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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반갑습니다 네
네 오늘 부분 보겠습니다. 혹시 방송이 다 하고 있는지 한번 확인 YouTube에도 한번 오늘 어제 오늘이 여기, 뭐가 좀 이상하게 나와서 근데 이제 오늘 부분 보겠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의 뜻입니다. 했어요. 이 점을 깨달으면 고비를 넘은 것입니다. 이제 이 서구에서는 이제 신이라는 뜻이 종교 이런 걸 떠나서 우리가 이제 뭐랄까요? 그냥 우리가 진리 진실 참된 이런 것들을 뜻해요. 그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일어나야 할 일이었던 거예요. 지금 나에게 사실 나에게라는 읽고 또 말이 이상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은 인연이 펼쳐져야 할 정확한 정확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 거예요. 법이 드러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연기법이라고 해요. 이 년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연기한다. 그럽니다. 그것이 바로 법이에요. 법 진리 이곳을 깨달으면 한 고비를 넘은 거다. 그 우리는 요거를 모르니까 드러난 모든 것에 대해서 요건 마음에 들고 저건 마음에 안 들고 이것저것 떠나서 자기 예부터 얘가 좀 더 건강했으면 좋겠고, 좀 더 능력이 있으면 좋겠고 범죄 우리 집에 돈이 있으면 좋겠고 뭐 이런 식으로 어 다른 인연을 원하잖아요. 따르게 됐으면 좋겠다라고 원한단 말이죠? 그것 때문에 괴로운 거죠? 고것만 안 하면 괴로울 게 없는데 저거 다른 걸 원하니까 지금 법이 진리가 드러나 있는데, 그 진리를 원하지 않고 법을 원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원하니까 생각으로 이게 좋은 줄 알고, 저게 좋은지 알고, 남에게 더 좋은 줄 알고 저것을 원하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안 되니까 괴롭죠. 토끼가 사자가 되길 원할 때 그럴 거 아니에요. 사자가 안 되는 동안은 괴로울 거 아니에요. 트럼포기가 나도 토끼처럼 움직이고 싶어. 할 때 괴로울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생각을 믿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의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믿는다면 어 풀은 풀 대로 토끼는 토끼대로 사자는 사자대로 구름은 구름대로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모든 것은 아무 문제가 없죠. 온전하죠? 그러니까 우리 삶도 똑같은 거예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왜 문제가 생겼느냐? 자기 생각으로 자꾸 지금 있는 것을 원하지 않고 다른 걸 원했어. 그래요, 그 신기하게 2년 따라 어 부부도 다 적절한 사람을 만나고 부모님도 적절한 사람을 만나고 본인 마음에 안 들 수는 있겠지만 그 생각을 버리면 그 생각을 하지 않으면 지금 내 이 삶의 상황이 마음에 안 들 수 있겠지만, 그 생각을 내려놓으면 어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까 삶에서 문제를 안고 사는 건 괴롭잖아요. 문제를 해결하고 사는 게 가벼울 거 아니겠어요? 해결하고 가볍게 살아야죠. 어떻게 하면 될까요? 지금 이게 나구나. 이러면 돼요. 이게 나구나 그 토끼가 알아 토끼구나. 이걸 받아들이면 되는 거예요. 왜 자꾸 토끼인데 사자가 되려고 하란 말이에요? 나는 더 덩치도 컸으면 좋겠고 힘도 셌으면 좋겠고 성격도 막 외향적이고 막 이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괴롭죠. 그래서 이제 불교에서는 항상 있는 그대로 자기 만족하면 그것이 행복이 다르잖아요. 그 자기를 받아들인다는 거예요. 삶을 연기법을 받아들인다는 거예요. 현실이라는 진실을 어 허용하는 거죠? 그러면 순식간에 문제가 사라집니다. 여러분 지금 괴로운 것들이 있을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근데 이렇게 되고 싶어 했는데 그렇게 안 되니까 괴롭잖아요. 이렇게 되고 싶어. 고구마 없으면 지금 문제 해결 아닌가요? 가볍게 살 수 있죠?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거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라 그랬죠. 원하는 걸 하는 것도 좋다. 다 하는 것도 좋다. 근데 그게 될지 안 될지는 내 생각대로 되거나 안 되는 게 아니라 이 법계 2년 따라 되고, 안 되고 하는 거니까 그 내가 고집할 필요는 없는 거죠?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무엇이든 마음 내는 다 할 수 있지만 그들 뜻대로 될거야라는 집착은 내려놓고 할 수 있죠. 근데 내 뜻대로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뭐든지 최선은 다 해 보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으니까 인연이 어떻게 펼쳐낼지 알 수 없으니까 근데 인연에서는 인과 연 이러잖아요. 내가 마음을 내는 걸 인이라고 할 수 있고 마음 냈다고 다드는 게 아니라 연이 받쳐줘야 되잖아요. 보조적인 인연이 연이 받쳐줘야만 내가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인의 역할이 되게 중요해요. 어떤 결과를 이루는 데는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을 때 열심히 하는 건 해야죠 될지도 모르니까 근데 안 될지도 모르니까 저 차근 내려놓고 하면 되니까 얼마나 삶이 심플합니까? 그런데 음 이거를 뭐라고 생각하냐면 내가 나는 이렇게 못나게 태어났는데 나도 좀 잘 살아보면 안 돼요. 되죠 그게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근데 예를 들어 내가 키가 작게 태어났는데 나도 좀 키가 커면 안 돼요 되는데 안 될 거란 말이에요. 2년이 안 됐다면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죽을 때까지 키 작은 걸로 괴로워하면서 살 거냐 아니면 키 작은 거에 맞춰서 살면서 받아들이면서 악기 작으니까 곳곳에 이제 그 이단짜리 뭐해 하고 발꼴라 서는 걸 사다 놓으면 돼요. 