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영혼이 크게 흔들리는 것 같은 체험 우리 나라에도 이런 멋진 영화가 있었구나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네요 이야기는 뺑소니 사고를 치고 형기를 마친 청년 종두가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하지만 집안의 골치꺼리인 그를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다 뭔 바람이 불었는지 사죄를 하겠다며 피해자 가족이 있는 아파트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여성 공주를 만납니다 말이 제대로 안나오니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하지만 종두와 공주는 서서히 이상한 연대감을 품으며 서로에게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어갑니다
"오아시스는 그냥 사랑 이야기다. 특별한 계기가 뭐 있었겠나 예전부터 사랑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고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은 내적 욕망이 있었다 또 처절함 속에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감독 이창동씨는 인터뷰에서 말합니다 이 영화는 그냥 러브스토리가 맞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한다는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종두는 뺑소니 사고를 친 형을 대신해서 형무소에 들어간 것이었고 공주는 가족과 떨어져 낡은 아파트에 혼자 남겨진 것이 드러나지요 그렇다고 이창동씨가 우리나라 저변에 있는 사회문제를 풍자하고 싶었던 건 아닐 겁니다 세상 한쪽 귀퉁이로 밀려난 소외자끼리의 사랑을 어느 땐 놀라울 정도의 냉철함으로 어느땐 놀라울 정도의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 단편을 도려내고 있네요
♪ 어둔 미로 속을 헤매던 과거에는 내가 살아가는 그 이유 몰랐지만 하루를 살 수 있었던 건 네가 있다는 그것 너에게 모두 주고 싶어 너를 위하여 걸어서 저 하늘까지 종두가 노래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속마음을 열창하자
공주는 동대문역에서 이 노래로 다정하게 화답합니다 ♬ 내가 만약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노을처럼 난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종두는 발음이 John Doe와 비슷하게 들려서 '이름을 알 수 없는 남자'를 의미하는 은어가 떠올랐고 공주는 단어 그대로 Princess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 영화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남자가 공주를 사랑하는 이야기가 되네요
둘이 처음 만난 아파트에서 그녀가 들고 있던 손거울에 반사된 빛이 종두의 눈에 직격하는데 이 때 눈이 부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종두에게 공주는 처음부터 눈부신 존재였던 거죠
막 출소한 종두가 버스에서 내리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한겨울이라고 하는데 입고 있는 옷은 반팔셔츠 그리고 몇번이고 코를 훌쩍거리며 어깨를 껄렁대고 고양이등처럼 구부정이 걸어다니는 모습은 동네 불량배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어딘가 풍체가 이상해씨와 만담을 하던 이주일씨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요 아파트 옥상에서 침을 뱉거나 가게 앞에서 두부를 우적우적 씹거나 여고생에게 돈을 지싯거리거나 이런걸 보면 주폭자 불심자의 전형적인 거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얼씬도 하지 않아요 이창동씨는 이렇게 단지 몇분을 할애해서 그가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라는 걸 명시하지요 종두라는 인간이 정말 거기에 서성대고 있는 것 같은 설경구씨의 탁월한 연기력 아니 빙의력이라고 해야할까요 파충류처럼 혀를 낼름낼름 언제나 히죽히죽 웃고 따분하다는 듯 몸을 흔들어댑니다 '박하사탕'도 분명히 보았을 터인데 그 주인공도 설경구 씨였다니 한동안 눈치도 못챌 정도였네요 배우라는 것이 똑같은 육체 안에 이렇게까지 다른 인격을 담고 있을 수 있구나 마음 깊은 곳에서 놀라고 말았습니다 알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숀펜 케이트 블란쳇 설경구씨도 역시 그들처럼 카멜레온 배우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공주를 연기하는 문소리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 역시 박하사탕에서 윤순임 역으로 데뷔를 했지만 공주와 동일인물이였다니 쉬이 인식 할 수 없었네요 위대한 감독 밑에서 연기라는 게 무엇인지 철저하게 배운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몇분의 감독과 일을 했지만 영향을 받은 감독을 꼽으라면 이창동씨입니다 데뷔작인 박하사탕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하게 