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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크와 「통치론」
-사회 계약론과 권력분립의 원리-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민주정치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로크(Locke, J., 1632~1704)의 사회 계약설이며, 이 사상적 영향이 실천적으로 나타난 것이 프랑스, 미국 등의 시민혁명이다.……
그의 사회 계약설에 의거하면, 국가 성립 이전의 자연상태에서는 모든 사람이 생명, 자유 및 재산에 대한 자연법상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연상태에서는 권리의 보장이 확실치 않으므로 계약에 의해 정부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정부가 인민의 신탁을 배반하고 자연권을 침범하게 되면, 인민은 정부에 저항하여 정부를 재구성할 정당한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정치․경제」교과서 P.27~P.28에서
「통치론」에 관하여
왕의 절대적 권위가 흔들리고, 새로운 계층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확보하려고 애쓰던 시절에 태어났던 영국의 철학자 로크(John Locke, 1632~1704). 그가 수없이 고민하며 내놓은 것이 바로 「통치론」이란 책이다. 이 「통치론」은 로크의 민주정치에 관한 생각들이 기술된 책이다.
그런데 로크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철학․자연과학 등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인간의 오성에 관한 에세이」, 「교육에 관한 에세이」, 「통치에 관한 두 논문」 등 여러 분야의 저서를 남겼던 것이다.
그 중「통치에 관한 두 논문」이 로크의 정치에 대한 의견이 담겨있는 책으로, 이 책명을 간단히 부를 때 「통치론」이라고 한다.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통치론」은 제1논문인 <로버트 필머 경과 그 동료들의 잘못된 논리에 대한 반박>과 제2논문인 <시민통치의 참된 기원과 범위 및 목적에 관한 에세이>가 합해져 있는 책이다. 대개 제1논문은 제2논문을 쓰기 위한 기초자료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제2논문을 주로 읽고 있다.
로크는 「통치론」에서, 왕의 권력을 신이 내려준 것이라는 ‘왕권 신수설’은 잘못된 것이며, 정치권력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상태, 즉 ‘자연상태’에서 모든 개인들의 ‘동의’에 의해 성립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밖에 정치권력의 기원, 국가의 형태, 입법권의 범위 등이 「통치론」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로크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및 「통치론」에 관한 간략한 소개와 제1논문의 내용까지만 싣는다. 이 글을 통해 로크의 근대적인 정치 사상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사회분과
1. 들어가는 말
우리가 살 수 있고 살아있는 것은 현재일 뿐이지만, 과거는 추억과 회상으로 또 미래는 계획과 희망으로 우리의 생각과 삶 속에 끌어들일 수 있다.
많이 춥지는 않았던 겨울이 가고 감나무 가지에 파아란 새싹이 돋아올 새봄을 맞으면서, 우리는 또 한겨울을 추억 속으로 넘겨야 함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자연의 순리이기에 거역할 수 없고 거역할 필요도 없다.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순간, 즉 여러분과 내가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만나고 있는 이 순간에 충실하면서 즐거운 마음을 갖는 것이 삶 자체에 충실하는 것임을 기억하도록 하자.
오늘 우리가 함께 보고자 하는 사람은 「정치․경제」교과서에 두 쪽에 걸쳐 자세하게 소개된 존 로크(J.Locke)이다.
항상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때를 과도기나 전환기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로크가 살던 때는 혁명을 두 번이나 겪을 만큼 격동의 시대였다. 우리가 ‘명예혁명’이라고 알고 있는 혁명도, 망명을 해서 어렵게 살고 있던 그를 조국인 영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혁명이었다.
왕의 절대적 권위가 흔들리고, 새로운 계층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확보하려고 애쓰던 시절에 태어나, 수없이 고민하며 내놓은 것이 그의 민주정치에 관한 생각들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말도 소련과 동구권의 대변혁과 국내적인 갈등 등으로 혼란기임에 틀림없다. 이런 혼돈스런 때에 로크의 생각을 곰곰이 되씹어보는 일은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과 의미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는다.
