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이나《화엄경》은 방편설이 아니라는 근거 《염불삼매》
이 자리에 앉아서 여러분을 상대해서 법문할 때는
반드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에 의거해야 합니다. 이건 상식입니다.
그러나 소위 견성도인(見性道人) 정도 되면 자기만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학자들이 쓰는 학위논문은 일일이
무슨 경 어느 품에 있다고 전거(典據)를 대죠.
나 역시 지난 모든 법문이 다 경전에 사실상 있습니다. 다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부처님 신심이 훌륭한 어떤 분께서《염불삼매》를 읽은 독후감을
나한테 가져왔는데 그 논리가 정연하고 가치관이 바로 서 있는 사람이에요.
70대 노인인데 우리 신도로 있는 남자분입니다.
평가를 잘 내렸습니다. 평가를 의미심장하게 했습니다.
‘이《염불삼매》는 확실히 평가하자면 100조원 가치 이상입니다.’라고 했어요.
그렇습니다. 이《염불삼매》는《붓다의 메시지1·2》를 뒷받침하고 있고,
그리고 지금 많은 불교학자들이《법화경》이나《화엄경》을 방편설이라고 하는데
결코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쐐기를 박았습니다.
부처님은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정말로 값어치 나가는 보서(寶書)입니다.
오늘의 주제 ‘신심, 부처님 믿는 마음.’
이 신심은 여러분이 《금강경》을 배우셨겠지만
부처님 믿는 마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七寶)로
보시하는 복덕보다 크고 무량 백천만억 나유타겁토록
몸으로 보시하는 복덕보다 크다는《금강경》 말씀이 있습니다.
이 신심, 부처님을 믿는 마음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계시기 때문에 염불하는 거예요.
우리 현지사에서는 염불이 정법(正法)이라고 하는 겁니다.
염불이 정법이라는 것을 오늘 다시 확인하는 겁니다.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에 염불을 하라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 부처님은 어떤 분이냐 하는 거죠.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염불, 염불 하오?
염불이 왜 정법이라고 하는 것이요?’ 하는 것이에요.
부처님께서는 확실히 한량없는 나유타겁 전에
무량광을 스스로 발명해가지고 삼신(三身)을 구족해서 불과를 이루신 분입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근데 이걸 방편설이라고 하거든요.
왜 그러느냐?
부처님이 대열반에 드신 이후 지금까지 부처님을 직접 뵌 분은 없어요.
그 누구도 못 보았어요.
그 유명한 용수, 그 전의 마명, 그 후 무착, 세친, 못 봤어요.
용수는 ‘공(空), 공’ 했습니다. 마음을 비우라는 거죠.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음을 비우라는데 있어.
그러면 윤회에서도 벗어나고 또 그리고 그게 바로 성도(成道)라는 거죠.
그러나 나 만현은 그 말에 반대 합니다. 그거 아닙니다.
물론 비우라는 것, 방하착하라는 것, 좋은 가르침이죠.
그러나 그 가르침만으로는 윤회를 벗어날 정도뿐입니다.
보살이 되는 데는, 붓다가 되는 데는 염불에 있어요.
염불 아니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존 불교 2600년 동안에
불교계에서 자력으로 보살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없어요. 없었어요.
붓다는 하물며 안 되는 거예요.
그것은 다만 계시는 그 부처님, 만능자재하신 그 부처님,
지혜와 자비와 복덕이 완성된 완전히 구족하신
그 어른의 힘을 빌려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안 돼요.
출처:2019년 자재 만현 큰스님 밥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