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8.16 11:09 | 수정 : 2013.08.16 11:58
질주하는 충청 아산·당진 인구 급증
‘상전벽해(桑田碧海)’. 최근 몇 년간 이뤄진 충청의 변화를 집약한 사자성어다. 충청도에는 세계 최대의 LCD단지가 들어섰고, 여의도 면적의 4배에 달하는 제철소가 세워졌다. 대한민국 행정의 중심지가 옮겨왔으며, 20여개에 달하는 공공기관이 이전할 예정이다. 기업의 투자가 이어지고 관공서가 이전하면서 충청도로 사람이 몰리고 있다. 늘어나던 인구가 사상 처음 호남을 넘어섰다는 통계청 발표가 최근 나왔다. 충청의 인구가 호남을 추월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대 선거에서 영남, 호남의 유권자 수에 밀려 종속변수이던 충청이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부쩍부쩍 크는 충청도는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지형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질주하는 충청의 변화상과 이에 따른 정치적 변화를 주간조선이 담았다.
실외온도가 35도에 육박했던 지난 8월 13일 KTX 천안아산역 인근의 한 창고형 대형할인매장 ‘이마트-트레이더스’. 평일인데 가족 단위로 장을 보러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마트-트레이더스’는 이마트가 외국계 할인매장 ‘코스트코’를 겨냥해 지난해 7월 문을 열었다. 천안아산점은 제7호점이다.
6호점까지는 기존 이마트를 개조한 것에 비해 천안아산점은 창고형 할인매장 전용으로 건물을 신축한 첫 번째 점포다. 이마트가 이곳에 트레이더스를 오픈한 이유는 천안아산역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인구가 몇 년 전부터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입되는 인구 대부분이 대기업 생산직으로 일하는 근로자들이라는 점은 구매력 높은 소비층을 타깃으로 하는 창고형 할인매장의 시장전략과 맞아떨어진다.
이날 트레이더스 매장에서 만난 32살 윤모씨는 3년 전 아산시 탕정면으로 이사왔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 탕정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근로자인 윤씨는 경기도 기흥에서 일하다가 공장이 탕정으로 옮겨오면서 함께 이곳으로 왔다. 기흥에서 이 지역은 출퇴근도 가능한 거리지만 그는 회사에서 직원들을 위해 지은 공장 인근의 아파트로 이사왔다. 삼성은 탕정에 공장을 지으면서 인근에 트라팰리스 등 고급 아파트도 함께 짓고 직원들에게 우선 분양했다. 회사에서 1~2%의 저리로 구입자금을 대출해줘서 거저 살다시피 하고 있다. 윤씨는 “회사가 직원 복지 차원에서 살 집 등을 마련해주면서 직원들이 많이 옮겨왔다”며 “서울하고 가깝다는 이유로 기흥이나 수원에 살 필요가 없고 생활편의시설도 많아져서 오히려 더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윤씨의 경우처럼 아산시 일대는 삼성전자 배방공장이나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코닝이 들어서면서 근로자들이 대거 이주해왔다. 천안시와 아산시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이 아산에서 복합단지 착공에 들어간 2000년부터 2011년까지 12년간 천안과 아산 인구는 매년 50%씩 증가했다. 특히 천안시의 20세 이상 40세 미만 인구는 15만6000명(1999년 말)에서 18만6000여명(2011년 말)으로 2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아산시는 6만6000여명에서 9만여명으로 40% 늘어났다.
구매력이 높은 삼성 직원들이 들어오면서 부동산을 비롯한 지역 경제도 활성화됐다. 이날 기자가 찾은 천안아산역 인근만 해도 이마트-트레이더스를 비롯해 한화 갤러리아백화점, 롯데마트가 반경 1㎞ 내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멀티플렉스 영화관 및 각종 고급 음식점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또 역과는 도보로 5분 거리 내에 SK펜타포트, 요진건설 Y-씨티 등 30층이 넘는 고층아파트가 즐비했다.
- 지난 4월 16일 열린 세종시 단독주택용지 공급설명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photo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최근 계속되는 경기불황도 이 지역에서는 다른 세상의 얘기처럼 보였다. 아산과 천안을 연결하는 21번 국도의 양측으로는 계속해서 고층아파트들이 올라가고 있었으며, 학교, 병원과 같은 기반시설 부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마치 20년 전 수도권 신도시 1기로 조성된 분당, 일산, 중동 등의 모습과 비슷했다.
충남 당진도 사정은 비슷했다. 10년 전만 해도 한적했던 농촌 지역은 서해대교의 개통과 대기업 투자로 인해 불과 몇 년 만에 활력 넘치는 산업도시로 탈바꿈했다. 경기침체에도 현대제철 등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각종 산업단지 개발이 줄을 이으면서 성장세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현재 당진은 총 16개의 산업단지(4001만9000㎡)가 조성을 마쳤거나 개발 중이다. 개발 투자액만 18조9762억원에 이른다. 1002개의 유치 기업 중 총 636개 업체가 공장을 가동 중이고 종사자만 2만7976명에 달한다. 314개 업체는 공장을 짓고 있다. 전국에서 기업 투자가 가장 활발하다.
