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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別 님을 보낸다 蘭香(조선의 여류시인)
持子征衫下淚裁 원정 가는 이의 옷을 눈물을 떨구며 짓는다
金刀隨手短長回 손을 따라 금도를 들고 길고 짧게 돌려본다
此身寧與殘燈滅 이 내 몸이 차라리 꺼진 등불처럼 사라져서
不見明朝上馬催 내일 아침 말을 타란 재촉을 보지 말았으면
고금에 다시 없을 난향의 사랑이로세
결 닮은 서구시 원문 몇편 번역해주고
청연이 님이 되어 영시로 화답하게나
그렇구려. 벗이여.
난향(蘭香)의 「송별(送別)」은 그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시가 아니네. 떠나는 사람의 옷을 짓는 손길과 그 옷을 적시는 눈물, 그리고 내일 아침이면 그이를 말에 태워 떠나보내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한 편의 시 속에 들어 있구려.
특히 세 번째 구절이 가슴을 저미네.
此身寧與殘燈滅 이 한 몸 차라리 꺼져가는 등불과 함께 사라져서
이것은 단순히 이별이 싫다는 말이 아닐 것이네. 사랑하는 이가 떠나는 내일 아침을 차마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절규이지. 마지막 구절의 「上馬催」, 곧 말에 오르라 재촉하는 소리는 아직 떠나지도 않은 사람을 이미 마음속에서 잃어버린 여인의 비명처럼 들리네.
다만 난향의 사랑이 고금에 다시 없다고 느껴지는 까닭은 슬픔의 크기만이 아닐 것이네. 자신의 슬픔을 호소하기에 앞서, 떠나는 사람의 원정복부터 지어주는 마음. 사랑을 말로 장식하지 않고 손끝으로 실천하는 그 마음이 참으로 깊구려.
자, 그대의 청에 따라 먼저 서양 시인들의 작품 가운데 이별과 기다림, 떠나는 사람을 향한 사랑이 난향의 시와 공명하는 몇 편을 원문과 번역으로 살펴보세. 그런 다음 청연이 난향의 님이 되어, 떠나는 사람의 입장에서 영시로 화답해 보겠네.
1. 서구의 시인들은 이별을 어떻게 노래했는가첫째, 테니슨 — 「Break, Break, Break」
Alfred, Lord Tennyson (1809–1892) · 1842년 발표
원문 출처: Academy of American Poets.
Academy of American Po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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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k, Break, Break
Break, break, break, On thy cold gray stones, O Sea! And I would that my tongue could utter The thoughts that arise in me. O, well for the fisherman's boy, That he shouts with his sister at play! O, well for the sailor lad, That he sings in his boat on the bay! And the stately ships go on To their haven under the hill; But O for the touch of a vanish'd hand, And the sound of a voice that is still! Break, break, break, At the foot of thy crags, O Sea! But the tender grace of a day that is dead Will never come back to me.
우리말 번역 — 파도여,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 차가운 회색 바위 위에서, 오 바다여! 내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생각들을 내 혀가 말로 풀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얼마나 좋은가, 어부의 소년은 누이와 뛰놀며 소리 높여 웃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젊은 뱃사람은 만 안의 배 위에서 노래할 수 있으니! 위풍당당한 배들은 저마다 언덕 아래 제 항구를 향해 나아가건만, 아, 다시는 만질 수 없는 그 손의 감촉이여, 이제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여!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 바위 벼랑 아래에서, 오 바다여! 그러나 이미 죽어버린 그날의 다정한 아름다움은 내게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청연의 강평
이 시는 난향의 시와 슬픔의 결이 조금 다르네.
난향은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을 바라보며 내일을 두려워하네. 테니슨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진 사람을 그리워하지.
난향에게는 내일 아침이 두렵고, 테니슨에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제가 고통스럽네.
특히 「the touch of a vanished hand」, 곧 사라진 손의 감촉이라는 구절을 보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을 말하지 않고, 손의 감촉 하나로 부재의 깊이를 드러내는 것이지.
