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秀 제23회 신인문학상
비상구 외 2편
김윤덕
벽돌집 모서리에 비스듬히 걸쳐진 철계단의 끝
옥탑에는 스물한 살의 비장함이 세 평 그늘과 산다
물 바랜 커튼에서 꽃무늬가 마르고
끝자락이 창문 발치에서 너풀거리는 방은
인생 새내기가 선택한 최초의 독립공간이다
장대비 온몸으로 맞으며 스쿠터가 달린다
배달 건수만큼 무거워진 통장을 메고 가볍게 오른 옥상
젖은 바짓가랑이를 수습하기도 전,
전화기 너머로 쏟아지는 날 선 목소리에 상처를 입는다
젖은 날개가 추락을 생각한다
다시 바닥이다
불길한 기운을 더듬으며 동선을 거슬러
실수를 정산하고 돌아오는 밤
잠은 이미 그 길로 방을 빠져나갔다
갓 스물의 세입자가 돌아와 눅눅한 방으로 들기까지
창가에서 기다리는 그녀,
암막 커튼이 치마를 펴고 그의 하루를 덮어준다
정오에 잠이 깊다.
돌의 속내
우직한 성품 탓에 구들방에 자리 잡은 다듬잇돌
방망이를 벗 삼았으니 두들김소리 기꺼이 받아들이고
구김살이 펴질수록 환해지는 엄니 얼굴 올려다보며
안도할 줄 아니 속이 꽤 깊다
맷돌의 출신성분은 현무암 구멍 숭숭 가뭇하지만
투박하다는 선입견을 뒤집고 유연하게 허리를 돌리면
싹틔운 보리가 분가루로 내리고
메밀도 까칠한 옷을 벗고 속살을 내민다
평생 신발을 이고 앉은 댓돌은
디딤돌이란 이름 하나 훈장처럼 얻었다고 좋아라
흙바닥이 파여도 기우뚱 자리를 지킨다
겅중겅중 계절을 건너와 닿은 집에는
달아난 방망이의 행적을 모르는 뒷방 다듬잇돌과
어처구니가 없는 맷돌이 마당 한편으로 밀려났고
댓돌은 비스듬히 누워 발길 뜸해진 정수리를 더듬는다
여전히 돌들은 허물어진 뜨락에 버티고 앉아
젖은 낙엽을 갈바람에 불어낸다
날려 보내고 부러 잊어버리기가 일쑤
무심함이 그들의 유전이다.
뻥의 미학
골목 입구에
뻥튀기 공작소가 문을 여는 날
한 봉에 삼천 원, 두 봉에 오천 원
메이드 인 코리아로 곱게 부푼 마카로니와
국내산을 자랑하는 강냉이가 현금을 벌어들인다
뻥이요,
장사꾼의 외침에 뛰쳐나온 튀밥이 채에 걸러지고
남은 무녀리 알갱이는 기다리는 자의 몫
잠을 깬 비둘기 떼가 다가앉아 먹거리의 열을 잰다
파마 무조건 이만 원이라 써 붙이고
숱 많던 검은 머리의 젊음을 되돌려 주겠다는 미용사의 반 뻥에
백발빈모를 고민하던 할머니가 지갑을 만진다
주전부리를 태운 유모차가 뒤뚱뒤뚱
계단 오르는 소리에 할아버지가 귀가 뻥
풍 맞은 몸을 잊고 주춤주춤 마중을 나온다
고불고불 머리도 했으니 손잡고 단풍구경 가자는 할아버지
그러자 맞장구치는 할머니는
이 남자의 과장법, 십 년째 뻥의 진심에
웃픈 저녁을 물에 말아 넘긴다.
김윤덕
2023년 문학 秀 신인상
제573돌 한글날 기념 백일장 일반부 운문 장원
제52회 신사임당의 날 기념 예능대회 입선
제12회 허암예술제 일반부 차하
제19회 서하전국 백일장 차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