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가 좀 길고... 그래서 의역 오역이 많습니다.
그래도 여자친구는 없어서 번역한 보람이 느껴지네요;;; 뭐 피끓는 남자인 것은 맞지만-_-
【월드컵 후 아르템의 인터뷰】
―아르템, 당신은 민스크에서 태어났죠. 부모님은 어떤 사람입니까?
「국적은 벨로루시에요. 전기기사인 아버지와 유치원 교사인 어머니, 여동생은 테니스 선수로 국제대회에도 나가고 있어요.」
―생활은 어떻습니까?
「궁핍했어요. 집에 큰 돈이 있던 것은 한번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것에 대해 어떤 불만도 없었어요. 내가 원했던 것은 그저 약간의 자유였어요. 아버지나 어머니는 언제나 나에게 공부해라.. 연습해라.. 아주 시끄러웠거든요. 그러지만 나는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실제로 어릴때 쭉 아파트 안에서 보낸 거 같아요. 여동생과는 늘 작은 일로 부딪쳐서 싸움이 끊이지 않았어요. 지금은 다 즐거운 농담거리지만요.」
―몇 살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습니까?
「7살 때에요. 다니던 학교에서 선수모집이 있었어요. 지원하는 아이들은 많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도중에 탈락하여 집으로 돌아갔어요. 하지만 나는 금새 축구에 푹 빠져 버렸어요.」
―당신은 축구선수로서 뛰어난 자질이 있었던 건가요?
「뭐라 말하기 어려운데 제 생각엔 그 나이때는 모두 같은 정도가 아닐까요.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을 시작하는 시기가 좋았고 어떤 사람은 이미 너무 늦어버렸고..... 그런 차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의 최초의 지도자인 니콜라이가 “왜 그를 써야 하지? 그는 축구선수에 적합하지 않아”라고 쓴 것을 본적이 있는데요.....
「그런 것 처음으로 들었어요. 나는 언제나 신뢰 받고 있었어요! 15살까지지 민스크에서 플레이했어요. 그때 우크라이나에서 나를 원했어요.즉 파벨이 아버지에게 연락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키예프에 인터내셔널 풋볼 아카데미를 만들었습니다. 매우 좋은 환경이고 우리는 당신의 아들이 와 주었으면 합니다.”라고.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키예프에 왔습니다. 첫번째의 트레이닝을 끝내면 두 번째. 그러한 식으로 아카데미에서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귀화가 제안된 것은 언제입니까?
「처음부터라고 생각되요. 나는 오랫동안 승낙하지 않았어요. 아마 아직 그렇게 친한 친구를 만들지 못해서 그랬을 거에요. 하지만 마침내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깨달았어요. 그 다음의 새해에 민스크를 방문하고,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그것을 말했습니다. 패스포트를 벨로루시의 것에서 우크라이나의 것으로 바꾸겠다고. 모두 쇼크를 받았어요. 특히 아버지는 심했습니다. 그는 내가 우크라이나의 클럽(혹은 대표 팀)에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희망은 변하지 않았어요. 벨로루시의 축구의 레벨은 내가 요구하고 있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축구는 강하고, 그 레벨의 높이는 월드컵에서 증명되었지요.」
―아버지는 납득해 주었습니까?
「네, 이해하기까지는 꽤 어려웠지만. 아버지와 나 우리들은 모두 강한 사람들이라 한 사람이 의견을 가지면 다른 사람은 또다른 의견을 갖고 서로 일치하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렇지만 정식적 등록은 늦었어요.
「그때를 다시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에요. 플레이가 가능한가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한가 확실치 않았지만, 나는 소망을 버리지 않았어요. 그레고리 미하일로비치라고 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자 끝까지 해결해 주겠다고 말해 주었어요. 그와 그의 서포트에는 정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FIFA가 최종결정을 내렸을 때는 단순하게 기뻤어요.」
―벨로루시에서는 압력을 받았습니까?
「민스크의 풋볼 협회가 나와 아버지를 초대했습니다. 회장과 이야기를 했지만 같은 의견을 모으는 것에는 실패했어요. 마지막엔 서로 악수를 하고 행운을 빌어 주었지만.」
―당신은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는데요.