난향의 금도(金刀)가 원정복을 짓는 손에 들려 있었다면, 테니슨의 시에서는 이제 잡을 수 없는 손이 온 시를 지배하네.
한 사람은 떠날 사람의 옷을 짓고, 다른 한 사람은 떠나버린 사람의 손을 기억한다. 두 시가 서로 다른 시대와 언어를 넘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라네.
둘째, 로버트 브라우닝 — 「Parting at Morning」
Robert Browning (1812–1889) · 1845년 발표
원문 출처: Poetry Foundation.
The Poetry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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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ng at Morning
Round the cape of a sudden came the sea, And the sun looked over the mountain's rim: And straight was a path of gold for him, And the need of a world of men for me.
우리말 번역 — 아침의 이별
곶을 돌아서자 문득 바다가 나타나고, 산등성이 너머로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에게는 곧장 황금빛 길이 열렸고, 나에게는 다시 세상 사람들 속으로 돌아가야 할 일이 있었다.
청연의 강평
네 줄뿐인 짧은 시지만, 이별의 또 다른 진실을 보여주네.
밤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었지만 아침이 오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네. 해에게는 황금빛 바닷길이 열리고, 시적 화자에게는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지.
여기에는 난향처럼 극단적인 절규가 없네. 사랑이 가볍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각자 살아가야 할 삶 또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네.
난향이 이별을 앞두고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면, 브라우닝의 화자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세상으로 나아가네.
그러나 나는 어느 쪽이 더 깊은 사랑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네. 떠나보내기 싫은 마음도 사랑이고, 떠나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마음도 사랑일 수 있으니까.
2. 이제 청연이 난향의 님이 되어 화답하겠네
앞의 두 시는 서양 시인들이 실제로 쓴 작품이네. 이제부터는 청연이 새로 짓는 창작시일세.
난향의 시에서 가장 아픈 대목은 여인이 원정복을 지어주면서도 차마 내일 아침을 맞고 싶지 않다고 고백하는 부분이었네.
그러니 내가 그 여인의 님이라면, 떠나지 않겠다고 함부로 약속하지는 않겠네. 전쟁과 명령과 삶의 의무가 사람을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
다만 떠나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는 말하고 싶네.
그대가 지어준 옷을 입고 떠나지만, 그 옷을 지어준 사람까지 두고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To My Beloved, at Dawn
새벽에 그대에게 — 청연의 창작 영시
You stitch my coat with trembling hands, While tears fall softly, grain by grain; The dawn is waiting in the lands, The road is calling me again. If I could stay, I would not go; If love could bind the morning light, I'd bar the gate against the snow And keep you by my side tonight. But when the horse is led to stand, And distant trumpets wake the day, I'll feel the warmth within your hand Long after I have ridden away. So do not curse the rising sun, Nor wish your lamp to cease its glow; Though roads may part the two as one, Your love will travel where I go. And if the stars should hide my name, If years should bury where I've been, The coat you made shall guard a flame No winter wind can enter in. I leave because I must depart; I carry you because I love. The road may take me from your heart— But not the heart I travel of.
우리말 번역 — 새벽에 그대에게
그대는 떨리는 손으로 내 옷을 짓고, 눈물은 한 올 한 올 조용히 떨어지네. 새벽은 저편 땅에서 기다리고, 길은 다시 나를 부르고 있네. 머물 수 있다면 어찌 떠나겠는가. 사랑으로 아침 햇살을 붙잡을 수 있다면, 오늘 밤 내리는 눈을 막아 문을 닫고 그대를 내 곁에 두고 싶구나. 그러나 말이 끌려와 앞에 서고, 먼 나팔 소리가 하루를 깨우면, 나는 그대 손의 온기를 느끼리라. 말을 타고 멀리 떠난 뒤에도. 그러니 떠오르는 태양을 원망하지 말고, 그대의 등불마저 꺼지기를 바라지 마오. 길이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을지라도, 그대의 사랑은 내가 가는 곳마다 함께하리니. 세월이 내 이름을 별빛 속에 감추고, 긴 시간이 내가 지나온 자리를 묻어버린다 해도, 그대가 지어준 옷은 하나의 불씨를 지키리라. 겨울바람조차 꺼뜨릴 수 없는 불씨를. 나는 떠나야 하기에 떠나지만, 사랑하기에 그대를 품고 가오. 길은 나를 그대에게서 멀리 데려갈지라도, 내가 걸어가는 이 마음만은 그대를 떠나지 않으리.
