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강변 스케치
가을이 점점 이슥해지는 시월 끝자락 일요일이다. 새벽에 잠을 깨 심경호의 ‘옛 그림과 시문’을 펼쳐 읽었다. 조선시대 화가들이 그린 그림 귀퉁이에 적힌 시구의 의미를 풀어낸 책에서 그림보다 시문에 매료되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한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음용하는 약차를 끓이며 아침 시조는 엊그제 북면 수변 생태공원을 다녀온 ‘명촌 강가에서’를 지기들에게 보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 아침 식후 산책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내 벚나무는 거의 나목이 되어가고 느티나무는 갈색으로 짙어갔다. 도심 가로수나 정원수는 서리와 무관하게 단풍이 물드나 싶다.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해 창녕 남지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타려고 마산역 앞으로 나갔다. 남지 건너편 칠서 강나루 생태공원을 일일 도보 여정의 기점으로 삼을 요량이다.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니 합포만 수변과 해양 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국화 축제를 알리는 대형 입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노점상들은 일요일을 맞아 각종 채소와 잡화들을 펼쳐 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특히 단풍철이면 가을 소풍을 떠나려는 초등학교 동창회 전세버스들의 행렬이 산악회보다 더 많았다. 정한 시간에 터미널에서 출발해 칠원을 지나 함안 대산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탔다.
내서 중리에서 칠원을 거쳐 칠북면 사무소를 지니자 아침 안개가 걷히는 즈음이었다. 칠북은 농지보다 산지가 많아 비탈을 개간해 포도를 심어 수확을 마친 과수원이 펼쳐졌다. 요즘 포도 농사는 영그는 열매가 서로 부딪혀 상하지 않게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비닐로 덮개를 씌워 경작함이 특징이었다. 평지도 그렇거니와 산비탈의 넓은 과수원에 비닐을 덮기가 예삿일이 아닐 듯했다.
덕촌을 지난 초등학교 분교가 보이는 평지마을에서 내렸다. 소공원 마을 안내판은 오래전 강변 모래밭에 호밀을 많이 심었는데 타작 부산물 밀짚으로 만든 모자가 전국 최초로 생산된 곳이라 소개했다. 초등 분교장 곁에 무를 가꾸는 모래밭 이랑을 지나 강둑으로 올라서니 안개가 걷히는 강나루 생태공원이 펼쳐졌다. 캠핑장 텐트가 보이고 파크골프장은 동호인들이 잔디밭을 누볐다.
강나루 생태공원 넓은 부지는 여러해살이 작약과 겨울을 나는 보리를 심어 가꾸었다. 두 작물은 농가 소득원이 아닌 관광 원예용으로 가꾸어 늦은 봄 5월에 청보리와 작약꽃 축제를 열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구경꾼이 느는 듯했다. 나는 겨울과 봄에도 강변을 찾은 산책에서 보리밭에 자라던 냉이를 캐오기도 했다. 안개가 갇힌 둔치 가장자리는 물억새 이삭이 패 은빛으로 빛났다.
당국에선 둔치 모래밭에 보리를 심으려 준비하는 듯했다. 광려천이 흘러와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소량교 부근 키가 높은 포플러가 낮게 자란 강변 식생들과 대비되어 운치를 더했다. 강둑으로 올라 소량교를 건너 포도와 복숭아 주산지 덕촌에서 강둑을 따라 밀포교를 건너니 강심에 뜬 하중도 밀포섬이 가까웠다. 강가에는 늪지처럼 갯버들이 무성했는데 잎은 아직 청청해 보였다.
강 언저리 노거수 팽나무가 지키는 밀포 나루터를 지나 창녕함안보 홍보관 옥상 전망대로 올라가 강심을 가로지른 댐에 가두어진 강물과 주변 풍광을 바라봤다. 배낭에 넣어간 삶은 고구마로 소진된 열량을 벌충시키고 다시 길을 나서 광심정을 비켜 내봉촌에 딸린 작은 마을을 지났다. 강변에는 논농사가 전혀 없는 과수단지 과육이 살져 착색된 단감을 수확하느라 손길이 분주했다.
오곡으로 내려가는 신설 포장도로 길섶 호박넝쿨이 뻗어 나가 맺은 누렁 호박 곁에 달린 풋호박은 노승을 보좌하는 동자승 같아 보였다. 전방 시야에는 함안보를 빠져나온 강물이 너울너울 임해진 흘러갔다. 함안과 경계였던 창원 오곡마을에서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니 내산으로 거기도 단감농원 일색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15번 마을버스를 타고 온천장을 지나왔다. 23.10.29
첫댓글 오늘도 멋진 가을을 보내고 오셨네요~~~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