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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쓴 진도 이야기 13회 올립니다.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5월 23일(월)
새벽 4시에 기상. 잠시 텐트 안에서 미기적거리다가 막 텐트를 철거하려는데 밖에서 드르륵 거리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온다. 귀 기울여 본다. 바로 옆에서 새벽 운동하는 기계음 소리다. 벌써부터? 잠은 언제 자고 꼭두새벽부터 와서 또 운동인가? 대단하다 진도군민들. 하지만 나는 난처하다. 저분들이 보는 앞에서 텐트를 철거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벽운동 동료가 와서 가세한다. 간밤에 못다한 수다까지 떨어가면서다. 엎친데덮친격이라더니 오늘 이 순간이 꼭 그렇다. 엎질러진 물. 하는 수 없다. 텐트 밖으로 나가 철거하기로 한다. 먼저 인사를 하니 받아는 준다. 운동을 계속 하면서도 시선은 나에게서 떠나질 않는 것 같다. 뒤통수가 이렇게 간지럽기도 처음이다. 배낭을 다시 꾸려 정자 기둥에 세워놓고 공원 내 공중화장실로 가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바로 버스터미널을 향해 내려간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넓은 길. 좌우에는 상가 건물이 즐비하다. 한때는 진도읍에서 가장 번화하고 분주했던 거리이기도 하다. 좌측을 따라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다가 좌측 안쪽으로 길게 들어가는 골목도 발견하고 조금 더 내려가니 역시 좌측에 좁은 공터도 보인다. 생각난다. 이곳이 옛날에는 진도버스터미널이었다. 그때는 이곳을 차부라고 불렀었다. 사거리 상가들도 많이 바뀌었다. 우측에는 맛깔나게 하던 음식점이 있었는데 보이지 않고 서점이 새로 들어섰다. 진도읍의 중심지였던 이곳 사거리. 이제는 그 지위를 남동리로 넘기고 구도심으로서의 찬란했던 흔적과 이야기로만 남게 될 것이란 어렵지 않은 예측을 해본다. 세상 일이, 이치가 다 그런 것 같다. 세월이 흐르면 변하게 된다는. 새로운 의자는 계속해서 대기하고 있다는. 그게 또 자연스러운 것 같다. 우리 인생도 그럴 것이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대도시를 제외한 지방 버스터미널은 어디든 대동소이하다. 비교적 그 지역에서는 번화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렇지만 겨우 서너 대의 버스만을 주차할 수 있는 그런 좁은 공간만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곳 진도만은 예외다. 공간도 넓거니와 터미널 내에 2층 상가까지 갖추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터미널 위치가 도심 한가운데를 벗어나 비교적 공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면서도 외부와의 연결이 편리하게 된 그런 곳에 자리잡고 있다. 먼 미래를 내다본 도시계획에 의해 배치된 것이다.
터미널 내에서 의외의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인력소개소 앞에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모습이다. 오늘 일자리를 낙점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근로자들이다. 이런 광경을 도시의 어떤 곳에서 간혹 보기는 했지만, 그 줄에 서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내국인이었다. 그런데 외딴 섬 진도에서 외국인근로자가 인력소개소 앞에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정말이지 뜻밖이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진도가 일거리가 많아서인가? 일손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불법 입국자의 도피처라도 된단 말인가?
이런 현상을 보면 진도도 이젠 인구 정책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진도의 적정 인구가 얼마일까? 1985년도에 7만 2천명이던 진도의 인구가 현재 3만 2천명으로 줄어들었다. 엄청나게 감소한 수치다. 줄어든 인구 때문에 문제는 없는지? 늘려야 할 필요성은?
