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감상문은 내가 제일 애정을 가지고 있는 두 까페에 올리고 있다. 그런데 두 까페에 모두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양쪽 모두 날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첫 연재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조회를 하더니만, 연재가 3회를 넘어갈 무렵부터는 조회수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글의 길이와 내용의 건조함을 눈치챈 사람들이 절대 열어보기를 안하는 것이다. ^^
그래도 고마운 것은 그 중에서 고정독자가 몇 명 생겼다는 것. 가끔씩 리플을 달아서 잘 보고 있다는 얘기라도 붙여주면 어찌나 고마운지... 눈물날 정도이다.(약간 과장법 포함...)
그 고정독자 중의 한 명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읽다 보면 오빠가 전공하는 분야와 연결된 얘기가 많은 것 같아."
하긴, 내가 쓰는 것인데 내 얘기가 연결되지 않을리가 없다. 게다가 어차피 시작하면서 삼국지의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읽다가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얘기들을 써내리고 싶었던 것이니까.
그런 면에서 오늘 쓰고 싶은 얘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다. 삼국지의 이야기와는 정말 동떨어진, 감상적이고 추억에 관련된 내용. 그저 삼국지를 읽다가 미세한 부분에 자극받아 머리를 가득채운 기억이 되어버린 내용.
가끔씩은 정말 이런 이야기들을 쓰고 싶어진다. 누구에겐가 보내는 메일에든, 일기장에든. 특히 이런 얘기들을 언급할 수 없는 상황이 지나고 난 시기에는...
대학교 4학년즈음 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여행에 재미를 붙인 나는, 혼자서 여행다니기를 좋아했었다. 가까운 곳을 쏘다닐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수업을 땡땡이 치고 우리나라에서 별이 제일 잘보이는 보현산이라든가, 남쪽 땅끝마을을 거쳐 보길도를 돌아오기도 했다.
여행을 떠날 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그녀는 항상 그런 나를 보면서 불만스러움을 표현했었다. 그렇지만 왠지 그때의 내게는 그녀의 투덜거림 또한 여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멀리 떠나서 그녀의 호출기에 혹은 전화 목소리에 여행의 감흥을 전달해주면서 느껴지는 따듯함이랄까...
그런 자유로움은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들어가기 전 한달동안 극에 달했었다. 여행을 다니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 때의 생활은 정말 모든 것이 내키는 대로였다.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먹고 싶으면 먹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심심하면 비디오 빌려다 보고. 그녀를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 보고 싶으면 낼름 전화해서 저녁에 약속을 잡고, 귀찮아지는 날이면 그녀의 연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방바닥을 사수했다.
기억속에는 그 한달의 시간이 꽤 행복했던 시간으로 남아있는데, 조금만 생각을 넓혀보면 그녀에게는 얼마나 속상하고 불편했을 시간이었나 라는 상상이 된다. 1달 후면 군대에 가버릴 애인이었는데 말이다...
군대에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 자대 배치를 받고, 겨울이 될 무렵, 그녀와 헤어졌다. 특별히 누군가 마음이 식거나 싫어져서 헤어진 것이 아니었기에, 만나는 횟수나 연락하는 횟수가 줄기는 했지만, 이후로도 한참의 시간을 가깝게 지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헤어진 97년의 겨울 이후로 혼자서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뚝 끊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빈둥빈둥 내키는 대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욕망도 같이.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 막 벌어지기 전날밤의 풍경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 앞의 상황전개에서 오나라 장수 주유의 속임수와 제갈공명의 지혜때문에 조조는 크게 지게 되리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책속의 등장인물인 조조는 그 사실을 알 까닭이 없다. 그래서 출전 전날밤의 잔치는 읽는 사람들에게 측은하게까지 느껴진다.
자신의 승리를 장담한 조조는 장수들을 모아놓고 큰 잔치를 연다. 창을 옆에 들고 조조는 자신의 위용을 자랑하는데, 마침 까마귀 한마리가 날아간다.
조조 : 이 밤중에 어찌하여 까마귀가 우느냐?
신하 : 달빛이 하도 밝아 날이 샌 줄 알고 울었나 봅니다.
조조 : (기분이 좋아 뱃머리에 창을 꼽고는 술 세잔을 원샷하고, 다시 창을 뽑아든다.)
나는 이 창으로 젊어서는 황건적을 무찔렀고, 여포를 사로잡았으며 원술을 깨뜨렸다. 나아가 원소마저 평정했을 뿐만 아니라 위로는 깊이 새북에 군마를 진격시켰다. 또한 옆으로는 요동까지 이르러 천하를 종횡으로 달리며 대장부의 뜻을 펼쳤다. 이제 마지막 남은 남쪽을 평정하려 하면서 그 경치를 보는 내 마음에 어찌 강개가 없겠는가? 나의 감회를 노래로 지어 부를 테니 그대들은 함께 나를 따라 부르도록 하라!
술이 있으니 노래하노라
인생이 얼마나 되나?
견주어 보면 아침이슬 같거니
가버린 세월이 너무 많구나.
하염없이 지난날 돌이키니
자나깨나 근심이로다.
무엇으로 이 시름 풀어 볼까
다만 술이 있을 뿐이네.
푸른 그대의 옷깃이여
끝없이 그리는 이 마음
다만 그대로 하여
이토록 사모하며 읊고 있네.
사슴은 짝을 찾아 울며
들에서 풀을 뜯는구나
나에게 귀한 손님이 왔으니
비파와 피리를 불며 맞이하네.
휘영청 밝은 저 달
언제나 비춤을 멈출까
달빛 따라 이는 근심
끊을 수가 없구나.