옷끝에 그럼 문제가 사라져요? 지난 시간에 도덕경에 나온 추우면 움직이면 되고 더우면 가만히 있으면 된다. 이렇게 하는 게 외부 경계를 뒤바꾸려고 할 게 아니라 1년 따라 자신이 어떻게 살지를 맞춰가면 되는 거죠? 그러니까 너무 간단한 거예요. 그런데 왜 너무 간단하지 않으냐? 내가 너무 오랫동안 무언가를 집착하고 붙잡고 난 이러고 싶다. 저러고 싶다 이래야 된다 하고 붙잡았기 때문에 그리고 쓸데없이 누군가를 나의 경쟁 상대로 삼아서 저 사람과 비교 대상으로 삼아서 그 누군가와 비교하니까 그게 괴로운 거예요. 그러니까 나이 45. 뭐 이래 넘어가지고 친구 모임하고 또 그것도 또 부부 동반 모임하고 이래 보면 대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비교잖아요. 뭐 얘기할 게 뭐가 있겠어? 그냥 뭐 어떻게 사냐 뭐 뭐 어떻게 사냐? 하다 보면 어디 사냐 집은 어디냐? 자식은 잘 크냐 다 비교적 거든요. 그니까 그럼 비교하는 마음이 자꾸 생기고 그럼 비교하는 마음을 따라가게 되면 나만 못 사는 것 같은 이런 이 생각이 실제인 것처럼 느껴지기 쉽단 말이죠. 근데 참 이게 다행인 거지? 다행인 것은요 그 이게 이제 제가 이게 보니까 이제 어느 정도 성인이 돼서 직장을 다니잖아요 그러면 사실은 어지간한 사람이면 그 다 자기 집 하나 얻고 편하게 살 수는 있더라고요. 또 나라에서도 많이 도와주고 왜 그러냐면 성실하게 몇 년만 살면요? 이렇게 지방 소도시에서 쪼만한 집은 살 수 있거든요. 작은 집은 살 수 있거든 제 고향에 보니까 231000만원짜리 아파트가 있어요. 시인데 시인데 외곽 쪽에는 고향에 있던 누가 그 아파트를 산다고 산다. 막 이런 얘기를 했었던 게 기억이 나가지고 그러다가 이제 일 년인가 지나고 나서 그 그 그분이 그걸 못 산 걸 막 땅을 치고 후회를 하더라고요. 그 왜 그러냐 했더니 이런 가격이 이게 쉽지 않은 가격에 따르면서 분명히 그때 3천만 원이었는데 지금 3300이 됐다고 그때 샀으면 3천 번 왔을 텐데 얘기를 하더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2년 따라서 어 만족하고 살려면 살 수도 있고 또 그것이 문제 제가 상담하던 사람들을 보면요. 완전 돈도 다 탕진했고 뭐 뭐라 그러죠? 이렇게 이제 어떤 거 때문에 이제 그 뭐라 하더라. 자신 파산 신청 같은 것도 하고 완전히 이제 뭐 받아 마이너스인 이런 사람이 완전 최악의 상황이더라고요. 그 이제 아무것도 없이 그냥 떠들면서 완전히 막 그 노숙자처럼 이렇게 살아야 되는 형편이 돼 버렸어요. 그 집에서도 이제 포기를 하고 허적에서도 빠져 버리고 그러니까 이제 완전 끝난 거잖아요. 근데 어 이쯤가 보니까 나라에서 아파트를 주더라고요. 어 어떤 조건이든 걸 준답니다. 그니까 일단은 이제 살 수는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내 집 갖고 살 수는 있어요. 누구나 그런데 이제 괴로운 건 왜 괴로워 난 여기서 이 아파트 말고 저기서 저 아파트 갖고 싶어. 이럴 때 괴롭죠? 근데 그거는 사실은 상이잖아요. 상 집단적으로 사람들이 다 같이 만들어 놓은 상 모양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뭐 무슨 한강 뷰가 나오는 한강변 아파트 이러면 몇10억이 한다는데 거기를 꼭 가져야 된다. 하지만 사실은 지방에 와도 강뷰가 나오는 아파트가 많거든요. 지방에도 근데 파노라마 강표가 나오는 부산이나 기장 이런 데 가면 막 파노라마 바다뷰가 나오는 이런 아파트도 있을 수 있고 그런데 왜 그러겠어요? 특정한 것을 원하거든요. 근데 음 뭐 그걸 잘못했다는 건 아닌데 2년 따라 다 좋은데 내가 아무리 해도 해도 안 되는 경우라면 이 소리예요. 헤드해도 안 된 인연따라 저절로 되는 거거든요. 모든 일은 그 저절로 에는 내가 노력하는 것도 포함돼요. 저절로 되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거는 인연이 아니라는 소리거든요. 그 부처님이 한 서너 번 도전하고 서너 번 시도하고 안 되는 건 깔끔하게 항상 포기를 하시거든요. 그러니까 노력하지 말라는 게 아니죠. 그걸 갖지 말라는 게 아니죠. 근데 해도 해도 안 될 때 왜 평생 분노하며 사냐 말이죠? 그거 못 가진 거로 왜 분노하며 사냐 말이죠? 나는 요쪽을 욕을 가질 수 있는데 이걸 만족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가 완전 사라지는데 평생 부모님이 부자가 아닌 걸 가지고 후회한들 부모님이 나를 왜 이렇게 키워줬을까 하고 후회한들 부모님이 나를 어릴 때 좀 붙잡아놓고 공부 좀 시켜서라도 나를 좋은 데 보내지 하고 후회한들 그 웃긴 게 꼭 어릴 때는 붙잡아놓고 공부시키면 안 하고 나이 들어가지고 왜 그때 날 안 시켰냐고 한단 말이죠? 그러니까 그 생각이 없으면 모든 것은 가장 적절한 거예요. 부모님도 했는데 안 된 거겠죠? 모든 것은 가장 적절한 현실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후회할 것 뭐 욕심 낼 것 이건 아니야라고 할 만한 것 난 이러곤 싶지 않아 난 저렇게 되고 싶어. 이건 원하지 않고 난 저것을 원해. 국회 내부 뭐냐면 이렇지 나도 저런 부모님을 원해. 이거 다 망상이에요. 그 망상을 붙잡고 심지어 집착하고 살 때 남들과 자꾸 비교하게 되고 거기서 괴로움이 생기죠. 저거 저 네팔에 히말라야를 갈 때고 이제 그 현지인들하고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어서 대화를 나눠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못 사는 사람이 그 나라에서는 엄청 잘사는 사람인 거란 말이죠? 아프리카는 말할 것도 없겠죠? 그러니까 자기 생각은 잊지 않으면 현실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현실은 삶은 이대로 완전해요. 심지어 몸의 병이 나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병은 누구나 났다가 안 나왔다가 하는 거예요. 주금는 것도 사실 아무 문제가 없어요. 죽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다 죽어야 돼요. 우리 다 근데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우리가 원하는 꿈에 그리는 호상으로 죽지 않아요. 그 호상도 자기 생각의 호상이지 뭐가 호상이에요? 모든 죽음은 다 호상이에요. 사실은 근데 다 다르게 죽어요. 어디 사람이 이렇게 주고 저 사람은 저렇게 죽고 이 년 따라 죽는 거 아니겠어요. 근데 어떤 죽음은 호상이라고 하고 그런 것도 자기 분별이죠? 여기 이제 그 얘기가 나와요. 나는 불편함 실명 눈이 눈이 안 좋거든요. 