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을 넣다가
강상규
살다 보면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각박해 하는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방편일까? 그래서 부정적인 습관을 고쳐서 여유로운 삶으로 조성해 더 낳은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리라 본다. '조급증'에 억눌린 현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중에서 운전 습관도 그 사람의 인격을 훤히 드려다 볼 수 있다. 일을 마치고 지점으로 이동 중에 난감했던 일이 떠오른다. 4킬로쯤 달려와 큰길과 합류할 때쯤 내리는 비에 가시거리(可視距離)가 좁아져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그런데 지프가 내 앞으로 새치기하며 끼어든다.다급히 입에서는 상소리가 튀어나온다. 다행히 언덕길에서 급부레이크를 밟아 위기를 모면했다. 쓴웃음을 지으며 꽁무니를 졸졸 따라가니 빗줄기는 세차게 내린다.
하늘엔 구멍이 났는지 눈앞은 보이지 않을 정도 무섭게 소낙비가 쏟아진다. 조금 더 가면 사거리인데 앞차가 이상하다. 갑자기 내 앞을 가로막으려 하여 운전대를 틀어 옆으로 피해 빠져나왔다. 휴! 하고 안도에 가슴을 쓰려 내렸다. 질주하던 차가 바로 사고가 난 것이다. 사실 비가 오면 노면은 수막현상으로 미끄럽다. 스피드에 무심코 제동장치를 밟다보면 혼쭐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조심조심 운전을 해야 하는데, 얼마나 바빴으면 주변 상황을 무시하다 사고를 냈을까. 운전 경험이 미숙한 초보자인 듯하다. 잠시 방관으로 인적 물적 피해를 본 운전자를 보며 혀를 찾다. 그 사고를 목격하고는 '문득. 지난날 난감했던 일이 떠오른다.
2년 전 가을이었다. 그날도 4차선 도로에 나의 기나긴 여정이 물 흐르듯 바쁜 시간이었다. "빨리 와요!" 대리점 사장의 말에 할 말을 잊고 묵묵히 달려간 곳 제천이었다. 차를 세워 놓고 지게차를 불렀다. 한참을 기다리니 지게차가 나타나고, 곧바로 하역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사용료를 주고 차를 돌리려는 순간 너무 깊게 차의 꽁무니에 걸려 창고문이 심하게 훼손 되었다. 살짝 부딪친 것인데, 순식간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하다. 그러잖아도 직원들과 사장하고는 불편하게 지낸 터라. 말인즉 본사에서 규모가 큰 공장 물건을 자기를 주지 않고, 타사 생수업체한테 주웠기에, 제천에 대리점이 둘로 나누어진 것 아니냐고, 몽니 부린다. 사장의 말이 전적으로 맞다. 지점 권한이 안닌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이런 상황에서 기회다 싶었던지. 생날리 친다. 사장한테 온갖 싫은 쓴소리를 듣고 나니 은근히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싸인 감정을 나는 뭉텅이로 퍼부었다. 사장! 견적서 보내면 보험처리 해준다. 말을 남기며 돌아섰다.
분풀이를 하고나니 마음은 편치 않았다. 울고 넘는 박달재 터널을 지나 충주입구에 있는 거래처에서 기름을 넣기로 하고 주유소에 들렀다. 주유소 사장님과 친분이 있는 만큼 인사를 드릴 겸 해서 찾으니. 출타하셨다기에 대금을 지불하고 주유소를 나와 달렸다. 간헐(間歇)적으로 빗방울은 찔금찔끔 내린다. 노면은 축축하게 젖어있어 더디게 가다보니 피로감이 밀려와 경쾌한 음악 테잎을 찾아서 넣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잠시 차를 갓길에 주차하고 전화를 받았다. 주유소 여사장님 목소리다.
평상시 차분했던 음성은 다급한 억양이 은연중 감지된다.
"아까 잠시 들렀는데 안계 신 것 같아 그냥 오는 중 입니다,"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장님은 뜬금없이
"무슨 일 없으세요."
"무슨 일이라뇨? 지금 날이 어둑어둑해 바쁘게 가는 중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떨린 음성으로 조목조목 말을 잇는 부분은 어딘가 모르게 조여오는 느낌이 든다.
"어디까지 갔어요." 30여 킬로 달려왔다고 했다. 아무 말이 없다가
"주유기를 돌려줘요"
"무슨 소립니까. 주유기는 그곳에나 있지 제가 무슨 기름쟁이도 아닌데유" 하며 농담을 했다.
"주유기 있나 차 좀 살펴주세요".
