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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란 후라이
우리 엄마의 눈은 한쪽 뿐이다.
내가 6살 시절에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를 사랑했다.
나는 사격 올림픽 3관왕인 권진호이다.
내가 이런 큰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뺑소니 교통사고이었지만
결국 범인은 잡지 못하였다.
그후 어머니는 나를 낳고
열심히 일을 하셨다.
내가 집에서 티비를 볼 때 어머니는 나물을 팔러 시장으로 나가시곤 하셨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날
어머니가 내 입학식에 오셨지만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한쪽 눈 없는 애꾸장애인이
내 어머니라는 것이 너무 창피해
얼굴을 옷 속에 파묻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를 알아본 듯
나에게 오셔서"진호야!"하며
나의 이름을 크게 부르셨다.
입학하는 애들의 눈들이 어머니에게 시선이 몰렸기에 나는 창피해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나는 늦게까지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집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그때 도
나물을 다듬고 계셨다.
"그래! 우리 아들 왔어?
벌써 중학생이 됬네~
우리 멋쟁이 아들~!"
나는 순간 쌍소리가 나왔다.
"썅~ 중학생? 놀고있네,
나 엄마 때문에 왕따되게 생겼어!
왜 학교오고 난리야,쪽팔리게~
다음 부터는 오지마! 알았어?"
마음에 없던 소리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왜 그랬을까?
진짜 왜 그랬을까?.
내가 정말 미워졌다.
나는 그냥 다 잊자는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어머니께 불쑥 한 말이
너무나 미안해 잠이 안왔다.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나는 바로 자는 척을 했다.
엄마가 나에게 가까이 오더니 나의 볼을 만지면서 울고 계셨다.
싫지 않았고 어머니의 체온이 따뚯함을 느꼈다.
어머니의 온기에 의해 나의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친구들이 제일 먼저
엄마에 관해 물었다.
"야! 어제 그 아줌마 니 엄마냐?
니 엄마 장애인이야?"
처음엔 선빵을 날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놈은 잘 나가는 초등 1짱이여서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나는 또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였다.
"아, 그분? 내 엄마 친구셔~
우리 엄마랑 엄청 친해서
우리 집에서 사는데
아주 쪽팔려서 말이지
내가 지 아들인지 아나봐~
아~ 진짜~"
친구는 그 말을 듣더니 말했다.
"아 그래? 씁! 난 또 뭐라고
그래 우리 잘 지내보자."
다행히 중 1 시절은 공부도 안하고
양아치처럼 지냈지만
중 2부터 고등학교 생각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사격반에 들어갔다.
내 시력은 2.0, 2.0.
사실 그보다 좀 더 높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시력엔 자부심이 있었다.
너무 시력이 좋아서였을까?
내 사격솜씨는 '일취월장'이였다.
결국 나는 엄청난 사격실력에 올림픽 대표 리스트까지 끼게 되었다.
그런후 이상하게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더니
결국 한쪽 눈이 실명되었다.
나는 절망했다.
세상 모든 걸 잃은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모든 걸 포기했다.
그때 뜻밖의 희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어떤 사람이 '안구 기증'을
해준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나는 수술을 받았다.
정말 행복하였다.
다시 나의 한 쪽 눈이 보인다는 것에 만족하였다.
나는 눈시술 후 오랜만에 어머니를 찾아뵈러 집으로 갔다.
방안에 도시락과 편지가 써있었다.
편지를 펴보았다.
아~~"안돼!
엄마 왜 그랬어~"
편지의 내용을 본 나는
거의 미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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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아들아!
이 편지를 읽게 되면 초등학교 때 싸주던 도시락을 먹고 있겠지?
오늘은 계란도 입혔다.
정말 맛있을거야! 내 아들~
엄마의 한 쪽 눈 보기에 괜찮니?
이상하지 않아? 우리 아들...
엄마는 너 합숙소에 들어가고 나서
머리가 많이 아파 병원에서 진찰했더니
내가 뇌종양이라고 하더구나~.
엄마는 절망했었다.
다시는 우리 아들 못 보고
죽을 거 같아서~
그래서 남은 한쪽 눈마저
너한테 기부하기로 했다.
그동안 나물을 팔아 모아둔 돈 네 통장으로 모두 보냈는데 들어 갔는지
내심 걱정되는구나.
이제 엄마가 여지껏 숨겨둔 사실을 말해도 되겠지?
