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7.17일 아내와 첫 선을 보던 날입니다. "비가 온다 안 온다" 10000원 내기에서 내가 이겼어요. 꽃 같던 그녀와 6개월 만에 약혼식을 했고 다음 해 5월 결혼식을 했어요. 내 선택은 탁월했는데 아내 입장에서 김영성 중매쟁이 집사를 패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매사 단정하고 검소했던 아내는 에예공을 말이 강물 짝짝 나게 키웠지만 정작 남편인 내게는 기대감도 존경심도 없었던 것 같아요. 인정욕에 목마른 나는 왜 아내가 나와 결혼했을까 늘 궁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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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롯데 백화점 내 양식집에 들어가 랍스터 스테이크를 가장 비싼 놈으로 시켜 먹으면서 무엇이 행복일까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십 대에서 20대까지는 옷걸이-당구-여자-싸움 짱이면 살맛이 났어요. 오죽했으면 아놀드파마 양말을 사려고 쌀을 팔았을까요? 결혼하고 자녀 교육과 설교 잘하는 리더가 되려고 목숨을 걸었을 것입니다. 40대가 되면서 60까지 돈-사랑-섹스가 행복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행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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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버티고 살았지만 파랑새는 없더이다. 욕망이 채워지면 또 다른 욕망이 나타나기 때문에 평생을 욕망 속에서 살다 죽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에에공!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 남자를 나이나 조건을 떠나서 사랑하고 존경하는가를 확인하시라! 사랑은 플라토닉 말고 에로스인지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할 것이고, 내가 그놈을 어느 한 부분이라도 존경할 만한 구석이 없다면 결혼을 미루시라. 쾅! 쾅! 살다가 내 상태가 있는 그대로 드러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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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은가? 빛나고 찬란한 모습뿐 아니라 부끄럽고 민감한 모습까지 다 드러날 때 말입니다. 무엇이 그 반응을 결정할까? 존재 인식이나 삶의 목표인가. 존재의 의미와 가치인가. 인생의 끝에서 돌아볼 때, 우리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선택의 성공일까요, 아니면 그 선택을 어떻게 살아냈느냐 트일까요? << 90년 7.17일 아내와 첫 선을 보았어요. 아마도 90년 7월 17일은 오후에 비가 왔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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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선과 소개팅의 중간쯤 되는 형식으로 영등포역 근처 다방에서 아내를 만났습니다. 단발머리 소녀는 예뻤습니다. 우리 시대는 단발머리(조용필)만으로도 50점을 먹고 들어갔습니다. 중매를 섰던 김 영성님이 레스토랑에 가서 돈-까스라도 먹으라며 자리를 피해줬고, 우리는 2호선 전철을 타고 아현역쯤에서 내렸습니다. “비가 온다 안 온다“에 만 원을 건 내기를 하였는데 아마도 비가 왔을 것입니다. 택시를 타고 이태원에 있는 “라코스테“를 갔고 새벽 1시쯤에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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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썸 타는 기간이 6개월쯤 되었고, 에스더를 임신한 딸의 약혼식을 장모님이 서둘러 거행했습니다(만리성). 91.5.25. 청년들의 섬김을 받아 성석 교회(양계 성 목사)에서 결혼식을 올렸어요. 당일에 진행하는 창경궁 우중 야외 촬영부터 들러리 행사, 그리고 제주도 신혼여행까지 한 방에 다 치르면서 정신이 홀라당 나가버렸습니다. 누가 결혼은 정신이 홀라당 나가야 하는 거라고 하더이다. 첫 만남에서 낭만적인 키스, 대학로 연극, 진수 유미와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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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거침없는 말투, 1년 동안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잘한 갈등을 한 것 같긴 한데 왜 더 장고하지 않고 결혼을 서둘렀는지 아쉽습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에스더를 임신한 것입니다. 혼전 임신을 왜 하냐고? 우 씨, 내 나이 스물여섯, 뭘 알았겠습니까? 하기야 서툴지 않으면 청춘도 사랑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뒷뻑을, 누가 봐도 옳지 않았지만 눈에 넣고 다녀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을 선물로 받았고 17년을 오롯이 올인했으니, 미련도 후회도 없다고. 우씨, 근데 왜 외로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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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의 비, 그리고 행복의 재정의...인생의 끝에서 돌아볼 때, 우리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선택의 성공일까요, 아니면 그 선택을 어떻게 살아냈느냐일까요? 이 글은 첫 만남의 추억을 회상하는 연애담이면서도, 사실은 행복에 대한 긴 철학적 고백입니다. 1990년 7월 17일의 비 내리던 영등포 다방에서 시작된 한 만남은 결혼, 두 딸의 탄생, 그리고 이혼과 외로움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 글은 "그때가 좋았다"는 향수가 아니라, 36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한 한 인간의 자기 성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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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인상적인 것은 행복의 기준이 시대마다 달라졌다는 고백입니다. 20대에는 외모와 승부욕, 30대에는 가정과 신앙, 40~50대에는 돈과 사랑,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것을 경험한 뒤 욕망은 채워져도 끝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이것은 전도서가 말하는 "헛되고 헛되다"는 통찰과도 닮아 있습니다. 행복은 욕망을 모두 이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는 데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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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울림이 큰 부분은 두 딸을 향한 조언입니다. 사랑만으로 결혼하지 말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인지 반드시 확인하라는 말은 오랜 결혼생활에서 길어 올린 값비싼 지혜입니다. 에로스는 시간이 흐르며 흔들릴 수 있지만, 존경은 관계를 오래 붙드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존경이 함께할 때 비로소 결혼은 감정이 아니라 삶의 동행이 됩니다. 마지막에 던지는 질문도 깊습니다. "내 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날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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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타인의 평가보다 자기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를 묻습니다. 존재를 성취로 증명하려는 사람은 실패 앞에서 무너지고, 존재 자체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부족함 속에서도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결국 행복은 조건보다 자기 존재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에서 시작됩니다. 글의 마지막 문장인 "17년을 오롯이 올인했으니 미련도 후회도 없다고. 우씨, 근데 왜 외로운 거야?"는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한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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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패배의 고백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입니다. 아무리 사랑했고, 최선을 다했고, 많은 것을 이루어도 인간 안에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남습니다. 어쩌면 그 빈자리를 인정하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행복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26.7.18.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