군청 관계자는 오늘 아침 인력대기소 앞의 긴 줄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터미널 벽면에 부착된 버스 요금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팽목까지는 2700원을 받는다. 너무 많다는 생각이다. 군내버스가 군내 지역을 가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받는 이유나 근거가 뭘까? 어제 녹진에서 이곳까지 오는데는 1600원이었다. 더구나 그 버스는 시외버스였는데도. 전국을 다 다녀봐도 군내버스가 1600원을 넘는 곳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이상한 것은 또 있다. 버스 시간표에는 팽목행 버스 첫차가 6시로 표기되어 있지만, 출발은 6시 10분에 한다고 버스기사가 육성으로 방송을 한다. 시간표가 잘못되었는지, 버스 기사가 잘못되었는지?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자주 나와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외지인의 눈에…….
6시 10분에 출발한 팽목행 버스는 이곳저곳을 다 돌고 돌아 팽목에는 7시가 되어서야 도착한다. 이곳에서 조도로 들어가는 첫 배는 7시 30분에 있다. 선착장 앞에는 배에 실을 자동차들이 일렬로 쭈욱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있어 잠시 세월호 희생자 추모현장을 들른다. 유가족인지 관광객인지 나보다 먼저 와있는 사람들이 있다. 칸칸마다 걸려있는 세월호 애도 깃발과 리본들은 사고 현장을 향해 힘없이 나부끼고 있다. 가슴을 울리는 수없이 많은 애도 글귀들. 그중에서도 가장 참기 어려운 고역은 티 없이 맑은 미소를 띠고 있는 앳된 학생들의 사진을 봐야만 하는 일이다. 내 마음이 이럴 진데, 정작 희생자 부모님들은…….
* 팽목항 세월호 사건의 아픔을 달래는 곳
팽목항엔 바닷가 특유의 바람이 일고 있다. 내일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서일까? 약간 구름이 낀 날씨다. 덕분에 덥지는 않다.
팽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쉬지 않고 출렁이는 바닷물도 그대로이고, 고자
배에 올라서서는 선실에 들어가지 않고 어류포항에 도착할 때까지 선실 밖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세월호 침몰 현장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였고, 나중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상조도와 하조도를 잇고 있는 조도대교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조도에 대한 설렘, 조바심 때문이기도 했다. 짧은 체류 시간에 다 둘러봐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머릿속은 벌써부터 계산이 복잡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돌아야 할까? 동선을 고민해 본다. 그 옛날 기억들은 얼마나 떠오를까? 그동안 많이 변했을까? 거리와 주택들과 사람들이 제일로 궁금하다.
배는 더 이상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뱃고동을 울려버린다. 어류포항에 도착한 것이다(08:10).
32년 만에 다시 찾은 조도면
178개의 섬
조도대교
관매8경
조도 땅에 발을 딛는다(08:15). 실로 몇 년 만인가! 그런데 왜 이리 적막하지? 배에서 내린 사람들의 짧은 웅성거림이 끝나자 항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조용해진다. 아주 얌전한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내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뭔가 북적거리고, 누군가 기다리며 사람을 찾고 있는 장면들이 여럿 보이고, 또 감탄이라도 할 만한 그런 신식 건물이 떡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할 것으로만 기대했었는데……. 아, 이게 아니구나……. 나 혼자서만 꿈을
꿨던 것 같다.
창유항이라고도 부르는 어류포항은 진도 팽목항에서 서남측 해상 약 10 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는 조도면의 중심 항구이다. 1972년도에 지방어항으로 지정되었다. 오늘 다시 보게 된 어류포는 30여년이 흐른 긴 세월에 비하면 큰 변화는 없다. 매표소 건물이 신축된 것 같고, 도로가 조금 넓어졌고, 평일인데도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변화라면 작은 변화다.
어류포항의 햇살은 맑다. 바닷가라서 일까? 맑은 햇살만큼이나 몸도 가볍다. 좀 전의 어류포항에 대한 첫 인상은 잊기로 하고 창리로 향한다. 창리로 넘어가는 길가에 어류포 마을 표석과 경로당이 보인다. 이 길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여전히 가파르다. 그 옛날 힘겹게 오르던 이 고개가 새삼스레 생각난다. 고개를 넘어서니 어류포 삼거리에 이른다. 교통 표지판이 있다. 우측으로 조도대교가 3.0, 좌측으로는 하조도 등대가, 직진으로는 신전해변이 4.0킬로미터라고 알린다. 그때도 이런 교통 표지판이 있었던가? 없었을 것이다. 기억이 가물가물 한다.