빨간 KT가 곧 7명 위기에 있거든요. 7명 또 부상 나이가 드셔가지고 막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이러세요. 할머니가 부상의 위험이나 죽음이나 여기에 활짝 열려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발밑이 보이지 않아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질 뻔 했습니다. 나는 내가 균형을 잡는 모습을 지켜보며 매료되었습니다. 저희가 뭐 글로 떨어지고 있는데 어찌어찌 막 바다닥거리면서 이게 균형을 잡거든요. 이거에만 매료되는 게 아니고요. 이게 분별의 눈으로 보면 여러분 손 이렇게 이렇게 할 때 손을 폈다 잡았다 했네. 이렇게 하니까 이게 이렇게 매우 안 되잖아요. 그 생각이 없으면 생각 판단 분별 안 다는 알 식자 안다는 분별이 없으면요. 원래 사람은 손을 접었다 폈다 하는 거야. 이거 안다고 생각하니까 이 신비로움에 전혀 외로되지 않잖아요. 그 안다는 생각이 없으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놀라운 신비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얘가 내가 애쓰지 않음에도 끊임없이 저절로 완벽하게 들숨과 날숨을 완벽하게 들이시고 내신다라는 얼마나 놀랍습니까? 손이 필요할 때 완벽하게 접히고 펴진다라는 사실이 얼마나 이게 너무 신기한 일이죠. 길을 걸을 때 바디 두 발이 완벽하게 이렇게 뻗어진다라는 사실이 놀라운 일이에요. 머리카락은 기가 막히게 필요할 때 잘하고요. 몸은 알아서 추울 때는 옷을 껴입고 더울 때는 벗고 희한하게 배가 고플 때는 정확히 배가 고픈 줄 알고 배가 부르면 정확한 타이밍에 알아서 손을 놔요. 이 놀라운 신비거든요. 모든 것이 근데 우린 모든 것을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다 안다는 생각으로 원래 이 건 이런 거지? 저건 저런 거지? 그거 원래라는 게 그냥 그렇게 믿어버린 거잖아요. 원래 손을 이렇게 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한 거잖아요. 그런 원래가 어디 있죠? 다 신비한 거 너무 놀라운 거죠? 모르는 거지? 왜 얘가 이러는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뒤로는 안 잡히는 것도 신기하고 왜 마디는 이렇게 하나 둘 이렇게 세 마디 속에서만 움직이는지도 신기하고 그리고 몰라요. 우리 왜 그런건지? 그리고 여러분 이렇게 막 움직이는데 이거 누가 이렇게 하게 시키죠? 여러분 근데 안다고 생각해요? 뇌가 이렇게 정리하고 나면 더 이상 궁금해하지가 않아요. 이럴 때마다 뇌가 자식해 이러고 끝나요. 뇌가 한다고 정말 확신할 수 있습니까? 아는 척 하는 거예요? 그렇게 그냥 생각으로 규정해 버리는 거예요. 딱 그냥 안다고 그냥 딱 훔쳐버리는거에요. 그러고 나면 그냥 이미 알았으니까 더 이상 신비하지도 않고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 아는 거니까 음 그러니까 이게 전혀 신비롭지가 않아요. 매료되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거 누가 하는 거예요? 이러면 말도 안 되는 거를 주문을 하세요 이런데 말입니다. 저의 음 선반에 화두를 들 때 있잖아요? 음 서방에 있는 스님들이 화두를 들잖아요. 그 요거 하나 해결하는 거예요. 이거 누가 하는 거예요? 요거 찾으세요. 묶은 다는 거예요. 그러고 한 달도 있고 두 달도 있고 1년도 앉아 있고 계속 앉아 있는 거 이거 누가 하는지 확인하려고 1년을 앉아 가지고도 안 풀리는 거란 말이야. 이게 근데 우리는 아는 생각으로 뇌가 하는 거야. 이러고 끝내보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아요. 이거 이렇게 이게 손이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한다는 게 이게 신기하지 않나요? 제가 하는 말을 듣고 있는 게 뭐가 듣는지 이게 신기하지 않아요. 귀가 들어 이러고 딱 끝내버려요. 그냥 평생 귀가 듣지 하니까 듣는 모든 것을 전부 다 내가 아르마리도 다 뒤덮어 가지고 듣는 건 귀가 듣는 거야. 이러고 끝내버려요. 그냥 죽을 때까지 끝내버려. 더 이상 안 찾아요. 음 귀가 있어도 제가 이렇게 얘기를 해도 여러분이 딴 생각하면.
제 말을 못 듣거든요. 눈이 있어도 눈을 뜨고 있어도 저를 보고.
있어도 딴 생각하면 저를 안 보고 있거든요. 자기 이미지를 보고?
있지?
감각은 몸의 감각은 누가 느껴 그러면 몸이 느끼지 피부가 느끼지 이러거든요.
피부가 계속 느껴야죠 그러면?
엉덩이나 의자가 이렇게 맞부딪히는 이 감각을 피부가 계속 느끼고 있어야 되는데.
제 얘기 듣는 동안은 전혀 안 느끼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삶의.
모든 것이 다 신비롭고 놀랍고 모르는 것 뿐이거든요.
근데 우리는 아는 게 많잖아요. 그게 다 거짓말이라니까요.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안다고 착각하고 이런 거요.
이거 뇌에서 이렇게 딱 손 펴 이런 피고 저거 여러분 저
거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학교에서 배운단 말이야. 그럼 전부 다 그냥 그렇게 다 오케이 이렇게 알았다 이렇게 해서.
시험 보면 뇌 뭐 이런 식으로 써놓고 나서 뇌의 자격이야. 이러고 이제 끝내버려요. 모두가 그리고 다 알았다 해야 돼요. 그럼 모두가 다 그건 안 거예요.
키가 큰 여자 그냥 물어볼 때 아
나는 180 넘으니까 난 키가 커 이렇게 정한단 말이야. 대충 사람들이 아 180 넘으면 키 큰 거
지 이렇게 해 놓고 나서 너 이제 누가 물어보면 어 나 커 그 사람 키가 커져 그러면 어이 노시네 키가?
커 이러고 이제 알았다고 생각해요.
그거 어떻게 아는 거죠? 다 같이 그렇게 미끼로 작정하고 모두.
가 같이 이렇다라고 얘기를 하면 180 이상은 키 큰 거야. 이렇게 해서 그걸 믿기 시작.
하면 더 이상 탐구해 보려고 하지 않아요. 그냥 그것은 큰 거예요.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가 그냥.
아름아리 지식으로 이건 좋은 거고 저건 나쁜 거다. 이건 옳은 거고 저건 틀린 거다. 이건 추한 거고 저건.
깨끗한 거다. 이런 식으로 정해놨단 말이에요. 우리끼리 그냥 사람들끼리.
그 진실한 것이 아니에요. 근데 그렇게 정해놓은 그 분
별 생각을 알음알이를 정말 아는 걸로 착각하기 시작하니까
그 착각이 사로잡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이 진짜 내가 아는 줄 착각하는 거예요.
아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오직 모를뿐.
