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을 개방한다니! --- 외국인 고용허가 법안은 폐기되어야 한다.
지난 7월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예산안과 새 특검 법안을 처리하고 난 후에 예고도 없이 갑자기 외국인 고용법안이 상정되어 올라 왔다. 나는 이 법안이 그동안 찬반의 여론 속에 심의가 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라의 장래를 위해 결코 고용허가제가 도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상정법안을 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속에는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수정안이 만들어졌으므로 지도부는 쉽게 통과될 것으로 믿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법안을 반대하는 몇몇 의원들이 반대토론을 하자 당황한 지도부가 그 날 처리되는 것은 일단 유보시켰다. 그러나 현재의 추세라면 이 법안이 통과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날 반대토론의 관점도 기껏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면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는 정도에 머물러 있었으니 말이다.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고용허가제를 시행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노동시장을 개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시장을 개방한다! 이 경천동지 할 일대 사건이 지금 그 의미도 모른 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에는 이토록 중대한 사건의 의미를 감지하고 이를 차단시킬 국가 전략기능이 정부나 정당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를 막을 힘이 나에게 없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내가 노동부 장관으로 일하던 93년 제네바에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타결을 향해 마지막 진통을 거듭하고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농산물시장 개방문제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농민들이 격렬한 시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이 협상 타결로 출범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지만, 당장 고사 위기에 처할 우리의 농업과 농민들의 생존문제에 대하여 어떤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그때 고심하는 협상 팀의 대표에게 이런 아이디어를 말한 일이 있다.
협상을 주도하는 미국에게 이렇게 말하라. 왜 당신들은 당신들에게 유리한 상품, 서비스, 자본, 금융, 농산물 등의 시장개방만을 요구하는가. 노동시장도 함께 개방하자.
그렇게 제의하면 미국의 입장에서 노동시장을 절대 개방할 수 없을 것이니, 농산물시장의 개방압력에 어느 정도 유리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우리 협상 팀이 실제로 그러한 전술을 구사하였는데, 미국의 반응은 우리의 의표를 찔렀다고 한다.
아니 그것이 한국의 진정한 의도인가. 중국이 우리에게 이미 노동시장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시장을 개방하면 미국도 견딜 수 없지만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가 볼 때 한국도 중국을 비롯한 값싸고 거대한 해외 노동력의 유입으로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협상 팀은 다시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 다른 모든 시장이 개방화되는 추세이다. 그러나 그 개방을 선도하는 선진국들이 한사코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시장이 바로 노동시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그 문을 열겠다고 하니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다른 선진국들이 볼 때 대한민국은 정말 이성의 힘으로 나라를 경영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선진국 가운데 독일이 60년대 노동시장을 개방한 경험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호사와 광부가 다수 독일의 노동시장에 진출하였다. 그 후 독일의 노동시장에는 600만 명까지 외국인 노동자가 진출하였다. 통일 전 서독의 인구가 6,000만 명이었으니 단순인구에 비해서도 10%이고, 취업인구에 비하면 15%가 넘는 엄청난 외국 노동력의 유입이었다. 독일 정부가 이러한 현상을 의도하거나 예상하지는 못 하였을 것이다. 노동시장을 개방하면 해외 노동력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압력으로 정부의 통제는 점점 약화되고 결국 국내 노동시장은 이렇게 왜곡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왜곡만이 문제가 아니다. 노동력은 노동자의 몸과 마음에 일체화되어 있다. 우리사회에 들어 온 노동자가 단순히 노동력을 팔고 임금을 얻어 때가 되면 자기나라로 돌아가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문화적 존재이다. 우리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뿌리를 내리고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다. 단일 민족국가의 사회에서 이질적인 문화와의 충돌로 벌어질 갈등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 갈등을 수습하는데 들어갈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독일이 오늘날 외국 노동자들을 자기나라로 돌려보내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과 고통을 감수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고용허가제 자체를 폐기하려 한다.
여기에 비하여 일본은 어떠한 전략을 선택했던가. 그들 또한 60년대에 독일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값싼 해외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공장들을 해외로 이전하고, 기업의 혁신을 도모하는 등 새로운 산업정책과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그 갈증을 풀어나갔다. 지금도 일본은 노동시장을 닫아놓고 일부 해외인력이 연수 등의 명목으로 사실상 불법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묵인하고 있는데, 이것도 15만 명이 넘으면 득달같이 단속을 강화해서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다.
