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는 나그네
내 등짐 가볍다는 이 없겠지만은
고생이라니 무슨
그 화상
집에서는 밥이 끓는지 죽이 넘치는지 몰렀슈
허구한 날 술에 계집에 화투에
미쳐 나돌아 댕기다
한 이십년도 더 됐네유
정월 스무 아흐렛 날
눈 오지게 펑펑 오던 날 아침 식전에
앰브란스 타고 송장되어 왔슈
빚쟁이 헌티 맞어 죽었든
술 취해 눈밭에 얼어 죽었든
어쪘든 객지죽음
시골 지 선산으로도 못 가고 화장해서
저 부두 앞 바다에 뿌렸슈
지야 지 멋대로
원없이 한 세상 살다 갔지만
생떼 같은 새끼들 데꼬
산 입에 거미줄 칠 수 있남유
노가다 함바에서부터
학교 앞에 문방구
연탄 쌀가게
남대문 시장에 악세사리가게
정말이지
구두닦이하고 넝마주이 빼고는
안 해본 일이 없구먼유
그 중 그래도 밑천 적게 들고 남는 것은
이 물장사여유
말도 안 되유
어띃게 지가 당신을 못 알아 볼 수가 있대유
저 문 들어서자 마자 탁 알아 보겄든디유
흰 머리유?
당신이 더 늙은 것 겉네유
지나 당신이나 세월 앞에 힘자랑 못해유
자꾸 말 적선 허지 말고
술이나 드셔유
이제 나이 육십 다 늙어 살림을 합치면
큰 자식들
쟈들이 머라겄시유
당신은 아직도
총각 때 티 못 벗고
지를 앞에다 놓고 시를 쓰세유
아예 구구절절 소설을 쓰시네유
2002. 2.15
* 오지게. 오지다 : 엄청나게, 차고 넘칠만큼, 매우 많이
기대하거나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