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0월 13인가 아마 그럴것입니다
그전날 부산에서 미리 머리 빡빡 깎고
담날 아침 창원행 버스를 타고 오후에 부대 앞에 내려
근처 다방에서 김수희의 너무합니다란 음악 들으며 룰루랄라 대기 하다가
오후 4시경 드디어 39사단 신병 교육대로 입소했습니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도열해 있던 조교로부터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앞으로 굴러, 뒤로 굴러로 시작해
말 그대로 사회의 물을 빼는 군기잡기로 한따까리 완전하게 했습니다
이미 입고 있던 옷은 흙범벅이고
싸늘한 가을의 밤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완전히 땀으로 얼룩졌으니깐요
그때 생각나는건 오르지
휴~~~이제 정말 고생 시작이구나....
내무반에 들어가
사회에서 입던 옷 모두 벗고 빨가숭이가 되어
군대에서 지급해준 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드뎌 이젠 나도 군발이
(말 그대로 군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람)
그리곤 신병교육이 예비사단이라 6주라고..
아니 논산은 4준데 왜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고 다리가 풀려 힘이 없어지더라고요
4주도 힘든데 앞으로 6주를 어떻게 버티나...
그러나 그거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거기서부터 바로 깍지 끼고 엎드려벋쳐부터 시작해 한바탕 군기잡혔지요...
그넘으 깎지 끼고 엎드려뻗쳐에
손등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 좀 나을라그러면 또 하고
해서 훈련 마칠때까지 모두들 손등의 살이 살아날수가 없었습니다.
어쩻든 드디어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갔습니다
하도 정신이 없어 배는 고픈지 어떤지 알수도 없었지만
어쨋든
"식사 시작!"
"네 감사히 먹겠습니다."
딱 5분
"식사 그만!"
"빨리 안튀어"라는 조교의 명령에
다 먹지도 못하고 얼른 식기통 들고는 짬밥 버리는 곳으로 가는데
선착순 집합이라네..
캄캄한 밤이고 불빛도 없어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디가 짬밥 버리는 구멍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서로 먼저 짬밥 버릴려고 북새통을 이루며 몰려 들어
아마도 거기일거라고 생각되어지는 구멍에 냅따 짬밥을 버리는데
갑자기 안에서 시커먼 뭐가 불쑥 튀어 나오는게 아닌가요
화들짝 놀래서 쳐다보니
아마도 그사람은 근처 돼지 키우는 집의 아저씨였는가 보는데
그시간 안에 들어가 짬밥을 수거해 갈려고 끌어 모으고 있다가
갑자기 수백명이 짬밥을 안으로 부어 버리니까
온몸에 짬밥 국물을 뒤집어 쓰고는 그사람도 놀래서 튀어 나온거라요...^^
참 먹고 사는게 뭔지...
그날 첫날밤..
40명이 1개 소대를 이루어 내무반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내무반장이 같은 종씨이더군요
웬지 좀 편할거 같다는 생각 이었는데
야가 또 꼴통이더구만요...
야밤에 한사람 한사람씩 내무반장 방으로 불러 갖고 있는 돈 영치시켜야 한다면서
영치한 돈 돌려 주지 않고 가로채고
당시 내 시계도 뺏어가 결국 퇴소 하던날 돌려달라고 이야기해서 마지 못해 주던 놈...
암기 사항 알려주곤
외울 시간도 없이 바로 그날밤부터 못 외우면
사정없이 가슴팍을 손으로 발로..
곳곳에서 퍽! 으윽~~~ 콰당!!
그래도 관등성명 하나는 칼이었지요..
"네 신병 백00!"...ㅋ
근데 전 별로 안맞았습니다^^
여기서 느낀게
안되는게 어디있나 였습니다
두들겨 패는대야
그 긴 암기사항을 토씨 하나 안틀리고 줄줄 외우게 되더군요
허기사 벤소깐 가서 밀어내기 하면서도 달달 외우는데 지까짖게 안외워지고 배기겠어요?
군에서 취침 시간은 분명 저녁 10시인데
10시부터 11시까지는 그넘으 암기사항 점검한다고 한시간동안 매일 푸닥거리를 해대니
침상에 정렬해 있던 그 한시간이 왜그리 길게 느껴지든지...
담날
기상시간은 6시인데
혹여 늦어 두둘겨 맞을까봐
모드들 5시부터 벌써 일어나 군복 갈아 입고 아침 점호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렇게 그렇게 며칠이 지나가고
우연히 옆 막사에 있던 기간병으로부터 건빵 한봉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걸 누가 볼세라 야전 잠바 안에 감춰두고 먹는 맛이란
캬~~.
