赤壁 적벽에서
杜牧(당나라의 시인)
折戟沈沙鐵未銷 부러진 창은 모래에 묻혀 아직 녹슬지 않았으니
自將磨洗認前朝 내가 갈고 닦아보니 전왕조 장군 것임을 알겠다
東風不與周郎便 동남풍이 주유를 편들어서 불어오지 않았더라면
銅雀春深鎖二喬 소교는 봄이 깊은 동작대에 볼모가 되었으리라
적벽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두목은 소교에 머문다
결이 닮은 서구시 몇편 원문을 발췌하여 번역해주고
청연도 소교의 운명을 가른 동남풍을 기원해주게나
벗이여, 두목의 「적벽(赤壁)」을 다시 펼치니, 천 년 전 강물 위로 동남풍 한 줄기가 되살아나는 듯하네.
그대가 짚은 대목이 참으로 묘하네. 두목은 적벽대전의 승패를 논하는 듯하다가, 끝내 소교(小喬)의 운명에 붓을 멈추네.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영웅들의 전쟁이 한 여인의 운명으로 수렴하는 순간이지.
周瑜(주유)는 동남풍을 얻어 조조를 물리쳤고, 조조는 강남의 두 미인 대교와 소교를 손에 넣지 못했네. 역사적 사실과 시적 상상은 구별해야겠지만, 두목의 시에서 소교는 단순한 미인이 아닐세. 그녀는 전쟁의 승패가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지.
그렇기에 이 시의 동남풍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네. 역사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우연, 그리고 그 우연을 기다리는 인간의 간절함이라 할 수 있겠네.
그 결을 지닌 서구의 시 몇 편을 함께 읽어보세. 전쟁과 사랑, 역사의 잔혹함, 그리고 한순간의 바람이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시들일세.
1.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 「제2의 트로이는 없는가」(No Second Troy)
아일랜드 · 1865–1939
역사와 미인의 운명
두목의 「적벽」과 가장 깊이 맞닿은 시라 생각하네. 예이츠는 한 여인의 아름다움과 격렬한 정신이 어떻게 한 시대의 파국과 연결되는지를 트로이의 신화로 묻네.
원문 발췌
Why should I blame her that she filled my days With misery, or that she would of late Have taught to ignorant men most violent ways,
...
Was there another Troy for her to burn?
원문: W. B. Yeats의 「No Second Troy」.
The Poetry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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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어찌 내가 그녀를 탓하랴, 그녀가 내 나날을 고통으로 채웠다고, 또는 무지한 사내들에게 그토록 격렬한 길을 가르치려 했다고.
……
그녀가 그러한 존재로 태어났으니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으랴? 그녀가 불태울 또 하나의 트로이가 이 세상에 남아 있었던가?
청연의 해설
벗이여, 두목의 소교와 예이츠의 여인은 서로 다른 운명의 자리에 서 있네.
소교는 전쟁의 결과에 따라 포로가 될 수도 있었던 여인이고, 예이츠의 여인은 그 자신의 불같은 기질로 역사를 흔드는 여인이네. 그러나 두 시의 밑바닥에는 같은 물음이 흐르네.
아름다움은 역사의 희생물인가, 아니면 역사를 움직이는 힘인가?
두목은 소교를 동작대에 가두는 가상의 미래를 그려 승리의 의미를 되묻고, 예이츠는 여인의 존재 자체가 또 다른 트로이 전쟁을 불러올 수 있었음을 묻네.
결국 역사의 거대한 불길 속에서 여인은 누구의 소유물도, 누구의 장식물도 아닌 하나의 운명으로 남는 것이지.
2. 토머스 하디 — 「그가 죽인 사내」(The Man He Killed)
영국 · 1840–1928
전쟁과 우연한 만남
이 시에는 미인도 영웅도 없지만, 적벽의 동남풍과 통하는 역사의 우연이 있네. 우연히 다른 장소에서 만났다면 친구가 되었을 두 사람이 전쟁터에서는 서로를 죽이게 되지.
원문 발췌
Had he and I but met By some old ancient inn,
...
I shot at him as he at me, And killed him in his place.
원문: Thomas Hardy의 「The Man He Killed」.
The Poetry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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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그와 내가 그저 마주쳤더라면, 어느 오래된 여관에서 만났더라면,
……
나는 그를 향해 총을 쏘았고 그 또한 나를 향해 쏘았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를 죽였네.
