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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자 연석회의 개성 간의역을 순례(巡禮)함에 있어서 아래 사항(事項)을 원칙(原則)으로 삼고자 회의(會議)를 시작하겠습니다.
♢역장(驛長)님, 개성시(開城市)의 전반적인 개요(槪要)를 부탁드림니다. ☞-개성시(開城市)는 경기도 북서쪽에 있는 시(市)로써, 개성시(開城市)·개풍군(開豊郡)·장풍군(長豊郡)·판문군(板門郡) 등의 1시 3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 1,308.6㎢와, 인구 381,774명 정도의 도시입니다.(추정(1991)
♢바다님, 개성시의 자연환경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개성시(開城市)의 북부는 아호비령산맥 말단부인 천마산 줄기가 황해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북동부의 산악지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100m 이하의 구릉지입니다. 시의 북동부 경계선을 따라 임진강이 흐르고 서부경계를 예성강이 흘러 한강하구에 유입합니다. 지질은 금·아연·동·형석·석회석·화강석·천마암·고령토 등의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기후는 대체로 온난습윤하다.
♢별님, 산업·경제 부분을 요약해 주십시오. ☞-농업 생산에 유리한 지형·기후·토양 등의 자연조건과 18개의 저수지와 150여 개의 양수장 외에 수백 개의 보를 축조하여 수리체계를 확립하였다. 곡물은 쌀·옥수수·콩·밀·보리 등이 생산된다. 특산물로서 흰복숭아가 유명하며, 고려인삼과 고려 청자는 해외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역장(驛長)님, 교통 현황은 어떻습니까? ☞-교통은 전철화된 평부선(개성-평양)이 개성역을 기점으로 개풍-여현역을 거쳐 북행합니다. 도로는 평양-개성 사이의 1번국도가 4차선으로 포장되어 있으며, 개성-박영, 개풍-공민왕릉, 개성-판문 사이를 연결하는 시내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습니다.
♢바다님, 유물(遺物),유적(遺蹟)에 대한 내용을 보고해 주십시오. ☞-개성시(開城市)는 개성성과 만월대·관음사·흥국사·남대문·선죽교·성균관 등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시의 중심부에는 남대문로에서 북부도로에 이르는 1㎞ 구간이 보존거리로 정해져 300여 채의 옛 한옥이 원래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고, 이중 20여 채가 민속여관으로 이용됩니다.
♦역장님, 그리고 바다와 별님, 개성역을 순례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회의 내용을 참고로 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高太宇 글 참조) |
2010년 5월 초순, 늦은 봄날이었다. 부산에서 쉬지 않고 달려 온 급행열차, 백두(白頭)는 고도 40미터의 개성분지를 가볍게 뛰어 오르고 있었다. 백두(白頭)가 분지 입구의 모퉁이를 살짝 돌아서자 저 멀리 분지 중앙에 자리 잡은 자남산(104m)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건장한 청용(靑龍) 한 마리가 승천(昇天)하려는 듯 분지 중앙에 버티고 서 있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억센 앞발로 강들을 하나씩 꽉 움켜잡고 하늘을 향해 오르려는 형상이었다. 백두(白頭)는 아랫배에 힘을 지긋이 주더니 용을 향하여 거칠게 표호하기 시작하였다. 천지를 뒤 흔드는 메아리가 개성 하늘에 천천히 퍼져 나가고 있었다. 드디어 용호(龍虎) 결투(決鬪)가 시작된 것이다.
분지안에서 잠자던 용(龍), 그것은 바로 개성이었다. 함께 태여나고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맏형격인 송악산(489m)이 북쪽의 상좌를 하고 나자, 용수산(룡수산:178m)이 형님에게 머리를 숙이면서 재빠르게 반대 방향인 남쪽으로 들어와 송악과 대좌하는 것이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던 지네산(203m)은 용수산을 나무라는 듯 처다보면서 분지의 서쪽에다 자리를 잡는다.
이들은 모두 용호(龍虎) 결투(決鬪)의 구경꾼들이었다. 사실 피 흘리는 결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허지만 이들의 보이지 않는 기(氣) 싸움은 대단하였다. 상대방을 향한 이들의 암투(暗鬪)가 너무 지나치자 지파리 천(川)의 아가씨가 선듯 중재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녀는 분지 한가운데를 힘차게 가로 지르면서 자신이 끊임없이 뽑아내는 끈끈한 생명의 줄로 이들을 화해시키려 부단히 애를 쓰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분지는 동서로 횡단하면 5㎞나 된다.
이에 반해 남북은 조금 긴 6㎞이다. 넓은 분지가 분명하였다. 작은 지파리 천(川), 그녀로써는 분지를 모두 끌어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상낙원 건설을 위한 지파리 천(川), 그녀의 화해 노력은 시원스럽게 흐르는 동부의 사천 강(江) 등장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사천 강(江)은 개성에게 있어서 어미와 아이를 하나로 묶어주는 탯줄과 같았다. 끊임없이 생명을 나누는 사천 강(江) 때문에 개성은 사계절 모두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이러한 상부상조의 조건을 모두 갖춘 개성분지는 하늘이 내려 준 명당(明堂)이 분명하였다. 확실한 명당의 조건은 이보다 더 많다. 송악(松嶽)·천마(天摩762m).성거(聖居) 등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칼바람을 막아주고 좌우로 펼쳐진 임진강과 예성강은 대단한 풍요로움을 약속한다. 뿐만아니라 강화도와 교동도(喬桐島) 등은 땅을 한없이 메마르게 하는 해풍을 적당히 막아주니 개성분지는 명당중에 명당이 분명하였다. 이런 이유로 한때 왕융(王隆)과 궁예(弓裔)가 이 땅을 밟고 지나갔다.
백두(白頭)가 드디어 개성(開城)에 도착하고 있었다. 철마(鐵馬), 백두(白頭)의 심장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불씨가 살아 숨 쉬는 듯 간헐적으로 증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백두(白頭)가 긴 여행을 위해 또다시 기지개를 피자 사람들의 마음은 또다시 바빠지고 있었다. 사실은 승하차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구름같이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번잡해서 시간이 짧아보였던 것이다. 얼마 전 백두(白頭)가 부산에서 첫 번째 출발을 알리는 순간, 온 나라는 뜨거운 열기로 까맣게 타버리고 말았다. 그날이후 백두(白頭)는 하루 열 번씩 쉬지 않고 밤낮으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오고가는 사람들의 뜨거운 열풍(熱風)은 여전하다.
경의선 열차(列車), 백두(白頭)의 첫째 목표는 물류수송이었다. 이제 막 개통된 백두(白頭)의 간이역등은 좁고 낡아 있었다. 문제점을 직감한 정부는 기내 방송을 통하여 숙박시설의 부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이런 조치들은 당장의 혼란을 막을 수 있었다. 사실 역사 주변의 발전을 위한 민자유치는 협상계획서에 표기 되었을 뿐, 아직 한 건도 성사된 것이 없었다. 역사는 물류수송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기업인은 각자 유리한 지역을 선점하려고 벌써부터 현지 답사경쟁이 심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다급한 기업인보다는 천하의 백수들이 기차를 꽉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유럽으로 나갈 물품등은 간이역 창고 안으로 가득 쌓여 오건만, 백수들은 여전히 삼삼오오 자리를 지키며 백두(白頭)를 양보할 줄 모르고 있었다. 힘의 균형은 한동안 백수들의 편일 같았다. 별나으리도 그런 백수들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그들과 사뭇 달라 보였다. 얼마 전 기차 여행을 경험삼아 이번에는 동갑내기 바우와 함께 자신이 직접 운전하는 캠프카를 타고 신의주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모두 회갑을 넘긴 중년으로서 한 달 이상의 긴 여정을 소화하기에는 무리이지만, 열정 하나만으로 출발을 서두르는 것이었다. 여행의 이정표는 역시 경의선 열차, 백두(白頭)의 간이역을 원칙으로 하였다.