고개를 내려서니 바로 창리 마을표석이 나타나고 이어서 골목으로 이어진다. 조도면 소재지인 창리마을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하는 모습들이 속속 나타난다. 어쩌면 예전 골목 꼭 그대로일까. 주택들도 마찬가지다. 좁고 삐툴삐툴한 골목과 자그마한 주택들은 예전 그대로다. 신기할 정도다. 3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쯤에 우체국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보이지가 않는다. 우체국 자리를 생각하다보니 옛일이 생각난다. 이곳에서 공무원 초년병 시절의 일이다. 설 명절을 맞아 우체국 집배원 전원에게 양말 세트를 선물한 적이 있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는 모르
* 조도면 창리 사거리. 우측에 청조마트가 보인다.
지만, 우체국을 찾아가 집배원 전원에게 전해달라고 선물 꾸러미를 놓고 온 적이 있다. 이것과 관련해서 나중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런 나에 대해서 내 직장은 물론 주변에서조차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직장 내에서의 나의 지위나 경제적인 면에서나 내가 할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내 추측이다. 지금 생각해도 좀 독특하기는 했다. 그러나 순수한 마음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하루 종일 걸어 다녀야만 하는 집배들의 딱한 모습만을 생각했었던 것이다.
잠시 후에 창리에서도 가장 번화하다는 창리 4거리에 들어선다. 좌측에 ‘청조슈퍼’가 있었는데 이젠 ‘청조마트’로 이름만 바뀌어 그 자리에 있다.
바로 면사무소 쪽으로 향한다. 면사무소 정문 앞에서 안을 들여다본다. 아직 출근 전이라 사람들은 보이지가 않고 주변은 조용하기만 하다. 면사무소는 정문이 바뀌었고 건물도 신축된 것 같다. 이곳에서도 나의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진다. 변화가 아니라 당시의 현상 유지 정도라는 생각이다. 정말이지 나의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이럴 게 아니다. 어디에 들어가서 마음을 다잡고 오늘 이동 일정을 차분하게 정리해야 될 것 같다. 이른 아침이라 마땅히 들어갈 곳이 없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뜻하지 않은 건물을 발견한다. 우체국이다. 예전에는 어류포에서 창리로 들어올 때 골목 우측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우체국이 면사무소 근처로 옮긴 것이다. 건물도 신식이고 훨씬 큰 규모로. 출근 전인데도 우체국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의아해서 들어가 본다.
우체국 민원 데스크 앞에는 크고 작은 소포물들로 가득하다. 그 앞에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컨베이어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사람들이 출근 전부터 북적거린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놀랍다. 서울의 어느 우체국에서도 보지 못한 현대식 시스템을 작은 섬 안의 우체국에서 보게 되다니. 그렇다면 조도에도 내부적으로는 모두 이렇게 변화와 발전이 있다는 암시일까? 좀 전의 판단은 겉만 보고 쉽게 예단한 나의 실수일까? 실수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다가 아니다. 한쪽 구석의 커피 자판기 앞에서는 우체국 직원이 커피를 뽑아 민원인들에게 서비스를 하고 있다. 출근 전인데도 말이다. 큰 배낭을 짊어지고 들어선 이방인인 나에게까지 모닝커피를 대접한다. 감동 그 자체다.
민원석 빈자리에 앉아 오늘 일정을 정리해 본다. 왼손엔 모닝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고서다. 원래는 이번 일주 길에 상, 하조도를 모두 답사할 계획이었지만 하조도 9개 마을만 방문하기로 한다. 아쉽지만 배 출항 시간과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 시간 때문이다.
