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포천계곡의 만귀정을 찾아서(2번째),
2023년 8월 27일 오후
홍개동 입구 주차장에 주차, 걸어서 약 400m 거리다.
만귀정(晩歸亭)
성주 만귀정(星州 晩歸亭)은 경북 성주군 가천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2004년 3월 11일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462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후기에 공조판서를 역임한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가 만년(1851년)에 귀향하여 독서와 자연을 벗 삼으며 여생을 보낸 곳이다. 이원조는 본관이 성산(星山)이며, 자는 주현(周賢). 호를 응와(凝窩)라 하였고, 정헌(定憲)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그는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의 제자로 1809년(순조 9)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벼슬이 대사간을 거쳐 공조판서․ 판의금에 이르렀다. 당시에 유학과 문장에 있어 유림의 으뜸으로 추앙받았으며, 지방관으로서도 많은 치적을 올렸다.
그는 과거급제 후 근 40년간 관직 생활에 몸담고 있어 학문과 후학양성에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다가 만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수양과 강학에 전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건물의 이름을 만귀정이라 한 것도 이에서 연유한다.
건물은 경사지에 북동향하여 정면 4칸, 측면 1칸반 규모의 만귀정과 평삼문이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이자형(二字形)으로 놓여져 있으며, 평삼문 입구에는 이원조의 학문진흥에 대한 의지를 담은 철제로 된 흥학창선비(興學倡善碑)가 세워져 있다.
주차장에서 걸어올라가면 만귀정 표석이 나온다
만귀산방
만귀산방
만귀정(晩歸亭)
만귀정(晩歸亭)
철제로 된 흥학창선비(興學倡善碑)
을해년乙亥年 12월에 건립한 철비석이다. 응와 이원조가 1871년에 별세를 하였으니
그 이후 가장 가까운 을해년인 응와 사후 4년 후인 1875년 12월에 한주 이진상이 세웠다고한다.
포천 구곡중 구곡인, 홍개동계곡
만산일폭루(萬産一瀑樓)
만산일폭루(萬産一瀑樓)
400년된 보호수 소나무
폭포
홍개동계곡 만귀정에서 바라본 가야산
첫댓글 홍개동계곡의 "만귀정"
우리의 문화유산을 멀리서 이렇게 감상을 하네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안풍님~^^
다녀온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고맙습니다 도미니카님~^^
@공간(空間)*宋尙翼
언제나 함께
해서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