“드디어 백두(白頭)가 온다. 바다야, 마중 가자...!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 반이면 달려올 수 있는 짧은 거리(78㎞)였건만 반세기 만에 오고있어!”
“예성강, 임진강들이 역류하고 있구나. 기상이변이야 별아, 용들이 움직이고 있나봐, 백두와 한바탕 할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용호(龍虎)결투로구나.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부치라고 했다.”
“걱정 말거라. 저들은 단지 기(氣) 싸움뿐이니까....”
바다와 별은 이웃사촌에 불과하지만, 별난 취미까지 늘 같았다. 한발 더 나아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란성 쌍둥이로 착각할 정도로 얼굴마져 닮아 있었다. 용호 결투를 즉흥적으로 만들고 장군 멍군을 멋대로 소리치지만 어색함이 전혀 없는 것은 그들이 이미 하나로 동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 청년에 이어 장년까지 왔으니 이제는 끝까지 동행할 모양이었다.
“바다야, 지금 네 기분(氣分)은 어떠니?”
“난 젊음이 넘쳐나고 있단다. 두 팔의 힘이 불끈 솟는구나...!!! 별아, 난 지금 당장 박연폭포(25㎞)까지 날고 싶다! ”
“그러니까 천마산[天摩山]으로 직행하자고..? 그 기분 충분히 알고 있다. 만경대(萬鏡臺), 청량봉(淸凉峰), 성거산(聖居山)에 이어서 대흥산성(大興山城)까지 날고 싶다는 말씀이라......, 허지만 천마산중은 너무 멀다. 바다야, 시내에 있는 선죽교등을 먼저 보자. 시내 유물등도 명품중에 명품들이야...,”
“별아, 최근에 박연까지 자동차 전용도로가 났단다...,”
“알고 있어, 바다야, 너무 욕심내지 말거라..”
“별아, 알았다. 배고프다. 보쌈김치가 먹고 싶다. 시내로 들어가자...!”
“그런데 묵산저수지(默山貯水池) 저수지에서 야영하려면 시장을 봐야 하는데..”
“별아, 묵산저수지(默山貯水池)는 왜 가는거야? 개성⇒개풍⇒여현리...”
“여현리 간이역 코앞에 저수지가 있다더라. 놓치기 아깝단다. 우리들의 이정표는 분명 경의선 간이역이야. 최종 목표는 신의주이고 갈 길은 정말 멀고 또 멀단다. 간이역 주변을 살피기도 무척 바쁘겠구나. 그러나 가끔은 그런곳에서의 하루 휴식도 괞찬을꺼야”
“저수지 에서 야영과 함께 야간낚시 가능하지? 붕어, 잉어가 많다더라. 그런데 일정대로라면 저수지에서의 야영 날자는...?”
“바로 내일이야, 네가 천마산에 너무 집착을 하니, 뭐든지 뒤죽박죽이야.”
“별아, 미안해. 시간표대로 하자. 송도삼절(松都三絶) 때문이야, 서경덕(徐敬德), 황진이, 그리고 박연폭포라....”
바다와 별은 백두가 개성역을 떠난지 한 시간만에 보쌈김치 전문점을 찾았다. 주인장은 캠프카를 한번 돌아보더니 무척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캠프카의 종류, 내부구조, 탑승인원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난후 구입가격까지 확인하고 나섰다. 무척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음식 주문한지 십분정도 지났지만, 주인장은 아직도 보쌈김치 메뉴판을 들고 우리와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배를 웅켜 잡고 있던 바다가 주인장에게 음식 주문을 다시 확인하려는 듯 한마디 던졌다.
“주인장, 보쌈김치 금방 됩니까?”
“물론입니다. 조랭이 떡국을 맛보기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조랭이 떡국이라니요. 이집에 특선입니까?”
“맞습니다. 허지만 이집의 특선이 아니라 이 고장의 특선 음식입니다. 여기 그 사연이 있으니 보쌈김치가 나오는 동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주인장이 건네 준 팜프렛에는 보쌈김치와 더불어 조랭이 떡국의 모양, 그리고 만드는 법까지 자상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조랭이 떡국은 왠지 모르게 섬직하다. 목을 조르다니...., 바다가 혼잣말로 지꺼린다.
“이(李)씨가 여기서는 천덕꾸러기로구나...”
“바다야, 이곳은 왕건(王建)의 고향이야. 왕건왕릉은 개풍역으로 들어가는 해선리 만수산에 있단다. 여기서 3.5㎞ 떨어진 곳이야. 이곳 개성이 바로 고려 건국의 중심지란다.”
“고려의 숨결이 거칠게 느껴지는 곳, 바로 그곳은 송악산 만월대가 맞지?”
“바다야, 지금은 불탄 흔적(1361)으로 남아 있지만 현지답사를 해보면 회경전(42m), 그리고 별궁과 누정, 정원 등의 규모는 대 고려의 웅장함을 사실 그대로 들어내고 있단다.”
“별아, 박연폭포에 대해서 아는 것 있어?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폭포위에는 대략 8미터 정도되는 박연 연못이 있고, 일단 그곳에 모아진 물은 최대 높이 37미터로 쏟아져 내려와 지름이 41미터나 되는 연못(고모담)을 이룬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어.”
“별아, 그 밖에 또 뭐가 있지?”
“남문...., 여기에는 아픈 역사가 있단다. 고려때의 규모는 송악산 남쪽 사면과 남산 전체를 감싸 안고 있었으며, 동서남북의 4대문과 중문 8개, 소문 13개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지... 고려 멸망 후 조선 태조는 1393년(태조 2)에 다시 축조하였는데 그 규모는 반으로 축소해 버렸단다. 현재는 남대문, 건물터 등만 남아 있단다.”
바다와 별은 보쌈김치를 먹으면서 개성 향토사(鄕土史)에 대하여 많은 공부를 하였다. 주인장은 캠프카에 대한 특별한 관심사 때문인지 우리 옆에 붙어 앉아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바다는 산과 들, 그리고 그 안의 자연에 대한 질문 공세를 틈새없이 퍼부었다.
“주인장, 천수사(天壽寺)가 어디에 있습니까?”
“버드나무집을 말씀하시는 군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개성시 개풍군(開豊郡) 청교면 덕암리 근처의 버드나무 숲속에 있었던 사찰이람니다. 뒤로는 기암절벽의 취적봉이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었고 간간이 절벽사이로 자라난 노송등으로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으며, 앞으로는 임진강 지류인 사천강이 뱃머리 닿을 만큼 천수사(天壽寺)를 휘감아 돌고, 주변에는 천하일색 양귀비 물가에 머리 풀어헤치듯 수양버들 실눈 바르르 떨며 버티고 있으니, 오느니 가느니 탄복하지 않는 없었답니다. 한번 가보시겠습니까? 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천수사의 흔적은 고려 시대의 1100년 경까지 구구절절 문서상으로만 남아있었답니다. 그 후 조선시대에 와서도 역시 빈객송영(賓客送迎)의 장소로써 계속 이용되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전설속으로 천수사(天壽寺)가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한참 세월이 흐른 후 천수사(天壽寺)로 짐작되는 지역을 추정하여 1582년 명승지로 지정하였답니다. 그 당시의 특별조치는 천수사(天壽寺)의 복원(復原)이 아니라 경관 보호차원으로 수목관리가 전부였으며 지금까지도 그 전통을 지키고 있으니, 비록 본질은 변질되었지만 역사상 최고의 보호가로수 사적지로 기록되고 있답니다.”