네가 태어났을 때
한 쪽 눈이 없었단다.
왜였는지 몰라도 한쪽 눈이 없더구나!
그래서 엄마는 엄마의 한 쪽 눈을 너에게 주었어~.
너는 엄마처럼 살면 안되니까~.
더 잘 살아야 하니까 말이야!
그래서 엄마는 주저하지 않고
너에게 눈을 줬단다.
우리 아들 중학교 입학 하던 날~.
우리 아들이 얼마나 커 보이던지~.
큰 키로 멋지게 서 있어서 엄마는
더 가까이 가서 보고 싶었지만
네가 그만 도망갔었지.
엄마는 서운했지만
정말 미안했단다.
이런 외꾸눈 엄마가 돼서 말이야.
우리 아들이 집에 들어오면 돈까스 해 줄라고 돈까스 사 왔었는데 네가 오지 않아
해주지도 못하고선 너무 슬퍼서
그냥 울기만 했었다~.
우리 아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리고 고등학교 때
집 나간다고 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니?
결국 나갔지만 정말 네가 보고 싶었어.
계속 우리 아들 사진보면서 울고 그랬어~.
그러던 어느날 머리가 아프더구나.
그래서 뇌종양 말기란 걸 알고나서
너에게 마지막 남은 눈을 준거란다.
아들아 울지 말아라.
우리는 언제나
같은 곳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할테니~
우리 아들하고 같이 있으려니까 따뜻하구나!
도시락 맛있게 먹고 힘차게 사는 거다!
우리 아들!
- 아들을 너무 사랑하는 엄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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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도대체 왜!
이런 것도 모르고 엄마를 창피해 했든
못난 자식한테!
엄마 정말 미안해~.
나 엄마가 못다 해 준 달걀 후라이
많이 먹고 열심히 훈련할게~.
그리고 엄마 눈을 통해 꼭 금메달 딸거야,
엄마 꼭 지켜봐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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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지금
아들 목에 걸려있는
이 반짝이는 금메달 보여요?
드디어 엄마와 내 꿈이 실현됐어요.
하늘 나라에서나마 칭찬해 주세요.
그리고 다음 생에 엄마와 자식으로 만나 계란후라이 꼭 해주세요. 알았죠?
먼 하늘에 두 눈이 먼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 올림픽 사격 3관왕
권진호 이야기 >-
-지인이 보내 준 톡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GtjINf4i6Ok
올 듯 말 듯 하더니
끝내 이슬비 뿌린다
처서 비는
십리 안에 천석을 감한다는데..
팍팍한 시골 삶에
한 짐 더 올리려나 보다
집사람이 힘을 못탄다
약을 먹어도 아픔은 여전하다고
안되겠다며 그럼 물 한모금도 마시지 말고 병원에 가서 초음파라도 해보자고
우선 초음파를 받아 상태를 본 뒤에 위내시를 하는게 좋겠다
얼른 나가 동물들 챙겨 주었다
아침부터 비 예보 있던데 다행히 구름만 잔뜩 웅크렸다
오늘도 녀석들을 모두 가두어 두었다
뱡원에 다녀 오려면 가두어 두는게 안심이 된다
모이를 두바가지나 주었어도 부족한 듯
알도 낳지 않는 녀석들이 먹기는 잘한다
연못에서 마름과 나사말을 걷어다 주고 미강도 버무려 주었다
된장국 데워 나만 밥한술
혼자 먹으려니 밥맛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우적우적 집어 넣었다
나라도 먹고 힘내야지
집사람에게 병원에 가자고 하니 약 먹으며 오늘 하루 더 참아 보겠단다
저녁내 아파서 잠 못잤는데 뭘 또 참느냐고
얼른 나서자니 미적겨린다
이거참
친구 전화
내 톡을 읽어 보고 전화했단다
자기 집사람도 입맛없고 배아프며 토하기도 했는데 병원에 가보아도 원인을 못찾았다고
친구도 등산가는데 다리에 힘이 빠져 잘 걷질 못했다고
의사샘이 혹 모르니 둘다 코로나 검사 해보라고 권해서 구청 가서 코로나 검사를 해보니 그 다음날 확진으로 나오더란다
그래서 약처방 받아 먹어가며 자가 격리 끝나고 나니 이제 입맛이 돌아 왔다며
혹 모르니 먼저 가 코로나 검사 받으라고
난 증상을 못느낀다하더라도 같이 해보는게 좋을 거라고
오늘 받으면 내일 결과가 나오니 그 때 다시 병원에 가도 늦지 않을 거라며 적극 권한다
친구 이야길 들어보니 증상이 비슷
그럼 코로나 검사 받아 보는게 나을 것같다
집에서 계셨다가신 큰 처형이 코로나 확진 되었다니 집사람도 혹 코로나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증상은 나타나지 않지만 같이 생활하니 어떨지 모르겠고
집사람에게 친구 이야기하면서 일단 보건소 가서 코로나 검사받아 보자고 했다
집사람이 마지 못해 그렇게 하잔다
코로나라고 하면 그에 맞는 약을 처방받아 치료하는게 낫겠지
진즉 검사를 받아 볼건데...
