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욥기(36장~37장) 묵상
※ 엘리후의 결론(욥기 37장)
욥기 36:22에서부터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라고 권하는 엘리후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스스로 찬양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욥기 37장에 마치고 있다.
엘리후는 폭풍우와 천둥, 번개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말하면서(욥기 36:27~37:4)
하나님께서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신다고 고백한다(욥기 37:5).
하나님께서는 눈과 때로는 적은 비와 큰 비를 내리게 하시고,
남방의 광풍과 북방의 찬 기운을 일으키시며,
얼음을 얼게 하시고, 구름을 일으키시는 자연의 모든 일들도
무의미하거나 목적 없이 행하시지 않으시고,
‘그의 명하시는 것을 세계 위에 이루시고자’ 행하신다.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일을 다 설명할 수 없다.
폭풍우가 가라앉고 하늘은 맑아지고
하늘의 별들이 빛나는 현상에서 엘리후가 발견하는 것은,
하나님의 두려운 위엄이다.
욥기 37:23~24절은 엘리후의 긴 연설의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전능자를 측량할 수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경외하는 것뿐이다.
자연의 이치도 그렇다면, 어찌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원인과 목적과 이유를,
인간이 자기 지혜로 다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욥과 세 친구들의 이야기는
결국 인간이 자기 지혜로 그것을 알아야겠다고 하고,
또 자기 지혜에 의존하여 이것이 원인이고 목적이라고
어리석게 단정하여 말한 것들이었다.
엘리후의 결론은 욥이 28장에서 말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욥기 28:28).
엘리후가 여기서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놀라운 관점이 있다.
그것은 욥과 세 친구가 매달렸던 문제
즉 ‘왜’ 고난이 임하였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접근을
과거의 죄가 아니라, ‘어떤 목적으로’ 라는 질문
즉 미래에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목적의 관점으로 전환시켜 주는 것이다.
문제의 초점을 원인에서 목적으로 이동시키고 있으며,
‘과거의 죄’에서 미래에 하나님이 하실 일—곧 구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나면서 소경된 자를 고치실 때
접근하셨던 방식이다(요기 9장1~4).
지혜는
우리가 생각하는 신학적, 과학적, 철학적 지식이 아니라고
엘리후는 말한다.
지혜는 지식이나 지적 분석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자신을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했다(고전 1:24).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는 십자가에서 나타났다.
성도는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과 아픔,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연약함을 경험할 때,
그는 오히려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배우며,
하나님께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 성
령의 은혜 안에서 사는 삶을 배우며,
하나님 경외하는 삶을 살게 된다.
여기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
욥기의 시작을 기억하는가? 사탄이 하나님께 말했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여호와를 경외하리이까?”(욥기 1:9)
이러한 저급한 사탄의 생각과는 다르게
욥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원하는 보상은 오직 한 가지이다.
초월하여 계시는 전능자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그리고 그분을 경외하는 삶,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가장 뛰어난 보상이다.
이제 욥기의 남은 장들이 그것을 가르쳐줄 것이다.
-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남아공 노록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