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서 동기가 태안 다녀와서 잡지에 기고한 글을 옮깁니다. 이 친구 올해 회갑인 나이에 산으로, 봉사활동으로, 사회에 대한 관심까지 완전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습니다. 많이 부럽습니다.
태안에서의 1박2일
구 양 서 이사 · 문우회부회장(세무사)
고압세척기로 자갈밭과 바위틈에 바닷물을 뿌리니 기름이 흘러내린다. 방습포를 살짝 갖다 대니 기름이 착 달라붙는다. 조금 전에 애써 닦아 놓은 자갈밭에는 또 다시 흘러내린 기름이 배어든다. 이런 작업과정이 계속 반복 되는 것이 2008년3월 중순 태안기름방제작업 현장의 일부 모습이다.
새벽에 태안으로
태안의 대재앙 소식을 듣고 바로 가서 돕지 못한 불편한 마음으로 차일피일하고 지내다가 틈을 내어 가기로 했다. 태안군 유류 유출사고 자원봉사 안내 센터에 준비사항을 문의하니 한 두명 정도는 장화와 방제작업복 및 흡착포 등은 현장에서 제공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장사무실과 현지부녀회 등에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직접 준비해 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출발 전에 장화, 면장갑, 고무장갑, 방진마스크를 준비하고 방제작업복은 태안현지에서 구입하기로 했다.
대구에서 출발 경부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하므로 수성구청 재난안전대책본부장으로부터 '재해복구지원 차량 유료도로 통행료면제 송장'도 발급 받았다. 모든 준비를 갖추고 다음 날 새벽 3시경에 집을 나선다. 내비게이션으로 자원봉사 지정지역인 태안 구례포해수욕장을 입력하니 323km로 표시된다. 서산·태안 등 서해안 여행을 몇 번 다녀 온 경험이 있기에 10시까지 현장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새벽의 고속도로는 조금 한산하기는 해도 휴게소주차장마다 컨테이너차량 등 화물차들로 가득 차 있다. IMF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 당시에는 주차한 화물차들이 듬성듬성하고 썰렁 했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새벽고속도로의 모습이다. 이런 것을 두고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하나 보다.
태안읍에 도착하여 태안군청에 전화로 자원봉사현장을 재확인하니 당초 구례포해수욕장에서 '태안군 원북면 황촌리 668번지'로 변경되어 있었다. 태안읍에서 원북면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선구백화점에서 2일간 사용할 1회용 방제작업복 2벌을 구입하고 황촌리 현장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이 방제작업현장으로 줄지어 가고 있다. 서둘러 방제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자원봉사자 등록을 하니 헌옷 등이 든 자루포대를 주면서 버듬이2(일명 버들이2)로 가라고 지정해 준다. 버듬이인지 버들이인지, 양챙이인지 양쟁이인지, 정자도인지 정자두인지 지명표시가 제각각이어서 혼란스럽다. 행정적으로 정해져 있는 지명과 일반적으로 부르는 지명이 다름에서 오는 혼선인 것 같았다.
바닷가로 가는 길은 차량이 통행 할 수 있는 넓이의 길로서 기름방제작업용으로 임시로 낸 길인데 황톳길이고 건조해서 흙먼지가 푸석푸석 일어난다. 전쟁 등 비상시에 산간에 임시로 도로를 내듯이 지금 이 곳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울창한 소나무로 뒤덮여 경관이 아름다운 이 태안해양국립공원의 숲이 예기치 않은 일로 수난을 당하고 있다. 바닷가로 내려가는 언덕에 도착하여 내려다보니 미리 도착한 사람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가파른 급경사 길을 내려가 현장에 도착해 보니 현지에서 동원된 전문작업자들이 해안가 높은 곳 바위틈과 자갈밭에 고압세척기로 바닷물을 뿜어대는데 그 밑으로 기름이 흘러내린다. 흐르는 기름에 흡착포를 갖다 대니 기름이 바로 달라붙어 배어든다. 헝겊으로는 바윗돌과 자갈들을 닦고, 흘러내리는 기름은 흡착포를 사용하여 기름방제작업을 계속 반복한다. 날씨는 작업하기 좋게 춥지도 덥지도 않은데, 방제작업복과 마스크 거기다가 고무장갑까지 끼고 있으니 운신하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방제작업에 몰두하다 잠시 둘러보니 듬성듬성 하던 바닷가가 어느새 인파로 뒤덮여 있다. 헝겊으로 바위와 돌을 닦는 사람, 호미로 바위틈새의 기름범벅의 모래와 자갈을 파내는 사람, 기름 묻은 모래와 자갈을 헝겊에 싸서 문지르는 사람 등등 남녀노소 연령층도 다양하거니와 기름을 제거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인데 하나같이 보석 다루듯이 정성스럽고 열심이다.