로크의 생각은 현대의 지식인들과는 다르게 매우 폭넓게 전개되어 있다.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철학, 심지어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각은 당시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비교적 인기있는 의사이기도 했다. 학문의 수준과 깊이가 현대와 비교될 수 없었던 때에나 가능했을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의 폭넓은 관심과 지식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자, 이제 그의 생애와 폭넓은 관심의 영역에 대해 잠시 본 후에, 본격적으로 민주정치에 관한 생각을 담은 「통치론」의 핵심내용을 다루기로 하자.
2.로크가 살았던 시대와 그의 관심들
로크가 살았던 때는 시기적으로 17세기에서 18세기초이다. 1632년에 태어나 1704년에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비교적 장수하면서 온 몸으로 영국의 혼란과 혼돈을 극복해보고자 했던 그였다.
당시 영국은 국왕 찰스 1세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로크가 10살 되던 해에 영국 국왕은 스코틀랜드의 교회를 영국 국교회의 지배하에 두려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 오히려 스코틀랜드에서 군대를 파견해, 찰스 1세를 공격하게 되자, 왕은 방위에 필요한 돈을 거두어 달라고 의회에 요청하게 된다. 의회가 이 요청을 거부하고 국민들도 납세거부 운동을 펴게 되어, 결국 왕과 의회는 싸움을 벌인다.
이 상황에서 변호사이면서 종교적으로는 청교도였던 로크의 아버지는 의회군에 가담한다. 이 전쟁으로 그의 아버지는 많은 재산을 잃고 가난하게 되었지만, 자식을 교육시키는 일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기 때문에, 로크는 큰 어려움없이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의 영국만을 생각하면 이 충돌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영국이, 본토라고 할 수 있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으로 나누어져 어느 정도는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세 지역을 통일하여 다스리던 국왕의 힘이 약해지면, 각 지역은 저항하거나 독립운동을 벌이곤 했다. 지금까지도 아일랜드 사람들은 잉글랜드인이 이끌어가고 있는 영국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의회군이 점차 승리를 거두는 시기에 로크는 공식적인 학교 웨스트민스트에 입학한다. 이 학교의 교육방식이 우리와 비슷한 일방적인 주입식이라서 로크는 학교생활에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낸다. 특히 라틴어나 그리스어의 문법을 무조건 외우라고 하는 방식에 불만이 많았지만, 그 공부를 게을리하지는 않아서 장학생이 되기도 했다.
이 때 영국은 의회파를 이끄는 크롬웰이 결정적으로 승리하고 난 후, 자기편이 급진파와 온건파로 분열되어 대립하는 시끄러운 상황에 ㅓ해 있었다. 크롬웰이 이끄는 급진파가 세력을 확보한 후, 자기들만의 결정으로 국왕인 찰스 1세의 목을 자른다.
흔히 단두대(斷頭臺)라고 불리는 공개 처형기구를 통해 숨을 거두는 왕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젊은 로크는 충격을 받는다. 그러면서 정참 정치가 무엇이고 어떤 정치가 바람직한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이다.
1652년, 그러니까 찰스 1세가 처형당한 지 3년 후에 그는 영국의 유명한 대학인 옥스포드에 입학한다. 여기에서 후에 교수가 되어 연구에 종사하는데, ㅓ음에는 그가 싫어했던 그리스어를 담당하다가 나중에는 도덕철학도 가르친다.
후에는 자연법과 의학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노릇을 하던 중에 당시의 유명한 정치가였던 애쉴리 경을 알게 된다. 여기에 일화가 있는데, 애쉴리 경이 가슴에 종기가 생겨서 찾아간 의사는 로크가 아니고 토마스라는 더 유명한 의사였다. 마침 토마스가 다른 일이 생겨 로크에게 대신 일을 맡겼는데, 피치못할 사정이 생겨서 로크마저 진단을 해주지 못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애쉴리 경을 찾아가 힘껏 용서를 빌고 정성을 다해 종기 수술을 해주었다. 그런 후 평생동안 로크는 애쉴리 경의 주치의로서, 또한 상담자로서 가깝게 지내며, 당시 영국의 정치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때론 직접 참여도 하는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항상 준비를 하면서 성실하게 어떤 일에 열중하다 보면, 기회가 찾아든다는 교훈을 일깨워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휘그당의 지도자였던 애쉴리 경은 한때 영국의 정치를 좌우하기도 했지만, 왕에 반대하는 그의 정책 때문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네덜란드로 망명하는데, 로크도 따라나서게 된다. 자유로운 나라였던 그곳에서 가명을 쓰면서 많은 고통을 당하기도 했지만,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던 중에, 영국의 당시 왕인 제임스2세가 물러나는 명예혁명(1688년)을 맞는다. 이 명예혁명으로 영국은 근대 시민사회의 틀을 잡게 되고 로크도 귀국한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명예직 정도만 맡고 편히 쉬면서 생각을 정리한 책을 냈다.