이렇게 또렷이 다른 길을 간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여 보자. 현재 독일의 경제, 산업, 기업 그리고 노동시장의 사정이 일본의 그것보다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평가를 내리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더욱이 일본에는 독일이 겪고 있는 문화적 충돌과 사회적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굳이 독일이 선택했던 실패의 길을 가려 한다. 무슨 되지도 않는 대만과 싱가포르의 예를 들면서 말이다. 왜 이런 맹목이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노동부 장관으로 일할 때 이른바 3D업종의 인력난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 업종의 중소기업에서 연일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노동시장의 개방은 불가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이 어렵고 위험한 일을 기피하는 노동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경제계와 경제관련부처에서는 끈질기게 요청하고 법무부 등 사회관계부처에서는 반대했던 산업연수생제도를 앞장서서 도입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결코 노동시장 개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도적이고 잠정적인 조치에 불과한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해 중소기업들이 다소나마 값싼 해외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되어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면 그 숫자가 늘어날 수는 있을지언정 임금이 저렴하다는 이점은 사라지게 된다. 우리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그 숫자뿐만 아니라 임금의 수준이 문제인 것이다. 값이 싸지 않으면 아무리 풍부한 노동력이 있어도 중소기업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우리의 중소기업도 세계의 모든 중소기업과 국내시장에서조차 무한의 경쟁을 해야 하는데 중국의 노동자를 우리 노동자의 임금으로 고용한다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경제단체에서는 이 법을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노동부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에는 산업연수생을 제외하고도 28만 여명의 불법체류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고용허가제를 도입해야만 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무슨 궤변인가. 법무부가 출입국관리법을 적용하여 불법체류자를 색출하여 내보낼 수 없다면, 노동부가 고용허가제의 틀 안에서 무슨 수로 밀려드는 불법체류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일본은 15만 명 선에서 사실상 불법체류자의 수를 통제하며 자기나라 사회의 안정을 지켜나가는데 우리는 고용허가제 없이 이것을 할 수 없단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묵인할 수 있을 정도의 불법체류자를 10만 명 수준으로 정한다면 현재의 28만 명을 일시에 10만 명으로 줄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기업에도 엄청난 충격을 주게 되고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하는가. 10년 정도 계획을 세워 기업에 가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불법체류자 수를 연차적으로 줄여나가면 될 것이다. 그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이 법안이 처음 국회에 제출될 때 해외불법취업근로자들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것이 그 주된 명분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야말로 인종이나 성별 그리고 국적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도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적 기본권에 있어서 통용되는 생각이다.
사회적 기본권에 있어서는 그 사회가 정하고 있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를 받을 뿐이다. 우리나라가 노동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출입국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는데, 불법으로 체류하면서 취업하고 있다면 이들에게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한 불이익이 가해지고, 국내 노동자와 똑같은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같은 인간이고, 같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똑같이 대우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특히 그러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하여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고 노동시장을 개방하겠다는 생각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비과학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언제 해외인력을 강제로 데려다 노예노동이라도 시키고 있단 말인가. 현실적으로 비록 불법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들이 자연적 기본권이 유린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또 임금을 떼이지 않고 작업 중 죽거나 다쳤을 때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들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것을 명분 삼아 노동시장을 개방하자고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잘못된 발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해 둔다.
농산물시장을 개방한다고 하면 농림부와 농민단체들이 앞장서서 반대하고 투쟁을 한다. 마찬가지로 노동시장을 개방한다고 하면 노동부와 노동단체들이 반대투쟁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놀랍게도 노동부와 노동단체들이 노동시장 개방에 앞장서고 있으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세계 모든 나라가 노동시장을 개방한다면 우리 노동자들도 해외에 나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므로 문제될게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문을 닫아놓고 우리만 노동시장을 열면 결국 우리 노동자(현재와 미래)들의 일자리를 이들에게 빼앗기게 되고, 또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결정되는 임금의 수준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텐데 왜 그들은 반대하지 않고 찬성하고 있을까.
혹시 노동부는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불법체류근로자들을 고용허가제의 틀로 묶어 현재 법무부의 관할로 되어 있는 것을 노동부의 관할로 옮기게 되면 그만큼 일도 많아지고 조직도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또 노동단체들은 현재 사실상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수십만 명의 해외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합법적 신분을 획득하게 되면 그 조직에 가입시킬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조직에 큰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닌가.
나의 이러한 생각이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생각하기 바란다. 우리의 노동시장을 인종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기업이 강해질 것인가. 경제가 도약할 것인가. 우리 국민에게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인가.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우리사회가 더 튼튼해질 것인가. 이 모든 물음에 대해 역사적 경험이나, 냉엄한 현실이나, 우리의 건전한 이성은 그렇지 않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일을 결정해 나가면 결국 쇠퇴하게 된다. 오늘 우리사회에서 진퇴양난에 빠져있는 새만금간척사업을 보더라도 그 사업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감정에 치우쳐 결정되었던 것인가. 조금만 앞을 내다보았더라도 농토를 확대하기 위하여 수천만 년에 걸쳐 형성된 소중한 갯벌을 없애는 이런 어리석은 결정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수십조 원의 비효율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경부고속철도사업도 우리 국운을 어둡게 하는 어리석은 결정의 좋은 본보기이다. 그 엄청난 재원을 지식기반경제의 구축을 위하여 저 중국의 상해 포동이나 말레이시아의 MSC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 투자했더라면 한국의 운명은 크게 달라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시장을 개방하는 일은 이러한 몇 개의 잘못된 사업을 결정하는 일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반드시 크나큰 후회를 남기게 될 어리석은 결정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어찌하여 이렇게 국가경영의 비전과 전략이 전무한 나라가 되었는지 통탄스럽다.
뜻 있는 분들의 투쟁으로 반드시 이 법안이 저지되어야 할 것이다.
2003. 7. 20
이 인 제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