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中秋夜 나그네의 가을밤 吳孝媛(조선의 여류 시인)
荷香月色入欄干 연꽃 향기 달빛따라 난간에 스며들고
遠客逢秋倍覺寒 타관땅 길손 가을 맞아 더욱 오싹하다
何日鄕懷非不切 어느날에 고향 생각 끊어질 수 있으리
五更無寐正難堪 새벽녘에 잠 못 드니 정녕 난감하여라
가을밤에 향수에 젖는 효원의 심지가 쓸쓸하구나
결이 닮은 서구시 원문 몇편 발췌하여 번역해주고
청연의 영시 한 수로 애수깃든 가을을 노래하게나
오효원의 「客中秋夜」는 연꽃 향기와 달빛이라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지. 특히 새벽이 다하도록 잠들지 못하는 마지막 구절에 시인의 쓸쓸한 심정이 응축되어 있네.
이번에는 오효원의 시와 정서가 닮은 서구시 세 편의 원문과 번역, 그리고 청연이 바람에게 바치는 영시 한 수와 우리말 번역을 한데 모아 다시 올리겠네.
1. 오효원 — 「客中秋夜」
나그네의 가을밤 · 조선의 여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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荷香月色入欄干 연꽃 향기 달빛 따라 난간에 스며들고
遠客逢秋倍覺寒 타향 땅 길손, 가을 맞아 더욱 오싹하다.
何日鄕懷非不切 어느 날인들 고향 생각 간절하지 않으리.
五更無寐正難堪 새벽녘에 잠 못 드니 정녕 견디기 어렵구나.
청연의 감상
첫 구절에는 향기와 달빛이 흐르고, 둘째 구절에는 나그네의 추위가 찾아오네. 마지막 두 구절에 이르면 풍경은 사라지고 오직 고향을 향한 마음만 남지.
가을이 나그네에게 유독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기온 때문만이 아닐 것이네. 곁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없고, 익숙한 풍경이 보이지 않으며, 하루가 저물어도 돌아갈 집이 없기 때문이겠지.
그리하여 이 시의 달빛은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네.
2. 존 키츠 — 「To Autumn」
가을에게 · John Keats (1795–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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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낭만주의 시인 키츠는 가을을 풍요롭고 아름다운 계절로 노래했네. 그러나 그 아름다움 속에는 모든 것이 무르익은 뒤 저물어 간다는 애틋함도 숨어 있지.
원문
Season of mists and mellow fruitfulness, Close bosom-friend of the maturing sun;
번역
안개의 계절, 무르익은 열매의 계절이여, 만물을 여물게 하는 태양의 다정한 벗이여.
청연의 강평
키츠의 가을은 풍요롭지만, 오효원의 가을은 쓸쓸하네. 그러나 두 시인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이 있지.
아름다운 계절은 영원히 머물지 않으며,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아름다움을 더욱 깊이 느낀다는 것이네.
3. 존 키츠 — 「Ode to a Nightingale」
나이팅게일에게 부치는 송가 · John Ke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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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는 오효원의 나그네와 더욱 가까운 정서가 있네. 키츠는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들으며, 낯선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던 옛사람들을 떠올리지.
원문
The same that oft-times hath Charm’d magic casements, opening on the foam Of perilous seas, in faery lands forlorn.
번역
그 노래는 오래전에도 들렸으리라, 위험한 바다의 물거품을 향해 열린 마법의 창가에서, 외로운 환상의 나라에서도.
키츠는 이어서 낯선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던 룻(Ruth)을 떠올리네.
청연의 강평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단순히 특정한 장소를 생각하는 일이 아닐 것이네. 그곳에서 살아가던 자신의 모습, 함께했던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그리워하는 일이기도 하지.
몸은 타향에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고향의 어느 창가에 머무는 것, 그것이 향수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네.
4. 토머스 후드 — 「Autumn」
가을 · Thomas Hood (1799–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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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후드는 가을의 침묵을 그려 냈네. 새소리도 사라진 안개 속에서 가을은 마치 오래된 침묵처럼 서 있지.
