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연상할 때는
흰색을 떠올릴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날 신식 결혼식이 서양에서 건너온 서양 풍습이듯
신부가 입는 웨딩드레스 또한 당연히 서양에서 건너온 옷입니다.
그런데 왜 웨딩드레스는 흰색일까?
그 점에 대해서 궁금해 하실 분들이 많이 계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일단은 인터넷 '지식검색'에서 한번 찾아 보았습니다.
예상했던대로 '웨딩드레스가 왜 흰색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으며 그 이유에 대한 설명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실망한 것은 질문 내용이야 어차피 같은 수밖에 없지만...
어쩌면 검색사이트를 막론하고 답변내용은 모두 같을까요?
지식검색에서 뿐만 아니라 '웨딩드레스 전문업체'들의 사이트를 봐도
웨딩드레스의 유래나 흰색인데, 대한 설명이 거의 같았습니다.
일단은 유럽에서도 하얀 웨딩드레스가 생긴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옛날 로마시대 때는 신부들의 웨딩드레스가 오늘날의
웨딩드레스처럼 생기지도 않았겠지만 색갈도 노랑색이었답니다.
옷만 노랑색이 아니라 신부들이 머리에 쓰는 베일(면사포)도
노랑색이었다고 하는군요...
그럼 '하얀 웨딩드레스'는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우리나라 인터넷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자료중에서는
별로 신빙성 있는 자료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 웃기는 것은 수 많은 웨딩드레스 전문업체의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웨딩드레스의 유래'란 걸 보면 거의 같은 내용인데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근거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래와 같은 내용이 올려져 있더군요.
'1813년에 흰색 웨딩가운과 베일을 담은 패션그림이
유명한 프랑스 잡지 'journal des dames'에 최초로 실린 후에
그 스타일이 결정 되었으며,
1949년 brittany의 anne에 의해서 대중화되었는데
흰색의 웨딩드레스를 입기 전에는 대부분의 신부들이
자기 옷중 가장 좋은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다.'
위의 내용대로라면 '하얀 웨딩드레스'의 역사는
불과 200년도 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기는 것이
'1813년에 프랑스의 잡지에 흰색 웨딩드레스 그림이 실렸다.'는데,
잡지라면 당연히 대량으로 인쇄가 되었을 것이고
그 당시의 인쇄술이란 것이 오늘날과 같은 컬러인쇄가 아니었을텐데...
어떻게 웨딩드레스와 베일이 흰색인지를 알 수 있을까요?
노랑색이든 아이보리색이든 흑백사진에선 모두 희게 보이기 마련인데...
그리고 '1949년 brittany의 anne에 의해서 대중화'란 대목입니다.
'brittany의 anne'이라면 분명히 '브리타니'란 동네에 사는
'앤'이란 사람이란 뜻인데...
도대체 '앤'이란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 좀 알아 봤습니다.
처음엔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나선
현재 우리나라의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웨딩드레스의 유래'에 대한
정보가 모두 엉터리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 심심풀이로 인터넷에다 남의 글을 베껴다 올리는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최소한 '웨딩드레스 전문업체'에선 최소한 그 정도 정보는
보다 확실하게 알고서 올렸어야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하얀 웨딩드레스'는 1499년 프랑스의 공주가 처음 입었다.
'brittany의 anne'이 누군지를 알기 위하여
인터넷을 헤매던 중 'brittany'는 프랑스의 서북쪽 지방인
'브르따뉴(bretagne)'의 영어식 표기이며,
'anne'는 1477년에 태어나 1514년에 죽은 당시 '브르따뉴 공국'의
공주였던 '안느(anne)'를 말하며, 'anne of brittany'는
'anne de bretagne'란 프랑스어의 영어표기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말로 굳이 표기를 하자면 '브르따뉴의 안느'라고 표기를 해야 맞습니다.
좌우간 '안느'는 당시 프랑스 땅 북서쪽에 위치한 '브르따뉴 공국'이란
작은 나라의 공녀(여자 공작)로 태어 났던 것입니다.
'공국(公國)'이란 유럽 중세 봉건시대 때의 하나의 제후국입니다.
브르따뉴공국의 주인이 '프랑소아2세 공작'이었는데...
'안느'의 아버지인 '프랑소아2세 공작'이 1488년에 죽었는데,
아버지가 죽을 당시 '안느'는 겨우 12살이었답니다.
어버지가 죽게 되자 당연히 12살난 '안느'가 후계자로서
공작작위도 물려받고 '브르따뉴공국'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브르따뉴 소왕국'의 '여왕'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당시 오스트리아도 브르따뉴와 마찬가지의 '공국'이었는데,
오스트리아는 '공국'이라고 하기엔 좀 큰 편이라서
'대공국'이라고 하였으며 주인도 그냥 '공작(duke)'이라고 하지 않고
'대공작(archduke)'이라고 했었답니다.
좌우간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그(hapsburg) 가문'에서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합스부르그가의 대빵인 '맥스밀리언(maximilien)' 대공께서
12살 먹은 '브르따뉴의 안느'와 결혼하여 오스트리아와 브르따뉴를
합쳐서 자기가 황제가 되겠다는 흑심을 품고는 대리인을 시켜서
'안느'에게 수작을 걸기 시작했더랍니다.
그런데 브르따뉴공국 남쪽으로는 '프랑스왕국'인데...
당시 프랑스의 왕인 '샤를르8세(charles viii)'가 보니깐 배가 아프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서 군대를 동원하여 '브르따뉴공국'으로 쳐들어 갔습니다.