보건소에 가니 대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예전엔 길게 줄서서 오래 기다렸는데 요즘엔 병원에서도 검사를 해주니 보건소에 많이 오질 않는 것 같다
먼저 큐알 코드로 문진표를 작성하여 제출
차례가 되어 코와 입에서 검체를 한다
내일 결과가 통보 될거라고
코로나라 하면 자가 격리하며 치료하면 좋아지겠지
카 마스터에 들러 문사장에게 차를 좀 봐달라고
전조등 전구가 나간 것같다
전구를 갈아 주고 엔진 오일을 살펴 보더니 오일이 하나도 없단다
저런 이라니
오래된 차는 오일을 먹어 버릴 수가 있단다
이대로 타고 다녔으면 엔진이 붙어 버릴 수도 있었겠다고
엔진 오일과 냉각수 워셔액등을 채워 주고 엔진 주변도 깨끗하게 청소해 준다
전구는 무료로 갈아 주고 비용은 엔진 오일 넣는 값만 달란다
고맙다
길가 벗나무에 노랑물이 앉기 시작한다
들녘엔 이미 볏꽃 피어지고 노랗게 고개 숙인 벼도 보인다
저 벼는 추석전에 베어 햅쌀 먹을 수 있겠다
어느새 가을이 가까이 왔다
사거리 농약사 들러 배추 모 한판을 샀다
작년엔 황금배추와 일반 배추를 심었는데 이번엔 모두 일반배추로
한판이 128개 들었단다
이만하면 충분 하겠다
고추에 탄저병이 많이 왔다고 하니 지금은 치료제를 써야한단다
한봉지에 이만원
고추에 들어가는 약값도 무시 못하겠다
비가 내릴 듯 말 듯
배추를 심어버리는 것이 좋겠다
심고나서 비 내린다면 더 없이 좋을 듯
배추심을 자리 만들어 놓은 곳에 한모씩 심었다
먼저 배추 모를 모종판에서 뽑아 심을 자리에 놓았다
배추 심을 자릴 100개 정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90여개 밖에 안된다
나머지는 무 밭과 아무것도 심지 않은 두둑 일부에 심기로
모종삽으로 땅을 파고 배추 모를 넣은 후 흙으로 덮어 주었다
이도 일이라고 땀으로 범벅
그래도 더위가 많이 가셔 짤 정도는 아니다
집사람은 콩나물 죽을 쑤어 놓았다고 내려 왔다
조금 힘이 난단다
다행히 그대로 나았으면 좋겠다
배추를 다 심고 물을 떠 다 하나하나 뿌려 주었다
비가 오더라도 모종을 심고나면 물을 주어야 뿌리가 흙에 더 잘 붙는다고 한다
봄에 밭 가에 가져다 둔 큰 고무통에 든 물을 비웠다
이제 더 이상 물받을 필요 없으니 가지고 올라가야겠다
물을 비우니 그 속에서 새끼붕어 한 마리가 튀어 나온다
어? 붕어가 어떻게 통속으로 들어 갔지
물고기는 큰 비 올 때 빗줄기 타고 올라가다가 땅에 떨어진다고 하던데 그랬나?
그렇지 않으면 붕어가 통속에 든 걸 설명하기 어렵겠다
신기한 일이다
아산형님 전화
저녁때 막걸리 한잔 하게 내려오라고
고마운 말씀
가지고 온 통과 야외솥을 씻었다
퐁퐁 풀어 깨끗하게 씻어 엎어 두었다
그래야 다음에 쓰기 편하겠지
야외 큰 솥은 씻어 불을 때 말려 두었다
내일은 쓰레기 수거일
막걸리병을 모아 큰 비닐 봉지에 담았다
우리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건 막걸리병
매일 한두병 마시니 일주일이면 대 비닐봉지 하나
아이구 이제 술도 줄여야할건데....