「신문에는 시시한 것이 많이 써 있었지만, 나는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아요.」
―지금의 벨로루시 국민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나는 냉정하게 대처할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어요. 올해 새해는 민스크에서 보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친한 친구들에게만 연락을 했어요. 완벽하게 보냈어요. 불쾌한 일은 전혀 귀에 들려오지 않았어요. 보통으로 생각하면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기쁜 일. 확실히 벨로루시는 나의 고향이고, 향수를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키예프와 민스크는 어느쪽이나 같은 거리인 것에 변화는 없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을 결론짓는 것은 간단한 일이고 그 쪽이 좋아요.」
―디나모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여기에서는 항상 높은 레벨이 요구됩니다. 디나모·키예프에는 언제나 치열한 경쟁이 있으니까요. 1, 2년 임대해 오는 선수도 있고 팔려 버리는 선수도 자주 있어요. 큰 돈을 지불해 획득한 선수는 확실히 항상 스타팅 멤버로 사용해야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역시 그들과 동등하게 플레이하기 위해서 내 능력을 보여주려고 해요. 그렇게 계속 해 나가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당신에게도 기복이 있습니다. 조금 부진했던 시기가 있었지요.
「그래요, 팀에 소집되는 일 자체가 적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무엇인가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젊을 때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멘탈적인 면의 물결도 있고, 이렇다 할 만한 특정의 원인이 없어도 페이스가 떨어지기도 하는 거니까요.」
―디나모의 트레이닝은 어렵습니까?
「기본적으로는 5, 6 년전과 하고 있는 것은 같아요. 그것을 계속하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고 아무것도 문제는 없어요. 계속 듣는 말은 근육을 강하게 하라는 것. 트레이닝장에 도착하자마자 모의실험 장치에 가요. 새로운 트레이너와 함께요. 그는 현역때 디나모의 선수였어요. 내가 강하게 바라고 있는 것은, 지금 시즌의 주전이 되는 것. 챔스에 출장하고 국내 리그의 타이틀을 탈환하고, 거기에 컵 타이틀도 한번 더 갖고 싶어요.」
―당신이 우크라이나 월드컵 멤버로 선택되었다고 하는 것은 언제 알았습니까? 누구에게 들었어요?
「미하일로비치로부터 전화를 받았용. 축하합니다라고 말해 주었어요. 저것은 5월 15일로, 우리들은 정확히(U-21의) 유럽 선수권이 개최되는 포르투갈로 출발했어요. 그러니까 우선은 침착하려고 했어요. 우선은 이 대회(유럽선수권)에만 집중해야 했고.」
―그 대회가 끝나고 당신은 또 하나의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첫경기인 스페인전, 1점을 잃고, 2점, 3점, 그리고 4점을 잃었습니다. 당신이 교대로 출장할 준비는 있었습니까?
「그런 일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에요. 이 시합만이 아니고 다른 시합에서도. 그렇지만 그 시합은 스페인에 유리한 환경이었어요. 그것을 계속 말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요. 그 더위는 극단적으로 견뎌야 했어요. 벤치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셔츠를 벗었어요. 하물며 피치의 선수들은?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들은 그런 환경속에서 무엇인가를 완수하기 위해 달리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상황은 모두에게 같은 거죠......
「상황은 같다.... 물론 그렇죠. 그렇지만 우리들은 피치에도 익숙해지지 않았어요. 지면이 너무 딱딱했고요. 다음의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는 더 하기 쉬워졌습니다. 라이벌이라고 하는 레벨도 아니었고 그들의 골키퍼에게는 빈틈도 있었어요. 루솔의 골? 그래요 그건 정말로 깨끗하게 들어갔지요. 골키퍼가 미끄러졌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마지막 5분에 ”들어가라“ 라고 들었을 때는 조금 긴장했어요. 그렇지만 큰 걱정은 없었고, 이것은 단순한 테스트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알았어요. 실제로 플레이하고 있는 것은 모두 나와 같은 인간이니까요.」
―당신은 자주 볼을 잡았지요.·
「나는 무엇이 가능학 무엇이 가능하지 않은지 생각했어요. 공격만이 아니에요. 그 때 필요했던 것은 볼을 지키는 것. 상대를 걸고 볼을 빼앗는 것.」
―그것은 능숙하게 할 수 있었어요?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나의 신장을 생각해 봐요. 190cm에요.」
―당신은 빈번히 내려오고 디펜스도 해냈었어요.