"아니 주유기는 있어야 할 곳에서 찾아야지요,"
열심히 가는 나에게 전화해서 주유기를 달라니 웬 쌩뚱맞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주유구를 살펴보세요!"
"네 알았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주유구을 확인하란 말에 의아해하며 차에서 내리니 벌써 까맣게 어둠이 내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주유구를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거짓말처럼 주유기가 꽂혀 있다. 눈을 비비며 다시 확인했다. 분명히 주유 손잡이와 줄까지 보였다.
전화를 해 줘야 하는데, 너무 황당해서 전화기만 잡고 웃음이 나온다. 주유소에 있어야 할 주유기가 여기에 주유구에 있네! 정신을 가다듬고 전화기를 눌렀다. 사장님! 주유원이 기름을 어떻게 넣었기에 주유기가 여기에 있습니까, 많이 넣지도 않았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차에 불이라도 나면 어찌 하라고, 이런 황당한 일이 말이 되느냐고, 난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듣고 있던 사장님은 나에 대한 동정을 살피는듯 한숨만 쉬는 눈치였다.
다시 차를 돌려 주유소로 갔다,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웃음이 나와, 참으려 애를 먹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이여 주유기 한대가 처참하게 박살이 나 있었다,주유원한테 내가 그런거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이라 자기네들도 할말을 잃었던 모양이었다. 내 앞에 말로만 듣던 일이 펼쳐져 있지 않은가? 난 처참해진 주유대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저렇게 처참히 부서지리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멋쩍은 표정만 내내 지었다. 주유기가 꽂혀있고 나는 모르고 출발했고, 순식간에 줄은 끊어지며 탈력이 붙어 주유대를 정통으로 맞아, 계기판은 떨어지며 틀이 휘여져 앙상한 뼈대만 남은 상태였다. 어디부터 잘 못이 있었나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때의 상황은 큰 차량이 여러대가 시동을 켜놓고 주유를 하고 있어서 무척 소란하고 분주했다. 내 차도 5톤 차여서 창문을 닫으면 엔진 소리가 큰것이 문제였다.
현금으로 계산하고 온터라 무엇이 아쉽다고 도주를 했다는 말인가. 주유통을 채우고 당연히 뺀 줄만 알고 있었기에 별 관심도 두지 않았다. 나는 사장님 한테 처음부터 출발 할때가지 정황을 상세히 설명했고, 내가 시동을 키며 인사까지 하고, 출발을 했다는 것을 주유원 어르신한테 확인한 부분이었다. 그 분도 주유기를 뺀 줄 알았다고 말해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다행이 주유원 덕분에 책임을 면하게 되었다. 며칠 지나서 전화 통화 후, 매달고 온 손잡이만 책임지기로 합의하여 다행한 일이었고, 그 동안 친분을 쌓은 덕에 여사장님의 센스있는 베려에 쉽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만약 운전자 과실로 전가했더라면, 수리비 4백여 만원에 영업 손실까지 아차하면 덤으로 물을 뻔했던 일이다. 그때 일로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언제나 주유를 할때는 차에서 내려 주유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주유기를 빼는 걸 확인 하고는 계산을 하는 버릇이 생겨났다. 억울함을 당할지라도 굳이 변명하려고 하지말고 유연히 대처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변신은 무제(無際)다. 진화하기 위한 삶은 자기 성찰(省察)로 끊임없는 노력이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좋은 만남, 좋은 생각으로 묵묵히 자기 수련(修鍊)을 쌓다보면 더 멋진 삶은 성큼 다가 서리라. 일이 있은 후에도 자주 찾아뵈며 친분을 유지하니 더욱 살갑게 대해 주셨다. 덤으로 많은 부수입을 안겨주신 사장님에 세심한 베려에 따뜻한 인간미(人間味)를 느꼈다.
첫댓글 "분풀이를 하고, 울고 넘는 박달재 터널을 지나 충주입구에 있는 거래처에서 넣기로 하고, 조금전 있던 분한 마음을 삭이며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기 시작했다. ......기름통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이럴 수가! 거짓말처럼 주유기가 꽂혀 있다. 눈을 비비고 또 비비며 다시 확인했다. 분명히 주유기인데 줄까지 붙어 있었다."
어머!! 선생님께서 어이없는 일을 당하셨는데...왜 이렇게 웃음이 납니까? 호호호~~~~불행중 다행입니다선생님? 더큰일로 번지지 않아서요..(주유기를 달고 오다니요..)운전 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많이 만나지요.. 잘 읽고 갑니다 선생님.
원! 세상에...,읽으면서 불안해지는군요. 많이 놀라셨겠어요, 오히려 자기 성찰로 노력하시는 선생님이 아름답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