목마름 속에서도 열심인 작업현장
점심시간이 되어 단체로 온 팀의 여유 도시락으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다시 오전과 같이 반복 작업을 하다 보니 자원봉사자들이 계속 들어와 바닷가가 사람들로 채워진다. 너무 복잡하여 정자두3 쪽이 비교적 한산해 보여 그곳으로 갔더니 나를 보고 아우성이다. 물을 달라고 한다. 살펴보니 나이든 여자 분들이 대부분인데 여기는 바위 지대라 바위틈에 낀 타르덩어리들을 제거하고 돌과 바위들을 닦고 있었다. 서둘러 천막 있는 곳에 가서 생수를 보이는 대로 다 가져갔는데 턱없이 부족하여 현장 본부로 가는 차량 편에 부탁하여 2박스를 더 가져와 비로소 갈증을 해소하게 하였다. 뭔가 사연이 있었겠지만 그렇게 갈증이 심했는데도 수십명 중 누구하나 물을 가지러 가지 않고 또 갈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이 지금껏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정자두3에 모아 둔 폐기물자루들을 차량진입장소까지 옮겨주는 등 여러 잡다한 일들을 한 후 오후 3시30분경에 일정을 마친다. 민박 등 숙식 해결장소를 정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던 중 구례포해수욕장에 들러 백사장을 살펴보니 언제 여기가 검은 기름으로 뒤덮인 곳이었나 싶게 말끔하게 정돈 되어 있다. 마침 현지 주민이 있어 이곳의 상황을 물어보니 눈에 보이는 곳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는데 일반인들이 접근 할 수 없는 절벽지대와 섬, 개펄 등은 아직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다. 일반적인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인데,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있으니 앞으로 관계당국에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이런 부분도 해결하리라 생각한다. 기름유출여파로 바다주변에 민박 등 숙식 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 태안읍으로 갔다.
원성과 감사의 플래카드가 수없이 나부끼고
태안읍의 모텔에서 숙박을 하고 이른 아침 읍내를 둘러보니, 기름유출에 대한 원성과 항의 표현의 플래카드와 전 국민들이 물심양면으로 성원을 해 준데 대한 고마움과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플래카드들이 서로 뒤섞여 수없이 걸려 있다. 우리 국민들의 심성과 역동성으로 미루어 보아 머지않아 저 플래카드들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어떤 축제의 플래카드로 바뀔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5,000원 짜리 황태국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다시 어제 간 황촌리 현장사무소에 9시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 지원 준비에 열심인 현장 근무 직원들만 있고 아직은 한산하다. 현장 근무 직원에게 어제 방제작업 중의 여러 사항들과 흡착포 사용 등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했더니, 지금은 그래도 많이 체계가 잡히고 안정이 되었다 한다. 처음 사고를 접했을 때는 모두 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한다. 너무나 황당하고 끔찍해서 그냥 어찌 할 바를 몰랐다고 한다. 전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이렇게나마 된 것도 기적이라면서 국민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를 빠뜨리지 않는다. 아직 물이 빠지지 않아 조금 있다가 들어가라는 것을 이곳저곳 살펴보고 한다면서 양해를 구하고 버듬이1에 가보니 전문작업자들은 이미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상황이 버듬이2와 비슷해 보인다. 돌아 나와 버듬이2에 도착하니 여기도 전문작업자들이 이미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전복과 해삼이 살 수 있는 환경은 언제
