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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준 목사 / 주님이 함께 하시면! (민 23:18-26)
오늘 우리는 주신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양이 이리 가운데 사는 것 같습니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마귀들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은밀하게 간교한 음모를 꾸미고,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라고 해도 미혹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하나님을 믿던 사람이 믿음에서 떠나는 일이요, 진리를 따르던 사람이 그 진리에서 돌아서는 일입니다. 발람이란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대항하는 원수들과 짝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해하려고 나섰던 사람입니다.
언제나 원수 마귀는 하나님을 따르던 사람을 미혹해서 자기편으로 만들고, 그를 앞세워서 하나님의 백성을 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누가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까? 예수님이 가장 신임해서 돈주머니를 맡겼던 가룟 유다가 먼저 예수님을 배신하게 하고, 돈을 받고 팔아 넘기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원수는 네 집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실망해야 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절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주변이 죄악으로 가득하고, 사탄이 권세를 휘두른다 하여도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5장에 보면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 이하를 보세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신 말씀 민수기 23장 21절 하반절을 보세요.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들 중에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십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사야서 41장 10절을 기억하시지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3장 1절 이하를 보세요.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사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넜으나 물이 침몰치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문자 그대로 풀무에 던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 가운데서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았고 옷에 탄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인 우리를 측은히 여기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우리의 가는 길을 인도하십니다. 그의 자녀가 있는 곳에 함께 계시고, 그들이 슬퍼할 때 하나님은 같이 가슴 아파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인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낳은 부모는 혹시 그의 자녀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은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떠나실 때가 되었을 때 제자들에게 귀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시면서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얼마나 감사한 말씀이니까? 이 얼마나 마음 든든한 약속입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잘 될 때도 안 될 때도,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맑은 날에도 흐린 날에도, 건강할 때도 병들 때도, 젊어서도 늙어서도, 살았을 때도 죽을 때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말씀은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주신 말씀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향해 주신 말씀입니다.
더구나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십니까?
요한복음 14장 2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은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십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구주로 시인할 수가 없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더구나 오순절에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임했습니다. 그때의 역사는 지나가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그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인도하십니다. 그 심령을 소생시키십니다. 우리를 위로하시고, 훈련시키시고, 사역하십니다.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신 모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약속하신 것 중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고, 그렇게 행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우리가 누리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 22절에 보세요.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를 인도하여 놀라운 은혜를 체험케 하십니다. 고민과 갈등, 속박과 절망의 애굽에서 인도하여 평안과 만족, 해방과 희망 속에서 살게 하십니다.
저는 지난 주간 어느 사업을 하시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실력 있는 기업을 운영하시는 분이신데, 다른 사람들은 다 어렵다고 하지만 이 분의 사업은 특수한 분야여서 별 어려움 없이 IMF도 잘 지내보냈다고 합니다. 돈도 필요한 만큼 있고,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어, 여가 시간에 골프도 해보고, 여행도 가보고, 고급술도 마셔보고 다 해보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전했고 점점 의욕이 상실되어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친구의 권유로 교회를 나가게 되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요사이는 하루하루 사는 것이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다고 해요. 그 분은 정말 육신적, 세상적인 애굽에서 인도하심을 받아 완전히 해방된 모습을 옆에서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오늘 주신 말씀 22절 하반절에 "그 힘이 들소와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들소는 '버팔로'(buffalo)라 불리는 아주 힘이 센 소를 말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에게 놀라운 힘,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강한 힘이 생깁니다.
히브리서 13장 5~6절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주님이 함께 하시면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누구도 정복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힘과 능력이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을 때 성도들에게 놀라운 힘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고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가는 곳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여기 '권능'이란 말이 헬라말로 '두나미스'(du- namis)란 말인데, 다이너마이트란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 주님의 권능은 다이너마이트와 같아서 굳은 바위를 가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충만히 받기 전에는 얼마나 비겁하고 나약했습니까? 호언장담하기는 했지만 정작 무서운 환경에 처하게 될 때, 어린 비자 앞에서도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오순절 때 성령이 충만하여 능력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힘을 누구도 꺾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이 충만해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증거하고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 예루살렘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공회에서는 대책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장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저희로 인해서 유명한 표적이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해서 이후에는 이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이 뭐라고 대답했어요?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얼마나 담대했습니까? 이 놀라운 힘이 어디서 왔습니까? 주님이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주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힘은 들소의 힘과 같다고 해도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그리고 주님이 함께 하시면 절대 안전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23절 상반절을 보세요.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 할 복술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악과의 계획을 조용하게 좌절시켜 버릴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믿음을 흔들려는 모든 의심에서부터 건져 주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의 신앙 생활이 절대로 병들지 아니합니다. 때로는 마귀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자신들의 지혜를 과시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미혹하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모든 악의 세력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이단은 언제나 교회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 때도 열두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가 있었습니다. 사도시대에도 교회 안에 이단자들이 있어서 사도들을 괴롭혔습니다. 이런 마귀의 세력은 오늘도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괴롭힙니다. 그렇다고 그런 마귀의 세력이 전혀 없는 교회를 이 세상에서는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악의 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절대 안전합니다. 교회의 안전은 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안전은 마귀의 세력을 내쫓는 데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이 함께 하시면 원수의 공격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습니다."