이것저것 하다 보니 어느새 한시가 넘었다
샤워하고 나니 갈증이
막걸리 한잔으로 갈증을 달랬다
집사람이 콩나물 죽을 맛있게 끓였다
술술 잘 들어 간다
집사람도 반그릇 정도 먹는다
이대로 입맛 살아났으면 좋겠다
집사람이 노래교실 다녀 온다기에 난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나니 세시가 넘었다
안개비 내린다
배추심은 곳에 붕사를 뿌려 주지 않았다
붕사를 가지고 가서 배추심은 곳마다 조금씩 뿌려 주었다
비오니까 잘 녹을 것같다
작은 누님 전화
별 일 없냐고
코로나 걸리신 것 어떠냐고 하니 이제 다 좋아지셨단다
내가 이치료 다닌다고 하니 치약을 잇치로 써 보란다
그걸 쓰면 잇몸이 더 좋아진 것같다고
가르쳐 주어 그걸 쓰고 있다니 그것도 아주 좋은게 있단다
살펴 보고 사서 쓰란다
그런 것 까지 신경 써주시다니 고맙다
항상 건강 잘 챙기시라 했다
집사람이 노래교실 다녀오더니 아산아짐이 내려 오라했다며 가자고
그래 이슬비도 내리고 술맛 나겠다
아산형님 집에 가니 두분이서 부엌에서 음식 장만하고 계신다
아이구 나이드신 분들이 ...
그래도 남 먹이려고 준비하시는 모습이 좋아 보이신다
상차려 막걸리 한잔
깻잎 넣어 허파전을 푸짐하게 지져 내 놓았다
넘 먹음직 스럽다
거기다 돼지머리도 삶아 놓았다고
안주도 풍부하니 노열동생도 오라하자고
형님이 금방 전화하니 바로 오겠단다
같이 어울려 한잔
낮에 막걸리도 한잔 했었건만 또 술술
이놈의 술 멈출 줄 모른다
지금 이렇게 어울려 사는게 얼마나 즐겁냐고
전적으로 동감 한다고
사는 게 별 것 있을까?
함께 어울려 즐거우면 되는 거지
이런저런 자기 이야기별로 의미없는 이야기라도 술 자리엔 어울리는 것 아닐까?
마시고 또 마시고
술이 술을 부른다
모든 걸 긍정적으로 보면 즐겁지 않겠냐는 형님 말씀에 백번 공감한다며
내가 여기 들어온 지가 9년 이라며
옆집 괴롭힘에도 꿋꿋하게 살아 남은 건 형님이 말씀한 긍정의 힘이라고
그게 맞는지 모르겠다
아산형님이 나같은 처지였으면 진즉 떠났을 거라고
무엇이 부족해 여기서 살고 있었겠냔다
어쩜 난 우직한데가 있다
아니 지고는 못사는 성질 아닐까?
난 온순해 보이지만 오기가 창창
쉽게 포기도 하지만 마음먹으면 끝장을 본다
그래서 집사람이 내 고집을 못 꺾겠다고 하는지도
그래도 함께 즐기며 남은 생 살아가고 싶다
아산형님이 다음에 마을 일 한번 맡아 해주지 않겠냐고
지난번에도 말씀 하시더니 오늘 또 끄집어 내신다
그건 형님 생각이라며 재봉동생 시키라고
내가 마을 일에 대해 재봉일 가르쳐 주어야한단다
아이구 육십 넘은 동생 무얼 가르쳐
괜히 농담 따먹기 해버렸다
내가 다시 마을을 본다는 것은 내 자신도 허락하기 어렵다
반대할 몇사람의 등살을 이겨낼 자신 없고 서로 시비 붙는다면 나만 힘들뿐
이 나이에 우세 살 일 없지 않은가?
술과 고기를 넘
왜 적당히 먹지 못하는 걸까?
아직도 몸이 청춘으로 아나?
밤새 내리던 비 그치고
뿌연 안개가 스믈스믈
님이여!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오늘도 나누고 베풀면서 많이 웃는 날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