“주인장,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립시다. 북한의 철도노선 간의역에 대한 안내를 부탁드림니다.”
“철도노선 간이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1.평양 ⇔ 신의주는 급행으로서
간이역은 평양⇔문덕⇔박천⇔정주⇔용천 입니다
2.장연 ⇔ 만포는 준급행으로서
간이역은 장연⇔(은파)⇔사리원⇔평양⇔평성⇔순천⇔개천⇔구장⇔강계⇔만포입니다.
3.평양 ⇔ 개성은 급행으로서
간이역은 평양⇔사리원⇔개성입니다.
4.사리원 ⇔ 청진은 완행열차입니다.
간이역은 사리원⇔(평산)⇔세포⇔원산⇔고원⇔함흥⇔북청⇔단천⇔길주⇔청진입니다.
5.평양 ⇔ 평강은 완행으로서
간이역은 평양⇔사리원⇔(평산)⇔세포⇔평강입니다.
6.평양 ⇔ 청진은 완행으로서
간이역은 평양⇔평성⇔순천⇔고원⇔함흥⇔북청⇔단천⇔길주⇔청진입니다.
7.평양 ⇔ 두만강은 최대급행으로서
간이역은 평양⇔평성⇔순천⇔고원⇔함흥⇔북청⇔단천⇔길주⇔청진⇔라진⇔온성⇔회령⇔청진입니다.
8.평양 ⇔ 무산은 준급행으로서
평양⇔평성⇔순천⇔고원⇔함흥⇔북청⇔단천⇔길주⇔청진⇔고무산⇔무산입니다.
9.평양 ⇔ 혜산은 급행으로서
평양⇔평성⇔순천⇔고원⇔함흥⇔북청⇔단천⇔길주⇔혜산입니다.
10.혜주 ⇔ 만포는 준급행으로서
해주⇔은파⇔사리원⇔평양⇔평성⇔순천⇔개천⇔구장⇔강계⇔만포입니다.
2.묵산저수지[默山貯水池]에서의 하룻 밤
☏ 순례자 연석회의 여현 간의역을 순례(巡禮)함에 있어서 아래 사항(事項)을 원칙(原則)으로 삼고자 회의(會議)를 시작하겠습니다.
♢역장(驛長)님, 묵산저수지 주변 상황과 관계용수 이용 현황, 그리고 생산되는 중요 작물에 대하여 자료를 주시기 바랍니다. ☞-....., ♢바다님, 개성의 명품은 무엇입니까?
☞-개성의 명품은 고려인삼, 고려청자, 고령토(광맥)입니다.
♦역장(驛長)님, 그리고 바다와 별님, 여현역을 순례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회의 내용을 참고로 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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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의선 ▶
◉부산 ..... ◉문산 ⇔ ◉개성 ⇔ 해선리-연릉리 ⇔ ◉개풍 ⇔ 묵산리-○려현리
여현리 간의역에 당도한 바다와 별은 즉시 역사(驛舍)를 방문하였다. 먼저 경의선탐방순례자임을 밝힌 다음 간이역 근처 저수지에서의 야영이 가능한지를 확인해 보았다. 역장의 대답은 아주 긍정적이었다.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면 일정기간 숙식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다만 수리조합(水利組合) 사무실에 가서 신고를 한 다음 허가서를 꼭 소지하라는 권고가 특별하였다. 우리는 즉시 저수지 뚝방에 위치한 수리조합(水利組合) 사무실(事務室)을 방문하여 단숨에 필요한 조치를 모두 끝냈다. 수리조합(水利組合)을 나오면서 바다가 별에게 한마디 던지는 것이다.
“별아, 저수지의 발원지를 찾아 볼까?”
“두 갈래 모두...?
“물론이지!!!”
“출발이다, 지금 당장...,”
바다와 별은 고향 생각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개천 끝자락에는 유난히도 가재와 식용개구리, 그리고 중태미 물고기 그리고 산채(山菜)가 많았었다. 이곳도 고향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묵산 저수지의 발원지는 둘로 갈라진 석현천에서 시작되었다. 한나절의 수고 끝에 얻어낸 결과는 예상한바 그대로였다. 우측 지류의 발원지는 참나무와 물에 잠긴 버드나무 숲이 울창한 삼릉동이었고, 좌측은 밤나무와 소나무가 적당히 섞인 제마동이었다. 야영과 낚시터로는 삼릉동이 제격이었다. 캠프카를 삼릉동 입구 참나무 숲에 고정 시키었다. 삼릉동 개천의 수심은 50센치 정도였으나 말풀과 물에 잠겨진 버드나무 숲은 붕어와 잉어 산란처가 분명하였다. 그러나 제마동은 경기도 용인의 고초골과 흡사하였다. 바다와 별은 야영 준비를 간단히 끝낸 후 제마동으로 달려갔다. 제마동 실개천 끝자락은 일차적으로 무성한 찔래나무 숲을 형성하더니 겹겹이 덩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따라서 정확한 땅의 모습이 들어나지 않아 전진과 후퇴가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와 별은 마냥 줄거워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덩굴의 대부분은 칡뿌리 이거나 댕댕이가 고작이지만 가끔은 산마와 더덕밭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별아, 더덕냄새가 솔솔나지?”
“조심해, 더덕밭에는 독사도 많아...!!”
“..., 산마 넝굴이 제법이구나!”
“심봤다-----!!”
제마동의 실개천 끝자락은 무척 기름져 있었다. 바다와 별이 애써서 찾아 낸 산마와 더덕뿐만 아니라 원추리, 곰취, 고사리, 고추잎, 엄나무 그리고 두릅등 산채들이 풍성한 잔치상을 차려 놓고 바다와 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은 귀한 손님도 눈에 들어왔다. 당귀, 작약, 오가피, 지황, 삼지구엽초, 감초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덩굴아래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들추어보니 가재랑 중태미가 보였다. 용인보다 더 풍성하였고 활기차 있었다.
삼릉동에 돌아 온 시간은 오후 세시경이었다. 별은 서둘러 제마동에서 채취한 산채등으로 요리 솜씨를 보였다. 살짝 삶아 내고, 볶아내고 튀기니 시골밥상보다 다양하고 풍성하였다. 그중에 특별 한 것은 더덕 탕수육이었다. 바다와 별은 역장(驛長))과 소장(所長)을 초청하여 한바탕 잔치를 벌렸다. 별이 소장(所長)에게 소주를 권하면서 한마디 하였다.
“소장(所長)님, 늘 수고가 많습니다. 지금이 5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저수지가 그대로입니다. 삼릉동, 제미동의 울창한 숲 때문입니까?”
“보통 7-8월중에 내리는 우수로 저수지(貯水池) 수위(水位)는 평소보다 1미터 상승하여 만수가 됩니다. 말씀하신대로 삼릉동, 제미동의 작은 숲 때문에 연평균 저수량은 거의 일정합니다. 풍부한 저수량 때문에 고기반, 물반입니다.”
“붕어도 많습니까?”
“1미터 이상되는 잉어도 많습니다. 간간히 메기, 가물치도 잡힙니다. 모두 대어(大魚)들입니다.”
“소장님, 저수지의 관개용수 이용도는 어느 정도 입니까?”
“여현리, 묵산리, 개풍읍 일대로 대략 680여 정보됩니다. 사실 개성시의 경작지는 시의 전체 면적의 27%에 불과합니다. 논밭의 비율은 4(밭):6(논) 정도인데 논의 경우 판문점과 개풍일부에 거의 편중되어 있답니다. 개풍군 여현리 일대는 주요한 논 경작지입니다.”
“소장님, 밭에서는 무엇이 납니까?”
“주로 곡물들이지요. 강냉이, 콩, 밀, 보리 등이 생산됩니다.”
“특산물은...,?”
