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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16.7.24.) 말씀 / 누가복음 19:1-10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신 예수님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실 때 그곳에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악명 높은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였습니다. 대게 당시 세리들은 공인된 죄인으로서 돈밖에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좀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많이 몰려가고 자신은 키가 작아 볼 수 없자 앞으로 달려가서 뽕나무(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 나무 위에서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리로 지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그의 마음을 모르실 리가 없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쳐다 보시고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집으로 영접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셨고 삭개오는 영접하고 아주 간단히 표현되었지만 당신 관습으로 사람들이 죄인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아주 파격적인 일 이었습니다. 뭇 사람들은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고 수군 거렸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로서는 너무나 감동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어느 누가 자신을 사람취급을 해주었으면 따스한 말 한 마디라도 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손가락질 받는 세리라 해도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의 정에 대해 얼마나 목말랐겠습니까? 그렇지만 사람들은 밥도 그와 같이 먹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영접해주시고 기꺼이 밥도 함께 드셨습니다. 그는 너무나 감동을 받고 이미 그 순간 딴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구두쇠 같았던 자가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는 사랑의 예수님을 만나고 돌이켰고 회개를 한 것입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동안 잘 못 살아온 것을 깨닫고 구체적으로 돌이켰습니다. 회개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삶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를 보시고 너무나 기쁘셨습니다. 사람들 보는 앞에서 공식적으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마지막 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10 절을 보시기 바랍니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오늘 잃은 자를 찾았고 그를 구원하는 것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는 삭개오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존재를 발견케 하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삭개오는 어떤 점에서 잃은 자였습니까? 그는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처세술도 띄어났습니다. 좋은 집도 가졌고, 요즘 같으면 고급 승용차도 몰고 다녔습니다. 물질 만능 주의 시대라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세상관점일분입니다. 하늘의 관점에서 예수님이 보시는 삭개오는 잃은 자였습니다.
그는 유대 땅에 하나님의 선만으로 태어났고, 세상에 그 누구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을 받았고, 율법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당시에 오신 구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은혜를 누린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돈을 위해서 사는 매국노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주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의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실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의 사랑도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자였습니다. 세상에 잃은 자가 삭개오뿐 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다 길 잃은 자들입니다. 설령 하나님을 안 떠났다고 해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기 욕심을 좇아 사는 사람들, 바리새인 서기관들 역시 다 잃은 자들입니다. 저도 잃은 자였고 여러분도 잃은 자였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주시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리를 무엇을 위해 살고 있겠습니까? 시장 통에서 사우고 있을지, 10억 만들기 목표를 세우고 주식 시장에 매일 출근하고 있을지 우리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들면서 아버지가 큰 아들에게 들려준 말씀을 우리는 기억 합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여기서도 탕자를 잃은 자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생명을 잃었다가 찾은 자들입니다. 이제는 덤의 인생을 사는 자들입니다. 베드로 전서 2:10절은 이렇게 말 합니다.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지난 주 주작산을 다며 오면서 오고가며 많은 묵상을 했습니다. 남쪽 나라 전라남도 무안에서... 거반 30년 가까이 살다보니 이제 나는 전라도 사람이 다 되었습니다. 고향도 전라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고향을 잃은 자였지만 산과 바다가 아름다운 새 고향을 얻은 자입니다. 제 나이 60넘어선 지금 돌아보며 생각하면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 명예, 큰 역사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기쁨, 평화, 자유, 행복, 의미 ...등 삶의 본질을 찾고자 갈급하는 마음은 갈수록 뜨겁게 일어나고 있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저나 여러분들이나 신앙을 떠나 참된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열망 인지 모릅니다. 소유보다도 잃어버린 본질의 자아를 찾고자 하는 갈급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생각 없이 가거나 책 없이 가는 적은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영적 본질의 자아를 찾고서 살아간다면 훨씬 아름답고, 가치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저 먹을 것 풍족하고 등 따스하면 살수 있는 짐승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한 차원 더 높이 내면속 마음과 영혼에 기쁨과 평안이 있어야 하고, 사랑과 가치와 의미에 대한 보람도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 살 수도 없고,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행복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본질의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이던 다른 나라이던 정치행태를 보십시오. 김정은이 핵실험을 하고 난리 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얻으려고 합니까? 터키 구테타가 실패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의 숙청이 예고되고 있고, 비극의 말로를 격고 있습니다. 무엇을 얻고자 싸우고 죽이는 일을 합니까? 권력과 돈을 잡은 들 사랑과 평화를 잃는다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갑니다. 제가 나이 들면서는 자연을 가까이하게 되다보니 전에는 잘 몰랐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자연의 푸르름과 신선함은 언제나 마음을 맑게 하고 참된 평안과 기쁨을 회복시켜 줍니다. 이런 것들이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배울 수 없는 정말 중요한 것들을 배우고 얻게 됩니다. 