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통신] 한 좌파 교수의 꿈
2015.07.24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이자 사회이론가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스스로를 ‘철저한 막시스트’라고 부를 만큼 골수 좌파다. 그는 세종시 도시 디자인을 설계하는 데 참여했다. 10년 전, 세종시 도시 개념을 국제공모한 적이 있는데 당시 심사위원장이 하비 교수다.
세종시는 둥근 원 모양인데 이는 하비 교수의 철학이 담겨 있다. 가운데는 녹지가 있어 탈중심적 구조를 지니고 있고, 어떤 것도 다른 어떤 것을 지배하지 않는 구도를 지향했다.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서민 중심의 도시 설계라고 한다. 하지만 세종시에 사는 서민들은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교통만 보더라도 그렇다.
이춘희 세종시장에 따르면 세종시 도로율은 24%로 전국에서 제일 높다. 그런데도 중심도로에 차가 막히는 이유는 ‘분배’에 있다. 12차로 이상의 중앙로를 없애고 4차로 도로를 3개 만드는 식이다. ‘선택과 집중’보다는 ‘분배’에 치중한 나머지 교통량이 집중되는 도로는 항상 막히는 반면 나머지는 텅 비는 비효율적인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주차 문제도 심각하다. ‘클린 도시’를 지향하면서 주택가 대부분의 주차장을 지하에 만들도록 설계했다. 용량 한계가 있는 지하주차장은 금세 포화되고, 어두컴컴한 주차장에선 안전사고 등 각종 사고가 빈번하다. 클린 도시 개념은 결국 차를 갖고 다니는 ‘부르주아’ 계급을 불편하게 하는 대신 지상에서 걸어다니는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것이다. 마이카 시대를 넘어 1가구 2대의 차가 있는 세상에서, 산업화 초기 때나 어울릴 법한 구시대적 도시 개념을 잘못 접목해 빚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세종시의 상징물인 정부 청사도 난센스다. 하비 교수에 따르면 “식사를 하거나 집무실로 이동할 때도 산을 바라보거나 공기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 결과 탄생한 건물이 전장 3㎞가 넘는, 뱀처럼 꼬불꼬불한 기이한 청사 건물이다. 10층 이하로 설계된 건물들은 브리지라고 불리는 통로로 연결돼 있다. 따라서 업무 공간보다는 이동 공간이 많다.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효율성에서 볼 때 철저히 실패한 건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하비 교수가 세종시 도시 개념 심사위원장이 됐을 때 긴장했다고 한다. 개혁 성향의 김 전 실장이 보더라도 너무나 좌파였기 때문에 보수 언론들이 알면 노무현 정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들은 눈치 채지 못했고, 결국 하비 교수는 위원장직을 계속할 수 있었다. 좌파의 시각이 아닌 중도나 우파 인사가 디자인을 했으면 세종시는 지금쯤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박상전 서울정경부 차장 mikypark@msnet.co.kr
출처 / 매일신문 201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