“유명한 고려인삼입니다. 고려인삼은 술, 인삼탕, 꿀삼, 인삼정액, 고려선녀삼, 인삼영양정, 인삼엑기스, 인삼차와 경옥고, 장수보약, 인삼지사정, 인삼보양알약, 인삼주사약 등, 아주 다양한 상품을 생산합니다.”
소장은 개성고려인삼 효능에 대한 자랑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인삼이 되기까지는 적절한 환경이 참으로 중요하다며 비옥한 땅과 적당한 기후의 조건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나갔다. 한마디로 결론지으면 씨도 좋고 밭도 좋아야 하지만 날씨도 따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행은 한동안 음식 나눔조차 중단하고 소장의 말에 집중하였다. 얼마가 지나자 소장의 열변에 지친 듯 역장(驛長)은 갖고 온 선물을 내게 내 밀었다.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다기(茶器) 아닙니까?”
“이곳의 특산품입니다.”
“청자...?”
“맞습니다.”
고려청자(高麗靑瓷) 역시 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이곳의 명품(名品)이었다. 까다로운 조건과 환경속에서 고려인삼이 태여 나듯 고려청자 역시 고려인삼(高麗人蔘)을 쏙 빼 닮았다. 가치있는 고려청자가 되려면 장인(匠人)도 중요하지만, 작품의 재질 즉 흙(高嶺土)이 적절하여야 한다. 이곳 개성의 고령토(高嶺土)는 무한정에 가까운 광맥(鑛脈)으로 형성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 명품(名品)중에 명품(名品) 이었다. 이것은 하늘이 내려 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개성에 있어서 고려청자는 고려인삼과 더불어 해 볼 만한 사업이었다.
3. 금천역
☏ 순례자 연석회의 금천 간의역을 순례함에 있어서 아래 사항을 원칙으로 삼고자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역장(驛長)님, 금천 간의역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를 부탁드립니다. ☞ 금천은 황해북도 남부에 있는 군으로 1개읍 14개리로 면적 454㎢, 인구 97,900명 정도입니다.(추정1988).
♢바다님, 금천의 자연환경은 어떠합나까? ☞-금천은 아호비령산맥의 남쪽지역으로 예성강 유역에 발달한 분지지형입니다. 지하자원은 유색금속광물·철·대리석 등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산에는 소나무·떡갈나무·잎갈나무·잣나무·밤나무·아카시아나무 등이 자라며, 고사리·다래·밤·도토리·머루 등이 풍부합니다.
♢별님, 산업과 교통은 어떠합니까? ☞-경지면적은 군면적의 30%이며, 특히 콩은 질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그밖에 양잠·축산·과수재배가 활발합니다. 지하자원으로 연·아연·석회석·석탄 등이 매장되어 있으나 개발은 부진한 편이며, 식료·일용품·화학·피복·제지·가구 공장이 있다. 교통은 남서부지역을 지나는 평부선(평양-부산) 철도가 있으며 개성·장풍·평산·토산, 황해남도 배천·평천을 연결하는 도로가 있습니다. 또한 예성강을 이용한 여객과 화물수송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역장(驛長)님, 유물, 유적, 관광은 어떠합니까? ☞-원명리에는 1674년(현종 15)에 축조된 원명사의 일부가 현존하고 있으며, 오조천 주변의 기암절벽과 임꺽정의 근거지였던 우봉(금천), 고려왕들이 나들이했던 쌍봉동이 있습니다.
♦역장님, 그리고 바다와 별님, 금천역을 순례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회의 내용을 참고로 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高太宇 글 참조) |
◀ 경의선 ▶
◉부산 ..... ◉문산 ⇔ ◉개성 ⇔ 해선리-연릉리 ⇔ ◉개풍 ⇔ 묵산리-○려현리 ⇔ 강남리-파골-계정리-월암리 ⇔ ◉금천 ⇔ 문명리
려현리를 떠나 금천역에 도착할 때까지도 바다와 별의 작은 다툼은 계속되었다. 뜨거운 날씨 때문인지 캠프카의 에어컨 소음은 무척 크게 퍼져 나갔다. 조용한 간이역의 정오취침을 방해한 셈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제복을 입은 누군가 캠프카를 향하여 소리를 버럭 지른다. 시동을 끄라는 지시였다. 둘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낯선 곳에 와서 갑자기 난처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별아, 오조천 쪽으로 가서 차를 세우자.”
“아니야, 묵산 저수지처럼 역장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정석이야...!”
“....?”
“내가 갔다 올께!”
별은 자동차 시동을 끄더니 즉시 역무실(驛務室)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별은 무척 침착하게 일처리를 해 나가는 듯하였다.
“사실 저희들은 경의선탐방순례자들입니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문산, 개성 그리고 금천까지 왔습니다. 금천에 와서는 예성강의 뱃길을 보고 싶은데 방법이 없습니까?”
“려현역장에게서 보고 받았습니다. 차는 이곳에 정차시키고 선착장으로 가 보세요.”
바다는 별의 소매를 잡아당기고 있다. 별은 무척 신경질 적이었다.
“별아, 순례일정이 너무 길어지면 낭패야, 왕복에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 봐!”
바다는 무척 불안하여 별의 등을 떠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은 여전히 천하태평이었다. 바다의 얼굴이 이제는 울그락 불그락 가을 단풍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별을 와락 밀어제치고 나서는 역장에게 따지듯 확인하고 나섰다.
“역장님, 왕복이 얼마나 걸립니까?”
“급하게 서둘러도 이틀 정도입니다. 보통 닷세 걸립니다. 늦으면 일주일도 모자랍니다.”
“별아, 과욕은 절대 금물이야. 임꺽정(林巨正)이나 보고 가자!” 바다와 별과의 전쟁은 이제 이 차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별의 낙천적인 삶은 몇 번이고 완만하게 휘감아 돌며 유람하는 예성강 나룻뱃 길이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수없이 오고가는 여객선과 화물선들, 별은 그들 안에 빨려 들어가 세월의 흐름을 강물에 접고 뱃머리를 벼개 삼아 무한정 머물고 싶은 별의 맘을 바다가 어찌 모르겠는가.