이게 불교의 화두예요. 숭산 스님께서 그 많은 외국인 막
현각 스님 같은 분을 비롯해서 수많은 스님들에게 화두를 주잖아요. 오직 모를 뿐 이거예요.
너 가는게 뭐가 있느냐? 오직 모를 뿐이다.
분들 망상은 진실한 것이 아니다. 무분별심이라는 분변을 되지 않는 진짜 지혜.
이게 반야지혜다 요거 깨닫게 하는게 부처님 가르침이에요. 그러니까 안다는?
생각이 진짜를.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로막아 버리거든요. 그래서 진실을 보* 못하고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 못하고 한정돼 정견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 못하고 있는 그대로를.
자기 아르말이 분별심으로 재해석해서 보게 만드는 왜곡을 만들어내는 게 중생인 거예요.
이거를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는 거거든요. 이걸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면 이게 뭐죠? 알 수가 없어요. 이건 뭐라고 할 수가 없어요. 컵이라고 하는 것도 언어 개
념으로 우리가 알음알이잖아요. 이걸 있는 그대로만 보면 이게 부처예요. 이게 나예요.
이게 불성이에요. 분별하지 않으면 생각 판단 분들을 따라가지 않으면.
이 사기예요. 이게 우리 본래.
면목이에요. 근데 우리는 항상.
이 소리를 들을 때 이 소리를 생각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이 소리를 진짜로 직접 경험으로 듣지 못하고.
생각으로 걸러서 들어요. 이것을 볼 때 직접 경험으로 충분히 지금 보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보*.
못하고 옛날에 배워 익혔던 하얀색 컵이다라는 식의 아름알이 분별.
SIM을 가져와서 그 분별심을 보는 거예요. 이걸 보지 않고 그 분별심을 보는 거예요. 자기 머릿속에 있는 그
분별로 투사해서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직접 경험을 못하죠 음 그러니까 직접 보면.
봄 봄이라는 분별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직접 보면.
분별이 되지 않죠 이 세상 모든 것은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잘난 거 못난 거 좋은 건 나쁜 것 옳은 거 그런 것
이렇게 구분되지 않아요. 모든 것이 평등하게 평등 성지로.
보게 돼요. 그런 지혜를 보게 돼요. 대원 경지라고 하듯이 큰 거울 같은 마음으로서.
모든 것을 거울이 분별 안 하잖아요. 그냥 비출뿐이지. 일체 중생을 그냥 거울처럼 그냥 비추는 이 자리에서.
스케줄이 있을 수 있다니까요.
어 이제 글로 떨어질 뻔 했고 균형.
잡는 모습에 매료되었고 마치 손자와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좋은 경험이었는지요?
나는 살아야 해. 그게 진실인지 나는 확실히 알 수 있는가 이 글로 떨어질 때 우리가.
굴러 떨어지는 경험이 있어요 굴로 떨어질 때 여기는 계단이고 나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 안 돼. 자칫 계단에서 잘못 떨어졌다가는 내가 죽을 수도 있어 나는 죽으면 안 돼 나는 살아야 돼. 이 생각을 하면 굴로 떨어질 때 괴롭잖아요. 굴로 떨어지는 그 순간만 괴롭고 이러다 죽으면 어쩌나 싶고 막 두렵고 분노 서로 이럴 거 아니에요. 근데 여러분 굴로 떨어지면서 기쁠 때가 있어요. 쓰리 있고 재밌을 때가 있어요. 일부러 굴러 떨어지는 그런 무슨 뭐 체험장 같은 것도 있잖아요? 뭐 이렇게 둥그런 뭐 일단 사람 안에 집어넣고 막 집어던지고 막 이러기도 하 하고 또는 뭐 이렇게 놀이기구 같은 거 가면 막 막 던지기도 하고 막 이랬잖아요. 그리고 무슨 저 군대 체험한다. 그리고 막 이러면 막 스릴 같은 거 막 즐기고 뚝뚝 떨어지고 막 저 올라가서 저 몇 m 올라가서 뚝 떨어지기도 하고 막 그런 체험하잖아요. 그럴 때는 똑같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데 여러분 무슨 똑같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데 끈이 있을 때는 끈이 있을 때가 끈이 없이 떨어질 때는 느낌이 다르겠죠. 뭐가 다를까요? 사실 생각이 다른 거죠 끈이 있을 때는 나는 이러다가 이제 결국 살 거야. 이런 생각으로 떨어지니까 스릴 있고 재밌죠. 근데 끊이 없을 때는 나 YouTube구나. 이 생각이 있으니까 두렵죠? 우리가 괴로운 일이 생기는 것은 그 생각 때문에 그래요. 치과 갔을 때 뭔가 막 박징 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입 안에 막 이렇게 하면 연세 드신 50 60 70대신 어르신들도 무섭다고 치과가 제일 무섭다고 이 세상에서 어떤 분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데가 치과라고 그러시 어르신께서 그러시대요, 생각이지 생각 머릿속에서 여긴 직구하고 치과에서 뭔가 막 드를 가는 드릴 같은 걸로 이빨을 이 멀쩡한 이빨을 막 갈아 없애는 거 아니야. 이런 식의 생각을 하고 신경까지 건드려서 내가 아프면 어쩌지 하고 막 이런 온갖 생각은 하면 그 순간 괴로워 죽겠거든요. 근데 그 생각을 믿지 않으면 생각을 따라가지 않으면 그냥 편하게 누워 있는 거예요. 그냥 입만 벌리고 그냥 누워 있는 거예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생각은 있지 않으면 똑같아요. 삶의 모든 순간이 똑같습니다. 생각은 믿지 않으면 오늘 아침에 회사에서 잘렸어요. 그러면 회사에서 나오는 길이 얼마나 천근망근이고 괴롭고 비참하고 막 힘들고 이러겠어요. 그러면서 나오면서 참 인생 진짜 서글프다. 비참하다. 나는 이렇게 거리 다니면서 얼마나 괴로움 속에 나오겠어요. 근데 생각이 없으면 어때요? 맨날 하던 거예요. 그거 익숙한 거예요. 맨날 나오는 거는 아침엔 가고 저녁 나왔잖아요. 맨날 똑같이 나오는 거예요, 뭐가 달라요. 생각을 따라가지 않으면 어떤 거사님께서 그러세요. 최근에 너무 괴로워서 정말 막 폭발할 것 같은 괴로움 속에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왜 그러냐 했더니, 일단 잘 나가든 멀쩡한 회사에서 회사를 그만둔 일이 생겼고 회사에서 그만두는 과정에서 막 엄청난 일이 있으면서 너무 막 스트레스도 받고 배려하고 그러면서 내가 비참해지게 느껴졌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살 수 있나? 나 이러고도 난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그러면서 몸도 아프고 뭐 무슨 일도 있었고 막 이런 그런 한 두세 가지 일이 막 겹쳐 가지고 그러다 보니까 갑자기 막 부정적인 생각이 막 일어나고 아무것도 해도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일어나고 막 너무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나다 보니까 막 세상에서 내가 쓸모없는 사람 같이 느껴질 뿐, 아니라, 막 더 이상 나는 이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은 막 두려움에서부터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가지고 나는 막 미쳐버릴 것 같은 혼란과 두려움과 혼돈 속에서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내가 지금까지 마음 공부한다고 막 이렇게 했던 게 정말 아무 의미 없는 거였구나. 