명예혁명 다음 해에 「관용에 대한 편지들」을 출간했고, 그 다음 해인 1690년 2월에 대표적 저서인 「통치에 관한 두 논문」을 낸다. 같은 해에 「인간의 오성에 관한 에세이」가 나오고, 1693년에는 「교육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을 출간하는데, 특히 이 책은 교육에 관한 좋은 글로 후세의 교육학자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는 책이다. 그 외에도 경제와 종교에 과한 책을 냈고 다방면에 계속적인 관심을 보이다가 1704년 10월에 72년의 생애를 마쳤다.
3. 「통치론」의 주요 내용들
가.「통치론」에 관한 소개
「통치론」은 본래 「통치에 관한 두 가지 논문」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을 간단하게 부를 때 쓰이는 책명이다. 다시 말하면 「통치론」은 통치에 관련된 두 논문이 합해져 있는 책인 것이다. 첫 번째 논문은 그 제목이 <로버트 필머 경과 그 동료들의 잘못된 논리에 대한 반박>으로 되어있었다. 두 번째 논문의 제목은 <시민통치의 참된 기원과 범위 및 목적에 관한 에세이>이다.
대개, 첫째 논문이 두 번째 논문을 쓰기 위한 기초자료라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두 번째 논문을 주로 읽고 있다. 물론 첫 번째 논문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두 번째 논문에서 그 내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주로 이것을 중심으로 해서 로크의 정치에 관한 생각들을 정리해 보기로 하자.
「통치론」은 우선 첫 번째 논문에서, 로버트 필머 경으로 대표되는 왕의 권력이 신(神)에게서 온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그런 후에 권력의 기원이 신이 아니고 인간의 자연상태에서 비롯된다고 전제하고 있다. 정치권력이란 자연상태에서 모든 개인들의 동의에 의해서 성립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자연상태는, 우리가 앞서 공부한 바 있는 홉스의 자연상태, 즉 ‘모든 사람의 모든 사람에 대한 투쟁상태’가 아니라 ‘각자가 자연법의 범위 안에서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고,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소유물과 신체를 처리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 상태’이다(본지10호, 11호 참조).
다시 말해 전쟁의 상태가 아니라, 평화롭고 자유로운 상태가 로크가 생각한 자연상태인 것이다. 제2논문에서 다루는 내용이 바로 이러한 자연상태에 대한 묘사와, 정치권력의 기원, 국가의 형태, 입법권의 범위 등등이다.
로크는 「통치론」을 통해서 우선적으로 왕의 권력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확실하게 밝힌 다음에, 자신의 정치에 관한 구체적인 생각들을 밝히고자 했던 것이다. 그 첫 번째 작업을 제1논문 <로버트 필머 경과 그 동료들의 잘못된 논리에 대한 반박>에서 하고 있고, 두 번째 작업을 제2논문 <시민통치의 참된 기원과 범위 및 목적에 관한 에세이>에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볼 때가 되었는데,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로크의 주된 주장이 나오는 제2논문을 중심으로 하고, 제1논문은 간단하게 살피는 방향으로 하기로 한다.
나. 제1논문 <로버트 필머 경과 그 동료들의 잘못된 논리에 대한 반박>
첫 번째 논문에서 로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첫째는 인간의 시조인 아담에게, 자신의 자식을 지배할 수 있는 권위나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다는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는 반박이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면서 세상과 그 후손을 지배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주었다는 주장은 틀린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모든 세상의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아담을 창조하여 마음이 흡족했었다라는 성경구절에 근거를 두고, 지배의 권한까지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고, 그러한 권한을 수여받았다는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로크는 바로 그 성격을 증거로 대면서 논박하고 있다.
