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라는 매일이 바쁩니다
벤슨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들여다봐야 하고 싱글맘이니 어린 딸도 돌봐야 하고
우연히 재회한 클레망과의 로맨스까지
산드라의 생활은 자연주의적 터치로 담담히 묘사되는 것 같지만 실제 그녀의 삶은 오히려 그것과 대극점에 있습니다
산드라에게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 외에 몇개의 역할이 또 있어요
상처 받은 딸이면서 자기 딸을 걱정하는 어머니이면서 또 로맨스에 흔들리는 여자이면서
이런 산드라의 몇개의 얼굴은 거의 무의식적인 속도로 상황에 맞게 변해 가지만
모든 역할에는 어느 하나 모순되는 점이 없네요
산드라는 솔직한 어머니 그녀는 딸에게 뭐든 감추지 않아요
할아버지가 이울어가는 모습이나 클레망과의 로맨스도 숨기지 않고 함께 보았던 영화에 대해
난 그냥 그랬어 라고 솔직한 감상도 말할 줄도 알고
물론 자기가 마음에 들어했던 영화를 부정당한 딸은 지르퉁하지요
그러나 나에겐 산드라의 그런 솔직한 태도가 괜찮은 교육처럼 느껴졌네요
어줍잖게 상대 기분에 동조하지 않는 것은 딸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일 겁니다
훗날 성인이 된 딸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다양한 풍경을 떠올리게 될 것이고
그 중심에는 소중한 사람에게는 항상 솔직함으로 일관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있을테니까요
"동정심을 유발해선 안돼 남에게 동정을 받으면 끝이란다"
할머니의 이야기에 묵묵히 귀를 기울이는 산드라와 딸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놓지 못하는 할머니는 동정 받는것을 거부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산드라의 눈동자에는 동정 무력감 방황 그런것들을 모두 포함한 듯한 감정이 아른거려요
그리고 이때 그녀의 딸은 일부시종의 관찰자가 됩니다
부모가 이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일 중 하나일 거예요
그럼에도 살아간다 ㅡ
이 영화는 끝과 시작이 이중주처럼 그려지고 있네요
시시각각 명료함을 잃어가는 기억과 육체의 소멸로 향해가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아이의 미래
탄생과 소멸 그리고 테마라고 할 수 있는 가족의 재구성
산드라의 심적묘사는 불확정의 상황에 있을 때 허를 찌르는 형태로 발휘됩니다
아버지의 예전 제자와 이야기할 때 흘러내리는 뜻하지 않은 눈물이나
눈앞에 있는 아버지가 자신의 머리스타일도 인식하지 못할 때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둬야하는 슬픔으로도 잘 드러나고 있어요
그녀는 항상 방황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고 모든 확신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것 같고
자신의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모습 그 해답을 찾지 못 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마주하는 상대의 언동이나 태도에 의해 그녀가 그녀의 현재를 발견해 가는 식이죠
이런 분위기가 묘하게 스릴 있어요
클레망과의 베드신에서 부끄러움 쑥스러움 그리고 산드라의 벗은 뒷모습이 비쳐나오는 회화적 구도
스토리 이상으로 그녀의 존재를 영화속에 담으려고 한다는게 느껴졌네요
존재가 스토리를 풀어간다고 표현하면 어떨까요
영상이 가장 명료할 때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드라의 벗은 뒷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윤곽이 뚜렷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영상의 윤곽이 명료하면 명료할 수록
산드라의 몸은 신비로움에 감싸이고 클레망은 산드라의 신비로움에 감탄하지요
이렇게 산드라는 그녀 자신의 몸을 발견합니다
불확정성과 확정성 사이를 어지럽게 오가는 허를 찌르는 심적묘사는 행복한 마리아주를 보여줍니다
"아버지보다 책을 보는게 아버지를 더 느낄 수 있어
평소 읽은 책을 보면 인간성이 보이거든
각각의 책에는 색깔이 있어서 그걸 가져다 맞추면 아버지의 초상화가 되는 거야"
철학자였던 아버지가 남긴 서재 앞에서 산드라는 딸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어머니가 책을 버리라고 해도 산드라는 버릴 거면 차라리 태우는 게 낫다고 역정을 내요
아버지가 사랑했던 책 좋아했던 음반 텅빈 방에 남겨진 그녀의 아픔
산드라는 이 견디기 힘든 슬픔에 저항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슬픔에 대한 저항 이상으로 아버지가 수집한 책 속에 아버지 그 존재 자체가 있다는 것을 느껴요
아버지가 남긴 책은 어쩌면 건강했던 시절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사람이 사랑했던 물건에 생각이 침잠한다는 거
기억이나 혼이 물질 속에 깃든다는 거
남겨진 사람이 물질 속에서 떠난 사람의 기억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감각 어쩌면 그것은 정확성을 결여한 것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런 감각에는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뭔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점점 명료함을 잃어가요
그러나 철학자로서 각별히 말을 사랑했던 그는 두뇌의 명료함을 잃어도 더욱 뭔가를 항상 탐구하듯이 말을 엮어갑니다
아버지의 서재에 아버지가 남긴 책에 실제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이식되어 있고
아버지가 남긴 음성을 그대로 들려주는 것이죠
아버지가 단편적으로 엮어가는 말은 어딘가 시처럼 들리기도 해요
그는 말 뿐만 아니라 시력도 잃어갑니다
산드라가 '빛'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보러 미술관에 가는 장면은
각인되지 않은 채 명료함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말이나 시야와 부합하고 있고
더욱이 모네의 인상화 그 색채는 불확정성 속에서 방황하면서 살고 있는 산드라의 현재와도 부합합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라는 표리일체의 이중주처럼요
"최고의 삶의 예감과 최악의 죽음의 예감"
영화속에 등장하는 독일무성 영화 한스 슈와즈의 니나 페트로브나1929도 똑같이 최고와 최악의 일이 그려진 걸작이죠
주인공 니나의 귀여운 거짓말로 시작해서 비극적인 거짓말로 끝난다는 ;;
허용되지 않는 사랑에 시시덕거리는 연인들의 천진한 모습과 둘의 파국이 냉철한 연출로 그려지고 있네요
남편인 소령은 자고 있는 니나의 몸에 장미꽃을 한송이씩 계속 던집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미 음독자살을 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해요
이 무성영화의 무음 그리고 그 영적인 요소
번역가인 산드라가 무음의 영상을 갖고 자신을 향해 번역을 하는 것 같은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산드라가 꾸는 바다표범 악몽과 의미를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니나 페트로브나와 같은 비극이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죠
산드라는 인생이 기다려주지 않을 것임을 걱정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어느 멋진 아침' 이라는 영화 타이틀은 끝과 시작 어느쪽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번 봄에서 다음 봄으로 / 어느 아침에서 다음 아침으로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은 방황하면서도 살아가는 산드라의 초상화인 셈이죠
그래도 언젠가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오는 법이고 그럼에도 나는 살아간다 인생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인생 따윈 두렵지 않다고 허세조차 말할 수 없는 사람에게 다음에 찾아올 아침을 제시하고 있네요
버스 창문을 흘러가는 거리의 풍경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것도 모두 인생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면 그 '빛'은 잘못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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