세상에 젤 맛있는 과자가 건빵인줄 그때 첨 알았으니...ㅎ
군대에선 비스켓 하나 가지고도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말을 그때 실감 했으니깐요
어찌 건빵이 그리 달고 바삭바삭한지....
그 건빵을 빨고 있는 시간 만큼은 행복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흐뭇...^^
제가 군대 가기전에 위궤양이 좀 심했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때부터 자취를 하다보니
먹는게 좀 부실하고 제대로 챙겨 먹지를 못해 생긴 병이지요
그래서 공복이 되면 통증이 심해 견딜수가 없더라고요
그럴때 뭐라도 밥통에 좀 넣어주면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 앉습니다
마침 훈련소에서 배식 담당을 지원 받길래
얼른 지원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먹는건 좀 나을거라 생각해서...^^
4개 소대 170명 정도의 배식을 16명이서 했는데
거기서 짬밥장이 되었습니다
군대...
항상 배고픈거 아시죠
배식할때 밥 많이 주고 고기 몇개 더 넣어주고 하는건 제 맘입니다
그러니 소대장 4명과 전 같은 등급 이었습니다
훈련받을때 가능하면 조금 열외받고
대신 갸들 배식통에는 닭다리라도 한개 더 넣어주고
상부상조...ㅎ
그러다 배식이 잘못돼 밥이 모자랐을땐
ㅈ ㅗ ㅊ나게 터지고...
그러다 일주일이 되니 드뎌 담배 배급을 해주더군요
아~~바로 이맛이야....
힘든 훈련을 마치고 땀 흘리며 같은 훈련병들이랑 담배 한대 나눠 먹는 맛이란
아마도 죽어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필터도 없는 화랑 담배 였지만...
야간 사격 나가던날
첨으로 부대 정문을 나가 사격장으로 이동하던 날
칼라옷을 입은 민간인들을 보면서 저곳은 천국이라는걸 느끼게 되었고
어둠을 틈타 내무반장 몰래 길가 구멍가게로 잽싸게 들어가
빤스 옆에 메달아 놓은 주머니에서 꼬불쳐 놓은 지폐 꺼내서
보름달빵 몇개 사선 얼른 잠바 안에다 감춰 놓고선
남들이 다 잠자는 시간에 몰래 꺼내 사박바박 씹어 먹는데
아무래도 옆에서 자는 넘이 맘에 걸려
옆구리 쿡쿡 찔러 깨워 같이 농갈라 먹는 맛이란...
이게 바로 전우애 아니겠습니까?...ㅋ
훈련이 4주차 지나가자
이제 건빵도 배급해 주더군요
그넘으 건빵 가지고 하루종일 씹어 대었습니다
훈련장으로 이동할때나 쉴때는 물론 벤소깐에도 들고가
한편에선 밀어내고 또 한편에선 밀어 넣고 있었으니...ㅋ
근데 그것도 몇날 며칠을 연짱으로 먹으니 이젠 질리더라고요
낭중엔 쳐다보지도 않게 됩디다...
퇴소를 며칠 남겨놓고
전부 모이라 카더니 소원수리를 받는다 하더라고요
훈련 받으면서 억울한 일 있는거 있으면 모두 써라 그러더군요
이건 육군 본부에서 직접 받아 가는 것이니 본인에겐 절대로 불이익이 없다고...
그래서 그동안 본 부조리, 구타로 인해 멍들어 상처가 생긴것, 돈 삥땅 당한거 모두들 신나게 썼지요
근데...
연습이더라고요...ㅠ ㅠ
그런거 써냈다고 쓴 사람은 내무반장과 교관으로부터 신나게 욕 얻어먹고
몇넘은 불려가고
그러니 그담날 진짜 소원수리 받을땐 써는 사람이 별로 없습디다
그냥 백지로...
퇴소날...
빛나는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연병장에 모여
배치 부대별로 줄을 서게 되었습니다
전 다른 한명과 같이 들이 서울에 있는 육군사관학교로
그날 밤 열차를 타고 창원에서 서울 용산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천안을 지날 무렵
눈이 무지하게 오더군요
그날이 바로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이브를 조금 지난 시간...
훈련도 마쳤겠다 이제 자대로 배치되어 가는 뿌듯한 마음에 눈까지 내리니
그 마음은 무어라 말할수 없이 황홀했지요
눈은 계속 펑펑 내리고....
눈...
낭만...