이런 절망감에 빠지더라. 이렇게 얘기를 하더란 말이에요? 그러면서 무슨 얘기를 하냐니까 그런데 사실은 한 생각 돌이키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긴 해요 이래요. 누구나 회사 다니다 그만둘 수 있고 누구나 멀쩡하다가 아플 수 있고 솔직히 가만히 생각해 보면 회사는 다시 얻으면 되고 아픈 거는 치료하면 사실은 죽을 병은 아니니까 좀만 치료하면 된다고 하니까 다행인 것이고 사실은 별 문제 아니긴 해요 본인도 알거든요. 이거 그냥 평범한 일이잖아요, 회사 다니다가 짤린다. 이거 엄청난 막 죽을 일이 생긴 게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을 만한 어떤 일이 벌어진 거예요, 병이 난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거죠? 그런데 생각은 어떤 특정한 사건이 생길 때 꼬리를 물고 엄청난 사건인 것처럼 부풀려가지고, 여러분을 막 위기 상황으로 내몰아요. 위기 상황인 것처럼, 그리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막 갖다가 덮어 씌워요. 그러면 거기에 막 자기 스스로가 토피 참해지고 그럴 때는 조금만 누가 나한테 한마디 해도 막 더 무너져 내리고 엎친 데 던진 격으로 막 그래 되거든요. 근데 아무리 그런 사건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문득 정신 차리고 딱 눈앞으로 돌아오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그냥 생각이었던 거예요. 그 생각을 따라가지 않으면 그냥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모든 일은 모든 일은 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이분이 말했던 것처럼 보세요. 나는 이 넘어지는 순간 나는 살아야 된다라는 그 생각은 잊지 않으면 나는 죽을 수도 있고 부상을 당할 수도 있고 실망을 당할 수도 있다. 여기 모든 것에 마음이 열려 있다 그렇지 않나요? 우리는 왜 건강해야 되거나 아프면 안 되거나 실명되면 안 되거나 다리가 부러지면 안 되거나 교통사고가 나면 안 되거나 집안에 문제가 있으면 안된다고 믿고 있죠. 왜 완벽하게 내가 원하는 깔끔하게 순탄한 일이 항상 펼쳐져야만 행복한 삶이라고 그렇게 생각으로 규정을 하고 살아야 되죠. 그 생각만 없으면 원래 원래 삶이라는 것은 뭔가 의외 목적이 다 있는 곳이죠. 부처님께서 어떤 아주머님이 오셔서 펑펑 울면서 죽고 싶다고 하면서 와가지고 자식 둘인가 셋이 갑자기 어찌어찌해서 죽게 됐고 지난 밤에 남편도 죽게 됐고 자식도 같이 죽게 됐고 그래서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더니 지난번 폭우 때문에 집이 무너져서 어머니 아버지까지 돌아가셔서 하룻밤에 모두를 다 잃었어요. 그러니까 부처님한테 갔더니 부처님께서 마을에 돌아다니면서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을 찾아봐라. 이런 얘기를 하셨던 게 있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겠어요? 어느 집도 우리가 완벽하게 원하는 그 순탄한 삶을 사는 집이 없을 거예요. 이따 해도 잠깐씩 인생에 잠깐의 시기 동안 순탄할 뿐이 아닐까요? 모든 집안이 뭔가 우한이 다 있어요. 뭔가 힘든 일이 다 있어요. 그리고 신기하게 아무리 평범한 집도 아무리 뭐 뭐 무슨 잘 나가는 집도 모든 집이 전부 다 신기하게 집안 친지 다 찾아보면은 꼭 어느 집안이든 사고 치는 자식들이 한두 식곡이 있고 사고 치는 문제가 또 하나 있고,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고 서글픈 일이 있고 괴로운 일이 있고 다 그래요 그게 정상이에요. 여름만 좋아 봄여름만 좋아해도 가을 겨울이 없으면 봄 봄 여름은 없어요. 하창한 날만 좋아해도 비 오는 날이 없으면 하창한 날은 의미가 없어요. 내가 항상 행복하기만 하면 그 사람은 행복이 없어요. 불행을 경험해 본 사람에게 행복은 행복으로서의 가치가 확 드러나거든요. 마치 뭐와 같으냐면 평생 30평 아파트에 산 사람은 30평 아파트 행복을 몰라요, 그럼 그냥 원래 누구나 다 이래 사는 건 줄 알아요, 근데 열태형이 맨날 살다가 30평으로 간 사람은 비로소 30평 이렇게 넓은 아파트가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라고 행복해 할 줄 알아요. 근데 거꾸로 평생을 50평 아파트에 살던 사람이 갑자기 30평을 이사 가면 괴로워져요. 신기하지 않나요? 열평 아파트 살던 사람이 30평 오면 너무 넓어서 막 행복해 죽겠는데 50평 살던 사람이 30평 오면 좁아서 괴로워 죽겠다니까요. 그러면 특정한 조건은 30평 아파트라는 특정한 조건은 행복도 아니고 괴로움도 아니죠. 내 몸이 어디가 아프다라는 조건은 행복도 아니고 괴로움도 아니에요. 더 많이 아픈 누군가에 비하면 오늘 내일 죽을지 모르는 사람에 비하면 나는 이 정도 아파서 너무 다행인 거예요 1년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된다. 기적 같은 일이죠 한 생각 잘못하면 남들은 멀쩡한데 나는 1년을 병원에 있어야 된다고 이러면서 괴롭겠죠. 근데 그래가지고 죽을 일이 오늘날 죽을 사람에 비하면와 나는 기적같이 1년만 치료하면 살 수 있구나 놀라운 기적이구나. 그래갖고 감사한 일 아니에요. 그러면 어떨까요? 삶에 좋고 나쁜 모든 이유들은요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죠. 어느 것과 비교하느냐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내가 좋다고 분별하거나 나쁘다고 분별할 수 있을 뿐이지. 그것 자체로는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닌 것이죠.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는 일은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에요. 다리가 부러지지 않고 무릎만 깨졌으니까 얼마나 기쁜 일이에요. 감사한 일이에요. 근데 그렇게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는 요 자리에서 보면 분별하지 않는 자리에서 보면 야 그래도 남들은 다리가 부러지는데 나는 안 부러졌으니까 다행이야. 이것도 분별이잖아요. 그냥 부러졌네, 끝 음 넘어졌네. 끝 그렇지 않나요? 진실은 그렇지 않나요 넘어졌네. 부러졌네. 아니면 다리 피가 안 났네? 그럼 어떻게 하지 어 치료를 해야지 그럼 치료하면 끝나는 거죠? 그럼 뭐 그렇게 이게 이렇게 생각할 일이 아니잖아요 왜 나는 이렇게 재수가 없어서 부러질까 뭐 내 업장이 지중해서 그런가 뭐 이런 생각을 왜 하죠 집안의 힘든 일이 생겼어요 그럼 우리가 업장이 두터워서 일해요, 이런 생각은 왜 하죠 그거 알아요 업장이 두터운지 안 두터운지 알 수 있습니까 몰라요. 근데 우리는 모든 것을 생각으로 규정하길 좋아하는데 우리가 중생들이 생각으로 규정한 어떤 일은요 다 틀린 생각이에요. 어디서 주소 들은 생각 손쉽게 괴론들이 벌어지면 나는 업장이 두터워서 그래요. 이러고 행복한 일이 벌어지면 우리가 복이 많아 그래요, 여러분 언제까지 복이 많을지 알 수가 없거든요. 그 사람이 보기 많아도 아니 나이 50대 중반인데 저 사람은 평생 보기 많았어요. 우리는 평생 복이 없어서 업장이 두터워요, 이거 알 수 있어요 50대 중반부터 뒤바뀔지 뭐 정해진 게 없다는 소리예요. 