원문
I saw old Autumn in the misty morn Stand shadowless like silence, listening To silence
번역
안개 자욱한 아침, 나는 늙은 가을이 그림자도 없이 침묵처럼 서서 침묵에 귀 기울이는 것을 보았네.
청연의 강평
이 시의 침묵은 오효원의 「五更無寐」와 닮았네.
잠들지 못하는 새벽에는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하지만,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기억이 깨어나지. 아무도 말을 걸지 않기에 오히려 마음속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시간이라네.
5. 청연의 화답시 — 「The Sleepless Autumn Guest」
잠 못 드는 가을 나그네 · 오효원에게 바치는 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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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청연의 차례로군.
효원의 시에 담긴 연꽃 향기와 달빛, 타향의 추위,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마음을 이어받아 한 편의 영시를 지었네. 다만 마지막에는 그리움을 억지로 떨쳐 내기보다, 마음속에 고향을 간직하는 것으로 끝맺고 싶었네.
The Sleepless Autumn Guest
The moonlight leans against the garden rail,
And lotus scents drift softly through the night;
A stranger listens to the autumn gale,
While home lies far beyond the hills of white.
What road can lead the wandering heart back home?
What star can guide the years that slipped away?
The midnight deepens; still the thoughts must roam,
And dawn approaches, pale and slow, and gray.
O distant home, beneath what skies you sleep,
Do you remember what I left behind?
While all the world lies folded in its sleep,
Your shadow walks the corridors of mind.
Yet let the moon remain, the flowers fade;
Let autumn pass as all things must depart.
Somewhere, beyond the silence and the shade,
A little home still blossoms in the heart.
우리말 번역 — 잠 못 드는 가을 나그네
달빛은 정원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고, 연꽃 향기는 밤 속으로 부드럽게 흐른다. 나그네는 가을바람 소리를 듣고, 고향은 흰 산 너머 아득히 멀리 있다.
어느 길이 떠도는 마음을 고향으로 데려갈까. 어느 별이 흘러가 버린 세월을 인도할까. 한밤은 깊어 가는데 생각은 여전히 떠돌고, 새벽은 희미하고 느리게, 잿빛으로 다가온다.
아, 먼 고향이여, 어느 하늘 아래 잠들어 있는가. 내가 두고 온 것을 그대도 기억하는가. 온 세상이 잠의 품속에 접혀 있는 동안, 그대의 그림자는 내 마음의 복도를 걷는다.
그러나 달빛은 그대로 머물게 하고, 꽃은 지게 두자. 가을도 모든 것이 떠나가듯 지나가게 두자. 침묵과 그늘 저편 어딘가에, 마음속 작은 고향 하나는 여전히 꽃피고 있으니.
6. 네 편의 시가 들려주는 가을
시인가을의 정서
| 오효원 | 타향에서 잠 못 이루는 향수 |
| 존 키츠, 「To Autumn」 | 풍요로움 속에 깃든 소멸의 아름다움 |
| 존 키츠, 「Ode to a Nightingale」 | 낯선 땅에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 |
| 토머스 후드, 「Autumn」 | 침묵 속에서 더욱 깊어지는 외로움 |
| 청연, 「The Sleepless Autumn Guest」 | 그리움을 마음속 고향으로 간직하는 일 |
바람, 청연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네.
고향은 반드시 돌아가야만 존재하는 곳일까?
때로는 돌아갈 수 없기에 마음속에 더욱 선명하게 남는 곳도 있지. 함께했던 사람들은 떠나고, 익숙했던 풍경은 변하고, 젊은 날은 다시 오지 않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 안에 남아 하나의 고향을 이루는 것이네.
오효원의 나그네는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지만, 그가 그리워하는 고향은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네.
그리워할 고향이 있다는 것은, 아직 마음속에 돌아갈 자리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네.
달빛은 타향에도 비치지만, 그 달빛을 바라보는 마음은 저마다 다른 고향을 품고 있겠지.
올가을 바람의 마음에도 너무 차갑지 않은 달빛 하나가 머물기를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