두 번째는 만약 아담에게 그러한 권한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그 상속자들에게 권한이 상속된다고는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로버트 필머 경과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정치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아담에게 주어졌고, 그것이 다시 홍수 이야기로 유명한 노아에게 상속되었으며, 그 후에는 큰아들에게 상속되어왔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주장의 근거로 삼는 성경의 어느 구절을 보아도 아담에게서 노아로, 또 큰아들에게로 정치권력이 상속되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로크의 두 번째 주장의 핵심 내용이다.
「통치론」의 제1논문에 나타난 로크의 세 번째 주장은 아담의 상속자들에게 그렇게 정치권력이 상속되었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도대체 적당한 상속자가 누구인가를 알아낼 수 있는 확실한 법이나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항상 상속의 문제를 놓고 전쟁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러는 가운데 일반 국민들만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
네 번째 주장도 세 번째와 직접 연결된다. 만약 그러한 정치권력의 상속이 확실하게 결정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아담의 자손들 중에서 도대체 누가 그 상속권을 물려받을 수 있는 직계자손인지가 오래 전부터 분명치 않게 되어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어떤 종족들과 가문들이 자기야말로 그 직계자손이며 상속권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대개 힘으로 사람들을 정복한 왕이거나 그 왕의 자손일 수밖에 없고, 그 주장은 뿌리에서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로크가 제1논문을 통해서 밝히고자 했던 요지라고 할 수 있다.
로버트 필머 경으로 대표되는 ‘왕권 신수설’ 즉 왕의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그 근거로 삼고 있는 책은 성경이다. 그런데 로크도 바로 그 성경을 근거로 삼아서 뿌리로부터 차근차근 반박하고 있다. 제2논문에 가면 이러한 반박에 기초한 자신의 통치권력의 기원과 범위, 목적 등에 관한 생각을 자세하게 엿볼 수 있는 구절들이 나온다. 이제 그의 제2논문은 다음 호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다. 제2논문 : <시민통치의 참된 기원과 범위 및 목적에 관한 에세이>의 주요 내용
(1)자연상태와 전쟁상태에 관하여
로크가 쓴 「통치론」의 제2논문은 전체 19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크게 나누어 세 부분으로 되어있는데, 첫 부분은 서론과 자연상태에 관한 설명, 그리고 노예상태와 소유권에 대한 설명 등이 있는 1장부터 6장까지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부분은 정치사회의 기원과 목적, 권력의 성격 등에 관한 설명이 있는 본론에 해당하는데, 논문의 7장에서 15장까지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부분은 권력이 어떻게 이전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16장에서 19장까지이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로크가 스스로 한 것이 아니고, 본 평설자가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새로 분류해본 것이다.
우선, 첫 부분부터 살펴보자.
1장인 서론을 열면, 제1논문에서 다룬 내용을 요약해서 제시한 부분이 나온다.
“나는 앞에 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분명히 밝혀두었다.
첫째로, 인간의 시조가 되는 아담에게 자신의 자식들을 지배할 수 있는 권위나,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권력이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에게는 그와 같은 권위나 지배권이 아버지라는 신분에서 생기는 자연의 권리에 의해서도 인정되지 않았고,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흔적도 없다.…”
제1논문의 주제인 왕의 권력이 신으로부터 아담을 거쳐서 장남의 권리로 상속되었다는 주장에 대한 재정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러한 주장은 근거없는 것이고, 이 주장이 잘못된 것임이 자신의 논문에서 밝혀졌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모두 분명하게 입증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현재 이 지상에 있는 지배자들은 모든 권력의 원천으로 간주되는 것. 즉 ‘아담의 개인적인 지배권과 아버지로서 갖는 지배권(부권)’으로부터는 아무런 근거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중략)……
이제 반드시 통치의 발생과 정치권력의 기원, 그리고 정치권력을 가지는 사람들을 지정하고 식별하는 방법에 대해 일찍이 로버트 필머 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과는 다른 것을 찾아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내가 정치권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이 부적당한 일이라고 보지는 않는다.……(중략)……
정치권력은 재산을 규제하면서 갖게 하기 위해, 사형과 그 이하의 형벌을 가할 수 있는 권한이 따르는 법률을 만들 수 있는 권리이며, 그러한 법률을 시행하고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방위하기 위한 공동의 힘을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며, 또한 이 모든 것은 오로지 공공의 복지만을 위해 행사하게 되는 권리이다.”
