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성도는 십자가의 길을 피해 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에서 욥은 자기가 두려워하던 그것이 임하고 무서워하던 그것이 자신의 몸에 미쳤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세상 고난, 불행이 사람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의를 행하다가도 내일 불의를 행하면 얼마든지 그와같은 불행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의했습니다. 자녀들이 잔치를 하고 난 다음날이면 혹 자녀들이 말로라도 하나님께 범죄하였을까봐 염려해서 자녀의 수대로 번제를 드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행은 그를 피해 가지않았습니다. 지금 그는 본문에서 그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로부터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고난의 길, 즉 ‘십자가의 길’ 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피해 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사람인 이상, 각자에게 배당된 십자가를 피해 갈 수 있는 천운이란 없습니다. 요행이란 없습니다. 사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기가 져야 하는 십자가를 피해 가기를 기대하는지 모릅니다. 자기만큼은 하나님께서 보아주시겠지 하는 마음을 은연중에 갖습니다. 신앙 생활을 잘하는 이면에는 이것을 기대하는 일말의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잘 들어서 고난 대신 복 만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조차, 십자가의 쓴잔은 피해 가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에서 땀이 흘러 피로 변하도록 눈물과 통곡으로 하나님께 아뢰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잔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야만 자신을 따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9:23).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도 고난을 피해 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단언이고 확언입니다.
그런데도 혹시 여러분은 요행수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조그만 시련이 닥쳐도 성수 주일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주일마다 충성 봉사했는데 나에게 이러한 시련을 주시느냐고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고난에 대한 우리의 생각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고난은 내가 피한다고 피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잘 보이는 것, 신앙 생활 잘하는 것과도 무관합니다. 죄를 전혀 범치 않는 것과도 무관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동적으로 따라 오는 것입니다. 시차가 있고, 무게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것을 피해 갈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가 주시는 고난의 십자가를 언제든 달게 지고 따라 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