여러분, 담대하게 삽시다. 용기 있게 삽시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를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23절 하반절을 보세요.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해서 논할진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시뇨 하리로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은 아주 놀랍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발람은 일곱 제단을 쌓고 일곱 수송아지와 일곱 양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또한 발락이란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대항해서 가증스러운 악행을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가 하나님께로부터 영감을 얻을 때 놀라운 일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 발람이란 사람, 발락이란 사람은 선지자이면서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저들이 도모하고 있지만,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주가 아니라 이전보다 더 많은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렇게 돌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일이 너무 놀랍고 신비해서 외칩니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떻게 그처럼 크십니까!"
저는 부족하지만 이 시간 우리 주님의 이름을 빌어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이 치열한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고 축복 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악의 세력을 쳐부술 수 있는 능력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24절을 보세요. "이 백성이 암사자같이 일어나고 수사자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그 힘이 왕성한 사자 같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악의 세력과 싸우며 그것을 정복하는 데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우리가 정복할 수 없는 악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조금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수아를 향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하세요.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사도 바울도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악이 관영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려는 세력도 강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의 마음이 약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끝으로, 주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풍성해야 합니다.
가령 교회에는 중생해서 새 사람 된 분들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밀 가운데 가라지도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교회를 이끌게 되면, 그 교회는 생명력이 상실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손으로 만든 성전에 계시지 않습니다. 벽돌집이나 석조건물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영혼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거듭나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새 생명이 넘쳐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신이 역사하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주님도 믿음이 큰 사람을 만날 때 그렇게 기뻐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내가 다른 데서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기뻐하셨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것을 믿습니까?
많은 사람은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큰 믿음 가진 사람을 기뻐하시면서 "네 믿음대로 되라"고 축복하십니다. 큰 믿음을 가지십시다.
더구나 주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기도는 우리 심령의 호흡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심령이 살아있을 수 없고 주님과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위로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내 모든 사정을 아뢰고 응답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이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원하면 성결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탄이 발람을 권해서 그의 백성을 저주하려 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발람은 모압 왕에게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들을 이용해서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려 하였습니다. 이 여인들은 이스라엘 남자들을 우상의 잔치에 초대했습니다. 그때 음란한 일을 행하게 되고, 그 때문에 하나님에게 근심거리가 되고, 결국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고, 모압을 치려고 작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부정한 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떠나시고, 하나님이 떠나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엘리 선지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보세요. 저들이 성막에서 부정한 생활을 해서 하나님이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블레셋 군대와의 전투에서 전세가 불리해지니까 법궤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적군에 의해 비참하게 전사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떠나신 다음에 법궤가 무슨 소용 있습니까? 성결한 생활을 해야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이 몸은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과 주님이 함께 하셔서 인도를 받으시고, 힘이 되시고, 안전한 자리에 거하시고, 능력의 사람 되어서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주를 이기는 네 말씀 (민 23:18~26)
18 발람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지어다 십볼의 아들이여 내게 자세히 들으라 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20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21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22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23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냐 하리로다 24 이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하매 25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 26 발람이 발락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더이까
이 시간에는 “저주를 이기는 네 말씀”이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영육 간에 복 받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만드신 후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7-28)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우리가 저주받기를 원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 사탄 죄 세상 그리고 우리의 육신의 생각까지도 거기 가세해서 우리의 복을 막으려고 합니다. 또 없을까요? 우리 원수의 나라들입니다. 우리의 원수들이 우리나라가 멸망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간첩을 보내고 입법 사법 행정 그리고 사회의 요소요소 심지어 교회까지도 침투하여 활동한다고 합니다.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으로 복 받은 민족입니다. 그런데 모압왕 발락은 당대에 유명한 복술가인 발람을 매수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 합니다. 복 받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길은 그들을 저주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발람으로 하여금 세 번이나 축복하게 하십니다. 여기에 저주를 이기는 놀라운 비밀이 있어요.
저주를 이기는 네 가지의 말씀이 무엇일까요?
1. 복의 백성임을 믿는 것입니다.