서론에서 정치권력에 대한 정의를 내린 것에 이어, 제2장은 로크가 인간의 자연상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정치권력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의 기원을 찾아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원래 어떠한 상태에 놓여있는지를 고찰해봐야 한다고 말하면서, 로크는 자연상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인간의 자연상태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이다. 즉 그것은 사람들이 일일이 다른 사람의 허가를 얻지 않고도, 자연법의 범위 안에서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데 따라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며, 또 자신의 소유물과 몸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인 것이다. 인간의 자연상태는 또한 평등한 상태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모든 권력과 권한이 상호적인 것이고,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갖는 일은 없다.”
그러면서 로크는 자유의 상태를 방종의 상태와 구별짓는다. 방종과 구별되는 자유의 상태는 자연법에 의해 이루어진다. 계속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자연의 상태에서는 그것을 지배하는 하나의 자연법이 있는데, 누구나 그것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자연법은 모든 사람들을 구속하고 있는데, 인간의 이성이야말로 다름 아닌 자연법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상태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이성의 유도에 따르면서 살 수 있지만, 인간은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평화로운 상태가 깨질 위험성이 나타난다. 제3장은 바로 그러한 전쟁의 상태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다.
자연상태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평화가 지속되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자기의 절대적인 권력 밑에 두려고 할 때에는 전쟁의 상태로 변화한다. 이 둘을 비교해서 설명한 로크의 입장을 보자.
“사람들이 그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재판할 수 있는 힘을 갖는 하나의 권력자를 갖지 않고, 오로지 이성에 따라서만 생활해가는 상태가 바로 ‘자연상태’이다. 반면에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또는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를 표시하는 자가 있어도 그로부터 구조(救助)를 호소할 수 있는 공동의 권력자가 없는 상태가 바로 ‘싸움의 상태’인 것이다.”
한편 노예상태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는데, 한 권력자가 어떤 사람의 생명권을 손아귀에 쥐고 죽이지 않는 대신에 부려먹는 상태가 바로 ‘노예상태’이다. 이 노예상태에 관한 이야기는 제4장에서 나오고 있다.
제5장과6장은 소유권과 부권(父權)에 대해 말하는 장들이다. 특히 로크는 소유권에 대해 자세히 말하고 있다. 즉,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한 몸에 대해서는 소유권ㅇㄹ 갖고 있고, 자연물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할 정도의 한계에서 소유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자연물은 신에 의해서 인간과 모든 피조물의 공동소유로 주어져 있는 공유물이고, 이 공유물 중에서 자신의 정당한 노력을 통해 얻은 것에 대해서만 그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로크의 주장을 들어보자.
“계약에 따라 공유물로 남아있는 토지의 일부를 어떤 사람이 자연이 방치해 둔 그대로의 상태에서 떼어가지게 될 때, 비로소 소유권이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부분을 손에 넣든간에 그것에 관해 모든 공유권자의 명백한 동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리하여 내가 다른 모든 사람과 함께 공유권을 갖고 있는 어느 곳에서 내 말이 뜯어 먹는 풀이나, 내가 캐낸 금 등은 어느 누구의 양도나 동의가 없어도 내 소유물이 되는 것이다. 그것들은 나의 노동에 의해 이전에 놓여있던 공유의 상태로부터 끄집어내어졌는데, 바로 이러한 노동을 통해서 나의 소유권이 확립된 것이다.”
로크의 소유권에 대한 생각이 다른 부분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땅을 인간에게 공동의 것으로 하사해 주셨다.……(중략)……
하나님께서는 땅을 부지런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사한 것이지, 결코 싸우기를 좋아하는 투쟁적인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행동과 탐욕을 위해서 하사하신 것은 아니다. 따라서 노동은 땅에 대한 소유권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노동에 의해서 갖게 되는 소유권이 초기에는 별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가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 의해 재산 축적의 무제로 연결된다. 원시상태에서는 곧 썩어버리기 때문에 쌓아두기 어려운 것들을, 돈이 사용되면서 쌓아둘 수 있게 되었다.
