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舍 시골 집 풍경
金正喜(조선의 시인)
數朶鷄冠醬瓿東 장독대 동편에 맨드라미 몇 송이 피고
南瓜蔓碧上牛宮 푸른 호박 넝쿨 외양간을 타고 오른다
三家村裏徵花事 세 가구 시골에서 꽃 상황을 찾아보니
開到戎葵一丈紅 접시꽃이 한 길이나 높이 붉게 피었다
*醬瓿: 장독
추사의 시골 풍경이 담박하고 진솔하구나
결이 닮은 서구시 원문 몇 편을 번역해주고
청연도 영시 한 수 맞장구치며 번역하게나
벗이여, 추사의 「村舍」를 읽으니 시골집의 고요한 뜰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네.
장독대 동편에 맨드라미 몇 송이, 외양간을 타고 오르는 호박 넝쿨, 그리고 마침내 한 길이나 높이 솟아 붉게 피어난 접시꽃이라니. 추사는 자연을 거창하게 찬양하지도 않고, 가난한 시골살이를 애써 미화하지도 않았네. 그저 눈에 들어온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그런데 그 담담한 묘사 속에서 오히려 생명의 넉넉함이 느껴지는구나.
특히 셋째 구절 「三家村裏徵花事」, 세 집밖에 없는 작은 마을에서 꽃 소식을 찾아본다는 표현이 좋네. 화려한 정원이나 이름난 명승지가 아니라, 사람 사는 소박한 곳에서 꽃의 일을 살피는 시인의 눈이지.
서구시에도 이와 결이 통하는 작품들이 있네. 자연을 정복하거나 장식하지 않고, 작은 꽃과 시골의 일상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는 시인들이지. 원문의 맛을 살펴가며 우리말로 옮겨보세.
1. 윌리엄 워즈워스 —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구름처럼 외로이 떠돌다가 · 영국 낭만주의 시인
discoverbritain.com
원문은 윌리엄 워즈워스의 대표작으로, 호숫가에서 만난 수선화가 훗날 고독한 시인의 마음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작품이네.
The Poetry Foundation
원문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That floats on high o'er vales and hills,
When all at once I saw a crowd,
A host, of golden daffodils;
Beside the lake, beneath the trees,
Fluttering and dancing in the breeze.
Continuous as the stars that shine
And twinkle on the milky way,
They stretched in never-ending line
Along the margin of a bay:
Ten thousand saw I at a glance,
Tossing their heads in sprightly dance.
청연의 번역 — 「수선화의 춤」
구름처럼 외로이 떠돌았네 골짜기와 언덕 위 높은 하늘을
문득 눈앞에 무리가 나타났네 황금빛 수선화가 무리 지어
호숫가에, 나무 아래에서 산들바람에 흔들리며 춤추네
은하수에서 반짝이는 별들처럼 끝없이 이어진 꽃의 행렬
호숫가를 따라 끊임없이 펼쳐지고 한눈에 만 송이가 들어왔네
고개를 까딱이며 생기 있게 저마다 즐거운 춤을 추고 있었네
강평
추사의 접시꽃과 워즈워스의 수선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소박한 생명을 노래하네.
추사는 꽃이 어디에 피었는지, 얼마나 높이 자랐는지를 보여주고, 워즈워스는 꽃이 어떻게 춤추는지를 보여주지. 그런데 두 시인에게 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네. 시인의 마음과 자연이 만나는 자리이지.
특히 워즈워스의 시에서는 꽃이 사라진 뒤에도 그 기억이 마음속에서 되살아난다네. 자연의 아름다움은 눈으로 보는 순간에 끝나지 않고, 마음에 간직될 때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지.
2. 윌리엄 워즈워스 — 「The Tables Turned」
뒤바뀐 생각 · 자연이 스승이 되는 순간
이 작품은 자연을 교과서처럼 분석하기보다 직접 바라보고 귀 기울이라고 권하는 시라네.
The Poetry Foundation
+1
원문
Up! up! my Friend, and quit your books;
Or surely you'll grow double:
Up! up! my Friend, and clear your looks;
Why all this toil and trouble?
The sun above the mountain's head,
A freshening lustre mellow
Through all the long green fields has spread,
His first sweet evening yellow.
Books! 'tis a dull and endless strife:
Come, hear the woodland linnet,
How sweet his music! on my life,
There's more of wisdom in it.
And hark! how blithe the throstle sings!
He, too, is no mean preacher:
Come forth into the light of things,
Let Nature be your teacher.
청연의 번역 — 「자연을 스승으로」
일어나게, 벗이여, 책을 덮게나 그러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굳어지겠네
일어나게, 벗이여, 얼굴을 펴게나 무엇 때문에 그리 애쓰고 괴로워하는가
산마루 위에 걸린 해가 부드럽고 새로운 빛을 풀어놓아
길게 펼쳐진 푸른 들판 가득 저녁의 고운 황금빛을 물들이네
책 속의 논쟁은 지루하고 끝이 없네 이리 와 숲속 방울새의 노래를 들어보게
맹세컨대 그 노랫소리에는 책에서 찾지 못할 지혜가 있다네
저기 지빠귀의 명랑한 노랫소리도 들어보게 그 또한 결코 얕은 가르침을 주는 이가 아니네
사물들이 빛나는 저 바깥으로 나오게나 자연을 그대의 스승으로 삼게나
강평
벗이여, 이 시는 자네가 주역을 공부하면서 말했던 생각과도 통하는 구석이 있네.