청연의 해설
하디는 역사의 거대한 무대 대신 이름 없는 두 병사를 보여주네.
두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원수였던 것이 아닐세. 그저 어느 편의 군복을 입었느냐에 따라 서로 죽여야 할 적이 되었지.
그렇다면 적벽의 동남풍도 다시 생각해 볼 만하네.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조조의 군대가 승리했을까? 역사는 달라졌을까? 소교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알 수 없네. 다만 하디의 시는 역사의 결과를 필연이라 부르기 전에, 그 결과를 갈라놓은 우연을 먼저 살펴보라고 말하는 듯하네.
두목이 동남풍을 노래한 것은 주유의 지략을 칭송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네. 승리한 자의 영광 뒤에 패배한 자의 운명이 있고, 그 운명의 갈림길에는 인간의 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지.
3. 윌리엄 셰익스피어 — 「소네트 116」(Sonnet 116)
잉글랜드 · 1564–1616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
앞의 두 시가 역사의 변덕과 운명의 가혹함을 보여주었다면, 셰익스피어는 폭풍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사랑을 노래하네.
원문 발췌
O no, it is an ever-fixed mark That looks on tempests and is never shaken;
It is the star to every wand'ring bark,
원문: William Shakespeare의 「Sonnet 116」.
The Poetry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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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아니, 사랑은 영원히 제자리에 선 표지와 같아서 폭풍을 바라보면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네.
길 잃고 떠도는 모든 배에게 그것은 길을 가리키는 별이네.
청연의 해설
벗이여, 이제 동남풍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세.
주유에게 동남풍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바람이었네. 그러나 셰익스피어에게 별은 폭풍을 없애는 힘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힘이지.
사랑도 그러하네.
세상의 권력은 바뀌고, 전쟁의 승패는 뒤집히며, 젊음과 아름다움도 세월을 피하지 못하네. 하지만 그 모든 변화 속에서도 한 존재의 존엄을 지키려는 마음은 남을 수 있네.
소교를 구하는 동남풍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주유의 군대에 승리를 가져다주는 바람만은 아닐 것이네. 한 여인이 전쟁의 전리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바람이어야 하겠지.
4. 세 편을 적벽의 강물에 띄우면
예이츠 — 아름다움과 역사의 불길
여인은 전쟁의 희생자인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인가. 트로이의 불길은 아름다움과 파국이 맞닿는 곳에서 타오르네.
하디 — 우연과 전쟁의 비극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만났다면 친구가 되었을 두 사람. 운명이라 부르는 것의 상당 부분은 우연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네.
셰익스피어 — 폭풍 속의 별
세상은 흔들려도 사랑은 길을 가리킬 수 있네. 진정한 바람은 폭풍을 일으키는 힘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인간을 지켜주는 힘일 것이네.
세 편은 각기 다른 질문을 던지지만, 두목의 「적벽」을 읽은 뒤에 함께 놓으면 하나의 흐름을 이루네.
두목은 그 질문들을 한 줄의 바람으로 압축했네. 동남풍이 불지 않았다면 소교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는 승리한 자의 이름을 기록하지만, 시는 승패의 갈림길에서 사라질 뻔한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네.
5. 청연이 소교를 위해 바람을 빌며
벗이여, 이제 그대의 청을 받아 청연도 한 줄의 바람을 빌어보겠네.
동남풍이여, 그대가 다시 분다면 장수의 깃발만을 위해 불지 말라.
아름다운 여인이 권력자의 전리품으로 기록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주유에게는 승리를, 조조에게는 멈출 지혜를, 소교에게는 누구의 소유도 아닌 자기 삶의 자유를 허락하라.
그리고 역사의 강가에 선 우리에게는 승패가 결정된 뒤에야 바람을 헤아리는 어리석음 대신, 바람이 불기 전에 사람의 운명을 헤아리는 작은 지혜를 허락하라.
벗이여, 청연이 진정으로 기원하는 동남풍은 소교가 조조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하는 바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네.
소교가 누구의 손에도 운명의 전리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향해 부는 바람.
두목은 동남풍으로 소교의 운명을 구상했고, 그대는 그 시에서 소교의 운명을 걱정했으며, 청연은 이제 그 운명 자체를 바꾸는 바람을 빌겠네.
적벽의 강물은 천 년이 지나도 흐르고, 바람은 여전히 어느 편에도 영원히 속하지 않네.
그 바람이 오늘은 전쟁터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불기를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