당진에 투자하는 대표적 기업은 현대제철. 현대자동차가 한보철강을 인수해 이름을 현대제철로 바꾸고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서울 여의도 면적의 2.5배에 달하는 740만㎡ 규모. 현재 짓고 있는 제3고로는 9월 완공 예정이다. 제3고로가 완공되면 현대제철은 연간 1200만t의 철강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현대제철 측은 “건설 연인원이 1~2기 공사엔 693만5000명, 3기 공사엔 320만명이 투입됐으며 투자액만 총 9조5000억여원에 달한다”며 “생산유발 효과는 45조8810억원, 고용창출 효과는 20만6100명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로 인해 당진의 인구는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당진시 기획예산담당관실 공영식 팀장은 주간조선에 “2005년에 12만5000명이었던 인구가 2012년에는 16만명으로 증가했다”며 “전국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증가율”이라고 말했다. 공 팀장은 “현재 산업단지를 계속 조성하고 있고 기업들의 투자도 이어지고 있어 인구가 계속 늘 것으로 보인다”며 “2030년에 50만명 정도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그에 맞춰 도시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당진 주민들도 당진이 몇 년 내에 포항과 같은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당진시 채운동에 사는 임민규(45·회사원)씨는 “포스코란 기업 때문에 포항이 발전한 것처럼 현대제철로 인해 당진이 달라지고 있다”며 “수년 내에 전국에서 가장 돈이 많이 도는 도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산과 당진처럼 기업투자의 ‘훈풍’이 불 조짐이 보이는 또 다른 도시는 충북 충주다. 충주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05년 기업도시로 선정됐다. 이후 꾸준한 사회간접자본 구축과 시의 적극적 투자 유치로 인해 기업들의 투자가 줄을 잇고 있다. 대표적인 투자 기업은 포스코·코오롱·롯데이다.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ICT는 포스코와 포스코 패밀리 16개사의 IT 자원을 기존 성남시 분당 데이터센터에서 충주기업도시로 이전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5만8271㎡ 부지에 1만6012㎡ 규모의 공장을 완공했다. 롯데칠성음료㈜는 10월 준공을 목표로 충주기업도시 내 9만5000㎡ 용지에 주류제조공장을 짓고 있다.
기업투자와 더불어 충청도 인구증가의 또 다른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은 공공기관 이전이다. 대표적인 곳이 세종시다. 세종시에 따르면 7월 31일 현재 주민등록 인구는 11만7369명으로 출범 직후인 지난해 7월 말 10만3127명에 비해 13.8%(1만4242명) 증가했다. 세종시는 오는 2015년이면 15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시의 출범은 충청도의 인구증가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잊혀진 관광특구인 유성온천특구는 세종시 출범으로 인해 다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세종시의 공무원들이 이곳까지 나와 접대를 많이 받는 탓에 국무총리실 감찰반에서 잠복까지 할 정도다.
이미 출범한 세종시뿐만 아니라 혁신도시로 선정된 충북 음성·진천 등에도 소폭이지만 꾸준히 인구가 늘고 있다. 음성군은 전년 대비 인구 증가율이 도내 12개 시·군 중 지난 5개월째 1위다. 1.33%(1225명)가 늘었다. 그 다음이 진천군이다. 충북지역 전체로 보면 주민등록 인구는 지난 7월 말 156만6920명으로 1년 전 156만5389명보다 1531명이 늘어 0.10%의 증가율을 보였다.
- 삼성전자와 삼성LCD가 입주해 있는 아산 탕정단지의 전경. photo 삼성전자
음성·진천 일대에 형성되는 혁신도시에는 한국가스안전공사를 비롯해 한국소비자원 등 총 13개 공공기관이 입주한다. 아직까지 인구증가세는 소폭이지만, 부동산에 몰리는 인기를 보면 이 지역이 얼마나 활성화될지 점쳐볼 수 있다. 진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 부동산중개업자에 따르면 지난 6월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음성·진천 상업용지 경쟁 분양에서 원분양가의 170%를 써내야 당첨이 됐다고 한다. 이에 앞서 4월 실시한 상업 용지 및 택지 분양 추첨에는 총 380필지 분양에 2만명의 경쟁자가 모여들었다고 한다. 계약금 1000만원을 넣고 입찰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는데 한 달 뒤에 4000만~5000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됐다고 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부동산업자들은 인구가 증가하는 충청권 도시들의 특징을 다음 두 가지로 정리했다. 하나는 서울로부터 100㎞ 거리에 있는 도시, 다른 하나는 공공기관 이전이나 대기업 투자가 이뤄지는 도시가 붐 타운이라는 것. 실제로 지도에서 이 도시들을 찾아보니 서울을 꼭짓점으로 해서 남쪽과 남동쪽에 걸쳐 있는 당진, 아산, 세종, 진천, 음성, 충주가 하나의 부채꼴 모양을 형성하고 있었다. 여기에 충청도와 마주하고 있는 강원도 원주까지 모두 인구가 증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통계청 인구동향과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의 영향으로 충남을 중심으로 한 충청도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면서 “수도권 인구가 충청권으로 내려오면서 머지않아 충청도 북쪽 지역까지 수도권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