19절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그랬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복 주시기로 작정하셨는데 어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저버리실 수 있겠습니까?
마24:35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히6:17-18에는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다고 했습니다. 갈3:13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복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태평양에 사는 물고기가 물이 없어서 죽었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신 것처럼 우리는 복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복 받고 요셉처럼 우리가 가는 곳마다 관여하는 곳마다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약속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이 부르신 복의 사람이다. 나는 예수 안에서 복 받은 자다. 나에게서 저주는 사라질지어다. 복이 다가올지어다” 외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처럼 복의 믿음에 서서 추호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롬4:19-22). 따라서 합니다. “나는 복의 사람이다. 나는 복둥이다.” 예수님이 복이므로 우리가 복둥이가 된 것입니다. 복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음이 바로 우리가 복 받는 첫째 비밀입니다.
2. 용서의 복음에 서는 것입니다.
21절에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하였습니다. 저주하려면 죄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허물을 찾으며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허물과 반역을 보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얼마나 죄와 허물이 많습니까? 큰 사랑과 권능으로 인도하여 낸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기사와 이적을 그토록 보고도 하나님을 의심하고 우상을 섬기고 반역하는 그들의 행위로 본다면 백 번이고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발람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허물과 반역을 보지 않으시니 저주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죄와 허물이 많아도 우리를 이 모습 이대로 용납하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대신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자는 누구도 정죄할 수 없고 저주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의 피가 저주를 몰아냅니다. 사람들이 이걸 모르기 때문에 저주를 받아요. 먼저 심령이 저주를 받아 죽고 또 죽고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롬8:33-34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했습니다.
진정 용서의 복음을 믿는다면 자신부터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자기를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1:18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43:25에는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도 기억지 않으신다는데 왜 나를 용서 못합니까? 회개하기 전에도 중에도 후에도 보혈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거나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것이 있다면 다 허무시기를 바랍니다. 용서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악한 감정이 있습니까? 나쁜 관계가 있습니까? 믿음 없는 말과 행동을 합니까? 마음에 염려 근심 우울 불신 실망 낙심 등이 있습니까? 혹은 하나님께 인색하고 후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마음에 조그만 한 것이 남아 있어도 멈춰버립니다. 내가 남을 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에게 서운한 감정이라도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죄나 하나님을 멀리한 것은 물론 어둔 마음조차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인색하지는 않았는지 섬기지 않았는지도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사59:2에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다 했습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보물입니다. 은혜를 사모해도 자기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그것은 먼저 영혼의 거울인 성경을 보지 않기 때문에, 다음에는 예언의 도움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언의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지도입니다. 한국교회에 예언이 변질되거나 사라져서 교인들이 변화를 모릅니다. 우리 믿음을 세워주는 예언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21절에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중에 있도다” 하였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의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여 예배하며 살았습니다. 200만 명이 나라마다 기도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누에가 뽕잎을 먹어도 수가 많으니까 비 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 소리가 얼마나 장관일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날마다 예배하니 어떻게 저주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교회가, 우리 대한민국이 복을 받으려면 예배가 식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희망은 예배와 기도에 있습니다. 약4:7-8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했습니다. 마귀를 물리치는 것이 저주를 이기는 것이요,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 담대한 믿음과 용기로 사는 것입니다.
22절에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했고, 24절에 “이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들소의 힘이 얼마나 센지 300kg가 넘는 사자를 하늘로 날려버립니다. 이처럼 능력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자처럼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체구가 큰 호랑이가 유리하지만 담대한 마음은 사자를 못 따라간다고 합니다. 호랑이는 덩치가 커도 사자가 곁에 있으면 불안해서 안절부절하지만 사자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담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환경을 예수 이름으로 명하여 물리치고 “복은 올지어다.” 명령하시기를 바랍니다. “가난은 물러갈지어다. 질병은 물러갈지어다. 어려운 일은 물러갈지어다. 저주는 물러가라.” 명령하시기를 바랍니다. 히10:35에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큰 산이 앞을 막아도, 홍해가 앞을 막아도,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홍해를 향해 지팡이로 가리키고 다 건너기까지 섰던 것처럼, 요단강을 건널 때도 하나님의 법궤가 강 가운데 서서 다 건너기까지 선 것처럼 끝까지 담대해야 합니다. 기적의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담대함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이 담대하셨는데 우리도 담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저주하려는 세력들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우리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한 우리를 저주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모두 온전한 믿음에 서서 예수 안에서 주신 복과 용서의 복음을 믿을 뿐 아니라 , 우리의 문제점을 진실로 회개하고, 날마다 몸과 마음을 드려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사자와 같이 담대하여 저주를 물리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샬 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