“부지런히 일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각각 다른 비율의 재산을 갖게 되었고, 화폐의 발명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축적함과 동시에 그것을 증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소유권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해 놓고, 로크는 제6장에서 부권(父權)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즉, 아담은 본래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 에덴동산에서 자연법에 따르면서 살 수 있었지만, 그의 자손들은 매우 약한 채로 태어난다. 이 불완전함을 보완하기 위하여, 부모들이 자연법에 의거해서 자신들의 아이를 양육하며 교육시킬 의무를 짊어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권은 아직 어른이 되기 전가지만 유효하고, 그 이후가 되면 자연스럽게 소멸한다. 이러한 아버지로서의 권리는, 권력자가 갖는 권리의 문제에도 같게 적용될 수 있다. 즉 시민들이 일단 사리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절대권력도 종말을 고하게 되고, 시민의 이성과 자유는 비로소 완전하게 발휘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2)시민사회의 기원과 목적, 권력분립 등에 관하여
통치에 관한 로크의 두 번째 논문의 두 번째 부분 즉, 7장에서 15장까지가 그의 주장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곳이다. 로크가 명예혁명 이후의 영국에서 조금씩 경험할 수 있었던 근대 시민사회가 어디에서 비롯되고, 그 사회의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약 아홉 장에 걸쳐서 자세히 답하고 있는 곳이 두 번째 부분이다.
우선 시미사회란 무엇이고, 그 기원과 목적, 국가의 형태, 입법권의 범위 등에 대해서 살핀 수에 본격적으로 권력의 문제를 살피는 순서를 로크는 택하고 있다.
제2부의 첫 장이라고 할 수 있는 7장은 시민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로크의 정의를 볼 수 있는 장이다. 부부관계가 남녀 사이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는, 정치가 본래 무엇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래 저이사회라는 것은 그 자체 속에 재산을 보호해줄 수 있는 권력과, 그 목적달성을 위해 사회성원들의 범죄도 처벌할 수 있는 권력을 갖지 못한다면, 도저히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의 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와 같은 자연적인 권력을 포기하고,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법률의 보호를 호소할 수 있게 되어있는 모든 사건을 공동사회의 손에 맡기는 경우에, 비로소 정치적 사회는 성립되는 것이다.”
이 부분이 우리들이 새「정치․경제」교과서에 나와 있는 로크의 사회 계약설이 설명되는 곳이다. 8장은 이러한 정치사회의 기원이 설명되고 있는 장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되는 자연적인 자유를 포기하고 시민적 사회의 구속을 받게 되는 유일한 길은, 다른 사람과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공동사회를 형성하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목적은, 각각 자기네들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그 공동사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에 의한 침해에 대해 더 확고한 안전을 보장받음으로써 서로 평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내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로크는 정치사회의 기원이 각 개인들의 동의라고 보았고, 또한 어떤 공동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것도 구성원들의 동의일 따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절대군주가 통치하는 나라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 하지만 역사의 방향은 다시 각 개인들의 동의에 의해 정치사회가 형성되는 시민사회로 가는 것이다.
9장과 10장, 11장에서는 정치사회를 만드는 목적과 국가의 형태, 입법권의 범위 등이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포기하고 정치사회를 만드는 첫 번째 목적은,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이다. 자연상태에서는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할 만한 법률이 없고, 재판관도 없으며, 판결이 내려진 후라고 해도 이 판결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권력이 없다. 따라서 매우 불안하기 때문에 공동의 안전을 위해 뜻을 모아 정치사회를 만들고, 그 권력에 복종하여 평화를 얻고자 한 것이, 시민사회의 주된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가의 형태는 당연히 공동의 복지를 지키는 국가일 수밖에 없고, 이러한 국가를 로크는 ‘커먼웰스(Commonwealth, 공공복지)’라고 이름짓고 있다.
11장에서는 국가 최고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입법권에 대해 말한다.
“사회가 입법부에 위임한 것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것은 신(神)과 자연의 법이 모든 국가의 입법권에 부여한 한계이기도 하다. 이것을 요약하며 다음과 같다.
