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응두 시인 따님을 뵙다
일주 후 겨울 길목에 든다는 입동을 앞두어 가을이 더 이슥해진 십일월 첫날이다. 트레킹을 함께 다니는 문우들과 길을 나서기로 한 날이다. 한 문우가 예매 승차권으로 창원역에서 먼저 타고 오는 부전행 무궁화호를 나머지 셋이 창원중앙역에서 같이 타 완전체가 되기로 했다. 우리는 지난번 물금역으로 나가 원동까지 걸었는데 이번엔 삼랑진에서 내려 원동까지 걸어갈 참이다.
창원중앙역 플랫폼으로 올라 열차가 다가오길 기다리다 우리보다 나이가 더 덜어 보인 두 할머니와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삼랑진으로 가고 두 분은 원동까지 간다고 해 용무가 궁금했는데 신흥사로 가는 길이라 했다. 거기 지장전에 조상 영가를 모셔두어 음력 열여드레 지장재일이면 매달 다닌다고 했다. 신흥사는 배내골 들머리 영포 골짜기 고찰로 대웅전이 보물이다.
열차를 타고 비음산 터널을 빠져나가니 추수가 마무리되어 가는 진례 들녘이 펼쳐졌다. 순수 농경지였던 진례가 세월 따라 상당 면적은 공장이나 창고에 잠식되어 예전의 가을 농촌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진영역을 지난 화포천 습지는 갯버들 사이로 물억새와 갈대로 가을 정취가 비쳤다. 한림정에서 잠시 들판이 보이다가 강심을 가로지른 철교를 건너자 금세 삼랑진역이었다.
일행은 역사를 빠져나가 송원에서 삼랑진 양수발전소로 가는 길을 걸었다. 안태로 가서 천태산을 넘는 고갯길은 원동과 물금으로 가는 지방도이나 산굽이를 돌아 하염없이 가기에 자동차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우리는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 강변 철길과 나란히 놓인 자전거길 생태보도교를 따라 걸어 원동으로 가고자 했다. 일행들과는 작년에 역순으로 한 번 걸었다.
철길 굴다리를 지나니 뒷기미에서 밀양강이 보태진 낙동강은 강폭이 넓어져 원동과 물금을 향해 흘렀다. 쌍다리 전설이 서린 차자교 근처 쉼터에서 다과를 들면서 하루 여정 예열을 가열시켰다. 쉼터에서 깐촌으로 향해 내려가니 강 언저리는 이삭이 팬 물억새와 갈대는 깊어가는 가을 운치를 더해주었다. 강물이 산모롱이를 돌아가는 소실점엔 아침 안개가 걷혀감이 신비로워 보였다.
경부선 철길로는 간간이 열차가 달렸고 자전거길로는 라이딩을 나선 이들이 스쳐 지났다. 벼랑에는 옛적 동래에서 새재를 넘어 남한강 따라 한양으로 가던 제일 영남대로 작원잔도가 뚜렷했다. 낙동강 강변에서 물금의 황산잔도와 함께 강변에 남은 영남대로 옛길 구간 흔적이었다. 강변 벼랑을 빠져나가자 군락으로 자란 물억새와 갈대가 드넓게 펼쳐진 둔치는 평원과 같아 보였다.
쉼터 정자에 올라 남겨둔 다과로 목을 축이고 환담으로 나누다 다시 뚜벅뚜벅 걸었다. 자전거길 주변은 풀을 말끔하게 잘라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잔디와 섞여 자란 풀꽃으로는 가을에도 민들레와 괭이밥이 노란 꽃을 피워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추었다. 바닥에 두해살이로 이미 싹이 터 잎줄기를 불려 키운 냉이가 보였지만 칼이나 호미가 준비되지 않아 채집은 할 수 없었다.
신라 적부터 낙동강 용신에게 제사를 지낸 가야진사는 멀리서 바라보고 원동에 닿아 신촌삼거리로 갔다. 우리는 이미 몇 차례 들린 도토리묵을 빚어 파는 농가를 찾아 주인장 내외와 인사를 나누고 각자 손에 들 만큼 묵 상자를 봉지에 담았다. 안주인은 멀리서 찾아간 귀한 손님들에게 인심을 베풀어 즉석에서 도토리묵을 넉넉히 잘라 장을 끼얹어 우리는 호사로운 식도락을 누렸다.
바깥양반이 역전까지 차로 태워줘 묵을 쉽게 옮겨놓고 솜씨가 훌륭한 할머니의 추어탕으로 점심상을 받았다. 할머니는 고령이라 곧 식당을 접을 의향이라 후일 손맛이 그리워지지 싶다. 짧게 오간 대화에서 친정아버지가 장응두 시인이라 했다. 장 시인은 우리나라 현대시조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데 동향 김상옥 시인보다 연배다. 고인의 시비가 용두산공원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 23.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