자판기 커피를 한잔 더 빼들고 우체국을 나선다. 주변을 좀 더 둘러보고 이곳 창리마을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업소가 많이 보인다. 중국음식점, 화원이 보이고 미장원과 민박집은 아주 자주 나타난다. 지나치면서 흘낏 훔쳐보니 면사무소 안에는 여러 대의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다. 면사무소에 자동차가 주차되었다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30년이란 세월이 조도를 그대로 놔두지는 않은 것 같다.
조도면은 진도 팽목에서 여객선으로 4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있는 섬 중의 섬이다. 진도읍을 중심으로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고, 조도면의 동쪽은 지산면, 임회면과 닿고 북쪽은 신안군 하의면과 장산면에 닿는다. 면 전체가 178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유인도는 36개, 무인도는 142개다. 그 섬만으로 하나의 면을 이루고 있으며, 전국의 읍면 중에서 섬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약 3153개의 섬(그중 464개가 유인도)이 있는데, 이 조도면의 섬이 178개라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섬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조도면의 전체 면적은 57.20㎢로 진도 전체의 13.0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섬 안에 39개의 마을(법정 리는 23)이 있고 그 마을 안에 3,245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는 진도 전체 읍면 중에서 가장 적은 수치이다. 조도면은 3개의 큰 섬과 나머지 작은 섬들이 모여서 이루어져 있다. 조도면의 178개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자 면 소재지가 있는 하조도에는 명지, 창유, 어류포리, 육동, 신전, 읍구, 유토, 산행, 곤우 등 9개의 마을이 있다. 두 번째로 큰 섬인 상조도에는 당도, 맹성, 동구, 율목, 여미 등 5개의 마을이 있고, 세 번째로 큰 섬인 관매도에는 관매, 관호 마을이 있다. 나머지 마을들은 대부분 하나의 섬에 하나의 마을이 있거나 일부는 2~3개의 마을이 있는 곳도 있다.
조도면 인구의 57.8%가 하조도, 상조도 그리고 관매도의 3개 섬에 살고 있다. 하조도는 조도면의 중심지로서 전체 인구의 38.8%인 1,244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대분의 행정기관도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면사무소는 물론 조도 초·중·고등학교, 조도파출소, 조도우체국 그리고 조도 119지역대, 서진도농협조도지점, 진도군수협 조도지점, 전우실업(주) 조도내연발전소, 진도군 보건소 조도지소 등의 행정기관과 의료시설들이 이곳 하조도에 있다.
그 외 다른 섬에 있는 기관, 시설들로는 조도초등학교 대마·관사·거차 분교와 진도서초등학교 가사분교, 통신공사 상조도중계소, 가사발전소, 거차발전소, 맹골발전소와 외병태양광 등의 시설이 있다. 또 의료기관으로는 관매도·가사도·서거차·동거차·관사도·대마도·상조도에 보건진료소 등이 있다.
조도는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주민이 많고, 애초부터 진도 본도 보다는 목포나 광주 등 육지를 생활권으로 삼고 교류나 진출을 하였다고 한다. 진도의 7개 읍면 중에서 가장 많은 어가가 있고, 가장 적은 농가가 있는 그런 면이다. 섬 중의 섬이지만 주민 생활에 필요한 행정기관이나 단체 그밖에 주민생활에 필요한 편의 시설들이 모두 있다고 보면 된다. 유치원 1개, 초등학교 5개(분교 포함), 중학교 1개, 그리고 1개의 고등학교가 있다. 7개 읍면 중에서 가장 많은 초등학교가 있는 것은 조도면이 여러 섬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또 진도 전체 사업체 2,671개의 8.6%에 해당하는 231개의 사업체가 조도면에 있다(587명이 종사). 특이한 것은 사업체 중 전기 가스 수도사업체와 음식점 및 숙박업체가 타면에 비하여 많고, 제조업체가 적다는 것이다. 명승지와 문화유적도 많다. 대표적인 명승 및 문화유적으로는 조도6군도, 관매8경(관매도해수욕장, 방아섬, 돌묘와 꽁돌, 할미중드랭이굴, 하늘다리, 셔들바굴폭포, 다리여, 하늘담), 관매도 후박나무, 신전해수욕장, 돈대봉 봉수 등이 있다
이런 조도에 대해서는 궁금한 게 너무 많다. 진도 본도와 떨어진 또 다른 섬이기 때문일 것이다. 섬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까? 진도 본도와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주민들의 주업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활들을 할까?
