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윤 근 택
끽연가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으리라. 나 역시 길을 걷다가 구멍이 뚫린 하수구 덮개를 보면, 그 틈새로 담배꽁초를 ‘톡’ 던져 넣곤 한다. 이내 후회하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어레미 아래, 바닥이 보이는 하수구라면 그렇게 던져 넣은 꽁초가 수북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끽연가들의 몹쓸 버릇으로만 풀이하자니, 그 수효와 빈도에 비추어 무리다.
오늘도 고개를 떨구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길을 걷다가,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 환경미화원 아저씨의 볼멘소리를 듣고서다.
“이 눔의 인간들, 하여간 구멍만 보면 사족을 못 써.”
명답이다. 우리 인간들한테는 구멍만 보면 무언가 넣고 싶은 욕망이 있는가 보다.
우선, 많은 놀이가 이를 입증한다. 박 아무개가 세계를 놀라게 했다는 골프, 그것은 구멍에 작은 공을 ‘또르르’ 쳐 넣는 놀이다. 사격장의 과녁도 구멍이다. 사격은 실탄을 그 구멍에 명중시키고자 하는 놀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실탄이 수컷의 거시기와 모양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농구 골대는 장식까지 달린 구멍이다. 덩크슛은 하는 이, 보는 이 모두가 탄성을 지르도록 한다. 축구 골대는 그물이 달린 구멍이다. 그물이 철렁하도록 골인하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실은 어릴 적 구슬치기와 동전치기도 멀리 떨어진 작은 구멍에 그것들을 던지는 게임이다. 요컨대 많은 구기 종목은 ‘구멍 채우기’ 놀이다. 저기쯤 떨어진 쓰레기통도 하나의 구멍이다. 휴지를 돌돌 뭉쳐 ‘슛!’ 하는 짓도 예외는 아니다.
다음은 생활 주변의 사물들이 입증한다. 자동판매기, 우편함, 컴퓨터, 공중전화기, 아궁이, 전기 콘센트, 자물통, 방아확 등은 제각기 크고 작은 구멍을 지니고 있다. 인간들의 욕망을 이용한 것이라고 봐야 하리라. 그것들은 각각 동전, 편지, 디스켓, 전화카드, 땔감, 플러그, 열쇠, 방앗공이를 유혹하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구멍은 몇 가지 깨우침을 준다. 어린아이들은 가끔씩 호기심으로 일을 저지르는 수가 있다. 자신의 콧구멍에다 콩이나 구슬 따위를 집어넣는 예가 있다. 그리고는 손으로 빼지 못하고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가 하면, 젓가락으로 전기 콘센트의 구멍을 쑤시다가 감전 사고를 일으키는 일도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마개가 달린 전기 콘센트가 나왔다. 개구쟁이들이 자동판매기, 공중전화기, 우편함 등에 유사물품을 집어넣어 말썽을 일구는 일도 있다. 어른들도 이따금씩 사고를 내는 때가 있다. 이미 얘기한 바 있지만, 담배꽁초 따위를 엉뚱한 구멍에 던져 주변을 더럽히는 경우다. 때로는 불을 내는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 블랙홀(black-hole)에 빠져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하여간, 구멍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간을 유혹한다. 구멍은 뭔가를 끌어들이는 마력을 지녔는가 보다. 우리는 저마다 구멍에 담배꽁초, 동전, 공, 화살, 총알 등 무엇이든 넣고 싶어 하니까.
이제 새로운 진실과 마주친다.
‘인간은 구멍에서 나서, 구멍에서 살면서[穴居], 구멍놀이를 하다가, 구멍[무덤]으로 간다. 마치 다람쥐처럼.’
내 텅 빈 가슴을 무언가로 채우고픈 충동. 이것마저도 ‘구멍 채우기 본능’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