그냥 그렇게 해석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인 망상이라는 소리예요. 근데 그분들 망상을 포기해 버리면 어떨까요? 그냥 30평 아파트에 사는 건 아무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에요. 그냥 그런 일 뿐, 그냥 그럴 뿐이에요. 비교 분별하지 않으면 그냥 그럴 뿐이에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에요. 발을 헛디뎌 굴러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그냥 그런 일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손발이 막 해서 박 균형을 잡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매료되는 일일 뿐이에요. 나는 이 굴러 떨어져서 이 큰일 날 뻔했네. 이거 내가 엎장히 두터서 그런가 내가 늙어 가지고 나도 이름 죽어야 되나 뭐 어쩌고, 이런 생각을 하면 얼마나 괴로워요. 근데 모든 것에 열려 있으면 모든 순간순간에 저절로 작동하는 여기에 매료되어 모든 순간순간에 놀랍고 신비롭죠. 그러면서, 모든 것은 얼마나 좋은 경험이었는지에 대해 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나서 얼마나 좋은 경험이었는지요 모든 경험은 전부 다 좋은 경험이에요. 나쁜 경험조차 생각으로 판단 분별하지 않으면 좋은 경험이에요. 날마다 좋은 날이에요. 나는 살아야 해. 나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 안 돼라는 생각이 없으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그 즐거운 체험 롤러코스터 같은 삶이 항상 순탄함 재미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돈 주고 가가지고 롤러코스터 타잖아요. 근데 삶에서 이렇게 돈 안 주고도 이렇게 이런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해 주잖아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 생각이 진실인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까? 나는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골로 떨어지면 안 돼. 이게 진실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나요? 제가 얼마 전에 그 사내 갔다 왔는데요. 그 아주 험한 이제 이제 험에서 이렇게 발로만 올라가는 산보다 이렇게 아주 가팔라서 온몸을 손을 쓰고 온몸을 다 쓰면서 내 발로 올라가는 이제 그런 루트를 저는 조금 좋아해요. 왜냐면 그렇게 막 가면, 온몸 운동도 되고 옛날 구내에 있을 때 막 왔다 갔다 하는 생각도 나고 뭐 재밌어요? 그리고 운동 되게 좋아해요, 그러니까 그 험한 대리 구멍으로 막 왔다 갔다. 이제 다 성공을 해가지고, 이제 오후 나절에 이제 니혼니어 탈 때쯤에 이제 이제 평탄한 길로 이제 저 내려가면 끝나는 산행이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평탄한 길이라 아무 문제가 없는 길 힘든 곳은 다 끝났어요. 평탄한 곳이어서 아무 문제 없는 길을 변환하게 이렇게 더벅더벅 내려오다가 많이 힘들긴 했을지. 너무 힘든 곳에 가서 터벅터무 내려오다가 정말 순탄한 일이었거든요. 근데 거기 도라나를 잘못 헛드렸는데 계속 사람이 앞데 없었거든요. 근데 하필 제가 그 허택에서 넘어지는 그 순간 바로 뒤에 한 커플이 하필이면 저는 커플이 오다가 제가 야 어떻게까지 이렇게까지 넘어지 싶을 정도로 넘어졌어요? 그래가지고 보통 넘어지면 창피해서라도 벌떡 일어나잖아요. 근데 넘어졌는데 엉덩이 부분에 하필 뾰족한 볼에 엉덩이 부분이 확 그대로 주저앉았는데 그래도 어지간한 일어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어 이렇게 누웠는데 일어나시지가 않는 거예요. 제가 일하고 싶었는데 너무 아파서 일어나 지지가 않아가지고 또 당황스러워가지고 잠시 이러고 있었는데 그쪽 커플이 그냥 가셨으면 좋겠는데 막 달려가지고 막 부축을 하면서 이렇게 주는데 이 상황이 너무 웃기네. 웃기기도 하고 고맙습니다 하고 가세요 가세요? 그리고 거기 이제 혼자서 이렇게 한참 앉아 있었어요. 한참 앉아있지 않을 수가 없으세요. 너무 아파가지고 그전에 부러진 줄 알았어요. 근데 가만히 보니까 너무 아팠는데 가만히 보니까 그다음 날 돼서 멀쩡한 걸 보니까 너무나 놀랍게 다행스럽게도 그 살이 두막에 많은 부분에 넘어지다 보니까 살만 뭔가 멍이 들거나 이랬겠죠. 아마 그런데 뼈는 아무 문제가 없다라는 게 이제 기적 같은 고맙고 감사한 일이고 어디요, 저 서울에 칼바위 능선이라고 있어요. 저 정릉 쪽으로 능선 따라 올라가니까 어떻게 보면 거기 그 험한데 이렇게 막 뾰족한 거기서 넘어졌었으면 자친 옆으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었을 거 아니에요. 평탄 데서 굴러 떨어졌다는 게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기도 하죠, 모든 일들은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되나요? 왜 하필 커서 넘어졌을까 알아야 되나요 알아야 될 필요가 없어요. 그것을 해석해야 되나요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그 순간에 놀라운 경험일 뿐이에요, 있는 그대로의 어떤 경험일 뿐이에요, 모르겠긴 해도 얘는 저절로 저절로 그런 경험 그런 체험을 무명행식 이러잖아요. 어떤 행위 어떤 삶의 경험이 일어나면요? 거기에서 식 분별의 인식이 분별의식은 하나의 배움을 얻어요. 분별의 배움 분별의 배움이지만 그러면 그건 저의 역할이 아니에요. 에고는 자동으로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럼, 아마 얘는 그걸 보고는 껴 봤지? 다음에 산에 갈 때는 끝까지 한 발 한 발 조심조심해야 돼. 이런 건 아마 배움을 또 얻었겠죠 아마도 아유 눈물까지 났네요. 그냥 웃겨 가지고 어느 날 물을 마셨는데 사람들은 그 물에 마른 캐릭터가 물을 마셨는데 그 물이 사람들이 잘못된 관이라고 부르는 곳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즉 기도를 타고 내려갔다는 소리예요 기도는 공기 호흡을 하는 관이죠. 그런데 우리가 잘못 먹으면 기도로 물이 들어가면 안 되잖아요. 그럼 막 컬러 컬럭하면서 막 이상한 그 그 경험들이 일어날까 이상한 느낌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기도론은 물이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죠. 그런데 그 물은 사람들이 잘못된 관이라고 부르는 즉 이건 공기만 왔다 갔다 해야 되는데 물려 들어가면 안 된다라고 부르는 그러나 올바른 관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나는 공기가 아니라 물을 호흡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관에는 공기만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 생각 이야기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숨을 쉬어야 해 라는 관념이 없었으므로 나는 잠시 물고기와 같았습니다. 물은 내려갔다가 골라 왔습니다. 