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 악행을 그치지 않는 자에게 '낭패의 밤'은 예비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에서 엘리바스는 악행을 그치지 않는 자가 결국에는 당할 일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낮에도 캄캄함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낮에 캄캄함을 만난다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대낮에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한다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낭패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악행을 그치지 않는 사람, 그렇게 일러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 돌아올 것은 낭패밖에 없습니다.
물론 본문의 욥을 이 상황에 적용시키는데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적용시켜 볼 때 이 말은 맞는 말로, 이렇게 깨닫지 못하다가 '낭패의 밤’ 을 맛본 사례를 성경의 다른 곳에서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를 하나 들라면 바로와 애굽 백성을 들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7장 이하를 보면 놀랍게도 바로는 계속되는 하나님의 징계 앞에서도 잘도 견뎌냈습니다. 실로 그는 당시 세상의 최강자였습니다. 하수가 피로 변하는 재앙으로부터 시작해서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등의 재앙을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마지막인 듯 ‘더듬을 만한 흑암’ (출10:21) 재앙을 경험했습니다. 그러한 흑암이 무려 삼일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출 10:22). 사실 이 정도라면 천하의 바로라 해도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끝내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여호와의 밤’ (출 12:42) 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여호와의 밤이란 출애굽의 밤이요, 유월절의 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서 감격스런 구원을 경험한 날이지만 반대로 바로와 애굽 백성들로서는 가장 큰 낭패를 본 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 바로의 장자로부터 짐승의 첫새끼에 이르기까지 애굽의 처음 난 것들은 다 하나님의 사자가 내리치는 칼을 받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바로가 연속되는 재앙 속에서 경계를 받고 어느 시점에서 악행을 그쳤더라면 그와 그의 백성이 급절하게 망한 '여호와의 밤’ 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평안히 애굽을 나오고 자신도 사는 '윈윈’ 의 결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끝내 거부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은 황급히 애굽에서 나오고 그와 그 백성은 물론, 짐승에 이르기까지 초태생에 이르는 생명이 몰살하는 불행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시대로부터 삼천오백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이 사건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악을 행하면서도 평안하다, 심판이 없다 하고 방심하며, 여전히 악을 행한다면 낭패의 밤은 도적같이 이를 것입니다. 전도자의 표현대로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 (전 12 : 1)가 반드시 도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의 권면대로 우리는 악행을 그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이제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립시다. 빛의 갑옷을 입고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합시다(롬13:12.13).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