주변을 살펴보니 어제 애써 닦았던 바위와 돌들에 적은 양이지만 다시 기름들이 묻어 있다. 이렇게 계속 반복되면서 유출된 기름들이 점점 없어져 가지 않나 싶다. 전문작업자들이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할 때 이야기를 들어보니 바위에서 생장하는 여러 가지의 해조류들이 전복과 해삼 등 해산물의 먹거리들인데 바위 틈틈이 낀 기름성분으로 인하여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돌아 올 날은 그냥 까마득하기만 한다. 이곳에 있는 큰 돌들은 기름제거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 중장비로 뒤집었기 때문에 그 밑에 기름찌꺼기가 깔렸을 수도 있어 그 기름들이 계속 베어 나올 수 있고, 그리고 또 날씨가 더워져 26~27℃만 되어도 바위틈새에 미세하게 끼어있는 기름들이 녹아 흘러내리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에 언제 옛 모습을 찾게 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고 한다. 듣고 보니 참으로 재앙은 대재앙이고 대학살인 것 같다. 이로 인하여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바다의 뭇 생명체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갔는지 가늠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리고 또 바닷가로 내려오는 크게 뚫린 길과 한쪽 급경사 지대에 달려 있는 외줄의 밧줄을 보고 생각한다. 기름유출사고 전엔 저 밧줄이 이 바닷가로 통행하는 유일한 통로였는데 예기치 않는 대재앙으로 절벽을 깎아 서둘러 길을 내었으니 언젠가 폭우가 쏟아지면 산사태가 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런 곳이 한두 군데도 아니고 전 해안에 이루어져 있는 것 같은데 해안의 지형이 변할까 두렵다. 태안해양국립공원의 절경이 허물어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널려져 있는 기름 머금은 습착포와 헝겊 등을 포대에 담아 폐기물 보관지역으로 옮기는 등 잡다한 일들을 거들다가 점심을 거르고 해서 조금 일찍 오늘의 일정을 마친다. 현장을 나오면서 뒤돌아보니 바닷가로 가는 입구에 오래전부터 세워진 다음과 같은 경고문들이 있다.
- 경고문 -
이 지역은 군사작전 지역으로 민간인(차량)의 출입 및 제반 어로(낚시, 해산물채취, 레저) 행위를 일체 금지합니다. 이에 불응시 군 형법에 의거 처벌되며 자의권 행사 지침에 의거 발포 할 수 도 있습니다. 1789부대 1대대장
- 경고문 -
이 해안가는 태안양식(전복, 해삼)허가 지역으로서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하며 무단침입, 불법어로 행위시 고발 조치됨을 경고합니다. 양식장 주인 백
기름방제작업을 마치고 현장을 떠날 때 입구에 있는 이 경고문들이 오늘따라 거부감 없이 와 닿는 것은 왜일까? 아마 이곳 바닷가로 가는 길을 막아도 좋으니 이곳 주민들의 생업터전이 하루 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염원 때문이 아니겠는가! 태안읍으로 오는 길에 길가는 군인들을 보니 믿음직하고 든든해 보인다. 기름방제작업을 하던 어느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귓가를 맴돌기 때문이다. 바다가 온통 시커멓게 되었었는데 군인들이 와서 하루에 옷을 5~6벌을 버리고 갈아입으면서 그 대재앙의 기름들을 퍼 날랐다는 이야기를... 천재지변 등 재난이 있을 때마다 그곳에는 언제나 군이 출동해 있었다. 훌륭하고 듬직한 군이 있어 우리들은 행복하다. 이렇게 어질고 부지런한 국민들의 에너지를 순기능방향으로 물꼬를 틀 수 있는 국가 지도자의 출현을 염원 하면서 태안을 떠났다.
지리산인(010-3150-1915 tloac@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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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번 가보지 못했네요. 구양서 동기에게 찬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