바다는 캠프카로 돌아와 별과 대좌하더니, 긴 협상 끝에 결투없이 타협을 이끌어 내고야 말았다. 뱃놀이가 아닌 등산을 선택한 것이었다. 협상이후 바다와 별은 전과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오조천을 따라 400년을 거슬러 올라갔다. 바로 1559년경이었다. 황해도 경기도와 평안도 일대의 양반 토호와 관청등은 도적때들의 출몰로 무척 불안에 떨어야 했다. 홍길동(洪吉童)·장길산(張吉山)과 함께 조선의 3대 도적, 임거정(林巨正)이 우봉(금천)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임꺽정과 그의 수하들은 심신단련을 위해 오조천 주변의 기암절벽을 다람쥐처럼 건너 다녔다. 그러나 그 역시 사람이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이 아끼던 참모, 서림의 거미줄 덫에 걸려 파란만장한 그의 일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잔혹(殘酷)한 도적(盜賊)의 심장을 흠쳐내어 의적(義賊)으로 만든 곳이 바로 여기다. 오조천은 상류로 올라 갈 수록 경치는 더더욱 화려(華麗)하였다. 북으로는 봉화산, 아래로는 제석산, 그리고 전방으로는 라복실고개, 바로 그 아래로는 월양산의 고봉들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옛날 고려의 왕들도 즐겨 나들이 했던 쌍봉동이 눈 앞에 들어왔다. 이러한 자연의 조건은 창조주(創造主), 신(神)의 작품이었다. 어느 날 하느님은 예성강과 임진강들로 하여금 힘 자랑을 시키었다. 이들은 밀치고 떠밀기를 얼마동안 하였다. 이들 사이에 낀 금천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여 끌어 오르는 열기를 푸른 창공에 발산시키었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지각융기(地角隆起)라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산(高山)등은 대체적으로 기암절벽(奇巖絶壁)등으로 인하여 경치가 수려하다. 금천 오조천의 비경(秘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오조천의 탄생은 긴 뿌리의 끝자락일 뿐이었다. 그 처움은 아호비령산맥(阿虎飛嶺山脈)에 두고 있었다. 강원도(북한)와 평안남도 경계에 솟아 있는 두류산(1,323m)을 시원(始原)으로 하는 이 산맥(阿虎飛嶺山脈)은 송악산을 거처 이곳에서 최종 마감을 하고 있었다. 이 산맥(阿虎飛嶺山脈)의 주봉, 백년산(1,341m)은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천을봉(1,210m)·육판덕산(1,323m)·동백년산(1,251m)·선바위산(1,106m)·명지덕산(910m)·태을산(682m) 등과 함께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오조천의 이웃 사촌들은 이들로서 참으로 대단하였다. 바다와 별은 금천역장으로부터 순례 기념으로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금천의 자랑인 포도송이였다. 순례자들은 오조천의 시원한 계곡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 흐르는 물에 발을 담구니, 바로 그 순간 신선(神仙)이 된 느낌이었다. 그보다 임꺽정의 동료가 된 기분이었다. 특히 역장으로부터 받은 포도송이를 입에 넣는 순간 입안에 확도는 감칠 맛은 그들을 무아지경(無我地境)에 빠져들게 하였다. 한동안 계곡의 고요함과 하나되어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악 ---, 하는 소리에 바다와 별은 현실로 돌아왔다. 사고의 주범은 땅벌이었다. 짙은 포도향기에 매료된 벌들은 바다와 별의 간식 주변으로 하나, 둘씩 모여 들기 시작하였다. 그들 중 하나가 별의 팔등에 앉았으나, 별은 파리인줄 잘못 알고 쫓아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별의 손짓에 놀란 땅벌은 자신의 강력한 무기를 발사하고 만 것이었다. 이뿐만 아니었다. 달콤한 포도송이에 앉은 땅벌은 별의 입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갔다. 별의 손등과 입속은 금방 부풀어 올랐다. 별의 얼굴은 말 그대로 찡그러져 같다. 이들의 신선(神仙)노름은 여기에서 끝나고 말았다.
4.평산군[平山郡]
☏ 순례자 연석회의 평산 간의역을 순례(巡禮)함에 있어서 아래 사항(事項)을 원칙(原則)으로 삼고자 회의(會議)를 시작하겠습니다.
♢역장(驛長)님, 평산에 대한 개요를 부탁드립니다. ☞-황해북도 남부에 있는 군으로서 1개읍 2개 노동자구 20개리로 되어 있습니다. 군소재지는 평산읍이며 인구 134,524 추정(1990)됩니다.
♢바다님, 지리적인 환경을 요약해 주시겠습니까? ☞-멸악산맥의 남동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군내에 예성강과 그 지류인 누천·남천강·읍장강 등이 흐릅니다. 지하자원으로는 철·망간·중석·형석·대리석 등이 있습니다. 연평균강수량 1,325㎜ 정도로 비가 많으며, 산림은 군면적의 64%를 차지하며, 소나무·참나무·잎갈나무·밤나무·잣나무 등이 자생합니다. 특히 산림지역 일대가 모두 천연기념물인 크낙새의 자연보호구역입니다
♢별님, 농업과 산업은 어떠합니까? ☞-경지는 군면적의 24%이며, 특히 밤은 평산밤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밖에 양잠도 활발하다. 저수지와 하천등에는 잉어·붕어·은어·메기·가물치 등을 양식하고 있습니다. 주요산업은 광업으로 남천광산에서 구리, 평산대리석광산에서 대리석과 화강암, 평산광산에서 형석을 채굴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용품으로 옹기그릇 제작이 활발합니다. 철도는 평부선(평양-개성)과 청년이천선(세포-평산)이 지나며, 평산-서흥, 평산-금천, 평산-신계, 평산-평천을 연결하는 도로가 나 있습니다.
♢역장(驛長)님, 유물, 유적을 소개하시겠습니까? ☞-산성리의 태백산성터, 성 안에는 서문루·동문루·태백사가 있습니다. 평산읍에는 주필대가 있습니다. 자연경관으로는 멸악산과 숭수산이 아름다우며, 숭수산에서 나오는 석간수는 영험하다 하여 길흉을 점치기도 했습니다. 그밖에 평산읍의 평산온천이 예로부터 유명합니다.
♦역장(驛長)님, 그리고 바다와 별님, 평산역을 순례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회의 내용을 참고로 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高太宇 글 참조 |
◀ 경의선 ▶
◉부산 ..... ◉문산 ⇔ ◉개성 ⇔ 해선리-연릉리 ⇔ ◉개풍 ⇔ 묵산리-○려현리 ⇔ 강남리-파골-계정리-월암리 ⇔ ◉금천 ⇔ 문명리 ⇔ 한포리-산성리 ⇔ ◉평산 ⇔ 삼천리-청학
바다와 별은 평산역 광장에 도착 후 즉시 역무실을 찾았다. 평산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를 받기 위해서였다. 역무실은 금천보다 훨씬 커 보였다. 금천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보세 창고가 철로길을 따라 세 개씩이나 버티고있었다. 금천보다 삼만이나 많은 평산은 십삼만명의 도시라는 것이 피부에 와 닿는 것이었다. 농업뿐만아니라 철광석, 아연, 구리, 대리석 특히 형석광산이 활성화되어 도시의 생명을 불어 넣고 있었다. 평산의 농업과 공업이 이렇게 왕성하게 발달한 이유는 철도(鐵道)와 도로(道路)의 교통망(交通網) 요충지(要衝地)라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평산읍 중앙 광장으로 경의선이 남북으로 지나가며, 또 여기에서 청년이천선은 동서로 횡단하여 물자를 수송하고 있었다. 더구나 세포에서 원산까지 이어진 횡단 철도는 마침내 경원선 끝자락인 청진까지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미래 철도 역사에 있어서 무한한 발전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간이역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사리원 ⇔ 청진은 완행열차로서 사리원⇔(평산)⇔세포⇔원산⇔고원⇔함흥⇔북청⇔단천⇔길주⇔청진까지 운행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평양 ⇔ 평강은 완행으로서 간이역은 평양⇔사리원⇔(평산)⇔세포⇔평강까지 운행하고 있었다. 경의선은 급행으로서 간이역은 서울-...문산⇔개성⇔금천⇔평산⇔서흥⇔봉산⇔사리원⇔황주⇔평양⇔숙천⇔문덕⇔신안주⇔박천⇔운전⇔정주⇔곽산⇔선천⇔동림⇔염주⇔룡천까지 운행하고 있었다. 자동차 도로망 역시 기차와 동일한 방향으로 발달되어 있었다.
역무실(驛務室)을 들어 선 바다와 별은 역장으로부터 먼저 인사를 받았다. 금천역에서 이미 경의선 탐방 순례자의 도착 예정시간까지 알려왔기 때문이었다.
“반갑습니다. 한 시간정도 늦었습니다. 이미 순례를 시작하신 줄 알았습니다.”
“역장님, 예성강 강변이 너무 멋이 있기 때문에 금천 뚝방길을 한참 달리다 가 돌아왔습니다.”
“사실은 평산이 금천 보다 더 화려합니다. 평산은 능선이 아닌 기암절벽으로 강변이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한포리를 지나 산성리에서 이미 보셨을 겁니다.”