그 일은 아주 부드럽게 이루어졌고 마치 나의 패들이 씻기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만일 숨을 쉬어야 해 음 제도로는 물이 들어가면 안 돼. 이런 생각을 믿었다면 관념을 믿었다면 아마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입니다. 뭐가 잘못 내려갈 때 코로 물이 들어가거나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갑자기 막 긴장 모드가 됐단 말이에요, 이러면 안 돼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걸까요? 누구나 한 번씩 그런 경험은 다 있어요. 그럼 그것은 그런 경험은 있어야 되는 경험이었던 거예요. 그걸 통해 그러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경험이었을 수도 있고요 사실 우리는 양서류입니다. 우리가 양서류 물과 묻을 오고 가는 우리도 물과 묻혀 오고 가잖아요 우리는 물로 오랫동안 호흡할 수는 없지만 필요할 때는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없으면 저항도 없습니다. 어떤 생각 이야기 판단 분별 우리는 항상 이야기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요. 나는 개를 걷다 넘어지면 안 돼. 나는 이를 순탄하게 잘 해야 돼. 나에겐 병이 나면 안 돼. 자식의 문제를 일으키면 안 돼, 남편이나 누가 아프면 안 돼 내가 생각하는 바대로 대여해야 돼, 음식을 먹고 앉히면 안 돼. 이런 온갖 생각들을 믿는 믿다 보니까 그런 일상적이지 않은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내가 원하지 않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긴장 모드가 돼요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러면 안된다라는 게 생각이 그걸 문제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이죠? 근데 그 생각이 없다면 그게 문제일까요? 사실은 우리 삶에서 문제라고 여겼던 모든 일들은 한 번쯤 다 일어났어야 했고 그 일어나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배우고 깨닫고 직접적으로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어요. 함부로 막 뛰다니다가 넘어지는 경험을 통해 함부로 뛰다니지 않게 되었을 것이고 누구나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가 끄지 않은 경험을 통해서 냄비를 태우거나 집 안에 막 연기 나는 경험을 통해서 그걸 조심하는 깨달음을 얻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삶의 다양한 실수들은 시소라고 불리는 다양한 것들은 우리를 깨닫게 하고 있죠. 그것은 일어나면 안 되는 무언가가 아니라 일어나야만 하는 무언가였지 모릅니다. 우리 그 생각을 믿기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요 항상 자기 생각으로 일해야 되고 저러야 된다는 생각을 정해 놓은 다음에 생각대로 돼야 한다고 믿어요. 생각대로 돼야 한다고 의견 얼마나 겪습니까? 제가 처음 여기 상주로 오던 날 겨울에 눈들이 막 많이 왔고 호수도 얼어붙었고 또 오고 오고 가는 여기 들어오는 길목에 눈도 많이 쌓이고 그랬었어요. 근데 보펜날은 눈이 오면 안 돼. 이게 진실일까요 눈은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 말 나온 김에 혹시나 여러분 겨울에 여기 저 오실 때 논이 어느 정도 와서 어쨌든 오려고 해서 오셨는데 여기 눈이 조금 이따 바닥에 있으면 천천히 오시면 되고, 브레이크를 앉아보면서 오시면 돼요. 특히 내리막에서 일단 넣고 천천히만 오시면 큰 내리막 오르막이 많지 않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는데 별 생각 없이 빙판인데도 불구하고 67으로 막 달리다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확 잡으면 확 돌아가요. 근데 이거를 아는 분도 별일 있겠나 해서 딴 생각하다가 딴 생각하다. 브레이크 잡아가지고 확 도는 분이 계셔요. 그 여기 처음에 일하시던 언어분이 그 빙판에서 휙 돌아가지고 사고가 나셨어요. 근데 어쩌다 그렇게 되셨냐고 계속 왔다 갔다 하셨잖아요. 여쭤봤더니 사실은 계속 눈이 올 때는 천천히 내려올 문제가 없었는데 그날따라 별 생각 없이 다른 생각하느라고 그 생각 속에 들어가 있었대요? 그러다가 아차 싶어가지고 브레이크 잡다가 확 돌았다 그랬더라고요, 이야기는 저항이며 경험이 아닙니다. 그 물이 이 관을 통해 내려가야 했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까요? 그 그물이 그곳으로 내려갔습니다. 물은 지도로 내려가면 안 된다. 크고 진실 진실일까요? 주로는 기도로 안 내려가는데 어쩌다 한 번씩 내려갈 수도 있잖아요. 그게 진실이잖아요. 왜 그러면 왜 진실이에요? 지금 그렇게 내려가는 일이 한 번씩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현실과 진실이란 말이죠? 현실을 어떤 생각 판단 분별을 가지고 정해서 일해야 된다거나 저래야 된다고 픽스시켜 놓지 않는 거예요, 이게 마음을 여는 거예요 모든 가능성 왜 우리 인생이 순탄해야. 되죠. 그리고 왜 이런 것은 순탄이고 저런 건 순탄이 아니라고 정해 놓죠. 삶은 순탄하기도 하고 순탄하지 않기도 한 거고요 또 순탄하지 않은 것은 순탄하지 않은 게 아니라 순탄하지 않다는 나의 생각일 뿐이에요. 사실은 순탄하지 않은 일이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은 완전히 순탄한 일입니다. 내가 순탄하지 않다라고 해석하는 그 생각만 그 이야기를 믿지만 않는다면, 왜냐하면 우리 삶은 때로는 순탄하고 때로는 순탄하지 않은 일이 벌어져야 되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항상 그러고 있거든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양쪽 다 그래서 삶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거예요 어떤 일이 벌어졌다. 그러면 그 일을 해결하면 돼요, 해결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면 방법을 찾아보면 돼요 물어보면 되고, 검색해 보면 되고 다 할 수 있어요. 누구나 못하면 감당하면 되고 신앙이 깊은 사람들도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좋은 일이라는 것을 믿는데 애를 먹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진실이 어떻게 지나치게 단순할 수 있을까요? 진리는 신은 모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좋다 날마다 좋은 날 이렇게 얘기하듯이 이것은 하나의 견해가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음 모든 것이 지금 현실로 드러나고 있잖아요, 좋은 일 나쁜 일이라고 우리가 해석했던 어떤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럼 우리 그 해석을 빼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근데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은 인연 따라 벌어진 일이에요. 