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의 가정 실습
석야 신웅순
둘째 딸이 조리원에 있다 손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단다. 오늘이 손녀를 아내와 함께 보러가는 날이다.
이제 아내와 한 달을 떨어져 있어야한다. 아내가 손녀를 돌보아주기 때문이다. 작년엔 큰 딸이 애를 낳아 한 달 간 가정 실습을 한 적이 있었다. 음식을 할 줄 몰라 힘들었었다.
두 번째 가정실습이다. 며칠 전부터 아내는 밑반찬을 만드느라 부산했다. 밥도 해야하고 세탁도 해야 하고 분리수거도, 청소도 해야 한다. 국도 해야하고 찌개도 끓여야하고 화분에 물도 주어야한다. 늙은 강아지에게 약도 먹이고 밥도 먹여야한다. 하루 종일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다. 아내의 일이 이렇게나 많다. 아내도 자신을 위해 할 일이 왜 없겠는가. 젊은 여자라도 육아까지 해야 한다면 참으로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
“여자가 종일 집구석에서 무엇할 일이 있다고…….”
남편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몰라서 하는 말이다. 별 생각 없이 하는 이 말이 아내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다. 남편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금기의 말이다. 마음을 몰라주는 저런 남편과 이혼하고 싶다는 아내의 생각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녁은 명태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반찬은 김치, 호박나물, 가지나물, 황태무침, 장조림 등이다. 먹을 만큼만 덜어 깔끔하게 비웠다. 반찬 쓰레기도 남지 않았다. 혼밥이 외로웠지만 어차피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언젠가는 혼자 살아가야한다. 혼자 세상에 나와 혼자 가야하는 것이 우리들의 길고도 짧은 여행이다.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내의 반찬 준비도 이제는 힘에 부치는 것 같다. 고희에 접어들었으니 옛날 같지 않다. 자주 잊어버리는 것도 잦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는 아내가 기억해주고 아내가 기억하지 못할 때는 내가 기억해 주기도 한다. 고유명사, 보통 명사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때는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상처를 줄 때가 있다. 일일이 변명하는 것도 구차하다. 이런 일들이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여보, 우리 치매검사 한 번 해봅시다.”
“그리해요.”
전 같았으면 화를 냈을지도 모를 대화이다. 나이 들면서 생기는 현상이니 이쯤에서 검사해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두툼한 노트를 샀다. 기록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한 일과 할 일, 익숙하지 못한 자잘한 것 등 기억을 보완할 수 있을, 일상생활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기록이다. 뽀족한 방법이 없다.
딸아이가 손녀에게 젖을 물린다.
아름답고 자애로운 모습이다. 미켈란젤로의「계단의 마돈나」같은 아기 예수에 젖을 물리는 마돈나의 모습이다. 지극한 모성애는 이런 것이 아닌가.
버릇없어 때렸더니
지구 한 귀퉁이에서 훌쩍훌쩍 서럽게도 운다
남몰래 서럽게 울 날이 많을 텐데
정말 때리지 말 걸 그랬다
- 신웅순의 「딸년」
버릇이 나빠질까봐 때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린 것이 맞을 데가 어디 있다고 때렸는가. 여자가 세상을 살아가려면 서럽게 울 날이 많을 텐데 후회가 되었다. 부성애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젖을 먹이는 딸을 보면서 이 시가 번득 생각이 난 것이다.
딸아이 6살 때쯤에 쓴 시이다. 그것을 도자기에 기록했다. 사반세기가 지나서야 딸아이에게 주었다.
“아빠 고마워, 잘 간직할 게.”
어렸을 때 아빠한테 맞아 지구 한 귀퉁이에서 훌쩍훌쩍 울던 딸아이가 애기를 낳아 저렇게 평화스럽게 딸의 딸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쳐간다. 스쳐가는 곳곳 촉촉히 이슬비가 내린다. 세상이란 자리가 어떤 이에겐 이렇게도 아름답기도 하고 서럽기도 한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도 이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리운 나의 어머니 아버지여!
- 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
2021.10.5
첫댓글 모든일이 感谢한 일입니다!
깨끗하고 전갈한 저녁 밥상 이 아름답습니다!
우리집 에 있는 사람은 할 수 있으려나….
혼밥인 친구 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내를 저 세상으로 일찍 보낸 친구입니다.
전화통화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가정실습 열심히 하고 계시리라~~~
두 번째니 이젠 도사가 되셨을 줄 생각됩니다.
밥상이 보기만해도
군침이 돕니다. 깔끔한 밥상. 아주 담백하니 맛깔스러워 보여요.~~~^^
참~~~
축하 인사가 늦었습니다.
손녀 얻으심을
축하드립니다
두 번째라서인지 좀 여유가 생겼습니다.
움직여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자들이 건강하게 오래사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축하
이도 두 번째의 행복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