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전도를 위해서 거리로 나간 목요일 탁자를 펴는데 그 아래 민들레 한포기가 보도블럭 사이에서 녹색 잎을 잔뜩 펼친 채 봄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참 느낌이 좋았습니다. 이 도시의 한 모퉁이에 보도 블럭 사이에서 봄을 알리는 생명이 살고 있었구나!
그 순간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삭막하다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삶의 고단함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세상, 그리스도인이, 교회가 이 땅에 있다는 것을 희망으로 여길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습니다.
사랑하는 예신 가족 여러분! 이 삭막한 도시안에 여러분의 발걸음이 닿는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게 하는 주님의 전령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사랑이란 요소가 담겨있습니다.
어제 우리 교회에서는 두가지 큰 행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동부 아이들이 한달에 한번 체험활동을 하는 날입니다. 7명의 아이들이 다녀왔는데 우리 교사들의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7명의 아이들의 기쁨과 의미있는 시간을 위해서 자신들의 시간을 내어주는 사랑 때문에 활동이 만들어진 것이죠.
어제 모인 남선교회의 모임에서는 맛있는 음식과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 모임을 위해서 박내룡집사님의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회장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모습속에서 사랑을 보았습니다. 인생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값진 일들은 사랑 없이 할 수 없습니다.
어제 밤 심진섭 성도의 장례식장에 가느라고 세례받을 학생들에게 줄 선물을 이은혜 청년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걷고 걸어서 간 백화점은 문을 닫았죠, 하지만 그 수고에 담긴 사랑만큼은 헛걸음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세례를 받는 학생들을 위한 성가대의 선곡, 청년들의 봉헌찬양 여기에 담긴 사랑을 우리가 함께 나누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사랑에 대한 설교를 맺으면서 본문을 묵상하면서 두가지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사랑은 오래참는 것입니다.
사랑의 속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4절부터 7절까지의 가장 앞부분과 마지막 부분은 동일한 의미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우리를 향한 오래참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서로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오래참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습니다.
제가 상추씨를 심기 위해 산에서 흙을 퍼다가 작은 밭(?)을 만들고 상추씨를 심었습니다. 몇주 지나니까 뭐가 상춘지 모르게 갖가지 싹들이 돋아나는 거에요. 집사람이 '상추가 없는 것 같다'고 하는 거에요. 제가 그랬죠. 상추를 심었으면 상추가 나오는거지, 다른 것과 구별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그런데 지난주에 신권사님이 우리 집에 잠깐 들렀는데 보시더니 '상추 아니라고' 다 뽑았어요. 그리고는 상추 모종을 갖다가 심었습니다.
이제 곧 상추를 먹겠지만 저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 '내가 심은 건 뭐냐?' 확인도 못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저는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씨를 심어 놓고 그게 상추인지 아닌지 혼동스런 과정을 인내하며 상추를 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오래참는 대신에 '상추 모종'처럼 분명한 것을 더 좋아했던 거죠. 내 자녀에게도, 교우들에게도 말입니다.
꽃을 선물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뭔가 특별한 어떤 일을 해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씨앗과 같은 한 생명이 성숙하기까지의 오랜 시간을 견디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다시 읽으며 어쩜 그 소년은 철저하게 이기적일까? 생각해봤습니다. 더 가슴이 아팠던 것은 그는 단 한번도 나무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져가는 기쁨을 알았지만 주는 이의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소년의 태도는 저를 분노하게 합니다. 그런데 나무는 그 자리를 지키며 남은 밑둥마저 소년을 위해 내어주며 기뻐합니다.
그 나무의 소망은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나무는 나무의 곁을 오래 떠났던 소년이 올때마다 기쁨으로 맞이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주길 원했을까요?
5절입니다.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실패하지 않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래참고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 떨어지지 아니하되' NIV역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Love never fails." 사랑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호 아가페 우데포테 핍토" 헬라어는 사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그분에게 요구하고 받고나서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분을 떠나갑니다.
그리고 다른 필요가 생기면 찾아와 요구하고 받고 떠나가고, 그러나 나무위에 달린 예수님은 소년처럼 행동하는 우리의 뻔뻔함을 기억하지 않고, 여전히 나무위에서 사랑을 품고 우리를 오래참음으로 기다려주십니다.
사랑이 실패하지 않을 것을 믿는 한가지 소망을 품고 말입니다.
그 분의 사랑을 배우기 원합니다. 더 오래 참는, 실망도, 아픔도, 상처도 견뎌내는 사랑말입니다.눅21:19절에 "너희의 인내로 너희의 영혼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오래참는 사랑의 사람이 되십시오.
두번째로 위대한 사랑은 용서의 선물을 담고 있습니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헨리이야기>라는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 상류층에 속한 ‘헨리 터너’라는 변호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은 어떤 수를 써서든지 이겨내는 실력 있는 변호사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헨리 터너 변호사를 찾았습니다.
하루는 그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다가 권총을 든 강도를 만나 총에 맞고 쓰러졌습니다. 생명은 구했지만 그는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헨리는 과거의 기억을 찾기 위해 옛날 동료들을 만나고, 변론 기록물들을 찾아가며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재판 기록들을 살펴보던 중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맙니다. 그가 승소한 모든 사건들이 승리를 위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그는 재판에 패소한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의 새로운 인생을 용서를 구하는 삶으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용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묻어둘 하나의 무덤, 십자가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때문에 참된 크리스챤은 모두 용서의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용서받지 못할 만큼 더러운 사람도 없고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이 깨끗한 사람도 없습니다.
중세의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였던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주장함으로 카톨릭의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묻혀 있는 푸라우엔버그의 묘비에 그의 기도문이 한 구절 새겨있는데
“주님 저는 바울에게 주신 큰 은혜를 바라지 않습니다. 베드로에게 주셨던 능력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 십자가 옆에 매달렸던 강도에게 주셨던 용서를 바랄 뿐입니다."라고 쓰여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남이나 자신을 용서해 주지 않을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정신입니다. 끝없이 과거의 올무에 붙들려서는 안됩니다.
큰 지우개를 가지신 하나님은 엡4:32절에서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없는 사랑은 빈겁데기입니다.
언젠가 우리 인생에는 모든 것이 의미 없어지는 때가 올 것입니다. 8절입니다.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그러나 사랑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만이 남을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칼날이 되지 않기를, 내가 용서를 구해야할 때 주저하지 않고 용기있게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돌아온 탕자를 품에 안았던 주님처럼, 우리가 서로를 품고 함께 기쁨의 잔치를 벌이는 사랑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