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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랑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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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건국 始祖 이승만
비바람 추천 1 조회 679 10.08.23 14:29 댓글 1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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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8.23 14:44

    첫댓글 고조선은 단군이 시조, 가야는 김수로, 신라는 박혁거세, 고구려는 주몽, 고려는 왕건, 조선은 이성계, 대한민국은 이승만이 건국의 시조. 국사를 학교에서 제해버리더니 건국시조도 없는 대한민국이 되었네

  • 10.08.24 18:37

    공감하는 글 입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공을 이제는 재 평가하고 그 업적을 기리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이승만 대통령 개인의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관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10.08.25 09:07

    이승만 전 대통령 업적을 부정하는 사고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북한의 사고라 읽힐 수 밖에 없는 북한옹호론자로 봐야죠

  • 10.09.09 09:19

    그동안 건국대통령을 모르고 잊고 살아 온 까닭은 미국건국역사는 알리면서 한국건국 역사를 숨기는 듯 부정하는 행위처럼 보이는 정부의 잘못도 있군요

  • 10.10.27 12:16

    이승만 대통령/그는 카리스마가 늘 넘쳤다. 어느 누구에게서 뭘 듣고 사정을 잘 알아본 뒤 움직이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다. 늘 남보다 생각이 넘쳤고, 학식도 많았다. 이승만 대통령 이야기다. 그에게는 일반인이 범접하기 힘든 권위가 있었다. 그가 걸어온 이력(履歷)과 쌓아온 학력(學歷)이 우선 남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를 했던 사람은 찾아보기 드물었던 상황이었다

  • 10.10.27 12:17

    이승만 대통령 주변에서 그런 정도의 학력을 찾아볼 만한 인물은 아주 적었다. 내무장관을 지냈던 조병옥 박사, 총리를 맡았던 장택상씨 정도가 각각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과 영국 에든버러 대학 출신이다. 그가 걸어온 역정(歷程)과 학식, 나아가 인품이라는 측면에서 이 대통령은 가장 큰 어른이었던 셈이다. 그는 전쟁이 터지기 전 대한민국이 첫걸음을 막 떼었을 때 그전까지 한국을 지배했던 미군의 고위 장성, 전쟁이 터진 뒤에 한국 전선으로 이동해 온 모든 미군 고위 장성에게도 ‘상대하기 아주 까다로운 한국 지도자’였다

  • 10.10.27 12:18

    미군 고위 지휘관들에게 이승만 대통령은 ‘무서운 한국 호랑이’였다. 미군 지휘관들은 한국에 대한 지원 문제를 두고 이 대통령과 말싸움을 벌일 때 늘 긴장해야 했다. “당신들 미국 헌법을 제대로 읽기나 했느냐”면서 미국 헌법 조문을 들이대는 노련한 이 대통령의 공박에 제대로 대답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미군 지휘관들은 부산의 임시 경무대나 서울의 경무대에서 이 대통령으로부터 “만나자”는 전갈이 오면 늘 긴장했다. 나이 많은 한국의 대통령, 게다가 학식이 넘쳐 늘 미국의 법조문, 헌법 정신, 미국의 역사와 민주주의를 들이대는 박식한 한국의 대통령을 상대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 10.11.15 22:36

    한기총은 “G20 정상회의 등으로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선 가운데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 안에는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정통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우남 이승만 박사는 오늘날의 자유 민주주의국가인 대한민국의 기틀을 놓은 건국대통령이지만 그 업적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제대로 돼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건국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기념사업은 정치적 입장과 이념적 이해관계를 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바로 세우는 국민적 과제”...http://www.chogabje.com/

  • 10.11.17 23:40

    한국에서 가르치고 있는 어느 미국인 교수는 우리가 이룬 대단한 업적은 '한(韓)민족'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성취한 것이라고 옳게 지적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번영과 위상은 우리의 민족적 자질 덕분이라기보다는 한반도 남쪽에 거주해온 대한민국 국민이 건국 후 피땀 흘려 이루어낸 것이라는 말이다. 한민족과 대한민국 국민은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한 그의 통찰력이 놀랍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17/2010111701969.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9

  • 11.08.14 14:45

    자유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며 광복 66주년을 맞이함에 이승만 전 대통령께 감사드립니다. 하늘에서도 영혼으로 대한민국이 자유진영으로서 세계에 자유를 전파하시길 고대하실 겁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고마움과 함께 후손의 자유로움을 믿으시고, 편안한 영혼이 되시옵소서

  • 12.01.13 23:14

    김대중, 노무현때 공무원들 전라도 사람만 뽑았습니다...남로당 사람도 뽑았다는 말있습니다...그 사람들이 다른 지역사람들 다 짤랐다고 합니다....경찰, 공무원, 선생님, 판사, 방송사

  • 12.07.20 00:14

    “이북동포 여러분 나와 같이 결심합시다. 공산군이 어디서 들어오든지 그것이 소련이건 중공이건 들어오려면 들어오너라. 우리는 죽기로 싸워서 물리치며 이 땅에서는 발붙이고 살지 못할 것을 세계에 선언합시다.” (이승만 대통령, 1950년 10월29일 평양 연설)

  • 12.07.20 00:15

    “이승만의 북진통일 주장을 오늘에 와서 검토해 보면 대단히 뛰어난 정치기술의 하나로 북한의 중·소 군사동맹과 같은 한·미사호방위조약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철승 前 신민당 총재, 1988년 <신동아> 10월호 인터뷰)

  • 12.07.20 00:15

    “우리는 북한으로 자유를 확산시켜야 한다. 그래서 북한동포를 최악의 독재자로부터 해방하고 각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이 주도해 통일을 달성하여야 한다”면서 “이것이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뜻이다. 우리는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뜻에 따라 반드시 북진통일, 자유통일을 성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8월23일자 보도)

  • 13.05.13 13:55

    한국만 콕 찍어 독립 보장…“카이로선언, 미국 움직인 이승만 작품”, 선언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문구가 포함됐다. ‘한국민이 노예 상태에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적절한 과정을 통해 한국을 자유 독립국가로 할 것을 결의한다’고 명시했다. “카이로선언이 없었다면 한국 독립은 아마 요원했을 것이다. 군국주의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결정할 때까지 한국을 자신들 영토에 남겨두려 했다.” 11월 23일 루스벨트가 장제스에게 한국 독립 문제를 먼저 거론하자 이에 장제스는 수동적·소극적으로 찬성했다.

  • 13.05.13 13:56

    이승만은 미국이 1882년 조선과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무시하고 1905년부터 일본의 한국 병탄을 허용한 역사를 상기시키면서 일제가 105인사건(1912)과 제암리사건(1919)을 일으켜 한국의 기독교도들을 무참하게 박해한 진상을 폭로했다. “이승만은 1942년 한미협회와 기독교인친한회를 결성해 워싱턴에서 활발한 로비활동을 펼쳤다. 대부분 독실한 기독교인들로 구성됐다. 한국 독립을 요청하는 진정서에 서명한 이들의 사회적 지위와 기독교계에서의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루스벨트와 홉킨스에겐 무시 못할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 13.05.13 13:56

    카이로선언과 이승만의 외교독립 활동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백년전쟁’ 같은 불필요한 논란에 마침표를 찍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14.05.29 17:20

    대한민국 국기법 제1조는 국기법의 목적에 대해 "이 법(대한민국 국기법)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기의 제작·게양 및 관리 등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기에 대한 인식의 제고 및 존엄성의 수호를 통하여 애국정신을 고양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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