“인공 연못과 우물이 있는 고성(古城)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이미 보셨습니까? 대곡성, 또는 성황산성(聖皇山城)이라고 하는데 고구려시대에 축조된 석축 산성입니다. 이 성은 태백산의 계속되는 봉우리를 이어 가면서 만들었습니다. 다만 동쪽은 예성강의 기암절벽을 자연 그대로 이용하였답니다. 예성강에서 보면 웅장(雄壯)한 고성(古城) 같습니다만.... 보시니 어떻습니까?”
“아닙니다. 일행 중 하나가 몸이 불편해서 안내 표시판 앞에 잠시 머물다 곧장 이리로 달려왔습니다”
“그렇군요. 많이 불편하신 듯합니다. 얼굴과 손이 많이 부어있는데 ...”
“사실은 금천 오조천에서 야영하다가 땅벌한테 쏘였습니다. 야영 이틀째 되던 날, 중식후 포도송이 붙은 벌을 미쳐 발견하지 못하고 먹어버렸습니다. 금천포도는 당도도 높고 과즙도 적당하여 맛이 일품이었습니다만, 달콤한 포도향 때문인지 벌들이 떼지어 달려들었답니다. 사고가 나자 금천 역장님이 친절하게 소개해 주시던데..., 이 근처 유명한 온천(溫泉)과 석간수(石間水)가 어디에 있습니까?”
“대촌리에 있습니다. 그 온천은 광물질온천으로 신경성질환과 피부병치료에 좋습니다. 그러나 벌에 쏘인 것과는 무관한데....,”
“이미 소염제로 진정을 시켰습니다만 따듯한 온천에서 잠시 쉬고 싶군요.”
“이보게 신군, 여기 이 선생님들을 온천탕으로 안내하시게!”
“역장님, 부탁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평산에 머무는 동안 신(申)군에게 평산시내 안내를 부탁드리려고 하는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역장은 신군에게 별일 없는지 확인하더니, 난색을 하고 말았다. 야간 열차중에 특송화물이 몇 건 있는데 세포와 원산으로 보낼 중요한 화물들이었다. 이런 일은 아주 흔한 것들이었다. 역장은 신(新)군에게 다시한번 확인하고 나섰다.
“신군, 2-3일 특별휴가는 어렵겠지?”
“소장님, 같이 일하는 동료 김군에게 부탁해 보겠습니다. 저 역시 야간에는 事務室의 당직을 보면서 김군을 도우면 가능합니다.”
“신(申)군, 수고해 주겠나? 선생님들에게 평산의 좋은 인상을 남겨드리도록 최선을 다하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온천(溫泉)으로 안내하는 동안 신(申)군은 무척 밝은 모습이었다. 자동차로 불과 십분 거리였지만, 한 번도 말을 멈추지 않고 꼬리를 이어갔다. 바다는 신(申)군의 신명나는 말재주의 틈새를 노려 끼어들기에 성공하였다.
“신(申)군, 본(本)이 평산(平山)인가?”
“맞습니다. 시조(始祖) 신숭겸은 고려의 개국공신(?~927, 태조10)이며 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능산(能山), 시호는 장절(壯節)입니다.”
“신(申)군, 향교(鄕校)가 있다면서?”
“그 향교(鄕校)라면 빙고리에 있습니다. 허지만 당후리에는 동양서원(東陽書院), 면곡리에는 구봉서원(九峰書院)이 있습니다. 이 고장에 이렇게 향교가 많다는 것은 유교 전통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동양서원(東陽書院)은 신숭겸과 이색의 가르침을 이어 가는 곳으로 평산(平山) 신씨(申氏)의 자존심입니다. 소장(所長)님도 저와 같은 신씨 가족입니다.”
신(申)군의 안내로 멸악산을 향하여 신나게 가는 중이었다. 온천에서의 한나절 휴식이었지만, 온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캠프카가 밤나무골을 지나 청수동(淸水洞)에 도착하자 멸악산 진입로 안내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신(申)군이 갑자기 차를 세웠다.
“선생님, 이곳의 물맛은 평산에서 최고입니다. 동네 이름도 청수(淸水)입니다. 잠간 쉬었다 갑시다.”
“신군, 캠프카 급수도 가능한가?”
“군용 트럭도 받아 갑니다. 급수대로 갈까요?”
“수고스럽지만 안내하시게나!”
급수대는 꼭 소방수 급수대처럼 생겼다.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쏟아져 나온다. 허자만 1톤 이상 급수해야하기에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바다는 차에서 나와 주위를 살펴본다. 혹시나 볼거리가 있는가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바다는 기어코 찾아내고야 말았다.
“신군, 여기도 청자 가마터가 있는가? 저기 도자기 공장 아닌가?”
“선생님, 저것은 옹기 그릇터입니다. 가 봅시다. 개성에서의 고려청자가 효자라면, 이곳 평산에서의 효녀는 옹기입니다. 이곳에는 옹기 제조에 필요한 적당한 찰흙이 백년을 쓰고도 남을 만큼 풍부하답니다. 찰흙과 고령토는 전혀 다르답니다. 옹기는 평산의 특산품입니다. 그런데 규모는 이곳보다 큰 규모로 서흥에도 있습니다.”
“신군, 크다고...?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옹기물래는 청자의 것보다 커 보이는데...다른가?”
“옹기 물래는 크고 튼튼합니다. 대형 항아리 제조에도 견뎌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곡물들 중에 콩의 비중이 높지...., 간장, 된장, 고추장등..., 그리고 대형항아리 공장이라...., 원초적인 웰빙사업의 전망이 보여지는군...!!! 신군, 멸악산 넘어가면 날씨와 습도, 그리고 온도까지 전혀 다르다는 것이 사실인가?”
“맞습니다. 건조하고 춥습니다. 토질도 많이 다릅니다. 따라서 사람사는 모습도 조금 다릅니다. 가옥구조가 남방 또는 북방등으로 구분할 수 있을만큼 달라 보입니다.”
“신군, 건조하다고 했나...? 대형 옹기 만들기에 적당한 날씨로군. 습도가 많거나 비오는 날이 많으면 큰 항아리를 만들 수 없지..., 서흥가서 다시한번 확인하자. 이젠 일어나 보세. 신선(神仙)들이 사는 멸악산으로 떠나보세...!!!”
5.서흥군
☏ 순례자 연석회의 서흥 간의역을 순례(巡禮)함에 있어서 아래 사항(事項)을 원칙(原則)으로 삼고자 회의(會議)를 시작하겠습니다.
♢역장(驛長)님, 서흥에 대한 개요를 부탁드립니다. ☞-서흥군은 황해북도 중부에 있는 군으로서 동쪽은 신계군, 서쪽은 봉산군, 남쪽은 평산군·인산군, 북쪽은 연탄군·수안군에 접해 있습니다. 현재의 행정구역은 1개읍 23개 동리로 되어 있으며, 군소재지는 서흥읍이며 면적은 594㎢, 인구는 100,893명으로 추정(1991) 됩니다.
♢바다님, 자연 환경을 요약해 주시겠습니까? ☞-멸악산맥과 정방산맥으로 둘러싸인 구릉성 산지로 500m 내외의 산들이 솟아 있슴니다. 서흥강을 비롯하여 황주천·위라천·남천 등이 군내를 흐르며, 특히 서흥강에는 서흥호와 청년저수지가 있습니다. 지하자원은 석회석이 풍부하며, 납·아연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기후는 기온차가 심한 것이 특징으로 연평균강수량 1,064㎜ 정도입니다. 산림은 군 면적의 73%로서 주요 수종은 참나무·소나무·잣나무·밤나무·사시나무·분지나무 등입니다.
