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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걷기에만도 힘들었다는 것이 절대적인 이유이고,
합리화를 시키지면, 늘상 보는 그저그러한 동네 뒷산인데다
여기에 제 얼굴을 들이대면 다들 놀라셔서 여름밤에 항의전화라도 받을까 두려워.
이유들이 거시기하지만, 그냥 그류~~
그러면서도 올리는 까닭은,
자벌레처럼 꼼지락거리기는 하는 것이 아직 DIGI지는 않았다는 생존 보고 하려고.
세상에서 제일 오르기 힘든 산은?
글쎄요, 어느 종주 코스가 가장 어려웠더라, 하실지 모르겠지만
정답은 '오늘산'입니다.
오늘, 지금 걷고 있는 산이 젤 힘들다는 이짝 산꾼들 사이의 우스갯소리유~
그럼, 다음 가운데 가장 힘든 산은?
이건 주관식으로 내도 답이 너무 빤하구만유.
그럼, 다음 중 동네뒷산 한 바퀴 돌기가 가장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온갖 가시덤불
2. 숱한 갈림길
3. 평균경사도
4. 높은 기온에 무풍
5. 거미줄
이것도 다들 아실테지만, 정답은 ALL.
그리고 벌, 뱀이야 어디든 있고, 나방류, 심지어 진드기, 모기까지. 이러고보니 참 부자네.
너무 쉬운 문제만 내나요? 한 평생 고딩들을 상대하다 생긴 직업병입니다. ^^
자, 그럼 너스레는 그만 떨고 동네뒷산을 올라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본 걸 보여드릴 차례입니다.
우선, 사곡환종주 - 충남 공주시 사곡면의 경계를 따라 걸어서 환종주 길을 내 보았습니다.
앞서 걸은 사람이 없으므로 지도랑 산줄기를 열심히 견주어 가면서.
이건 사실, 요즘 한 게 아니고요, 요즘 하면 누구 말대로 개구락지됩니다.
지난 겨울에 한 겁니다.
겨울에 돌면 좋은 점: 산줄기가 잘 보인다. 알어, 안다구.
안 좋은 점: 눈길이 미끄럽습니다. 지도를 보면서 걸어야 하므로 손도 시렵고. 그래도 여름보단 낫쥬. 벌레도 없고.
너무 뻔한 얘기라서 썰렁하쥬?
제가 원래 좀 허해유~~. 제가 許씨 성이니 이것도 아재개그?
실제 지도와 비교해보시면 흡사하군, 하실 겁니다.
다음으로, 제가 사는 동네인 충남 공주시 우성면 방흥리를 한 바퀴 돌아본 걸 보여드립니다.
이건 지난 달 중복 이틀 후인 28일에 한 건데요, 으흐, 덥어.
이건 실제 지도와 비교해 보면, 갸우거려집니다.
그건, 제가 일부러 능선 따라 걷지를 않고 자꾸만 좌우 벼랑으로 내려섰다가 기어오르곤 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냐고요? 1. 거친 길 뚫는 버릇이 남아서.
2. 다리가 머리의 명령을 모조리 거부하는 육체 이탈 현상.
3. 영지나 도라지나 뭐 이런 거 비스무리한 거리도 나는 거 없나, 하고. BUT 없더군요.
그 결과,
사실, 이때 저는 집에서 나가면서 '가볍게 왕복하고 오지.' 했는데....
왕복은 무슨.
우리 동네 중학교 그늘 벤치에서 잠시 발라당! 숨만 헐떡헐떡. 일직을 보던 행정실 직원이 놀라서 달려오고. ㅋ
이렇게 한 바퀴 돌고, 이번엔 반대방향으로 ~ 이건 오늘.
차라리 진작 비나 올 일이지. 에휴~~ 산행 마치고 나니 억수로 쏟아지네요. 하늘이 야속한 건지, 천우신조인 건지.
이 동네가 도선비기 명당도에 나온다고 하면, 믿기 어려우신가요?
사실, 저 길 가운데 절반(묵방산에서 서공주IC로 내료오는 줄기)이 십승지의 하나인 '유구천환종주' 길입니다. 능선만 따라 걷는다면 말이죠.
'도선비기' 자체가 실제로 도선이 만든 게 아니고 후대의 위서인 걸 보면, 별 신통치 않은데다
설사 도선이 그린 것이라 해도 오늘날 풍수가 다 어디다 쓰는 물건인고? 하실테니...
그런데도 동네 어느 집에 가면 거실에다 그 명당도를 확대 복사해서 떡하니 붙여놓고
한자로 '梅花落地(매화낙지-자식이 복을 받는다는 풍수의 한 형국 )'라 큰 글씨로 써서 현관에 걸어둔 걸 보면... ^^
그리고 실제로 그 집이 있는 부분을 '매당마을'이라 하는데, 제 집 꼭 맞은편입니다.
근데 내가 아무리 봐도 그 집은 북서향이라서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데... 거참.
