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잔치
A
올 봄의 일인데, A가 나에게 전화를 하여 한번 올라오라고 하였다. “얼굴 좀 보자, 야. 못 본 지 몇 달이 됐잖아.” 그러나 만날 날짜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만날 장소를 맞추지 못해서 약속을 잡지 못했다. 장소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던 중 나는 퍼뜩 그럴듯한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는 수서역 인근이 좋겠는데, 넌 어떻니?” A는 자기가 사는 동네인 강동이 어떻냐고 말했다.
나한테 전화를 해주는 친구는 댓 명 정도밖에 안 된다.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있다니...... 다만 거리가 너무 멀다. 삼례에서 서울 남부터미널까지 직행버스가 있지만 꼬박 세 시간이 걸리고, 삼례에서 용산역까지 무궁화호는 세 시간 반, 익산역으로 나가서 고속기차를 타면 용산역이나 수서역까지 한 시간 반 가까이 걸린다.
B
B도 나에게 전화를 하여 서울에 올라오라고 하였다. 자기의 칠순 잔치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작년 가을의 일이다. “칠순 잔치? 요즘 칠순 잔치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하긴 너는 환갑 잔치도 했으니...... ” 이런 내 핀잔을 듣고 B도 쑥스러운 듯 털어놓았다. “칠순 잔치를 하겠다고 했더니, 마누라가, 제발 미친 짓 좀 하지 말래. 당신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한 인생이라고 사람들을 불러 잔치까지 하냐고 그러더라고.”
환갑 잔치 때는 나도 참석했었다. 차라리 그 때 빠지고 이번에 참석해주었어야 했을까? 작년 가을의 통화 이후 B는 전화가 없다.
C
지지난 주의 일이지만, 나는 서울에 올라왔다. C는 몇 차례 전화와 문자를 하여 나를 초대하였다. “그 동안 나한테 술 사준 친구들을 한 데에 불러, 요번에는 내가 한번 내겠다”는 것이었다. 장소는 남부터미널 인근의 한 식당이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낯익은, 그러나 오랜만에 보는, 그 중 일부는 몇 년 만에 보는 친구들 여남은 명이 있었다. 그리고 C의 아들도 있었다. 그 때까지도 나는 몰랐지만, 그 자리는 C의 칠순 잔치 자리였다.
누가 몰래 빠져나가 밥값을 계산해버리는 비열한 짓을 하여, 카드 전표를 취소시키고 C의 아들이 새로 계산하였어야 했다. 두 친구는 몸을 바쳐 마셨다. 평소에 한 잔도 안 마시던 한 친구가 여러 잔을 마시고 2차까지 동행하였으며, 평생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한 친구는 만취로 거의 실신지경이 되어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차에 실려 후송되었다. “오늘의 장원은 너야”라면서 다들 박수를 쳐주었다. 잔치라는 것은 원래 이런 것이니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 말은, 니가 태어난 것, 니가 태어나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참 좋다, 참 기쁘다는 뜻이요, 그런 뜻에서, 니가 태어난 오늘 나는 특별히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생일잔치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사양하지 않고 먹고 마시면 된다. 많이 먹을수록 좋고 많이 취할수록 좋다.
D
남의 생일잔치에 참석하는 것은 그런 뜻을 지닌다고 치자. 자기의 생일잔치를 베푸는 것은 어떤 뜻을 지닐까? “내 인생 대단해, 나 잘나가잖아”하면서 과시를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술 사준 친구들에게 보답한다, 그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의 생일잔치를 베푸는 것은 신(神)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미를 지닌다. 신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태어나게 해준 것에 감사를 표한다는 뜻이요, 곧 내가 태어난 것, 내가 태어나 이 세상에 있는 것, 혹은 내가 있는 이 세상에 만족하여 그 기쁨을 표한다는 뜻이다.
생일잔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명절 잔치도 마찬가지이다. 스크루우지가 좋은 사람이 못되는 것은 인색하기 때문이 아니라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그러한 것은, 그는 자기 자신의 신세와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승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D는 자기의 칠순 잔치 같은 것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꿈도 꾸어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D는 상처(喪妻)한 후 자기의 생일도 기념한 적이 없다. 생일날 저녁에 자식들이나 동생들이 온다고 해도 거부하였다.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도 저러고 있다. 추석이건 설이건, 명절도 마지못해 맞이하여 간소하게 보내고 있다.
다시 D
그러던 D가 C의 칠순 잔치에 다녀오고 나서 조금 달라졌다. 무슨 깨달음 비슷한 것을 얻은 모양이다. C의 칠순 잔치는 참 좋은 자리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좀 달라졌고 뭔가를 깨달은 눈빛을 보인다. 그러나 잔치를 베푸는 것은, 자기를 승인하고 세상과 신을 친미하는 것이라는 점, 혹은 그렇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이요,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점은 D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그가 새로이 알게 된 것은, 무엇인가 하면, 칠순 잔치를 베푸는 사람들이라고 하여 모두 자기를 승인하고 세상을 찬미하는 사람인 것은 아니라는 점, 혹은 백프로 승인하고 찬미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조금 찜찜한 게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순 잔치를 베푸는 것이다. 마치 수행을 하듯 잔치를 베푸는 것이다. 즉 잔치를 통해—같이 기뻐해주고 같이 먹고 마셔주는 참석자들을 통해—자기를 승인하고 세상을 찬미하는 사람 쪽으로 조금 더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장차 팔순 잔치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지난 일이지만, 내가 B의 칠순 잔치에 참석했어야만 한다는 후회가 든다. 나는 A의 제안도 수용하여 강동으로 갔어야만 한다. 또 다른 깨달음인데, 그 날 거기에서 A의 칠순 잔치가 열렸었는지 모른다. (끝)
첫댓글 조영태교수님은 팔순 잔치 전에 칠순 잔치부터 먼저 하셔야죠 ㅎㅎ
ㅎㅎ 웬 양주 이야긴가 했더니. 잘 먹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