황홀...ㅎ ㅎ
그게 자대 들어가자마자 눈물의 서곡이 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1982년 12월 25일 성탄절 공휴일날
저와 또 한넘 둘이는
따블빽 둘러메고 오른손을 110도까지 올리며 보무도 당당하게 그렇게 육사 정문을 통과 했습니다
첫댓글워메님 언제 다 읽어유..지금부터 읽어도 낼 아침까정 걸릴텐디 잠 자지말고 읽을까유 ...긴글 올리신다고 수고 많이 하셨어유남자들은 군대시절이 젤 가슴에 추억으로 박혀있는것 같아요.. 군 시절이 그만큼 고생도 만히한 탓이것죠...세월이 많이 흘르도 잊혀지지 않는걸 보면 말입니다.....
아침에는 미처 못한 야기 남편 군시절에 그렇게 옷을 안갈아입는... 이름하여, 고문관이라 지칭한다네요^^ 이총각이 옷을 그렇게 안갈아입고, 복장검사하는날은 고이 모셔둔 새옷... 팬티며, 양말을 갈아 입었드래요 한날 사물함검사하는데, 속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때에 절은 팬티며, 양말이며... 그 고문관 땜에, 단체기합 받은게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첫댓글 워메님 언제 다 읽어유..지금부터 읽어도 낼 아침까정 걸릴텐디 잠 자지말고 읽을까유 ...긴글 올리신다고 수고 많이 하셨어유남자들은 군대시절이 젤 가슴에 추억으로 박혀있는것 같아요.. 군 시절이 그만큼 고생도 만히한 탓이것죠...세월이 많이 흘르도 잊혀지지 않는걸 보면 말입니다.....
남자들 군대 이야기야 밤을 꼬빡 새고 몇날 며칠을 이야길 해도 모자라지요...특히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아길긴 길다요...좀 쉬었다 읽어야겠어요 눈이아파요 ..남자들은 군대 예기를 하면 정말 밤을 지세워도 부족한듯합니다...길글 쓰시며 고생하셨습니다...^^*
ㅎ ㅎ 그럼 담부턴 좀 짧게 쓰지요...읽으시느라 고생 하셨습니다...^^
82년에 들었갔으면 내 한참 쫄다구네요...전 25사 개장수 출신 이죠80년 4월에 입대
ㅎ ㅎ 반갑습니다....역시 남자들은 군대 이야그 하며 쏘주 한잔 기울이는게 낙이지요..
ㅎㅎㅎㅎㅎㅎㅎㅎ 남자들 군대야기나오면, 괜히 열나서 난리던데~ 어느 부대냐? 내가 더 거시기빠지게 고생했다~ 너는 화장실서 모자잡고 볼일봤으? 너 팬티 도둑맞아봤으? 너, 꼴통 뒈지게 두둘겨 패봤으? 뭐~ 기타등등... 옆에서 가만 듣고있자면, 눈물나게 재미있는 얘기도 많지만, 왜,군대얘기가 남자의 인생에 그렇게 가장굵은 한대목이 되는지... 아침시간이라, 오래는 못머물고 한가한 저녁에 다시 구경해볼께요^^
미야님 맞소옳소꿍탁둥기둥기잘한다
ㅋ ㅋ meeya님 대단하시네요...남자들의 군대 이야기 표준도 아시궁....사실 사회에선 그만큼 특별한 경험을 두번 다시 할 기회가 없으니까요...싫다고 맘에 들지 않는다고 뛰쳐 나올수 없는 특수한 사회... ㅎㅎ 우에 루시아님은 춤도 잘추셔....^^
미야 아찌는 몇사 출신인고???
미야 아씨는 면회소 까지만 갔겠지유...ㅎ
아침에는 미처 못한 야기 남편 군시절에 그렇게 옷을 안갈아입는... 이름하여, 고문관이라 지칭한다네요^^ 이총각이 옷을 그렇게 안갈아입고, 복장검사하는날은 고이 모셔둔 새옷... 팬티며, 양말을 갈아 입었드래요 한날 사물함검사하는데, 속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때에 절은 팬티며, 양말이며... 그 고문관 땜에, 단체기합 받은게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고문관....ㅎ ㅎ 고문관도 종류가 많습니다...^^ 근데 그 고문관도 고참이 되면 틀려져요...사회에선 제 아무리 박사 학위를 딴 넘이라도 군대 가면 갸도 고문관도 돼요...^^
군생활이 이렇게도 할말이많았든가봐요 그때는 조금힘들었겠지요우리아들녀석 군입대했답니다 그래서 한참동안 읽어보았습니다 그래도 다못읽었습니다 23연대요 논산이죠~~~암튼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