더 길다.
―나석중 시선집 『노루귀』 2023. 4 ---------------------- 나석중 / 1938년 전북 김제 출생. 2005년 시집 『숨소리』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저녁이 슬그머니』 『목마른 돌』 『외로움에게 미안하다』 『풀꽃독경』 『물의 혀』 『촉감』 『나는 그대를 쓰네』 『숨소리』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