첫째로, 입법부는 널리 공포․확정된 법률에 의거하여 지배하여야 한다.……
둘째로, 이러한 법률은 국민의 복지 이외의 목적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셋째로, 국민들이 그들 자신과 대표자를 통해 동의를 표시하지 않으면, 입법부는 국민의 재산에 대해 세금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넷째로, 입법부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력을 어떤 다른 사람에게 양도해서도 안 되고 양도할 수도 없다.……”
그러면서 로크는 이러한 입법권과 구별되는 행정권과 연합권에 대해, 12장과 13장,14장,15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한다.
우선 우리들의 새 「정치․경제」교과서 37쪽에 나오는 ‘권력분립의 원리’에 대한 로크의 생각을 볼 수 있는 부분을 함께 읽어가보자.
“법률은 ……(중략)……변함없이 영속적인 효력을 가지고 부단히 집행되어야 하고, 그 집행을 돌보는 일이 필요하다. 따라서 제정된 후, 줄곧 그 효력을 지속시킬 법률의 집행을 담당해야 할 권력이 항상 존재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어 입법권과 집행권(행정권)은 자주 분리된다.”
로크는 입법권과 별개로 집행권, 즉 행정권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외국과 외교관계를 맺을 수 있고, 국가 밖에 있는 모든 개인이나 공동사회를 상대로 일체의 교섭을 할 수 있는 외교권을 ‘연합권’이라고 하여 따로 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연합권은 행정권과 실제에 있어서는 분리되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에, 결국 로크의 권력분립은 입법권과 행정권의 분리라고 설명해도 될 것이다. 이것이 현재와 같은 삼권분립으로 오는 과정에 몽테스키외가 자리하고 있고, 그의 생각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16장에서 18장까지는, 정복과 왕위의 빼앗음, 전제정치 등 실제 정치의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하나씩 살피고 있는 부분이다.
시민사회의 참된 기원이 ‘동의’에 있기 때문에, 정복이 결코 진정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방법일 수 없다고 단정한다.
마찬가지로 한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찬탈, 즉 힘으로 왕의 자릴ㄹ 빼앗는 것도 정상적인 것이 아니지만, 다만 찬탈은 지배하는 인물이 바뀐 것일 따름이고, 통치의 형태나 규칙은 변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복과 구별된다.
전제정치도 시민사회의 본래 모습에서 벗어난 것임에 틀림없다.
마지막 장인 19장에서는, 결론적으로 통치의 권한을 맡긴 국민들과 맡은 집단 또는 개인과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을 함께 읽어보자.
“국민은 최고의 권력자로서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입법권을 자기들의 손안에 계속 놓아둘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통치형태를 만들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낡은 통치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만 입법권을 새로운 사람들에게 맡길 것인가의 문제들을, 자기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데 따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4. 맺는 말
지금까지 비교적 길게 존 로크라는 영국 사람이 인간과 정치에 대하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해 함께 살펴보았다. 우리가 지금 채택하고 있는 서구 민주주의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사상가의 하나인 그의 생각들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그는 인간의 자연상태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간의 자연상태는 평화로운 것이면서도 항상 쉽게 깨질 수 있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데서 로크의 정치에 관한 이론이 출발한다. 즉, 그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사람들은 서로 합위를 해서 정치사회를 만든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국민들의 동의에 기반을 두지 않은 다른 모든 정치형태는 일단 정상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 또한, 역사는 정치권력의 출발에 동의해준 국민들의 힘이 제대로 평가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제도적 원리인 권력분립의 확립을 들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앞에서 함께 본 것처럼, 로크의 권력분립은 오늘날과 같은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이 아니고, 입법권과 행정권의 이권분립이다. 그 외에 연합권이라는 일종의 외교권을 생각했지만, 이것은 행정권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권력분립의 원리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 반드시 권력이 분립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자명종의 역할을 해냈다.
라틴어 문법을 암기하면서 공부에 따분함을 느꼈던 젊은 시절의 로크가, 보다 활동성있는 일을 찾기 위해 의학을 공부해서 의사일을 보기도 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물론 그는 의사를 하면서도 정치와 사회, 법 등을 계속 연구하였고, 옥스포드 대학에서 교수를 하기도 했다.
학생 시절의 공부가 누구에게나 따분하게 느껴지고, 특히 암기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학교 현장에서는 더 많은 싫증과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의 한 과정에서는 억지로 공부해야 하는 의무와 압박감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을 갖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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