♢별님, 농업과 산업은 어떠합니까? ☞-주산업은 농업으로 밭농사 중심입니다. 그 외 목축업으로서 대평리에 돼지목장을 들 수 있으며, 과수로서는 사과재배가 활발하여 전체과일생산의 61%를 차지하고 있으며, 양잠업도 활발하합니다. 문무리에 있는 석회석 광산에서 생산되는 석회석은 전국의 금속공장에 공급되고 있으며, 서흥화학공장에서는 탄산칼슘·탄산마그네슘 등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밖에 토기(옹기)·초물공예 공장도 있습니다. 교통은 동서방향으로 평부선이 지나며, 인산·평산·신계·수안·봉산 방면의 도로가 나 있습니다. 서흥저수지와 사리원간 운하(運河)가 개통되어습니다.
♢역장(驛長)님, 유물, 유적을 소개하시겠습니까? ☞-탑동산(가침박달나무·라일락 등 희귀한 식물들의 군락지대)과, 학의 도래지가 있습니다. 그 외 서흥산성·성현고성,귀진사가 있습니다.
♦역장(驛長)님, 그리고 바다와 별님, 서흥역을 순례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회의 내용을 참고로 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高太宇 글 참조 |
◀ 경의선 ▶
◉부산 ..... ◉문산 ⇔ ◉개성 ⇔ 해선리-연릉리 ⇔ ◉개풍 ⇔ 묵산리-○려현리 ⇔ 강남리-파골-계정리-월암리 ⇔ ◉금천 ⇔ 문명리 ⇔ 한포리-산성리 ⇔ ◉평산 ⇔ 삼천리-청학 ◉서흥 -거문리-봉하리-문무리-서흥호(서흥소년단 야영소)
바다와 별은 서흥에 도착 후 즉시 의례적으로 역무실(驛務室)을 찾았다. 역장(驛長)의 표정(表情)은 무척 밝아 보였다. 우리를 보자마자 평산으로부터 온 팩스를 보여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것은 평산의 신(申)역장님이 보내주신 전문입니다. 동양서원(東陽書院)을 찾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서흥의 옹기공장(甕器工場) 안내를 특별히 부탁하셨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곳에는 화학공장이 도내(道內)에서 최고를 자랑하고 있는데....,”
“사실은 사업상 특별한 부탁을 드렸습니다. 재래식(在來式) 된장, 간장, 고추장에 관심이 많습니다. 재래식 된장은 전통(傳統) 항아리와 궁합(宮合)이 딱 맞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장독 뿐만아니라 콩도 함께 있으니, 웰빙식품 사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독골...? 독만드는 마을이 여기서 먼가요?”
“아닙니다. 자동차로 한 시간이내 거리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보니, 조금은 황당(荒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옹기공장을 찾고 있는 것 같은데 이곳의 독골은 옹기촌(甕器村)이 아니라 양잠(養蠶)을 전업으로 하는 평범한 산골마을일 뿐입니다. 옹기촌(甕器村)은 고덕산 근처에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사실은 항아리를 다른 말로 독(陶)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오해하였나 봅니다.”
“진짜 옹기촌(甕器村)은 고덕산처럼 비록 규모가 작지만, 백년이상 전통을 이어오는 촌락이 깊은 산골등을 중심으로 산재(散在)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별적인 공장규모가 큰 것이 아니라, 서흥 전체에서 만들어 내는 옹기 그릇양이 많다는 뜻이군요.”
“맞습니다. 평산에서와 같이, 서흥에서도 질 좋은 찱흑(次等級高嶺土)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찱흑은 고령토(高嶺土)만은 못하지만, 금(金)이나 은(銀)처럼 광맥(鑛脈)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참으로 귀(貴)하답니다. 서흥에서의 옹기는 생활 용기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옹기촌은 국가에서도 특별히 보호되는 전통(傳統) 마을(村)들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수소문하여 꼭 찾아드리겠습니다. 서흥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면서, 아울러 여행(旅行)에 불편함이 없도록 특별한 안내원을 부탁해 놓았습니다. 바로 접니다. 괞찬으시겠습니까?”
“정말입니까? 고맙습니다!”
“서흥을 위해 많은 투자 부탁드림니다.”
“역장님, 저희는 가난한 순례자일뿐입니다. 결코 사업가는 아닙니다. 다만 저희들이 남긴 순례기록을 보고 진짜 투자가(投資家)가 찾아 올수는 있습니다.”
서흥에 있어서 소장과의 동행은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갔다. 소장은 역무실에서 직무실로 자리를 이동하더니 비치된 안내도에 따라 서흥군의 명소(名所)등을 자세히 소개(紹介)하기 시작하였다. 비서가 다기(茶器)를 들고 들어왔다.
“선생님, 차 한잔 드시지요. 서흥의 대표적인 명품(名品)중에 하나는 바로 이 사과차입니다.”
“소장님, 사과가 통째로 들어가 있네요...!”
“맞습니다. 사과향 역시 원액 그대로입니다.”
다기(茶器)안에는 사과가 연꽃처럼 앉아 있었다. 적당히 숙성된 사과향은 은은하고 달콤하였다. 다도(茶道)의 원칙대로 먼저 눈과 코로 차를 마셨다. 그다음 긴 호흡을 통하여 서흥 전체를 빨아드리기 시작하였다. 이제부터는 혀끝으로 사과차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비록 소주컵만한 작은 찻잔으로 시작하였지만, 몇 번이고 반복되는 만남은 진짜 서흥의 사과차 매력에 우리 모두를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소장님, 사과향이 대단합니다. 만드는 방법이 복잡합니까?”
“아닙니다. 서흥이라면 아무데서나 가능합니다. 곶감 숙성하듯 하면 됩니다. 그러나 서흥이 아니면 썩거나 너무 바싹 말라버립니다. 서흥에서도 오지마을과수원에서 만든 것이 최상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온습도(溫習度)에 민감한 모양입니다.”
“온습도(溫習度)라...., 자연그대로의 환경 유지 덕분입니다.”
“선생님, 서흥의 또 다른 자랑은 누에입니다. 연관된 사업으로 뽕나무묘목도 대단위 생산 공급하고 있습니다.”
“소장님, 누에 산업 역시 일등 환경 유지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근래에 와서 누에는 면직품 생산뿐만아니라 건강식품으로 각광(脚光) 받고 있습니다. 하늘이 내려 준 선물입니다. 미래의 서흥은 잠업(蠶業)의 융성(隆盛)을 통하여 쾌적(快適)한 도시 보존은 물론하고 풍요로운 삶이 보장될 것입니다. 축하드림니다.”
전날의 사과향이 아직도 입가에 맴돌고 있었다. 역장과 함께 순례자 일행은 서흥역에서 멀지 않은 문무리를 지나 고덕산 골자기에 들어서고 있었다. 좁은 도로를 타고 한동안 달려가던 캠프카는 갑자기 정지 하더니, 후진을 서두른다. 앞에서 군용트럭이 벌목재를 가득 싣고 나오기 때문이었다. 캠프카를 향하여 계속 달려오던 군용트럭이 간신히 캠프카를 지나가자 일행은 잠시 멈추고 모두 자동차에서 나와 주변의 경치를 관망하기 시작하였다. 고덕산은 참나무와 물프레 나무, 그리고 재래 소나무 등으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꾀골이와 산까치가 소리치며 지나간다. 자기들 영역안에 누군가 들어오면 기세를 자랑하며 선전포고를 하는 그들의 습성 때문이었다. 산비둘기도 구구거리며 참견한다. 전형적인 한반도 산골짜기 모습이었다.
“역장(驛長)님, 옹기공장(甕器工場)은 아직 멀었습니까?”
“고덕산으로 들어가는 중턱의 산골 마을이라고 했으니, 거의 다 왔습니다.”
“옹기촌에서 야영해도 됩니까?”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상관 없습니다. 부식은 충분합니까?”
