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기온이 영하10도이고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토요일이다.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남편은 수화기를 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와 같이 있을 때는 전화를 받지 않기에 받아보라 소리쳤다. 수화기를 귀에 댄 채 대답을 쉽게 하지 못하고 있다. 궁금하여 다가가자 “수지어미”라며 수화기를 내민다.
전화를 받자 딸은 서울대공원에 가잔다. 남편을 바라보았다. 별로가고 싶지 않은 표정이다. 전화를 끊고 손녀와 함께 가는 놀이공원이니 가자고했다. 묵묵부답이다. 나는 또 억지소리를 남편에게 했다. 딸을 키우면서 한 번도 가지 않은 것이 미안하지 않으냐고 했다. 못 들은 척 하던 남편은 손녀의 기뻐하는 얼굴이 그리운지 따라나섰다. 우리는 사위가 있는 장소로 갔다. 손녀는 차에서 내리는 할아버지를 보자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손녀와 함께 도착한 서울대공원은 관악산을 바라보며 과천경마장 한편에 청청(淸聽)하게 자리 잡고 어린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장소이다. 어찌 보면 하늘을 안고 관악산을 울타리로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듯 포근하게만 보였다. 상쾌하고 맑은 겨울하늘은 어린손녀에게 무한한 꿈을 주는 최상의 선물이었다. 손녀는 할아버지와 함께한 나들이가 기쁜지 넘어질듯 달려가는 모습이 발 빠른 백조 같았다.
손녀의 뒤를 쫓아 달리는 장인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사위가 대견해 보였다. 어느 집이나 할부지의 손 주사랑은 예전이나 현재나 변함없이 숭고하다. 우리네 젊었을 적에 자식에게 못해줌이 미안하고 후회스러워 더욱 손자손녀를 사랑하는지 모르겠다. 흐린 날씨와 싸늘한 바람은 손녀의 나들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더욱 매섭게 다가왔다. 바람도 피할 겸 점심을 먹으러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음식이 나오자 자기 입에는 넣을 줄도 모르고 손녀에게 한 입이라도 더 넣어주려 티격태격 한다.
그 모습을 보자 시골집 처마 밑에 붙어있는 제비들의 삶이 생각이 났다. 십여 년 전의일이다. 시댁에 시어머니 생신이라 내려가 있었다. 안방에 누워 망중한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짹짹 거리며 제비 한 쌍이 드나들더니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 아비제비와 어미제비는 부지런히 오고가며 입에 개흙과 짚을 물고 왔다. 넓적하게 앞으로 튀어나오며 붙여오더니 마무리를 사람의 손으로 올려놓은 것처럼 안으로 오목하게 둘려쌓는 것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신기했던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새끼를 너 댓 마리 낳았다. 새끼들의 먹이를 물고는 짹짹거리는 입에다 넣어주더니 또 먹이를 물고 와서 먹여주는 장면이 너무 위대해 보였다.
손녀가 입을 크게 벌리며 할아비가주는 음식을 받아먹는 표정이 시골집제비가족을 생각나게 했다. 무엇을 더 잘해줄까 하는 표정이 눈에 보였다. 조금 후 순환버스를 타고 맹수울이 쪽으로 갔다. 호랑이를 보기위해서다. 생후 22개월인 손녀가 ‘호비호비’하며 신기해함이 귀여웠다. 제철을 만난 맹수의 어슬렁거림을 보고 손녀는 박수치며 신기해했다. 제대로 발음도 안 되는 소리로 ‘어흐! 어흐!’ 하며 즐거워한다. 찬바람도 손녀의 동심을 아는지 우리가 관람하는 동안 잠시 소리를 죽이고 함께 구경하는 것 같다.
영하의 날씨 속에 삼대가 어울려 다니는 모습을 맹수들의 눈에도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다. 사년 전 이맘때쯤 중국북경 여행을 간적이 있었다. 남편의 몸이 아팠지만 괜찮다고 하기에 설마하며 떠난 것이 화근이었다. 남편은 다리에 경련이 일어난다며 걷지도 못 했다. 환자 때문에 힘들어했던 주위 분들과 당황해 했던 일이 생각났다. 가이드가 어르신 어르신하며 주물러 줄때의 일과, 일행 중에 이런 분이 어떻게 여행을, 하던 표정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간이식수술로 새 삶을 살고 있지만, 그 때 그 추위와 고통을 생각하자 오늘 이곳의 추위 속에 손녀를 귀여워하는 남편이 멋지고 든든해보였다. 그 때 나는 하늘을 향해 ‘신이시여!’하며 부르짖었던 일이며, 안타까워 가슴을 치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제는 건강한 몸처럼 살고 있지만 무리 하지 말라는 말이 늘 나를 따라 다닌다.
그 추운 겨울에 없었던 손녀가 다칠까봐 염려하는 할아비의 마음을 얼마큼 크면 알 수 있을까, 자식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더 주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이 한겨울의 추위도 녹일 것 같다. 누가 ‘자식 사랑을 내리사랑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삼대가 같이한 나들이는 그 무엇과 비교도 안될 만큼 따스한 사랑의 열매였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날씨가 추워 아쉬웠는지 딸은 자꾸만 날이 풀리고 개나리가 활짝 피는 봄날에 다시 오자한다. 내색은 안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못 오더라도 딸네가족끼리 다시와서 더 자란손녀가 힘차게 걸어 다니는 의젓함이 더욱 멋진 일이라 생각했다.
할아버지와 돌아본 서울대공원은 손녀가 있었기에 더욱 귀한 시간이었다. 놀이공원 안에 있는 서울랜드는 날씨가 춥기에 개장을 하지 않았다. 어린 손녀가 타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놀이기구를 태워주지 못함이 아쉬웠다. 봄에 다시 오자는 딸의 말과 손녀가 더 큰 뒤에 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건강해진 외할아버지가 손녀의 손을 잡고 동행했기에 더더욱 보람된 삼대의 서울공원 나들이가 되었으리라. |
첫댓글 반갑습니다. 좋은 인연 맺어서 좋은시간 만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