「그것이 필요한 때도 있어요 특히 그런 시합에서는.」
―당신은 매우 초조해하고 있던 것 같지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파울의)휘슬이 울렸을 때 상대가 손을 대어 오면 어떻게 해요? 그래요, 그들은 그런것을 했어요. 그걸로 내가 화를 내서 소란을 불러 일으켰으면 경찰도 멈출 수 없었을 거에요. 그렇지만 나는 어떻게든 억제했어요. 시합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당신은 가끔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없게 되는 일이 있군요. 월드컵의 결승에서 마테라치에 보복한 지단과 같은 일을 한 적이 있나요?
「있어요. 디나모 -2에서 플레이했던 19살 때 말이에요. 샤르코프와의 시합에서 그들은 나에게 몇번이나 거친 플레이를 걸어 왔는데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았어요. 나는 화가 나서 자제심을 잃어버리고, 상대를 덮쳐버렸어요. 물론 레드카드를 받았습니다. 그 때 생각했어요. “나는 뭘 한거지? 이런 일을 해서 뭐가 해결되지?”라고. 팀은 이겼지만 나에게는 불쾌감만이 남았어요. 이런 일을 해도 팀에게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아요. 폭력에 폭력으로 응하다니.」
―그리고 시합 중, 더러운 말은 나왔습니까?
「그렇죠 그렇지만 그것은 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상대를 괴롭히면 결과는 따라 오는 것이고.」
―다시 잠시 플레이한 튀니지전 후의 스위스전은 격전이 되었어요. 당신은 추가 타임에는 이미 피치에 서있었요. 어떤 임무를 받았나요?
「그것에는 나도 놀랐어요. 올레흐 블로힌이 나를 교대로 내 보낼 때는 언제나 이미 결과가 정해졌을 때뿐이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 때는 내가 시합의 흐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공격적인 시합이었지만 나도 컨디션은 좋았고 워밍업은 2, 3분으로 충분했어요. 그리고 시합 종료의 휘슬이 울렸어요 누가 PK를 차? 모두 모여 의논했습니다. 그랬더니 올레흐 블로힌이 “찰래?”라고 물었어요. 나는 “찰게요”라고 대답했어요. 왜냐고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셰브첸코 처음 실축했을때 상황은 어렵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나는 “만약 내가 여기서 결정하면 흐름은 반드시 우리쪽으로 온다”라고 생각했어요. U-21의 유럽 선수권의 네델란드전때와 같은 칩샷을 차려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내가 차기 전에 골키퍼가 사이드로 뛰었기 때문에 나는 한가운데로 찼어요.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것을 “스푼(쿠키아이오)”라고 불러요. 아니면 “낙하산”이라든지 “커팅”이라든지. 나는 저것이 특히 자신있다는 것은 것이 아니지만, 트레이닝 중에 연습한 적은 있었어요. 그렇지만 공식전에서 찼던 적은 없었으니까 넣었을때는 기뻤어요. 그렇게 레벨의 높은 시합에서 결정할 수 있던 것이니까요.」
―이탈리아와의 8강전의 전 많은 전문가나 팬, 선수들이 낙관적인 예측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요? 무엇이 이탈리아에 이기는 결정적 수단이 된다고 생각한거죠?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해결한 것이었다. 그들은 단지 이 시합에 영웅을 요구했어요. 무엇인가 확실한 자신이 있던 것이 아니에요. 올레흐 블로힌은 로커룸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스위스전때와 같이 하자”라고. 그렇지만 빠른 시간에 1 점을 뺏겨 우리들은 혼란스러워 졌어요. 40미터 정도로부터의 슛이었기 때문에 쇼크는 컸어요. 나도 칼리니첸코로부터의 패스를 힐로 돌려주거나 찬스를 만들었어요. 아직 1점 차였고 아직 어떻게든 된다고 믿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2점째를 내주었을 때 “이것은 우리들의 게임이 아니다”라고 깨달았어요. 완전하게. 우리들은 마치 아이와 같이 그들의 손 위에서 놀고 있었어요. 그리고 3점을 잃었을 때 거기서 끝났어요. 나는 그 때 이미 교체 당했고요.」
―어떤 기분으로 피치를 떠났습니까?
「그것까지 나는 조금 밖에 시합에 출장하지 않았어요. 스타팅 멤버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걱정이었어요. 시합 전날, 셰브첸코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보로닌이 부상 당했어. 이탈리아전에서는 아마 네가 스타팅 멤버가 될거야. 피치에서는 아마 내가 너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 이탈리아의 디펜스는 잘 알고 있으니까”라고.