그집 아들 셋이 모두 잘된 걸 보면 또 맞나 싶기도 하다가
풍수라는 게 어느 대(代)에 와서 복을 받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다
도선비기에 나온다면 한 마을 전체가 다 잘 되어야 할 터인데, 꼭 그런 거 같지도 않고
잘 되면 도회지로들 나갈 텐데, 그러면 결국 마을은 누가 지키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엉뚱한 생각하다가 괜히 거미줄에 걸리기나 하고, 긍께 가던 길이나 가자.
다 지 팔자지 뭐. 하며 팔자대로 걸어보니
이런, 실제 지도와 더 멀어졌네요. 제멋대로 걷다보면 닮은 듯 다른 듯. 또는 다른 듯 닯기도 하고.
뭔가를 찾아보겠다는 일념을 묵방산이 아셨는지, 발견!!! 흰계란버섯. 으흐흐, 일곱 개씩이나. 계란 일곱 개를 배낭에 넣는 이 기분.
근데 집에 가져와서 보니 아무래도 찜찜.
이거 독버섯아니에요? 한 마디에 그랴, 버려. 먹고 켁, 하느니. 그러고보니 광대버섯하고 구별할 방법이... 아직 계란 모양이니 갓에 방사선 무늬를 확인할 수도 없고.
키우는 닭에게 일단 줘 봤지만 녀석들도 안 먹네요.
오래 살고 싶은 꿈틀거리는 욕망으로.
목 좋은 곳에 친 거미의 그물을 망설임없이 부수어 가며, 내 머리를
거미줄에 쑥 내밀 때
거미의 입장에서 보면, 뭔가 큰 게 걸리는 줄 알았겠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큰 게 걸리면 내 그물이 망가질 수도. 그러니 우리가 행운을 바라는 게 어쩌면 이와같을까.
풀은 이슬에 젖은 건지, 빗물에 젖은 건지. 고어텍스를 뚫고 스미는 습기에 양말은 꿀럭거리고.
쿨럭거리다 못해 철걱거리고
물집이 나를 떠 받치는 거 같고.
평균경사도 13%를 목숨 걸고 사수하는 집념. 쓰담쓰담.
휴식 시간은 24분. 지난 번에는 25분. 내 기계가 이상한 건지, 내 딴엔 쉰다고 쉬는데도... 거 이상타.
이상으로 우리 동네 한 바퀴를 올려 보았습니다.
가까운 데서 산행을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눈만 꿈적거리며 생존 보고를 마치는 팔개.
그래두 여까장 읽어주셨는데 뭇생긴 사진 한 장. (어제 친구들과 놀다온 영취산 덕운봉 극락바위)
첫댓글 거친산을 좋아하시는것 보니 진정한 지맥꾼인것 같습니다
사곡환종주 등 여러코스를 개발하셨네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집앞 눈에 뵈는 산 쪼금 돌아본 거 뿐유.
사진도 없는 후기 디게 재미 읍설을 텐데 읽어주셔서 넙죽 절해 올리고 싶네유.
격려에 감사드리고, 분발하겠슴다.
집나가면 고생인데...
더울때는 그저 가만 있는게 좋은데 팔자가 그러하니
조랑말처럼 돌아 다녀야하죠
저는 더운날이나 겨울 모두 다 좋아하기에 얼반 죽을 정도로 더우면 더 좋습니다.
친구님도 그렇죠
아뉴. 그럴 리가 있겄슈. 혹서기 혹한기. 군대서도 요즘엔 이런 훈련 죄다 읍새버린 판인디유.
방장님께서 너무 멀리 걸으실까 겁나유.
늘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딱 ! 제삼리 식구다운 진수를 보여주시네요
남들이 즐기는 그런 쉬운산이라면 ᆢ 여기 머물 필요가 없지요^^ 글도 잼나고ᆢ수고하셨습니다
과찬이슈~.
뛰 대장님을 하냥 흠앙할 따름입니다.
추켜주셔서 으쓱거리는 마음으로 더 열나게 밟아보겄슈. 늘 행복하시길. ^^
새로운 산길 힘들지만 행복으로 다가오기를.....산을 즐기는 방법이 달라도 결과는 늘 같다고 생각합니다 수고하셨네요
다른 분들도 그러시지만, 특히 지부장님 앞에선 피할 길이 없네요. 그림없는 산행기를 올린 제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시니.
저마다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이 클럽 전체에 오케스트라처럼 어우러질 때 아름다운 화음이 울려난다고 생각합니다.
늘 만강하소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기껏 동네 한 바퀴라서 카페에 올릴까 말까 하다 용기를 내본 건데 이렇게 분에 넘치는 격려를 받으니 어디에 숨어야 하나요. 날마다 좋으시길. ^^
시원한계절에 살방살방 같이 걸어볼까요~
네, 누님. 9월 영알이 기다려집니다. ^^
대장님 저도 9월 영알^^ ㅋ
더위가 이제 서서히...
15일이 벌써 말복.
더위 끝나고 너무 날아다니시는 마세유~
날아? ㅋㅋ
서해안에 깽이님이 남기고 오신 이쁜 발자국.
지워지지 않을 추억 속으로 비가 내리겠네요.
영알에서 반갑게 만나요~~
늘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