그것은 내면적인 가치들입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저는 내가 먼저 기쁨의 사람이 되지 않고, 평안의 사람이 되지 않고, 자유의 사람이 되지 못하면 가족들에게도 성도들에게도 참된 복음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배우려하고, 체험하고 느끼려 합니다. 그리고 작을지라도 내가 정말 알고 체험하는 것들만 말하며 전하고자 합니다. 산에 오르면서 책 한권을 가지고 갔습니다. 프랑스인들 사이에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로 알려진 피에르 신부의 '단순한 기쁨'이란 책입니다. 그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분은 엠마우스라는 세계적인 빈민구호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찾아온 첫 번째 방문자는 난봉꾼 아버지를 죽이고 감옥에 간 동안 가정이 붕괴 돼 자살을 기도한 남자였습니다. 절망에 빠져 도움을 구하는 그에게 피에르 신부는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대신,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집 짓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죽는 것은 조금 나중에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거야 어려울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는 자살을 보류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ㄹ건데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변화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피에르 신부에게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신부님께서 제게 돈이든 집이든 일이든 그저 베푸셨다면 아마도 저는 다시 자살을 시도했을 겁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살아갈 방편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집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인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살아야할 이유, 삶의 기쁨을 잃어버릴 때 종종 인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엠마우스를 찾아 그 남자의 경우도 똑같은 형편 이었지만 살아야 할 이유 삶의 본질을 찾았을 때 더이상 자살 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삶의 목적을 모르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산 자나 죽은 자나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 자들인가요? 한번 깊이 생각해보며 살아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이 땅의 삶을 끝마치고 어디론가 갑니다. 오늘일지 내일 일지 모릅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 앞에 가게 되는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인가요? 우리는 근본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할 자들입니다. 잘 알지만 마음에 평화를 잃으면 그렇게 못 삽니다. 마음에 욕심이 있으면 안 됩니다. 불안하고 두려운데 어떻게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겠습니까? 부정적인 생각과 불신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렇게 못 삽니다. 사랑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힘들게 사는 이유는 이런 내면의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맹자는 이렇게 말 합니다. "사람이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곧 찾을줄 아나 잃어버린 정신(마음)은 찾을 줄을 모른다.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 뿐이다." 독서의 참 목적도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라는 이야기지만, 맹자는 왜 사람들이 잃어버린 닭이나 개는 찾으면서 본질인 마음은 찾지 않느냐는 꾸짖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는데도 안 찾는다는 것입니다. 나도 100% 공감이다. 인간 내면 본질을 찾고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동안 살기 바빠 많이 무엇을 잃어버리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너무 바빠서 가족들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도 소흘이 하며 살았느지 모릅니다. 마음의 평안을 잃었다면 우선 먼저 찾아야 합니다. 이것을 잃으면 나중에 아무리 큰집, 많은 재물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사랑을 잃었다면 가족, 친구 아무도 없는 것이다. 진실을 잃었다면 평생에 이룬 업적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을 잃는 것은 곧 다 잃는 것입니다. 신뢰 회복, 사랑, 감사, 기쁨, 평안, 정직 가장 중요한 것 들을 찾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정말 삭개오가 변화되어 달라진 것처럼 우리의 삶의 새롭게 변화 될 것입니다.
오래 전에 개그맨 황기순씨의 감동 인생고백을 읽고 은혜가 되었습니다. 우연히 원전 도박에 손을 댔다가 상습도박꾼이 되고 팽가 망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음은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 몸은 필리핀 행 비행기에 먼저 앉아 있었습니다. 도박은 더 큰 도박으로 이어지고 도박 자금을 위해 집을 팔아치고 주변에 돈을 안 빌린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도박이 매스컴에 알려지고 검찰에 기소되면서 그 인생은 사실상 파멸했습니다. 그 후에는 대인공포증 기피증이 생기고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습니다. 대게 여기서 사람들은 포기하기 쉬운데 이 사람은 자신을 찾는 노력을 했다는 것입니다. 푼돈을 모아 먼저 빚을 값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푼돈으로 언제다 빚을 값을 수 있을까 했지만 그 때마다 값은 액수와 남은 액수를 장부에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반환 분기점에 이르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 많은 빚 반을 값은 것입니다. 스스로 감탄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 이것이구나. 되는구나”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도리어 그의 감동스토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한번 돈이던 재산이던 명예 던 크게 잃고 낙심 할 때도 있습니다. 그 때 포기해서는 안 되고 잃은 것을 찾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찾는 사람은 오히려 더 행복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우리 지금 이 순간의 자리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살았는가 돌아봐야겠습니다. 독서등 휴식이던 여행이던 잃은 것을 찾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높고 좋은 산은 강원도에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발품 팔아 남쪽 산을 올라보니 여기저기 숨은 비경들이 많은 것을 찾아냈습니다. 전라도가 더 아름다워지고, 저 때문에 니 남쪽 산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자신 안에 그동안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답고 지혜로운 성품들이 알고 보면 많습니다. 그런데 세상 염려근심 두려움 때문에 많이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사랑, 절제, 온유 겸손 ...이런 마음만 회복해도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서울에 김종두 목자님은 제 글을 계속 읽으면서 목사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삶이라고 합니다. 목사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저도 잃은 것만 바라보고 넉 놓고 있으면 불행하고 어둡고 힘들게 살았을지 모릅니다. 반대로 새벽부터 일어나 배우고 찾고 해보니 오히려 많은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잃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도 잃어버린 연혼들을 찾아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을 힘쓰고, 또한 우리 내면에 잃어버리고 찾아 더욱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기도 합니다.
(20116.7.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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