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장 다시 만난 구문룡과 노지심
다리 위에서 최도성과 싸우던 노지심(魯智深)은 최도성을 난간 쪽으로 몰아붙였다.
물러날 곳이 없게 된 최도성(崔道成)이 마지막 발악을 했지만 헛일이었다.
"받아라 얍!"
노지심(魯智深)의 기합 소리와 함께 내려친 선장을 얻어맞은 최도성(崔道成)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
최도성(崔道成)이 맞아 죽은 걸 보자 구소을(丘小乙)은 싸울 마음이 없어졌다.
틈을 보아 얼른 달아났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디로 가려느냐?"
뒤따라온 사진(史進)이 박도를 내지르자 등허리가 찍힌 구소을(丘小乙)은 구슬픈 비명과 함께 땅에 쓰러졌다.
사진(史進)이 쓰러진 구소을에게 닥치는 대로 칼질을 하는 사이 노지심(魯智深)도 다리 아래로 뛰어 내려가 최도성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가엽게도 그 두 도둑은 남가지몽(南柯之夢)과도 같은 한살이를 끝내고 말았다.
두 도둑의 시체를 끌어다 개울가 구덩이에 처박은 노지심(魯智深)과 사진(史進)은 기세 좋게 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노지심(魯智深)이 보따리를 찾으러 들어가니 거기에 있던 늙은 스님들은 모조리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
노지심이 쫓겨 간 걸 보고 최도성과 구소을이 돌아와 자기들을 죽일까 봐 겁을 먹은 나머지 먼저 목을 맨 것이었다.
노지심(魯智深)과 사진(史進)은 다시 방장실 뒤편으로 가 보았다.
거기에 있던 젊은 여자도 우물에 몸을 던져 죽어 있었다.
역시 노지심이 쫓겨 가는 걸 보고 구함받을 길이 없다 싶어 자결한 듯했다.
노지심(魯智深)과 사진(史進)은 끌끌 혀를 차면서도 최도성과 구소을이 거처하던 여덟 개의 방을 뒤져 보았다.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다만 한 군데 침상 위에 서너 개의 옷 보따리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그 보따리를 풀어 보니 옷 속에는 금과 은이 감춰져 있었다.
사진(史進)은 그 보따리를 하나로 뭉쳐 등에 진 뒤 부엌 쪽으로 가 보았다.
부엌에는 고기와 생선, 술이 고루고루 있었다.
둘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고기를 삶고 생선을 구웠다.
그리고 거기에 있던 술과 함께 배가 부르도록 먹었다.
식사를 마친 둘은 지고 온 보따리를 나누어 각기 하나씩 등에 멨다.
그런 다음 아궁이에 남은 불씨로 불을 질렀다.
부엌에 붙은 불은 이내 본채로 옮아갔고, 다시 옆 건물로 번져 갔다.
방장실이 불타고, 창고가 타고, 마침내는 대웅전의 처마에도 불이 붙었다.
수백 년의 거찰이었던 와관사는 그렇게 한 줌의 재로 변해 간 것이었다.
"양원(梁園, 한나라 양효왕이 꾸몄다는 화려한 궁궐)이 비록 좋다 해도 너무 오래 정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 두 사람 모두 얼른 여기서 없어지는 게 좋겠어."
노지심(魯智深)과 사진(史進)은 그렇게 의논을 하고 와관사를 떠났다.
횃불을 만들어 불이 옮겨 붙지 않은 집채까지 깨끗이 태워 버린 뒤의 일이었다.
그곳을 나온 두 사람은 공연히 마음이 급해져 하룻밤을 뛰듯이 걸었다.
날이 밝아 올 무렵 해서 보니 저만치 사람 사는 집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제법 큰 시골 장터인 듯했다.
두 사람은 한층 걸음을 재촉해 그 장터로 갔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다보니 맞은편에 맞춤한 주막 하나가 보였다.
밤새껏 걸어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진 노지심(魯智深)과 사진(史進)은 얼른 그 주막으로 들어가 술부터 청했다.
새벽에 찾아와 술을 청하는 두 사람이 괴어쩍었으나 주막 주인은 말없이 술과 잔을 내놓았다.
그런 주인에게 두 사람이 다시 청했다.
"이봐, 돈은 넉넉히 낼 테니 먹을 만한 고기를 좀 삶아 내오라구. 쌀도 씻어 밥도 좀 지어주고......."
그래 놓고 안주도 없는 술을 들이붓듯 마시며 노지심(魯智深)과 사진(史進)은 지난 이야기를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부리는 호기로 보아 돈이 떼일 것 같지 않았던지 주인은 오래잖아 밥과 고기를 내왔다.
둘은 술을 비우며 밥과 고기를 먹어 대기 시작했다.
이윽고 술과 밥에 어지간히 양이 찬 노지심(魯智深)이 사진에게 물었다.
"그래, 자네는 이제 어디로 갈 참인가?"
사진(史進)이 갑자기 막막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우물거렸다.
"하는 수 없이 소화산(小華山)으로 돌아가야겠군요. 거기서 주무(朱武)를 비롯해 세 사람이 권하는 대로 때를 기다리다가 어찌 해 보는 수밖에...."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큰 장원의 귀공자로 지내던 사진으로서는 참담한 영락이었다.
그러나 노지심(魯智深)도 또한 쫓기는 몸이라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생각해도 그게 좋을 듯하군."
그렇게 말한 뒤 봇짐을 풀어 이충과 주통에게서 훔쳐 온 금은 그릇을 사진에게 주었다.
그래도 자신은 갈 곳이 정해져 있어 사진보다는 덜 막막하다 느낀 까닭이었다.
사진(史進)은 몇 번 사양하다가 그것들을 받아 봇짐에 꾸렸다.
남의 신세를 지러 가야 할 판이라 노지심(魯智深)보다는 마음이 더 궁한 듯했다.
다시 봇짐을 멘 두 사람은 술값을 치르고 그 주막을 나왔다.
얼마 걷지 않아 시골 장터가 끝나고 다시 들길이 시작되었다.
거기서 한 오 리쯤 가니 문득 길이 세 갈래로 나누어졌다.
"이보게 아우, 이만 여기서 헤어지세. 나는 동경으로 가야 하니 자네가 거기까지 바래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자네는 화주로 가려면 저쪽 길을 따라가야 할 걸세. 뒷날 다시 만나기로 하고 이만 헤어지세. 인편이 있으면 서로 소식을 전할 수도 있겠지......"
노지심(魯智深)이 먼저 그렇게 입을 열었다.
사진(史進)도 그 말이 옳아 보였다.
노지심에게 머리 숙여 예를 표하고 화주로 가는 길을 잡았다.
사진과 헤어진 노지심(魯智深)은 동경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한 열흘도 안 되어 저만치 동경성이 보였다.
그동안 해 놓은 짓들이 있어 큰 성안으로 들어가기가 마음에 꺼림칙했으나, 고단한 몸을 의탁하자면 그 안으로 들어가 대상국사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노지심(魯智深)이 성안으로 들어가 보니 저잣거리는 예나 다름없이 시끌벅적하고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까닭 없이 움츠러든 노지심(魯智深)이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공손하게 물었다.
"대상국사가 어디 있습니까?"
"저 앞에 보이는 다리만 건너면 바로 거기요."
그 사람은 무엇이 바쁜지 그렇게 일러 주고는 휑하니 제 갈 길을 가 버렸다.
노지심(魯智深)도 마음이 갑자기 바빠져 그가 일러 주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수호지 - 이문열 편역
|
첫댓글 연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