해준 분이고 저는 아이처럼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녀는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으니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던 경험이 있을 테고 이 영화에서 뇌성마비환자라는 어려운 역할을 연기하는데 있어 그것이 큰 자산이 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네요 그래서 그녀는 데뷔 두번째 작품인 이 영화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도 가혹한 역할을 전신전령으로 연기를 해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연기하는 걸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꽤 심각하고 음울한 상황이었을 것 같습니다
공주 방에는 새끼코끼리 무녀 소년의 모습이 새겨진 오아시스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어요 사막을 떠도는 여행자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장소 사회와 격절된 공주에게 마음의 위안을 제공해주는 장소 언젠가 꼭 가고 싶다고 바라지만 결코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장소 그래서 그녀는 방 귀퉁이에서 손거울을 반사시켜 하얀 새가 날아다니는 공상의 공간을 만들어내지요 공주가 나무 그림자가 무섭다고 말한 것은 그 오아시스라는 공상의 공간을 덮어가리듯이 현실의 공간이 침식하기 때문입니다 오빠 부부가 그녀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면서 장애인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사해서 살고 있는 공주 낡은 아파트에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요 공주는 그곳에 현실과의 경계선을 긋고 공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갑자기 종두라는 침입자가 나타나서 실은 너에게 마음이 있어서 왔어 사귀고 싶어 라는 말을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경계를 허물어 버립니다 그는 자신과 타인을 가로놓는 경계를 만들지 않아요 그런 이유로 남들이 꺼려하고 피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것 같고 형제로부터 너같은 놈은 격리돼야돼 라는 식의 말도 듣게 되고요 그럼에도 종두는 타인의 사적공간에 신발을 신은 채 성큼성큼 들어갑니다 그런식으로 공주의 사적공간에도 들어갑니다 이게 그녀에게 있어 어쩌면 첫 경험이었을 거예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공주가 무서워 하는 나무 그림자를 사라지게 해주겠다며 종두가 진묘한 주문을 외우는 순간 그동안 품고 있던 그녀의 마음속 경계선이 스르륵 사라져 버립니다 이때 태피스트리에 새겨진 새끼코끼리 무녀 소년이 실물이 되어 공주 방으로 튀어나오고 둘의 사랑을 축복하지요 그렇게 사랑하는 둘은 손을 맞잡고 밖의 세계로 튀어나갑니다 아파트 방에서만 펼쳐졌던 공상의 공간이 종두의 이끌림에 의해 확장되어 현실의 공간과 교차하네요 사회의 한귀퉁이에서 살아온 둘이 그럼에도 단호하게 사회와 대치한다ㅡ 차갑고 냉엄한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기에 이따금 그런 현실에 삽입된 판타지가 한층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또 특별히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습니다 종두의 어머니 생일 파티에 그는 공주를 데리고 갑니다 이때 무슨 영문인지 그는 아무 맥락도 없이 방울새 이야기를 꺼내요 옛날 뒷산에 참새인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방울새라고 목에 방울을 달고 있어서 방울새라고 한다고 방울을 달고 있을리가 없는데 방울새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우습다는 듯이 종두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깔깔대고 웃습니다 수컷 방울새는 귀를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커다란 울음소리로 암컷에게 구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주위에서는 성가시기 그지 없지만 그런건 전혀 상관 없다는 식으로 수컷은 자신의 솔직한 기분을 폭음으로 전달합니다 그것은 종두와 공주 그리고 둘을 둘러싼 환경을 있는 그대로 대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영화 초반에 공주 방을 날아다니던 하얀 새는 방울새였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종두는 처음부터 공주에게 있어 운명적인 사람이었을까요 이렇게 오아시스는 경계선을 초월한 러브스토리입니다 그것은 결코 특별한 것도 아니죠 둘이 엮어가는 사랑의 특수성이 아니라 그 보편성에 나는 그저 압도될 뿐이었습니다
첫댓글 저게 연기라니... 문소리 대단함
몸 풀어주려고 촬영장에 마사지사가 있었대요
문소리 배우 대단하죠
박하사탕부터 요세 보는 폭싹 속았두다 까지
연기를 하는게 아니라 그냥 빙의된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