확실히 그랬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몇개의 일은 불가능했어요. 그들의 디펜스는 빠르고 우리들에게 볼을 갖게 해 주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몇 번인가 프리킥을 받기도 했어요. 우리들은 결과적으로 월드 챔피언이 된 팀과 싸웠어요! 칸나바로가 나를 마크 했지요. 텔레비전으로 셰브첸코가 대전하고 있는 것은 보고 있었지만, 실제로 피치상에서 대전해 보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라요. 그에게 이기는 것은 도저히는 아니지만 무리였어요.」
―만약 셰브첸코의 컨디션이 완벽했더라면, 우크라이나는 더 위로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어느 쪽으로 해도 이 정도가 자연스러운 결과였던 것이 아닐까요. 셰브첸코의 플레이는 디펜더에 방해받고 있었을 거에요. 거기에 우리들의 디펜스력은 월드컵에 출장한 나라 안에서는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토니등 이탈리아는 공격을 어떻게 하면 디펜스를 무너트릴 수 있는지 알아요.」
―당신은 이탈리아를 좋아하네요?
「아이때부터 열광적인 팬이었어요. 이탈리아가 월드 챔피언이 되어 기뻐요.」
―그들로부터 배운 것은 있습니까?
「토티에게서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예를 들면 볼을 처리하는 기술. 그는 언제나 원터치로 재빠르게 포워드에 볼을 공급해 공격의 기점이 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기술이에요. 그리고 PK도. 그의 슛은 훌륭해요 가투소의 헌신적인 플레이도 하프백으로서 이상적이에요. 말하려고 하면 전원에 대해 말할 수 있어요.」
―과거의 위대한 선수들로부터 훔치고 싶은 것은 있습니까?
「펠레라든지 그러한 선수들? 그들이 플레이하고 있었을 때는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내가 최초로 충격을 받은 선수는 반바스텐. 호나우도의 최성기의 드리블도 대단했다.」
->어린 게 아니라 태어나지 않았겠지;;;;
-당신은 미신을 믿는 편인가요?
「그렇지 않지만, 신의 존재는 믿고 있어요. 축일에는 교회에도 가요. 전의 크리스마스는 친구와 함께 갔다. 촛불을 켜고 부상중인 부위가 빨리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모두 신의 덕분이에요.」
―당신은 아직도 젊은 청년입니다만, 이미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네요. 신념 같은 것은 가지고 있어요?
「나의 인생에 있어서 제일의 신념은, 어떤 상황에 되어도 혼자 확고한 인간으로 계속 되는 것. 오늘과 내일 말이 다른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뒤에서 사람을 험담을 하지 않는 것. 그리고는 가능한 한 심플하게 살고, 심플하게 커뮤니케이션을 취하는 것. 어쨌든 모두 신의 말씀이에요.」
―그렇지만 스트레스가 모여 가라앉기도 하지요?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특히 클럽 안에서 공평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 올 때는 힘들어요. 가끔 무섭게 가라앉을 때가 있어요. 그런 때는 신이나 부모님에게 감사하고, 그리고 친구를 불러요. 파티를 열고 서로 농담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해요.
신체적으로 힘든 것은 유럽 선수권이나 월드컵과 같은 장기 원정으로 1개월 반 이상을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될 때. 그럴때는 먹는 걸로 푸는 거 같네요. 다 먹은 후에는 싫었던 일은 다 잊고 있어요. 확실히 보르시치는 좋아해요. 그리고 Hodge-Podge(잡탕 같은 것?)가 너무 좋아요. 키예프의 것이 제일 맛있어요.」
―지금의 생활에 불만은 없습니까?
「여기서의 생활은 훌륭해요. 미하일로비치에게는 감사하고 있어요. 방 2개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새로운 기계를 살 거에요. 뭔지는 비밀이지만.」
―인생에는 항상 유혹이 있지요. 저항할 수 없는 것은?
「많이 있지 않아요. 디스코, 춤추는 것, 예쁜 여자 아이. 휴일은 가능한 한 나가기로 하고 있어요. 술도 그래요. 그렇지만 많이 마시지는 않아요. 다음날 아침에 트레이닝이 어떤 때에는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기도 하고.」
―잠은 잘 자나요?