조도면에서도 진도 본도와 마찬가지로 선사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성남도와 하조도 읍구에서 발견된 고대 조개무지가 그것들이다. 성남도에서는 무문토기와 제주도 돌로 보이는 석기도 발견되어 이미 이 섬에 석기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조도 신육리 읍구에는 3기의 지석묘와 선돌도 있고 고려 때 고분도 있다. 가사도, 관사도, 관매도 등지에서도 돌칼, 돌도끼, 돌화살촉을 수습한 바 있다.
현 주민들의 선조들은 임진왜란 이후 해남, 진도, 영암, 영광 등지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숙종34년(1708)에는 상조도와 하조도에 관방이 설치됐었는데 그 흔적인 성터가 지금까지도 상조도 맹성리와 하조도 읍구에 있다. 신금산과 돈대산, 대붕산 등 섬의 높은 산들은 봉화불로 연락하던 돈대로 쓰였었다. 정조 이후에는 하조도에 창고를 두었었는데 지금의 창리라는 마을 이름은 그 당시의 창고에 기인한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을 제도면(諸島面)이라고 하였다. 많은 섬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조도는 1889년 면 행정구역이 세분되기 이전에는 진도면의 부속도서로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조도면과 가사면으로 분리되면서부터 독립된 면 행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폐합령에 따라 조도면과 가사면이 합면되었고, 1963년 1월 1일에는 마진도리를 신안군으로, 1983년 2월 15일에는 만재도리 및 고사도리와 평사도리를 신안군으로 이관하였다. 또 1964년 10월에는 가사출장소를 설치하였고, 1966년 6월에는 거차출장소를 설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81년에는 조도면 일대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635.06㎢, 건설부고시 제478호)되었다가 2003년 8월에는 하조도와 창유일대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서 일부 해제되기도 하였다. 또 1983년에는 만재도리 및 고사도·평사도리를 신안군으로 넘겨주어 23개리를 관할하게 되었고, 1997년에는 조도민의 오랜 숙원이었던 상조도와 하조도를 연결하는 연륙교(교량길이 510m)가 건설되어 주민들의 생활상의 편의는 물론 획기적인 조도 발전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조도를 말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섬의 아름다움이다. 아직 덜 개발되고 덜 알려져서 그렇지 이 땅의 최고 관광지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조도를 택할 것이다. 진정한 관광 명소의 숨은 진주인 것이다. 섬의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조도(鳥島)라는 이름은 마치 큰 호수에 새떼가 앉아있는 듯 바다에 섬들이 옹기종기 떠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상상해 보라. 바다 한가운데 이곳저곳에 새떼가 앉아있는 모습을…….
조도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는 사례들도 많다. 일찍이 영국 해군의 함장이었던 바실 홀은 1816년에 자신이 쓴 ‘조선항해기’에서 조도의 풍경을 극찬하였는데, 상조도의 도리산 전망대에서 바라 본 다도해의 풍경을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였다. 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영화감독 중의 한사람인 임권택 감독은 자신의 100번째 영화인 ‘천년학’의 촬영지로 진도를 택하였고 다도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 조도에서 촬영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각 언론 매체에서는 서슴지 않고 조도를 ‘한국의 하롱베이’라고 하는가 하면 상조도와 하조도를 잇는 조도대교(510미터)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라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많은 자랑거리가 있는 조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관광지가 될 것이다. 조도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조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하조도 등대, 돈대산, 도리산 전망대, 조도대교, 그리고 관매8경을 꼽을 수 있겠다.