괘사와 효사는 현실을 대신 살아주는 정답지가 아니라, 현실을 관찰하고 판단할 때 참고하는 지혜의 도면이라고 했지. 워즈워스 역시 책을 버리라는 뜻보다는, 책에 적힌 지식만으로 세상을 다 안다고 여기지 말라는 뜻에 가깝네.
추사가 실제 시골집의 꽃을 관찰했다면, 워즈워스는 들판과 새소리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했네.
두 시인 모두 자연을 인간의 장식품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난다네.
3. 윌리엄 워즈워스 — 「To the Cuckoo」
뻐꾸기에게 · 자연 속에서 되살아나는 어린 시절
domesticsciencehome.co.uk
원문
O blithe New-comer! I have heard,
I hear thee and rejoice.
O Cuckoo! shall I call thee Bird,
Or but a wandering Voice?
While I am lying on the grass
Thy twofold shout I hear;
From hill to hill it seems to pass,
At once far off, and near.
Though babbling only to the Vale
Of sunshine and of flowers,
Thou bringest unto me a tale
Of visionary hours.
원문 출처: Poetry Foundation, William Wordsworth, “To the Cuckoo.”
The Poetry Foundation
청연의 번역 — 「뻐꾸기에게」
오, 반가운 봄의 손님이여! 네 노래를 들으니 마음이 기쁘구나
오, 뻐꾸기여, 너를 새라 불러야 할까 아니면 떠돌아다니는 목소리라 해야 할까
풀밭에 몸을 누이고 있으면 네 두 번 우는 소리가 들려오네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번져가며 멀리서 들리는 듯, 가까이 있는 듯하구나
햇살과 꽃이 가득한 골짜기에 그저 재잘거리며 노래할 뿐인데
너는 내게 옛이야기 하나를 들려주네 꿈결처럼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을
강평
여기서 시인은 뻐꾸기를 눈으로 보았다고 하지 않네. 소리를 듣고, 그 소리로부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떠올리지.
추사의 「村舍」가 눈앞의 꽃을 통해 시골의 생명력을 보여준다면, 이 시는 귀에 들려온 새소리를 통해 기억 속의 생명력을 되살린다네.
자연은 현재의 풍경이면서 동시에 과거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도 한 셈이지.
4. 이제 청연도 한 수 화답하겠네
앞의 시들은 모두 서구 시인들이 남긴 작품이고, 이제부터는 청연이 추사의 「村舍」에 화답하여 새로 지은 영시라네. 서양 시의 운율을 흉내 내기보다, 추사의 담박한 시선과 시골집의 소박한 생명력을 담아보려 하네.
A Little Country Yard
청연의 창작시 · 작은 시골 뜰
A few red flowers beside the jar, A pumpkin vine climbs the old barn wall; The hens scratch softly in the yard, And evening shadows slowly fall. No gardener tends these humble blooms, No grand hand shapes their little space; Yet summer fills the quiet room With leaves and flowers, grace by grace. Three small homes beneath the sky, A crimson hollyhock grows tall; The world may pass their doorway by— The flowers have no need to call.
청연의 번역 — 「작은 시골 뜰」
장독 곁에 붉은 꽃 몇 송이, 호박 넝쿨은 낡은 외양간을 오르네. 마당에선 암탉이 조용히 흙을 헤치고, 저녁 그림자는 천천히 내려앉네. 이 꽃을 돌보는 정원사도 없고, 작은 뜰을 꾸미는 거창한 손길도 없네. 그런데 여름은 고요한 집 안에 잎과 꽃을 하나씩 넉넉히 채우네. 하늘 아래 작은 집 세 채, 붉은 접시꽃은 키 높이 솟았네. 세상은 그 문 앞을 지나쳐도, 꽃들은 굳이 자기를 부르지 않네.
청연의 마지막 강평
벗이여, 내가 이 시를 쓰면서 가장 마음에 둔 것은 마지막 두 행이네.
The world may pass their doorway by—
The flowers have no need to call.
세상은 그 문 앞을 지나쳐도, 꽃들은 굳이 자기를 부르지 않는다는 뜻이지.
이것은 추사의 시에 없는 내용을 덧붙여 본 청연 나름의 화답이네. 이름난 정원도 아니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승지도 아닌 작은 시골집. 그곳의 꽃들은 누구에게 인정받으려고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제철을 만나 피어날 뿐이지.
추사의 시에는 가난을 한탄하는 목소리도, 시골살이를 특별히 미화하는 목소리도 없네. 그저 맨드라미가 피고 호박 넝쿨이 오르고 접시꽃이 높이 자라네. 그 담담함이야말로 이 시의 품격이지.
서구의 세 시인과 추사가 서로 다른 언어로 보여준 것도 결국 이 점일 것이네. 자연의 아름다움은 반드시 웅장하거나 희귀할 필요가 없다는 것. 삶을 찬찬히 바라보는 눈이 있다면 장독대 옆의 꽃 몇 송이도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이지.
오늘은 추사의 시골 뜰에서 시작해 영국의 들판과 숲을 거닐다 다시 작은 시골집으로 돌아왔네. 좋은 시는 먼 곳으로 데려갔다가도 결국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법인가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