벌어져야 하기 때문에 벌어졌던 일이에요. 우리는 좋고 나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배우고 깨닫고 그것이 포함된 거거든요. 양변이 같이 있는 거거든요. 실수를 통해 실수 아닌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되고요, 잘못된 일을 통해 또 잘된 일을 알고 깨닫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잘못된 것과 잘 된 일은 다르지 않은 일이에요. 실사 실수하는 일은 다르지 않은 일이고 어느 하나는 버리고 어느 하나는 취하는 일은 분별 망상일 뿐이에요. 그 모드를 허용할 수 있어야 된단 말이죠, 그 양변을 통해 배우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은 우리를 배우고 깨닫게 하고 어느 한쪽은 우리를 그냥 평탄하게 만들어주기도 해요. 근데 생각으로 이건 일어나야 되고 저건 일어나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는 세상에서 이건 좋은 일 저건 나쁜 일이라고 정해 놨잖아요. 세상에서 정해놨다고 무조건 그걸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음 학교 다닐 때 기도로는 물이 들어가면 안 돼. 이렇게 배웠겠죠 근데 그냥 그건 확률적인 얘기를 한 것뿐이에요. 그걸 믿을 필요는 없어요, 음 사람들도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이제 보편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죠, 돌연변이 같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우리는 그걸 그 사람을 돌연변이라고 하거나 좀 문제 있다고 하잖아요. 근데 뭐 진화 생물학이니 이런 데서는 돌연변이야말로 가장 그 종을 종의 진화를 이끄는 가장 필수적인 거여서 반드시 있어야 되는 거라더라고요 음 돌연변이 역할이 있는 거예요 반드시 있어야 되는 그리고 제가 만나본 많은 사람들을 보면요 세상에서 이 사람은 이렇기 때문에 문제야라고 여겼던 수많은 사람들 군인 있음 보통 막 무슨 문제 사병이 관심사병이니 이렇게 많이 부르잖아요. 집단에서 문제라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인 보편적이지는 않은 생각과 보편적이지 않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 그러나 자기가 잘하는 분야에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음 야 이거 이렇게 신기하구나, 이렇게 다르구나, 다름을 보여주는 거더라고요. 그 세상에서 좀 이렇게 저 사람은 성격이 좀 모나스라고 한다든지 평범하지 않아라고 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그렇게만 해석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거예요. 그 사람이 이 사회에 뭔가 어떤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기여하고 도움을 주고 깨닫게 하는 우리 모두를 깨닫게 하는 그런 다양한 역할이 있는 거예요. 이 자연 생태계에 우리 생각으로 인간에게 도움되는 익충과 해를 끼치는 해충을 나눠놨지만 자연 생태계의 익충과 해충이 둘로 나뉘어 있을까요 다 필요하거든요. 인간의 본 어리석은 분별 망상이 없으면 모든 건 다 있는 그대로거든요.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그 친구들은 제가 뭘 잘못했다고 사람이 우리를 싫어할까요?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쥐랑 고양이를 쳐다보면 사실은 쥐도 귀엽고 고양이도 귀여워요. 분별없이 보면 근데 분별 가지고 보면 우리가 정해 놓은 거죠? 그렇게 이건 귀엽다고 하자, 이건 징그럽다고 하자 음 텅 비어 있다는 것은 지금 있는 것을 그것이 무엇이든 사랑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이 내 마음속에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가능성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보* 못하게 하는 것이 없다는 거죠 그게 통계에 있는 거예요 우리 마음이 완전히 열려 있는 거예요 무엇으로 가득 차 있으면 가득 차 있으면 옳다 그러다 맞다. 틀리다라는 어떤 견해로 가득 차 있으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어떤 건 좋고 어떤 건 싫어요? 그래서 어떤 것은 사랑하는데 어떤 건 사랑하지 않아요, 어떤 방식은 좋아하는데 어떤 방식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 자기 생각에 꽉 차 있기 때문에 그래요. 보수적인 생각만 꽉 차 있는 사람은 진보적인 생각을 하면 인상을 찡그리겠죠. 또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보수 쪽의 생각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을 보면 막 분노하고 이해를 못 할 수도 있겠죠. 왜 생각으로 꽉 차 있으니까 어떤 생각으로 꽉 차 있어서 이 생각은 옳고 저 생각은 틀렸어라는 생각으로 꽉 차 있으니까 텅 비어 있지 못하죠. 텅 비어 있지 못하면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가 없고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 못하면 세상을 사랑하지 못해요 사랑한다, 나도 내 자식 사랑하는데라고 하지만 내 자식만 사랑하는 건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내 자식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해요 왜 그럴까요? 자식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이 사랑이거든요. 근데 자식을 내 생각대로 통제하려고 할 거예요, 이건 틀렸고 저건 맞아 왜 내가 내 안에 꽉 찬 게 많으니까 생각이 꽉 차 있으니까 이건 옳고 저건 틀렸어. 넌 이건 해도 되는데 저건 하면 안 돼, 이렇게 비운 마음으로 키우질 못하거든요 꽉 찬 마음으로 그 아이를 재단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할 것이거든요. 세상을 그렇게 바라볼 것이고 세상 모든 사람의 그러니까 꼰대소리를 듣는 거예요. 잔소리가 많아져요. 어떤 이건 하면 되고 저건 하면 안 돼라고 말할 거거든요. 그런데 열려 있게 되면 마음의 오물이 잔뜩 쌓여 있지 않게 되면 텅 비어 있게 되면 그렇다라고 해서 자기 분별하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분별하는 생각 다 했어요. 정치적 성향도 있어요. 다 있어요. 그러나 거기에 과도하게 고집하지 않아요 집착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게 여기에 켜켜이 쌓여 있지 않아요, 필요할 때 그냥 쓸 뿐이지, 그게 텅 비어 있음이에요, 음 우리의 본래 성품이 이렇게 텅 비어 있음입니다. 우리 본래 상품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볼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