언덕 넘고 밭두렁 길 건너
마음만 오락가락
오랜만에 잔치 벌려 얘기하니
마음 속의 옛 정 새롭구나.
달이 밝아서 별빛 사라지고
까마귀 울며 남으로 나네.
나무를 세 번 감돌아도
의지할 가지 하나 없구나.
산은 높을수록 좋고
물은 깊을수록 좋지 않은가.
옛 주공 밥 뱉어 가며 사람 맞으니
천하의 인심 그의 것이네.
삼국지를 읽다보면 당시의 시라는 것이 지금의 유행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로는 그 시구절이 상황과 적절하게 맞아들어갈 수 있지만, 그냥 떠오르는 대로 흥얼거릴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사랑에 빠진 연인이나, 실연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유행가 가사가 다 자기 얘기같다고 하듯이, 조조도 까마귀와 밝은 달빛이 떠오르자 이 노래(시)를 불렀을 것이다. 보다시피 4절의 앞부분을 빼고는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사들이기 때문이다.
신하들은 조조의 노래를 따라부르다가 4절의 마지막 부분에서 흥에 겨워 목소리를 크게 높여 따라불렀다. 예전에 주공이 밥을 3번이나 뱉어가면서 인재를 등용했다는 부분이기 때문에, 신하된 자들로써 조조의 사람 씀씀이와 연관되어 다 자기얘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조조는 상벌이 철저한 타입이어서 충성하는 자에게는 관대한 편이고, 더불어 사람욕심이 많기 때문에 인재를 끌어들일 때는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하고 만다.
그 때 조조의 흥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있었다.
유복 : 큰 싸움을 앞두고 있는 이 마당에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그토록 불길한 노래를 부르십니까?
조조 : (취한 눈길로 쏘아보며, 분노한 목소리로) 어찌하여 내 노래가 불길하다는 것인가?
유복 : 달은 밝아 별빛이 사라지니 까마귀 울며 남으로 나네. 나무를 세 번이나 감돌았으나 의지할 가지가 없구나 하는 구절이 불길합니다.
조조 : 네 어찌 감히 나의 흥을 깨느냐! (들고 있던 창으로 유복을 찌른다.)
결국 유복은 죽고 다음 날 술이 깬 조조는 크게 후회를 한다.
솔직히 위의 시를 보고있으면 전쟁을 앞둔 장수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점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인생의 허무함,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 달을 보고 수심에 잠기는 모습... 모두다 불길하기 그지 없는 내용들인데, 왜 유복은 딱히 의지할 가지가 없는 부분에서 불길함을 느꼈을까?
"최유기"라는 만화책이 있다. 서유기를 원작으로해서 각 캐릭터를 꽃미남으로 바꿔 나온 내용인데, 누나가 애지중지하는 만화이다. 어떤 줄거리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양아치 같은 스타일로 나오며 권총을 쏘아대는 삼장법사가 그런 얘기를 한다.
"새가 자유로운 것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나무가지가 있기때문이 아닐까..."
그 대사를 읽으며, 예전의 느낌들이 명확해 졌다. 혼자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을 때의 느낌. 빈둥빈둥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생활에 대한 동경이 말라버릴 때의 느낌. 난 자유롭다고 얘기했지만, 그 자유라는 것은 불평속에서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주던 그녀 덕분에 가능했었구나... 그토록 내가 싫증내하던 그녀의 안정감이 내 자유로움에 큰 힘이 되어주었구나...
유복도 그런 본능적인 느낌이 아니었을까? 조조가 승리를 자인하고 있었지만, 그 확신은 주유의 진중에 가짜로 항복해 간 채중, 채모와 자신에게 이미 항복하기로 약속한 황개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래를 들으며 유복은 불길함을 가졌을지 모른다. 채중, 채모의 비밀을 주유가 이미 눈치챘고, 황개의 항복이 거짓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앉아 쉴 가지가 없는 까마귀의 날개짓은 자유가 아니라 고통인 것처럼, 조조의 승리에 대한 확신도 허상이 아닐까...(실제로 상황은 그러했다.)
나무와 새의 역할은 정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을 만나면서 서로의 관계에서 변화되고, 때로는 서로를 위해 일부로 자기가 싫어하는 역할을 맡을 때도 있을 것이다. 아랫 사람이 진정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굳건한 나무가 되어주는 상사도 있을 것이고, 자상하고 안정감있는 남편을 만나 맘껏 자유로울 수 있는 여성도 있을 것이다.
한번씩은 돌아보면 어떨까? 새는 가지를, 가지는 새를. 순수한 마음으로 고마워 하기도 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기도 하고. 그게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직장동료가 될 수도 있고, 애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친한 친구가 질문을 했다.
"**랑 헤어진거 후회 안하냐?"
머리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그녀가, 그녀만이 줄 수 있었던 편안함과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내가 가질 수 있었던 자유로움과 의지...
"어차피 다 가질 수는 없잖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지금 가는 길이 제일 좋은 길이라고 생각해야지 뭐."
12월, 햇살이 따듯하던 날 그녀를 만났었다. 임신 5개월인 그녀는 아직 임산부같다기 보다는 적당히 살이 쪄 배가 나온 것처럼 보였다. ^^
영화를 보고 한가한 거리를 잠시 걸었다.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다가 내가 먼저 질문을 했다.
"오랜만에 만나니까 어때?"
"갑자기 왜 그런걸 물어봐?"
"그냥, 감정이 많이 바래졌을 것 같아서."
"예전에는 너 보기만 하면 슬펐었는데, 오늘 보니까 괜찮네. 그때는 뭐가 그렇게 슬펐는지..."
"조금 서운하네. 역할이 하나 줄어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