3. 난향의 시와 청연의 화답 사이
벗이여, 이 화답에서 내가 가장 오래 붙들고 싶은 구절은 이것이네.
I leave because I must depart; I carry you because I love.
나는 떠나야 하기에 떠나지만, 사랑하기에 그대를 품고 가오.
난향의 시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여인의 슬픔이 중심이었네. 나는 그 반대편에 서서, 떠나는 사람에게도 그 나름의 아픔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네.
떠나는 사람이 반드시 사랑이 적은 것은 아니며, 남는 사람이 반드시 더 깊이 사랑하는 것도 아니겠지. 어떤 이별은 마음이 변해서가 아니라 현실이 두 사람의 뜻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찾아오니까.
물론 청연의 화답은 난향의 절규를 다 위로하지는 못하네. 그대가 지적한 대로 난향의 시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이별 그 자체보다 내일 아침 말에 오르라고 재촉하는 시간의 무정함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옷을 짓는 동안에는 아직 그 사람이 곁에 있네. 그러나 옷이 완성되는 순간, 떠날 시간이 가까워지지. 여인은 사랑의 증표를 완성할수록 이별의 순간에 다가가는 셈이네.
그래서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이렇게 생각하네.
사랑이란 언제나 붙잡아 두는 일만은 아닐 것이네. 때로는 떠날 사람의 옷을 지어주고, 떠나는 사람은 그 옷을 입고 살아 돌아오기를 약속하는 일일 수도 있겠지.
난향은 눈물로 옷을 지었고, 청연은 그 옷을 입고 돌아오겠다는 마음으로 답했네.
그대에게 한 가지만 묻고 싶구려.
난향의 님이 정말 돌아올 수 없는 원정길에 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래도 난향은 그 옷을 지어주었을까? 아니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끝내 바늘을 내려놓았을까?
한 치 앞도 모르거늘 어찌 운명을 알 수 있겠는가 청연의 시를 읽고 난향은 잠시나마 눈을 붙이리라
벗이여, 그 말씀에 청연도 고개를 숙이네.
한 치 앞도 모르거늘, 어찌 운명을 알 수 있겠는가.
돌아오리라는 약속도,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예감도 결국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인간의 짐작일 뿐이겠지.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운명을 미리 알아내는 지혜보다, 알 수 없는 내일 앞에서도 오늘의 사랑을 다하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네.
난향은 이제 바늘을 내려놓고 눈을 감겠구려. 눈물에 젖은 원정복은 머리맡에 놓아두고, 떠나는 이의 마지막 말 한마디를 가슴에 품은 채로 말일세.
그렇다면 청연도 오늘 밤은 더 말하지 않겠네. 다만 난향의 꿈속에 그리운 이가 찾아오기를 바라며, 짧은 시 한 수를 덧붙이겠네.
《등불 아래, 잠든 그대에게》
청연의 창작시
등잔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고 창밖의 달은 말없이 기울어간다.
그대여, 오늘 밤만은 내일을 묻지 말아다오.
떠나는 길도 돌아오는 길도 아직 하늘 아래 그려지지 않았으니,
그대는 그저 눈을 감고 내가 곁에 있다고 생각해다오.
새벽이 와서 나를 데려가더라도 그대가 지어준 옷 속에는 오늘 밤 그대의 따뜻한 손길이 오래도록 남아 있으리라.
운명은 내일의 일이요, 사랑은 오늘의 일이니.
벗이여, 난향도 그대도 오늘 밤은 편히 쉬시게나. 청연은 등불을 조금 낮추고 조용히 물러가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