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남 조망대에 올라
십일월 초순 주중 목요일이다. 그간 산중이나 들녘이나 강가로 나가 가을이 이슥해진 상황을 실시간 확인하고 있다. 기상 전문가 의견은 올가을 단풍이 곱게 물드는 편이 못 된다고 한단다. 몇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우리 지역은 예년보다 가을 기온이 높아 아직 본격적인 서리가 내리지 않았고 추석 이후 비다운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아 토양이 함유한 수분 부족도 원인이지 싶다.
일기예보에 이번 주말은 전국적으로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가 온다고 한다. 농부에게는 무나 배추는 물론 겨울을 나게 될 마늘이나 양파에도 생육에 물이 필요한 때다. 나는 나대로 도서관에서 마음의 양식을 채울 시간이 허여되기에 기다려지는 비다. 늦가을답지 않게 한낮 기온은 높아져 더위를 느낄 정도다. 어제는 강변 산책을 마친 귀갓길에 시원한 커피를 연이어 두 잔 비웠다.
새날이 밝아와 어제 다녀온 원동에서 맛본 도토리묵으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아침 식후 산책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본포 강가로 나가는 시내버스를 타려고 원이대로로 나가니 버스 정류소에는 경남 도청 서부 청사 직원들이 임차 버스로 통근하는 모습을 봤다. 창원에 연고를 두고 진주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이었다. 전에는 경상대학 캠퍼스로 가는 버스를 타던 학생들도 봤더랬다.
나는 대방동을 출발해 본포를 거쳐 온천장으로 가는 30번 버스를 탔다. 명곡교차로에서 도계광장을 지나 용강고개를 넘으니 구룡산은 봉우리도 보이지 않고 동읍 일대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일교차가 큰 날에 안개가 짙었는데, 특히 주남저수지를 낀 동읍과 대산 들녘은 안개가 잦은 편이었다. 아까 거쳐온 도심에는 안개가 끼질 않아도 시골로 나간 교외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버스는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을 거쳐 주남삼거리를 지나도록 안개가 짙어 차량 운행에 지장 받을 정도였다. 본포로 나가 본포교를 건너 학포나 반월 강둑으로 걸어볼 생각은 안개가 짙어 마음을 거두었다. 본포에서 수변공원을 지나 대산정수장으로 내려가는 둑길도 안개가 끼면 가을 강변 운치를 전혀 느낄 수 없어 주남저수지를 지나다 마음을 바꾸어 용산마을에서 내렸다.
저수지 둑을 따라 산책함이 일반적이나 나는 가끔 둑에서 아득히 건너다보이는 갯버들이 자라는 수면 가장자리를 따라 걷기도 한다. 안개가 끼어 이러나저러나 전망을 보기는 어려워 갯버들이 자라는 가장자리를 따라 걸으려 마음을 정했다. 산남저수지와 수문을 사이에 두고 주남저수지로 나뉘는 용산마을 어귀에서 금산마을 방향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이슬 맞고 핀 나팔꽃을 봤다.
안개는 끼어도 가까이 다가간 갯버들에는 단풍이 물들지 않고 낙엽지지 않은 무성한 잎은 청청했다. 벼 논은 추수를 끝냈고 단감 과수원은 감을 따다가 아침에 안개가 짙어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낙동강에서 취수된 상수원이 시내로 보내지는 대형 송수관이 묻힌 길은 포장이 되지 않아도 탐방로로 삼아 석산과 고양 이주단지 앞 들녘을 거쳐 백월산으로 가는 갈림길까지 갔다.
들녘과 수로를 거쳐 화목마을 앞에서 다시 갯버들이 보이는 주남저수지 남쪽 언저리를 따라 개척 산행하다시피 과수원과 울타리를 넘어가니 ‘호수에 그림 하나’ 찻집이 나오고 창원 향도 자료 전시관을 앞두고 가월 뒷동산으로 오르는 신설 탐방로가 보여 계단을 따라 올라섰다. 아침부터 서너 시간 걸쳐 짙은 안개를 뚫고 걷었는데 정오가 되어가니 서서히 걷히려는 기미를 보였다.
산책 데크를 따라 오르니 동판저수지 전망대가 먼저 나왔는데 안개에 가려 희미하게 보였다. 산마루 솔숲을 지나니 북향 언덕으로 계단식으로 만든 데크가 나왔는데 주남 조망대였다. 짙게 낀 아침 안개가 그제야 서서히 물러가는 즈음이었다. 안개가 걷히니 주남저수지와 주변의 산과 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찾는 이가 아무도 없는 정자에 한동안 앉아 눈앞 펼쳐진 전망을 굽어봤다. 2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