“집집마다 병아리와 토끼를 키운다고 하던데 살 수 있습니까?”
“물론 가능합니다. 감자와 파등도 충분합니다.”
“훌륭한 잔치상이 될 것 같습니다. 캠프카가 요리를 할 수 있으니, 무척 편리하군요. 자, 이제 충분한 휴식을 취하셨다면 출발합시다.”
“선생님, 봉산에 가시면 구연리를 찾으십시오. 그곳에서 감투봉 골짜기로 가다보면 전형적인 옹기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역장(驛長)님, 고맙습니다.”
울창(鬱蒼)한 숲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산골마을, 고덕산 옹기촌은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시원하였다. 그러나 땀으로 뒤범벅 된 주민들의 모습은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떠오르게 하였다. 그것은 마을 주민 모두가 벌목지에서의 잔가지나무 채취가 한참이기 때문이었다. 원목은 대부분 실려 나갔지만, 잡목과 파목등을 한곳에 모아 옹기가마 화목(火木)으로 쓰기 위하여 한 여름인 바로 지금 부지런히 모으고 있기 때문이었다. 옹기촌은 원료인 찱흑(高嶺土)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화목(火木)도 쉽게 구할 수 있어야 유지 발전이 가능하다. 이곳은 흙과 나무가 모두 풍부하니 환경이 갑자기 변(變)하지 않는 한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환경의 변화는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다. 서울이 그러했다. 석유제품인 프라스틱이 편하다는 이유로 어느날 갑자기 생활 용품을 완전히 점령해 버린 사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점차로 프라스틱이 퇴출당하고 있다. 환경 호르몬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상당히 시간이 흐른 지금, 옹기는 필수 생활용품으로써 건강(健康)을 위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서흥은 석유제품과 아직은 거리가 멀다.
토끼탕, 닭도리탕등으로 옹기공장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하던 시간이 조금 전 같은데 벌써 새벽녘이 되었다. 공연한 생각에 꿀잠을 설치고 있었다. 아침이 되면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 허지만 미련이 계속 남아있다. 옹기장이의 자손들은 대부분 천주교 신자들이었는데 그렇다면 이곳도 그럴까....하는 의구(疑懼)심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증거를 확인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먼 훗날이 되면 흔적 찾기란 더 어려워 질것이 뻔하다.
옹기촌, 과수원, 양잠업(養蠶業)등이 정적(靜的)이라면, 문무리의 석회석 광산은 서흥의 역동적(力動的)인 새로운 모습이었다. 초정밀도를 자랑할 뿐아니라 대량생산이 가능하니, 가격 경쟁에서 선점(先占)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서흥의 석회석 제품들은 평부선을 타고 땅끝까지 퍼져나가고 있었다. 경의선의 끝자락인 신의주 넘어 단동뿐만 아니라 경원을 타고 청진을 거쳐 소련 브라디보스크로 떠나고 있었다.
역장(驛長)의 자상(仔詳)한 배려(配慮)로 서흥의 순례도 이제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일행(一行)은 서흥호에 와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바다에 온 느낌이었다. 역장(驛長)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무척 넓어 보이지요? 0.8㎞나 됩니다. 직선 길이는 19.3㎞, 둘레는 91.3㎞입니다. 서흥호는 다목적 댐으로서 식수, 공업용수, 관광레저는 물론하고 발전용으로까지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한강과 비교하면 김포에서 미사리 조정경기장까지 45㎞이므로, 서흥호를 쭉 펼 수 있다면 한강 왕복의 거리와 비슷하군요...! 참 대단합니다.”
“서흥강은 재령강의 상류랍니다. 재령강은 대동강의 지류이고 보니, 결국은 평양과 간접적으로 연결된 셈이랍니다.”
“역장(驛長)님, 운하(運河) 이야기는 뭐죠?”
“서흥호는 교통 및 관광차원에서 사리원시와 운하(運河)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차량 이송도 가능합니다.”
별은 운하를 타고 사리원으로 간다는 것이 무척 매력적이었나 보다. 서흥호 선착장에서 운하(運河)를 타고 사리원으로 출발하던 날, 별은 어린아이처럼 무척 좋아했다. 사실 서흥호 횡단 거리는 20㎞ 정도 밖에 안된다. 그러나 톱니처럼 들쑥날쑥한 호수가 주변을 맴돌다 보면 40㎞가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좁은 협곡을 따라 사리원 운하(運河)에 들어서고 있었다.
6.봉산군
☏ 순례자 연석회의 봉산 간의역을 순례(巡禮)함에 있어서 아래 사항(事項)을 원칙(原則)으로 삼고자 회의(會議)를 시작하겠습니다.
♢역장(驛長)님, 봉산군에 대한 개요를 부탁드립니다. ☞--황해북도 서부의 사리원시를 둘러싸고 있는 군은 면적 463㎢, 인구 10,893명으로 추정(1991)됩니다. 주요지하자원은 유연탄·고령토·중정석·납·아연 등이며, 산림은 소나무·참나무·잣나무·잎갈나무·물푸레나무·아카시아나무 등으로 무성합니다.
♢바다님, 산업과 교통은 어떠합니까? ☞-봉산포도와 봉산대추가 특산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산업은 시멘트 공업으로 석회암의 매장량이 많아. 포틀랜드 시멘트와 저열 시멘트가 생산되어 외국으로 수출되며, 이를 중심으로 건축재료공업도 발달했습니다. 평양과 개성을 연결하는 교통 중심지로서 평부선(개성-평양)과 황해청년선(사리원-해주)이 지나며, 철도와 나란히 간선도로가 나 있습니다.
♢별님, 관광자원은 어떠합니까? ☞-지탑리토성, 휴류산성등이 있습니다. 봉산탈춤은 일부만 남아있습니다. 그밖에 크낙새의 서식지, 서흥호휴양소등이 있습니다.
♦역장님, 그리고 바다와 별님, 봉산역을 순례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회의 내용을 참고로 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高太宇 글 참조 |
◀ 경의선 ▶
◉부산 ..... ◉문산 ⇔ ◉개성 ⇔ 해선리-연릉리 ⇔ ◉개풍 ⇔ 묵산리-○려현리 ⇔ 강남리-파골-계정리-월암리 ⇔ ◉금천 ⇔ 문명리 ⇔ 한포리-산성리 ⇔ ◉평산 ⇔ 삼천리-청학 ◉서흥 -거문리-봉하리-문무리-서흥호(서흥소년단 야영소) ⇔구연리-구산리-가촌리 ⇔ ◉ 봉산
사리원에 도착한 순례단은 봉산역(鳳山驛)으로 달려갔다. 쉴사이 없이 진입하는 시멘트 화물선으로 역내는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 바쁜 중에서도 驛長은 우리를 알아보았다. 즉시 귀빈석으로 모셔갔다.
“비서, 차를 준비하시게! 선생님, 運河는 어떠했습니까?”
“대단했습니다. 가을이면 더 절경일 것 같습니다. 단풍나무, 갈참나무, 물프레나무 그리고 운치있게 재래송이 끼어드니 환상적입니다. 사실 높지 않은 구릉지가 가까이에서 호수 주변을 감싸 앉고 있으며 저 멀리 높은 봉들이 딱 버티어 주니, 서흥호는 한마디로 포근한 느낌이 듭니다.”
“말씀을 듣고있노라면 선생님은 화가인듯 합니다. 멋진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다. 서흥역장님의 전문(全文)입니다. 구연리 옹기 공장을 방문하시겠다구요?”
“맞습니다. 역장(驛長)님들의 지속적인 배려(配慮)에 참으로 감사드림니다.”
“과찬입니다. 차를 드시지요. 대추차입니다.”
“봉산의 대추, 명품이군요. 고맙습니다.”
<......................... 계속 이어집니다, 기대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