브르따뉴공국의 주요 도시를 거의 다 점령해 버리고는
마지막엔 '안느'가 피신해 있던 '르네(rennes)'를 포위하게 되었더랍니다.
그런데 당시 프랑스왕인 샤를르8세는 이미 오스트리아의
맥스밀리언 대공의 딸인 '마거릿(marguerite) 공녀'와 결혼을 한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장인과 사위간에 12살짜리 소녀의 쟁탈전을 벌린거지요.
좌우간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리게 되자 브르따뉴의 백성들과
맥스밀리언 대공이 나서서 샤를르8세에게 '안느'를 봐달라고 사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안느'가 나이는 어렸지만 상당히 똑똑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샤를르8세'를 찾아 가서 만났습니다.
세상에 여자가 굽히고 들어 오는데 목에다 칼을 들이 댈 남자는 하나도 없지요.
한번 만나고 두번 만나고 그러다가 그만 둘이서 정분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둘이서 서로 결혼하기로 하고 약혼을 했는데...
당시에는 왕이 결혼을 하려면 '로마교황'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당시의 로마카톨릭 약혼규정에도 이들의 약혼은 어긋나지만
로마교황도 이들의 약혼을 인정해 버렸다고 하네요...
그래서 1491년 12월 6일 '안느'가 우리 나이로 15살 때 둘이서 결혼을 했답니다.
15살짜리 여자애가 결혼을 해서 행복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두 사람의 결혼으로 인해 '브르따뉴공국'은 평화로웠답니다.
그렇게 둘이서 오래오래 잘 살았더라면 좋을 뻔 했는데...
결혼하고서 7년 후인 1498년에 샤를르8세가 불의의 사고로 덜컥 죽어버렸답니다.
안느는 21살 꽃다운 나이에 그만 과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샤를르8세가 죽자 안느는 추모기간중에도 자기의 동전을 주조하는 등
자기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서 게을리하지 않았답니다.
아무래도 젊은 과부 혼자서 나라를 지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여
다음해인 1499년에 샤를르8세 뒤를 이은 프랑스왕이었던
'루이12세'와 재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바로 이때 그 유명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었다고들 합니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의 사이트들이 1499년을 '1949년'으로 잘못 적은 것입니다.
언제 누가 연도를 적으면서 숫자를 바꿔 적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걸 베끼고 또 베낀 사이트들마다 '1949년 brittany의 anne에 의해서'
'하얀 웨딩드레스'가 대중화 되었다고 엉터리 정보를 퍼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좌우간 1499년에 '안느'가 재혼을 하면서
'하얀 웨딩드레스' 처음으로 입었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지만
프랑스의 공공 사이트에서도 그렇다고 하니깐 그런 줄 알아야겠지요.
그런데 찜찜한 것이 '하얀 웨딩드레스'가 '순결을 상징한다.'
또는 '부귀와 환희'를 상징한다고들 하는데...
제가 짐작키에는 당시 '안느'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것은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마음에도 없는 정략결혼을 하면서
전 남편이었던 샤를르8세의 미망인으로서 하얀 소복을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그 전에 샤를르8세와 결혼할 때는 어떤 색의 드레스를
입었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하얀색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 때에도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었었다면 당연히 '하얀 웨딩드레스'를
처음 입었던 때는 1491년이었다고 했었겠지요...
좌우간 '안느'의 마음에도 없는 정략적인 결혼 덕분에...
'안느의 나라'인 '브르따뉴공국'은 태평성대를 누렸답니다.
하지만 안느가 1514년 1월 9일날 죽었다고 하는군요.
우리 나이로 38살에 죽은 셈인데...
왜 죽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안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브르따뉴공국은 아무런 걱정없이 잘 지냈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안느가 죽은 다음해인 1515년에는 두번째 남편인 루이12세도 죽었답니다.
그 후로는 브르따뉴공국을 챙겨줄 사람이 없게 되어 버렸으니까
이래저래 프랑스에 시달리다가 1532년에는 결국은 프랑스왕국의
1개주로 편입이 되어 오늘날까지 프랑스의 한 지방으로 남아 있는 겁니다.
안느가 재혼을 하면서 왜 하얀색의 웨딩드레스를 입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결코 '기쁘게', '더욱 예쁘게 보이기 위하여'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것만은 아닌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요즘 '재혼일 경우에는 핑크색 웨딩드레스를 입는다.'라는
근거도 없는 정보가 진짜 정보인양 나돌고 있습니다만...
분명히 '안느는 재혼 때 하얀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하얀 웨딩드레스'는 재혼 때 입는 드레스인데,
엉뚱하게 '핑크색 드레스' 얘긴 왜 나왔는지 모르겠군요....
좌우간 '하얀 웨딩드레스'를 처음 입은 안느는
한 나라의 공주로 태어나서 자신의 행복보다는 나라의 존립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정략결혼을 두번씩이나 하는 등
결코 행복하지 않게 길지도 않은 생애, 38년을 살다 간
한 여성의 슬픈 사연이 담겨 있는 옷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 때 인기가요였던 '웨딩드레스'란 노래가 생각나는군요.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정말 아름다웠오
춤추는 웨딩드레스는 더욱 아름다웠오
우리가 울었던 지난날은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오
우리가 미워한 지난날도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오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눈빛 순결이었오
잠자는 웨딩드레스는 레몬향기였다오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정말 아름다웠오
춤추는 웨딩드레스는 더욱 아름다웠오
우리를 울렸던 비바람은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오
우리를 울렸던 눈보라도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오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눈빛 순결이었오
잠자는 웨딩드레스는 레몬향기였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