조도면 창유리에 있는 하조도 등대는 1909년 점등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100년 넘게 어두운 바닷길을 밝혀오고 있다고 한다. 배들이 지나가는 길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등대는 무려 촛불 25만 개를 동시에 켜놓은 불빛이 반사된다고 하니 가히 그 강렬한 조도를 짐작할 수 있겠다. 특히 이 지역은 사리 때는 11.5노트 정도로 달리는 속도로 물이 빨리 흘러 등대의 역할이 그 어느 곳보다도 중요하다고 한다. 하조도 등대는 오랫동안 뱃길을 밝혀온 고마운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수려한 풍광으로도 유명하다. 푸른 하늘빛과 절벽의 하얀 등대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모습을 자아내고 기암괴석의 자태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고 한다.
하조도에 있는 돈대산은 무엇보다도 정상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황홀한 풍경들이 압권이라고 한다. 이 산 정상에서는 바다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해무와 다도해 작은 섬들이 연출하는 멋진 경관들을 맘껏 감상할 수가 있다. 이 산은 예전에는 나라의 위기를 알리는 봉수대의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고작 271미터의 높이를 가진 산인데도 불구하고 조도를 찾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추천하는 관광지 앞 순위에 들어있는 것이다.
'돈대'라는 의미는 평지보다 높직하게 두드러진 평평한 땅을 말한다. 돈대산은 창유항에서 도보로 20분쯤 가면 등산로 입구에 이를 수가 있어 접근도 아주 용이하다.
상조도 도리산 전망대는 다도해 섬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도리산은 해발 210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정상까지는 약 3.5km를 걸어야 하는데, 중간 중간에서 약수터, 쉼터, 정자 등을 만날 수 있다. 정상에 이르러 나무로 잘 조성해 놓은 전망대에 서면 말 그대로 '일망무제', 새떼처럼 바다 여기저기에 둥지를 튼 다도해의 모습이 장관이라고 한다. 관청도로 불리는 관사도를 비롯해 남쪽으로는 관매도, 서거차도, 모도, 나배도가 그리고 북쪽으로는 옥도, 성남도, 내병도 등이 올망졸망 자리하고 있는 것이 훤히 보인다. 조도가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장관이 연출되는 것이다. 도리산전망대는 상조도 여미리의 도리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조도대교는 길이가 510m인 아치형 다리로 2차선 도로로 되어 있다. 스틸 박스(steel box) 공법으로 1990년 8월 착공하여 1997년 4월에 준공하였는데, 현재 다도해상국립공원 조도지구에서는 최고의 명물로 자리를 잡았다. 이 다리를 걸어 중간지점에 다다르면 막힘없이 펼쳐지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원 없이 펼쳐지게 되는데,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으로 뽑힌 게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조도대교는 그 기능성은 물론 특히 예술성 면에서도 뛰어나다고 한다. 이 다리가 건설되면서 상조도 주민들이 조도면의 중심지인 하조도를 한결 편하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외 천연기념물 제212호로 지정된 후박나무와 관매 8경이 있는데, 이것들은 관매도 마을을 소개할 때 함께 설명할 것이다.
조도는 관광지뿐만 아니라 특산물과 유명한 낚시터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특산물로는 일찍이 궁중에 진상했다는 독거곽(자연산 돌미역)과 일본에 전량 수출되는 톳, 다시마, 우뭇가사리, 멸치 등이 있다. 또 조도는 섬 전체가 유명한 낚시터라고 볼 수가 있는데, 특히 1~3월 사이에 고기가 잘 잡힌다고 한다. 주요 어종은 도미이다. 하조도, 상조도의 해안보다는 인근 섬으로 나가 낚시를 즐기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한다. 조도에 대한 설명이 길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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