「그 때마다 다르네요. 영화나 음악을 들으면서 점점 잠들기도 해요. 제일 좋은 것은 구성의 구조를 생각하고 있는 때일까요. 전부가 이미 바꿀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있어! 그리고는 게임을 생각하거나. 곧바로 잠들어요.」
―독서는 합니까? 극장에는?
「독서는 별로 하지 않는요. 모든 시간을 베이스(?)에 소비하고 있어요. 영화는 가끔 보러 가요. 최근 「캐리비안의 해적」2를 보러 갔지만, 솔직히 기대만큼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요즘 영화는 저런 옛날 이야기뿐이고.」
―연인은 있습니까?
「없어요.」
―그것은 축구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그런건 아니고요. 단지 사랑에 빠질만한 여자를 아직 만나지 못했으니까요.」
―팬의 모두에게는 만족합니까?
「물론. 요즘 주로 하는건 그들의 메시지를 읽는 거에요. 유감스럽게도 모두 읽는 건 무리이지만요.」
―쾌락은 좋아해?
「그것은 모든 일에 관계하고 있지요. 나도 보통정도의 반응은 하지요. 여자 아이를 보고 있으면 그럴 기분이 들고, 그렇지 않은 남자가 있어요?」
―그렇지만 연인은 없다고 말했었어요.
「연인이 없다고 해도 함께 자는 상대가 없다는 것이 아니에요.」
―머리카락이 매우 예쁘네요. 그렇지만 시합중에 방해 되지 않아요?
「눈에 뜨이게 되면 자르기 때문에 괜찮아요.」
―지금까지로 제일 기뻤던 추억은 무엇입니까?
「U-21 유럽 선수권 플레이오프의 벨기에전에서 골을 넣었을 때요. 홈에서 졌었기 때문에 우리에겐 물러 설 곳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25분간 3점을 만회했어요. 그것이 승리로 연결되었어요. “차라! 여기서 차지 않았으면 PK전이 된다! 그 것만은 막아라!”라는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어쨌든 달려 눈감고 슛을 쏘았죠. 골! 우리들이 이겼다! 그렇게 유럽 선수권의 출장이 정해졌어요.」
―당신이 축구계에서 인정 받기 위해서는 지금이 중요한 분기점이군요.
「그것은 신이 결정하는 것. 될 대로 되라죠.」
첫댓글 연인이 없다고 해도 함께 자는 상대가 없다는 것이 아니에요.., ㅜㅜㅜ 씁쓸하네요 ㅜㅜㅜ
222 그러게요 허허 이 총각
예상대로 거침없네열 ㅋㅋㅋ 근데 축구선수한테 저런걸 인터뷰한다는 것도 새롭네요 ㅎㅎㅎㅎㅎㅎㅎ
저번에 제가 러시아어를 영어로 또 우리말로 번역해서 올렸던 내용이네요... 정확히 8월 15일 인터뷰 입니다. 그러다가 2일도 채 안돼 삭제하긴했지만 아직도 씁쓸한 마음이 드는 인터뷰네요... 담아갑니다
아악~~ 왜 삭제하셨어요ㅠ.ㅠ 그럼 제가 저리 허접하게 번역한 것을 올리지 않았을텐데ㅠ.ㅠ
당시에 올렸을때 그것도 일부만 올렸였고, 게시판 성격에도 맞지않아서 삭제했어요.. 물론 번역도 저보다 훨씬 잘하셨구요...
와..정말 해석 대단하시네요 ^^ 한자도 빼놓지 않고 잘 읽었습니다..밀렙스키 선수는 정말 터프하시네요~ㅋㅋ
ㅠㅜ 아......... 연인이 없다고 해도 함께 자는 상대가 없다는 것이 아니예요.... 이부분이 왜이렇게 내 마음을 울리는걸까....여러분! 뭐 밀렙이도 남자고 훈훈한 청년입니다 우리 이런건 인정하면 안되지라..................ㅠㅜㅠㅜㅠㅜㅠㅜ
와아- 칼리나편에 이어 진짜 수고하셨네욥!!! 감사합니다 ^^ 정말 잘 봤어요!!!
헉 자다니ㄷㄷㄷㄷㄷ
감샤합니다 연인이 없다고해서 자는상대가 ..........
헉 ㅠㅠ 이러지마 밀렙아
아직 젊어! 기회 많을꺼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